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최덕성 교수의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3)를 읽고/ 권세일 박사
한국기독교의 이종서식(異種棲息)
최덕성 교수의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3)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와 관련된 21세기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최덕성 교수는 이 책을 통해서 WCC와 21세기 한국교회의 신학적 실상들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역사신학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칼빈주의 정통신학을 따르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79년 신학자의 바른 결기와 양심으로 교황 무류성에 반기를 들었던 한스 큉은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동료 학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씁쓸한 시간을 보냈다. 그 이야기는 지금 저자가 WCC와 한국교회 진보 에큐메니칼 측의 종교다원주의 성향을 지적함으로써 겪는 외로움과 어려움을 투영하는 듯하다.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연합운동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목과 대립의 역사였다. 한국의 장로교회와 성결교회는 1960년대 초에 WCC에 가입하는 사안에 대한 견해 차이로 분열했다. WCC는 반세기 뒤인 2010년대 초 다시 한국의 교회―신앙고백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배후 요인으로 등장했다. 제10차 총회(부산, 2013)를 앞두고 한국교회는 WCC를 지지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이 갈등을 겪었다. 저자는 역사적 정통 기독교신앙을 따르는 보수계와 WCC 에큐메니칼 신학을 추종하는 진보계 진영의 신앙은 상극관계이며, 뿌리가 같지 않은 두 종류의 종교가 ‘기독교’ 또는 ‘한국교회’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서 이종서식(異種棲息)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한국의 진보계 교회와 보수계 교회가 한 집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별개의 두 집안이라는 것이다.
1. 『신학충돌』과 『신학충돌 II』
저자는 앞서 출간한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1)에서 역사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 중심의 에큐메니칼 신학 사이에 일어나는 ‘신학충돌’을 다룬다. 이어서 출간한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2)는 WCC를 둘러 싼 한국교회 안의 ‘신학충돌’을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논의한다.
제1장은 한국의 교회연합 기구의 대표자들인 김삼환, 길자연, 홍재철, 김영주 목사가 발표한 “WCC 총회 개최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2013, 이하 [1.13] 공동선언문)이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민낯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한다. 공동선언문의 요지는 다음의 4대 신학 조항을 전제로 한기총이 WCC 부산총회 개최에 협조하고 지지한다는 것이다. (1)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 반대, (2) 공산주의, 동성애 옹호, 인본주의 반대, (3) 개종전도금지주의 반대, (4) 전통신학 성경관 곧 성경 66권의 특별계시성과 무오성 그리고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표준성이다.
저자는 이 공동선언문은 한국교회의 복음적 신앙을 담은 기념비적 고백문서라고 말하면서 이 선언의 이중적 성격을 잘 지적한다. 즉 이 선언은 WCC 신학의 진보성을 걱정하는 교회와 사람들을 다독이고 화합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지만, 실제로는 WCC의 신학적 방향성과는 정반대이다. 도대체 이 선언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WCC는 신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단체라고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는 없었을까? 아니면 부산총회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얼렁뚱땅 정치적 제스처로 넘기려고 한 것인가?”라고 묻는다.
제2장은 위 공동선언문에 대한 진보계의 거친 항의가 반증하는 에큐메니칼 진영의 ‘신앙고백’을 탐색한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신앙고백은 역사적 정통 기독교 교리와 거리감이 있다. 제3장은 WCC 부산총회 철회촉구운동의 신학적 성격을 분석하고 활동을 소개한다. 제4장은 부산총회의 강연 주제들과 상정된 의안을 분석한다. 제5장은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2012)를 분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설명은 없고, 반면에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6장은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신학자, 목회자들의 무지, 정직성 결여, 혹은 기만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제7장은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의 교회론에 비추어 WCC가 설정한 세계교회의 가시적 일치 곧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와 개신교회의 하나 됨이라는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WCC가 ‘전통론’ (Tradition, tradition, 몬트리올보고서, 1963)을 고안하여 사실상 로마가톨릭교회와 단일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에큐메니칼 활동이 성경과 초기기독교공동체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교회개혁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2부에 해당하는 제8장에서 제17장까지는 WCC의 신학적 특성 10가지의 개요를 소개한다. 이 부분은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2012)의 전반부 내용을 요약한 것이며, 『WCC 무엇이 문제인가?』(2011)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널리 보급된 바 있다. WCC 부산총회 반대운동의 학문적 바탕을 제공한 내용이다. WCC 신학의 특성인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 종교혼합주의, 사회구원지상주의, 용공주의, 개종전도 금지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가시적 교회 일치주의, 신앙고백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 등을 일반 대중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2. 이종서식(異種棲息)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낸 글은 제2장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앙고백”으로 보인다. 2013년 정초, 한국 기독교 에큐메니칼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홍재철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목사, WCC 한국준비위원회 김삼환 목사, 세계복음주의연맹한국위원회 길자연 목사가 공동으로 서명하여 발표한 “WCC 총회 개최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은 한국교회의 신앙 확언(確言: affirmation)이다. WCC 총회-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가, 한국교회가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궁극적으로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보여 줄 목적으로 작성하여 발표한 것이다. 저는 이것은 한국의 교회연합 운동의 기념비적 신앙고백문이라고 강조한다.
위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 조항’은 (1)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 고백 곧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 반대, (2)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애 등 복음에 반하는 사상 반대, (3) 개종전도금지주의 반대, (4)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무오한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이라는 고백 등이다. 위 4개의 교회연합 단체들은 이 고백을 전제로 WCC 부산총회를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 구성원 절대다수가 수용하는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의 신앙고백이다. 한국교회가 진보계와 보수계, 자유주의신학과 정통신학이라는 특징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하나의 교회이며,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그러나 진보계 에큐메니스트들은 이 공동선언문에 거칠게 반발했다. 자신들의 ‘신앙고백’에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는 “21세기 인류 보편의 지성과 함께 할 수 없는 반지성적 주장”이라고 주장했고, 한국문화신학회는 “말씀과 성서의 텍스트를 단지 문자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초월적 자유를 감추는 위험한 우상숭배”라고 했고,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기장 여신도회전국연합회 등의 여성 단체들과 에큐메니칼 기독 여성들도 “WCC 신학과 선언들에 의해 성차별적 신학과 교권주의적 교회풍토에서 받아온 고통과 상처들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 문서를 보면서 다시금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신학과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받는 것 같아 비통함과 한탄을 금할 수 없다”면서 WCC 공동선언문의 폐기를 촉구하였다.
최덕성 교수는 이 반응들은 한국의 진보계 기독교인들이 역사적 정통 기독교 신앙과 전혀 다른 모종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배태진 목사는 이 공동선언문이 반드시 폐기 처분돼야 한다고 했다, 성공회대학교 신학 교수들은 공동선언문을 지탄하면서 그 내용이 “독선적이고 편협한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단죄했다. 이들은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애 옹호 ‘반대 선언’을 반대하고, 성경의 특별 계시성과 무오성 천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에큐메니칼계 여성 신학자들도 공동선언문을 폐기하라고 일갈(一喝)했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한국문화신학회도 공동선언문을 폐기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성명했다. 한신대학교 총장을 포함한 12명의 신학 교수들은 공동선언문이 “WCC의 역사와 전통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며 신학교육의 근거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기해야 할 뿐 아니라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NCCK 총무 김영주 목사의 사임을 요청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신학 교수 14명은 공동선언문이 “독선적이고 편협한 기독교 근본주의”를 담고 있다고 하면서 폐기되어야 한다고 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종교다원주의자로 유명한 김경재 교수(한신대학교, 명예)도 공동선언문을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WCC 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는 한국교회 전체가 부산총회를 환영한다고 선전하며,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WCC가 역사적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같지만 일부 회원들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복음주의계 목사들도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며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지 않으며 종교다원주의, 용공주의, 성경불신주의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기독교 언론사들도 WCC가 종교다원성 인정하지만 종교다원주의는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최덕성 교수는 이 같은 과정을 서술하면서, 위 공동선언문과 그것에 대한 진보계의 격앙된 거부 반응은 한국교회 안에 이종서식(異種棲息)하는 두 종류의 기독교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종 기독교’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즉 이단적 신학의 진보계 기독교가 복음적인 한국 기독교의 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왕성하게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확인시킨 사건이라는 것이다. 공동선언문 사건은 한국교회 안의 보수계와 진보계 기독교가 서로 하나 될 수 없는 패러다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두 진영의 신학충돌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한편 이 책에서 저자는 공동선언문 사건은 ‘깜짝 쇼’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겨주었음 잘 지적하고 있다. 공동선언문은 한국교회의 화합하는 모습을 과시할 목적으로 작성되지만,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갈등과 분열을 가져다주었다. 공동선언문의 표현을 문자적으로 보기에는 복음주의 진영에 유리한 듯했지만, 마냥 기뻐하거나 축배를 들 형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보계 신학자들은 차제에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확실히 드러내고 선전, 확대, 파급시키는 원년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3. 김영주 목사의 눈물
주지하다시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진보계 교회연합단체이다. 총무 김영주 목사는 자신이 이끄는 단체의 대표자 자격으로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이를 인지한 NCCK 회장 김근상 신부(성공회)는 공동선언문 추인을 거부하고 반대 담화문을 발표했다. 1.13 공동선언문을 수용할 수 없는데, 그것은 공동선언문이 WCC나 NCCK의 에큐메니칼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 즉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행동에 경계심이나 적개심을 가질 수 있는 형식과 제한적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단체, 특히 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에게 마음을 담아 “머리 숙여,” “무릎 꿇고” 사과한다고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대 국민 담화문: 먼저 머리 숙여 깊이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국민 대통합의 길목에서 어떻게든 한국교회도 새로운 시대의 기운을 온 국민과 나누기 위해 한기총과 교회협이 마음을 합해 올 10월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WCC 제10차 연차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루겠다고 약속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쉽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뒤늦게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모든 회원 교단의 기도와 의견을 담아 이렇게 무릎을 꿇고 글을 올립니다.
하나, 어떻게든 WCC 제10차 총회가 모든 세계 기독인들의 기도와 기대를 넘어 이 땅에 모든 생명체의 축제가 되기 위해 한국 기독교인은 물론, 한국인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준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며, WCC가 기본적으로 합의한 교회일치선언 안에서 어느 기관이라도 계속적으로 대화하고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둘, 지난 13일 명성교회에서 열린 WCC 제10차 총회 성공을 위한 전진대외 직전에 공표된 선언문은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와 집행위원장이며 교회협 총무 김영주 목사의 서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WCC나 NCCK의 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교회협에서는 그 두 분께 다른 조직과 함께 잘 상의해서 WCC 10차 총회를 모두의 잔치가 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부탁한 바 있지만, 이는 WCC나 NCCK 정신 안에서만 가능한 일임을 주지해야 합니다.
셋, 우리가 지향하는 정신인 오이쿠메네, 에큐메니컬이라는 연합, 일치의 정신은 어느 형태의 교회에게도 문을 활짝 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연합과 일치를 위한 행동이 어느 경우에라도 경계심을 가지거나 적개심을 가질 수 있는 어떠한 제한적 조치도 포함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이번 1.13 선언문의 형식과 제한적 조치들은 에큐메니컬 정신에 다르더라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넷. 본의 아니게 이 선언문에 담긴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깊이 상처를 입은 여러 사람들과 단체, 특히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에게 마음을 담아 사과를 드리며, 마지막까지 함께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펼쳐나갈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2013년 1월 25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김근상
NCCK 총무 김영주 목사는 항의가 빗발치자 WCC 공동선언문과 관련하여 부산총회 집행위원장직을 사임하고, 공동선언문 서명을 취소하고, 공동선언문 파기한다고 선언(2013.2.4.)했다. 한국 에큐메니칼 단체 대표자 네 명이 합의한 문건에 대한 논란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지적과 견책을 무겁게 여기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공동선언문에 대한 김영주의 서명 취소와 파기선언은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과 진보계 에큐메니칼 진영의 질서를 어지럽혔고, 바람직하지 않은 교회사적 전례를 남겼다.
최덕성 교수는 1.13 공동선언문은 한국준비위원회가 공식 채택한 문서가 아니며 법적 구속력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13 공동선언문은 “공동의 약속”임을 강조한다. 공동선언문은 서명자 한 사람이 함부로 파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영주는 맑은 정신으로 초안을 작성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WCC 총회준비위원회 진행위원장 김영주 목사”라고 적힌 문서에 서명했다. 김영주의 취소와 파기선언은 법적 안정성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상호신뢰, 상호존중의 법도를 허물어뜨렸다. 김영주가 마지못해 취소, 파기선언을 해야 할 처지라면 나머지 세 명과 그들이 대표자로 활약하는 단체들에게 먼저 양해 또는 동의를 구해야 했다. 절차와 예의는 인간의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하다.
최덕성 박사는 이 사건이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이종(異種)의 기독교 실체가 존재하며, 두 진영의 신학충돌이 격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① 기독교와 WCC, 한국교회와 WCC―NCCK의 신학충돌, 패러다임의 차이, 화합할 수 없는 두 신학 진영의 대립적 실체를 드러냈다. ②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상호 신뢰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전례를 남겼다. ③ 한국준비위원회와 일부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와 구성원들을 기만했는데, 그것은 무지 또는 정직성 결여, 기만성의 결과이다.
한 진보계 에큐메니스트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한국 기독교 사회에서는 여타 해외 지역[유럽, 북미, 대양주 지역 교회]에서 이미 오래 전에 정리되고 공인된 전근대적인 사안들[종교다원주의 반대, 종교혼합주의 반대, 동성애 반대, 개종전도금지주의 반대 등]이 아직도 유령처럼 백주에 활보하고 있다. 자신의 교회, 자신의 교단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양도 마다하지 않는, 정복자의 야망을 숨기지 않고 노출하는, 과거 서구제국교회의 야만적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최덕성 교수는 이러한 공동선언문에 대한 진보계의 거친 항의와 거부 반응은 그들의 에큐메니칼 신앙고백의 솔직히 반증임을 지적한다. 즉 진보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 운동을 표방하는 지도자들 혹은 최소한 일부 지도자들은 종교다원주의 반대, 종교혼합주의, 용공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성경불신주의, 동성애주의 등을 허용함으로써 기독교의 기본적 진리들을 불신한다는 소문이 ‘오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4. 조잘거리지 않는 학문성
최덕성 교수의 ‘신학충돌’ 논의는 한국교회와 WCC가 상극관계이며, 한국교회가 WCC와 진보 에큐메니칼 신학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진보 신학을 추종하던 유럽, 북미, 대양주 주류교회들의 극심한 퇴락의 원인은 상대주의 진리관, 만인보편구원주의, 종교다원주의,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소구 교회의 쇠퇴는 기독교 진리에 대한 확신의 부재, 십자가 도리 중심의 복음의 실종, 하나님의 말씀이 결핍된 상태의 교회는 결코 참된 생명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WCC 혹은 일부 WCC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특정 종교 곧 기독교에 제한할 수 없다는 진보 에큐메니칼 신학에 동조하거나 그 신학을 고수한다. 즉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다른 종교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 진리를 믿어야 할 당위성이 없다. 그래서 WCC의 새 선교-전도 선언서(2012)는 성경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리와 복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WCC의 공적 성명(public statement)인 “바아르 선언문”(Baar Statement, 1990)은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만인구원주의(Universalism) 사상을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언급한다.
a need to move beyond a theology, which confines salvation to the explicit personal commitment to Jesus Christ.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된 헌신(explicit personal commitment)이 이외의 구원을 논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이 필요하다. This saving mystery... It may be available to those outside the fold of Christ(Jn.10.16) in ways we cannot understand, as they live faithful and truthful lives in their concrete circumstances and in the framework of the religious traditions which guide and inspire them. 구원의 신비... 비록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구원]은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요10:16)에게도-자신들을 영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자신들의] 종교의 전통적 기반과 환경들 속에서 신실하고 진실 되게 산다면-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WCC의 공적 선언문과 그러한 선언에 대해 찬성과 반대 여부에 대한 WCC의 불명확한 태도는 복음적 신앙 곧 ‘오직 예수 구원’으로 표현되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고백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뛰어넘어서 모든 종교들을 아우르고 하나로 묶으려는 종교혼합주의 곧 ‘폭넓은 에큐메니즘’과 ‘거대 에큐메니즘’을 지향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진보 신학자들은 동성애와 일부다처제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또한 최덕성 교수는 WCC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전 복음’(whole gospel)과 ‘통전적 신학’(holistic theology)을 읊조리지만 실상은 입술에 발린 구호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논평자의 관찰에 따르면, 그 이후 하나님의 선교란 단어의 뜻은 다양한 신학진영에서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에 맞게 각각 정의(definition)를 달리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선교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는 자유주의 신학적 선교를 의미하고, 보주 정통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는 보수주의 신학적 의미에서의 선교를 의미하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선교란 단어는 신학적 내용(contents)은 없는 껍데기(framework)만 있는, 마치 아무 것이나 담을 수 있는 선교 신학적 그릇과도 같은 단어가 되었다.
5. 고군분투
역사적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수호해 온 최덕성 교수의 학문적 활동은 값비싼 대가를 치룬 결과이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이 어느 정도의 혹독한 대가를 치렀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글로 책을 마무리한다.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한다”(전 12:12). 저자는 로마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 1929-) 사건을 도입하는 대목에서 자신이 당한 고통의 크기를 조금 내비친다. 큉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을 비판하다가 신학 교수직(missio canonica)을 박탈당했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라는 거대한 조직의 버팀목인 전통 이른바 ‘성전’(聖傳) 이론과 이에 기초를 두고 있는 사도직 계승, 교황의 수위권, 교계(敎階) 제도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음을 증명했다. 교황 무류성 교리는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없으며, 입증 불가함을 입증했다.
최덕성 교수는 큉의 교회관과 에큐메니즘은 개신교 복음주의 교회론과 근접하며, WCC의 에큐메니즘은 로마가톨릭주의와 궤를 같이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를 학자다운 결기(決氣), 희생, 용기를 가진 신학자로 평가한다. 큉이 성경적 진리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신학논의를 하고 진리 편에 선 노력을 한 대가로 그에게 돌아온 대가는 것은 매우 혹독한 것 즉 신학 교수직 박탈과 따돌림이었다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 사제 큉에게는 다행히도 책임져야 할 식솔이 없었다. 그는 튀빙겐대학교의 변두리 직책을 맡으면서 교양과정 과목을 개설했다. 로마가톨릭 신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수강하고서도 학점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튀빙겐은 그가 은퇴하는 시점까지 육신적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했다. ‘왕따’당하는 학자에 대한 큰 배려와 위안이었다. 큉은 가톨릭교회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씁쓸한 30년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살아가는 것과 신학 하는 것은 언제나 내게 즐거움을 줍니다. 그리고 오래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는 뀡의 말은 어쩌면 최덕성 교수 자신이 겪은 믿음의 고백이지 싶다.
권세일 박사, 부산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미국 컨콜디아신학교(Ph.D.)에서 수학했다. 현재 C국에서 목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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