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by reformanda posted Mar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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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최덕성 교수의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2012)를 읽고/ 차영훈 목사


현대 교회를 위한 백신


 『주전자 속의 개구리(The Frost in the Kettle)』라는 책이 있다. 교회 미래 컨설팅 전문가인 조지 바나(George Barna)의 작품이다.

 

바나는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주전자에 넣으면 빠져 나올 수 있다. 얼마든지 개구리의 점프력으로 주전자 높이를 뛰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구리를 차가운 물이 들어있는 주전자에 넣은 다음 열을 가하게 되면 서서히 올라가는 물의 온도로 적응을 하다가 천천히 죽어간다고 한다.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알 법한 주장이다.

 

바나는 미국과 유럽 등 현대 교회의 상황을 주전자 속의 개구리에 비유한다. 현대 교회들은 물질의 풍요 속에 안주하면서 영적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교회를 비롯한 현대 교회의 쇠퇴는 물질적인 풍요의 안주로만 설명하기 쉽지 않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한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는 격언과 같이 현대 교회의 쇠망(衰亡)은 한 가지 요소에 기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현대 교회의 쇠퇴 요인 가운데 치명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 Religious Pluralism)’ 혹은 세계교회주의(ecumenism)’에서 찾을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얼마든지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즉 타종교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는 현대 교회의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 단체이다. WCC는 기독교 외의 종교에 대해 아주 관용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관용(寬容)은 신앙의 본질인 구원에 관련된 것이다. 그들은 타종교인들에 대해 생명력 있는 신앙인들로 파악한다. 타종교도 생명력 있는 신앙이고, 그 안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한다.

 

WCC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중계되고 매개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문화나 종교의 전통에 따라 신실하고 진실하게 살면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타종교인들의 삶과 전통에 성령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WCC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어떤 제한을 둘 수 없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지만 구원의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대속제물이라고 믿는 신앙은 타당하지 않다. 기독교는 자신만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주어진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오만한 태도를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WCC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교회의 신학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누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했는가? 누가 우리에게 영생의 다른 대안(代案)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는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의 다른 길은 없다(4:12)”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현대 교회의 쇠퇴를 조장하는 치명적인 단체인 WCC와 그들의 신학이 한국 교회에도 침투해 있다. WCC2013년 부산에서 총회를 열고 한국 교회와 신학의 선진화라는 아젠다(agenda)를 내세워 활동했다. 한국 교회는 무장해제(武裝解除)된 상태로 WCC의 활동을 목도(目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중과부적(衆寡不敵)과 같은 한국 교회의 상태에서 작지만 큰 움직임이 있었다.

 

다름 아닌 최덕성 교수의 활동이다. 최덕성은 WCC 부산 총회를 앞둔 2011년부터 한국 교회와 신학을 수호하려는 활동에 돌입했다. 그는 WCC의 위험성과 파괴성을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 알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노력의 역작인 신학충돌(2012)이라는 저서로 탄생되었다.

 

최덕성은 신학충돌을 통해 WCC의 신학적 실체를 들어내고 전라(全裸)의 상태로 만들었다. WCC의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로마가톨릭주의와 성경불신주의 등의 성향을 고발했다. 그의 WCC를 향한 십자포화(十字砲火)는 단순한 억지 주장이 아니다. 1차 사료들의 충분한 검토로 객관성을 유지했고 논리적인 분석력으로 실체를 규명했다.

 

최덕성이 저서에서 WCC 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교회에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첫째, 최덕성은 WCC가 주장하는 선진화되고 발전된 그들의 신학이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준열(峻烈)하게 반문(反問)한다.

 

WCC는 한국 총회를 열기 전 인터뷰를 통해 한국 교회가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WCC의 경험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덕성은 반문했다. “WCC의 활동이 강력한 유럽 교회의 현주소는 어떤가? 사실상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는 자신들의 교회 현실은 보지 않고 누구를 가르치려 드느냐는 것이다. 교회의 선진화와 발전을 언급하는 데 있어 WCC는 자격상실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최덕성의 반문은 WCC의 신학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정통 신학을 변질시키는 위험한 요소를 함의(含意)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WCC 신학과 그들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수용했던 교회들은 영적인 식물상태에 놓인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최덕성은 WCC가 현대 교회의 쇠퇴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얼마든지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타종교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는 절대적 종교에 대해 부정하고 모든 종교는 다원(多元)적 구원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기독인과 타종교인의 대화의 맥락을 통해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웃 종교 신앙인들의 삶의 세계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와 타종교들은 동가(同價)이고 동격(同格)이다. 종교 간의 대화는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쌍방교차로이다. 기독인은 성령 하나님이 타종교들의 신자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성취하는 일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덕성은 WCC의 이러한 주장에는 만인구원론(萬人救援論, universalism)’, 즉 보편구원론(普遍救援論)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모든 인류의 죄와 각 개인의 특수한 모든 죄를 위한 죽음이었다는 주장으로 이를 믿는 자만이 은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견해이고 제한적 속죄를 주장하는 칼빈주의(Calvinism)와는 배치(背馳)되는 것이다.

 

최덕성은 WCC의 종교다원주의 사상은 단체의 출범 초기부터 노골화되었다고 한다. 3차 총회(인도 뉴델리, 1961)는 기독인이 종교 간의 일치를 위해 부름 받았다고 성명했다. 역사적 기독교가 말하는 기독론과 패러다임(paradigm)이 전혀 다른 우주적-보편적 그리스도론’, ‘포괄적 그리스도론’, ‘확대 그리스도론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또한 이웃 종교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WCC타종교에 대해 나의 이웃 신앙(My Neighbour’s Faith)’, 혹은 이웃 종교(Neighbour’s Religions)’라고 표현한 것은 배타적인 면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의 서로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WCC는 그들의 공식문서를 통해 종교다원주의를 명확하게 표방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국한시키는 편협한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기독교만이 절대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진 하나님은 타종교들의 신앙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만물 안에는 다양한 종교적 표현들과 각 종교 신앙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는 타종교인들 가운데도 왕성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종교를 통해 자신을 증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평자가 발견한 WCC의 가장 놀랍고도 기이(奇異)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종교다원주의자였다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간 사건이 만인구원론의 근거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는데 예수가 이 사건을 통해 우주적 구원, 만인 보편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인간들도 사랑하고 계실뿐 아니라 기독교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한 분이 다름 아닌 예수 자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종교다원주의자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WCC의 종교다원주의 주장에 대해 최덕성은 적극적으로 반론하면서 역사적 기독교의 복음을 변호한다. “기독인과 비기독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종국에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면 왜 하필이면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죄 사함, 중생,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구원 활동이 기독교 밖에도 있다면 고난과 박해를 받으며 예수를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할 필요가 없다”,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여러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보통명사가 아니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인간으로 강림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명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만 붙여진 독보적인 이름이다. 인류의 죄 문제 해결을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 형벌을 당하고, 죽고, 부활한 예수, 그가 유일무이한 그리스도이다.”

 

셋째, 최덕성은 WCC의 종교대화주의(宗敎對話主義)를 치밀하게 비판한다. WCC는 모든 역사적 종교들을 동일한 가치를 가진 신앙공동체로 여겨 종교대화주의를 지향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특정 종교나 인종을 편애하지 않으며, 모든 종교들을 평등하게 사랑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타종교인들은 개종의 대상이 아니라 기독교인과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영적인 동료 순례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또는 기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러한 WCC의 종교대화주의 배후에는 기독교 진리의 상대적 가치만 인정하는 사물인식의 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 논의는 각 종교의 추종자들이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대립각을 세우지 말고 이웃처럼 잘 지내자고 하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인도에서 활동하던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힌두교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인도의 정통문화로 무장된 힌두교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하는 선교활동을 하고자 했다. 이는 백인우월주의 선교를 중단하고 피선교지 문화를 존중하는 새로운 선교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이것이 WCC에서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에 입각한 선교 방안이다.

 

이러한 WCC의 종교대화주의 정책에 대해 최덕성은 기독교의 예수 구원 유일주의와 그들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타종교인들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고 중생해야 할 필요성을 포기하거나 예수 그리스도 구원 유일성 등 기독교의 중추적인 교리를 단념하거나 양보한 따위의 대화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WCC가 추구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세상사 해결을 위한 상호협조 차원의 의사소통을 넘어선다고 한다. 새로운 회심(conversion)과 새로운 진리를 찾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WCC는 상대주의 진리관의 시녀(侍女)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WCC는 예수가 유일의 그리스도라는 따위의 배타적인 교리가 타종교와의 진정한 대화를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각 종교나 진리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 자체가 잘못이다.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규범이라는 발상은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 은총의 구원 사역과 일반 은총의 피조 세계 돌보심을 구분하지 않는다. 범신론적 만유재신(萬有在神)의 만인구원론은 타당하다. 모든 인간이 종교의 차이를 떠나 다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편애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은 기독교인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출애굽 사건이다. 이제 온 인류는 속박에서 구출 받아 하나님과 계약 관계 안에 들어왔다. 새로운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새로운 인류의 일원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인 보편 구원을 이미 성취했다. 복음전도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구원한다는 소식을 알리는 활동이다. 기독교의 증거는 인간화 노력과 해방투쟁의 경험을 나누는 일이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덕성은 만약 WCC의 주장대로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역사적 종교들과 종교인들을 사랑한다면, 성경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특별 구원의 역사, 인간의 회심, 영접, 회개, 중생, 칭의, 영적 변화는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꼭 예수를 믿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까지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당위성이 없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은 종교대화주의와 신 중심적 그리스도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타종교들을 섬기는 신을 이명동신(異名同神), 동일한 궁극적 신적 실재라고 말하지 도 않았다. 타종교들의 신은 우상이고,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고전 8:4)고 믿었다. 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많지만 하나의 하나님’, 만물의 창조자, 그리고 피조물들이 마땅히 섬겨야 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라고 주장한다(고전 8:5-6).

 

넷째, 최덕성은 WCC가 배교(背敎)사상인 종교혼합주의(宗敎混合主義)를 용납하는 것을 반박한다. WCC는 세계종교연합체 구성을 목표로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일치를 뛰어넘는 종교혼합주의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의 종교통합운동은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있었던 WCC 7차 총회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총회의 시작을 초혼제(招魂祭)로 열었다. 개회식에서 순직(殉職)한 사람이나 전사(戰死)한 사람의 혼령(魂靈)을 위로하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에 대해 최덕성은 구천을 떠도는 혼령(魂靈)을 불러들이는 강신론(降神論)WCC의 종교혼합주의 특성과 신학의 방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최덕성은 WCC의 성령에 대한 이해를 질타(叱咤)한다. WCC는 성령을 우주 만물에 내재하는 에너지와 동일시한다. 성령을 물활론(物活論) 개념으로 해석하는 사상들을 수용했다. 사신(邪神)의 강림을 성령강림과 동일하게 여겼다. 하나님의 영, 피조물의 영, 악한 영을 똑 같은 신으로 보는 종교혼합주의를 용인한 것이다.

 

다섯째, 최덕성은 WCC의 개종전도금지주의(改宗傳道禁止主義)에 대해 비판한다.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러시아정교회 신자들에게 개신교 구원론-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근간으로 하는 선교와 복음전도를 하지 못하게 한다. 이들이 신뢰하는 성상숭배, 성자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마리아 숭배 등을 비판하지 말라고도 한다. 또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고 성경적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권하는 전도 활동도 금지하고,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모아 따로 교회를 세우지 말라고도 한다. 이러한 WCC의 주장은 로마가톨릭교회와 러시아정교회와 개신교 사이에 근본적인 신앙의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세 종교가 경쟁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로마가톨릭교회와 러시아정교회가 선점(先占)한 지역 사람들에 대한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WCC의 주장에 대해 최덕성은 기존의 교회가 진리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세상의 조롱을 받거나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탈선하게 되면 성경적인 메시지를 가진 신앙공동체가 그 지역에 진리의 기둥을 세우고 복음 전도를 하는 일은 마땅한 것이라고 한다. 교회가 구원의 진리를 전하지 않고 기독교 윤리 공동체로 만족하거나 그릇된 신학사상에 오염되어 생명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면, 그 교회 옆에 성경적인 복음에 토대를 둔 새로운 교회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생명력을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새 싹이 돋아나 옛 나무를 대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WCC의 개종전도금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언 성취 사역, 구령사업, 십자가 구원의 복음 전도를 가로 막는 독설(毒舌)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여섯째, 최덕성은 WCC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질책(叱責)한다. 최덕성은 WCC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기독교와의 가장 강력한 신학충돌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원리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믿는 성경관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교회가 성경관 때문에 갈등과 분열의 진통을 겪었으나 대체로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와 영감으로 기록된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최고, 최종, 유일의 표준이라고 고백한다.

 

최덕성은 WCC1960년대에 신학의 급격한 전환이 일어났다고 한다. 가장 뚜렷한 신학 패러다임(paradigm)의 변화는 성경관이라는 것이다. WCC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계시도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신언(神言)도 부정한다. 신앙과 행위의 절대 유일의 표준도 아니라고 한다. 성경은 단지 오랜 역사를 거쳐 내려온 전통(전승이나 유전)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지식을 제공하고 성령께서 독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매체(媒體)로서의 중요성을 가질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WCC의 성경관은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성경해석 방법, 신정통주의 성경관, 급진주의 신학 사상을 혼합한 것이라고 한다. WCC는 성경은 역사서와 문학서와 동일하게 취급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WCC의 성경관은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고 교회의 등불을 꺼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덕성은 역사적 기독교의 신앙의 근거를 와해시키는 WCC의 성경관에 일침을 가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이며, 그 말씀이 외쳐질 때 하나님이 영이 복음을 듣는 자들의 마음을 열고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양육한다고 한다.

 

WCC의 신학과 사상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그들이 외형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교회의 혼란과 파괴가 숨어 있다. WCC는 위험하다. 현대 교회에 무너뜨리는 암()적인 단체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 교회의 쇠퇴를 부채질하고 일조하고 있는 WCC의 활동에 최덕성은 면역항암제(免疫抗癌劑)와도 같은 신학충돌을 저술했다. 그의 저서는 현대 교회를 위한 백신(vaccine)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를 괴멸시키는 힘을 가진 세력에 저항력을 키우면 퇴락과 사멸을 면할 수 있지만, 무방비 상태로 반기독교적 사조를 관망하고 환영하면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저자는 교회가 유람선이 아니라 전투함임을 강조한다.


차영훈 목사 (부경대학교 철학박사 후보, 브니엘신학교 교수, 교회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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