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신학과 경건: 고신교회의 역사와 삶
최덕성, <정톻신학과 경건: 고신교회의 역사와 삶>을 읽고/ 황대우 박사
구성
나의 스승 최덕성 교수의 <정통신학과 경건: 고신교회의 역사와 삶>(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6)은 고신교회의 역사상 주요 신학적 이슈들을 역사신학 방법으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고신교회 출범 50주년(2002)을 맞아 쓰기 시작하여 고신대학교―고려신학대학원의 설립 60주년(2006)을 기념하여 출간한 책이다. 총 660쪽의 방대한 책이며, 중요한 사진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교회사라기보다는 고신역사와 삶을 최초로 사상사 또는 역사신학 형식으로 구성하여 논의하는 책이다.
제1부는 신앙고백공동체란 주제 아래서 한국교회 재건 기본원칙, 교회 재건의 변주곡, 한국장로교회와 개혁교회관, 고신교회 설립의 교회론적 기초를 다룬다. 제2부는 개혁주의 정통신이란 주제 아래서 박형룡과 개혁파 정통신학, 말씀과 성례, 고신교회의 신앙노선을 다룬다. 제3부는 평형의 신학, 정통신앙과 생활순결, 고신교회의 성령론 이해, 오소서 창조자 성령이여!를 다룬다. 제4부는 역사적 정당성이라는 주제 아래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교회관, 고신파 책임론, 고신교회 설립은 부당한가? 고신교회의 환원 이야기, 재분리와 환원의 차이를 논한다. 제5부는 신학적 정체성이라는 주제 아래서 국가법정 소송과 관련 사건들을 다룬 건덕론과 방임불가론, 법정고소 시비와 교회분열, 국가법정소송은 허용적인가? 그리고 동료 이성구 교수의 신학을 다룬 성경관과 에큐메니칼 사상 등을 논한다. 제6부는 자기성찰과 희망이라는 주제 아래서 고신인들의 비판정신과 자긍심, 고신교회의 존재의의를 다룬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자신의 저술 동기를 밝힌다. 교회사를 돌아보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신앙과 삶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신앙공동체들이 있었다. 이 교회들은 영적, 신앙고백적 탁월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했다. 순수한 기독교 신앙은 대부분 소수파(Dissenters)로 일컬어진 이러한 신앙공동체들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왈도파·후스파·타볼파·롤라즈·종교개혁교회들·청교도·독일고백교회들·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들 등이 그들이었다. 이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박해와 조롱, 죽음과 고난을 무릅쓰고서 자기 시대의 사명을 다하여 전체 기독교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했다.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탁월한 신앙공동체마다 그 교회를 이끌어 간 비범한 정신이 있었다. 고대교회의 공의회는 진리수호, 동방교회는 신성화(神聖化: deification), 중세수도원은 신인합일(神人合一)이 그 특징이었다. 프랜시스수도단은 청빈과 선교, 왈도파공동체는 성경적인 단순한 신앙과 설교사명, 경건주의 운동은 내적 체험과 기쁨생활, 청교도들은 칼빈주의 교리와 경건한 삶의 균형이 두드러졌다.
한국장로교회의 일원인 고신교회는 바울·어거스틴·칼빈, 칼빈주의·구프린스톤신학·웨스트민스터신학·평양신학으로 이어진 개혁주의 신앙과 그 전통을 따라 복음진리를 전수받았다. 이 교회는 칼빈주의라고도 불리는 개혁주의 정통신학(Reformed Orthodoxy)을 지향하며 그 신앙노선에 서서 사도들이 전해 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확인한 신앙원리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저자는 고신공동체를 움직여 온 비범한 정신과 특징을 평형의 신학(Theology of Symmetry)으로 이름 짓고 싶다고 한다. 고신공동체의 특징은 정통신앙(성경적 교리)과 생활순결(경건)과 자발적 열정(체험신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신교회의 이러한 특징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자,’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행동강령으로 표현되어 왔다고 한다.
저자는 고신교회가 지상의 여러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오점과 허물을 갖고 있다고 본다. 고신교회는 완전주의 교회관을 지향하지 않는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 ‘주름 잡힌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는 교회’(엡 5:25-27)를 지향한다. 고신교회의 역사는 성경적인 신앙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과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하게 살고자 했던 신앙의 유산(살후 2:15)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는 고신교회의 역사에서 드러난 신학과 삶의 모습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광복 후 한국교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상이한 교회이해와 신앙의 흐름과 고신공동체의 특성들이다. 구체적으로 신앙노선, 교회표지, 신학전통, 성령론, 국가법정소송과 교회분열, 자유주의 신학 논쟁 등이다. 고신교회의 역사적 정당성과 존재의의를 확인하고 희망 찬 미래로 나가는데 필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고신교회의 신학과 영적 유산은 고신공동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의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고신교회만을 위해 저술한 것이 아니다. 고신교회가 가진 긍정적인 유산들이 한국교회 전체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하고 또 세계기독교를 빛내는 항구적인 가치를 가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독자들 가운데 저자 자신이 고신교회의 신앙유산들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중요한 선을 긋는다. 고신교회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고 느낀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라고 한다. 고신교회가 가진 긍정적인 유산들, 곧 영적인 보배들을 발굴하고 한국교회가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고백하며, 그의 말씀에 따라 살고, 진리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저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고신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존재의의를 확인하는 작업에는 불가피하게 이와 상반 되 견해를 가진 동료 학자들의 주장들을 비평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학풍은 인신공격과 거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타인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는다. 이러한 풍토에서 필자가 용기를 내어 동료 학자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한 것은 궁극적으로 소의보다는 대의를 위한 것이다. 잘못된 역사서술이나 평가를 문서화 된 형태로 교정하지 않고 남겨두면 그것이 곧 정사(正史)로 남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교회가 개혁해야 하고 버려야 할 것들을 붙잡고 있거나, 변해야 할 것들을 변하게 하지 않으면 부패하거나 화석화 되어 활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변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포기하면 교회가 생명력을 잃게 된다. 고신교회가 새 천년기에 들어서면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들은 버리거나 변해야 할 것을 굳게 붙잡고 있는 사람들과, 붙잡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을 포기하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신교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세계교회가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진리에 충실하여 생명력을 가진 활력 있는 신앙공동체가 되도록, 버려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소개할 목적으로 저술했다고 한다.
논평
고희를 맞이하시는 은사 최덕성 교수님의 저서는 <정통신학과 경건: 고신교회의 역사와 삶(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6)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고신교회의 역사상 주요 신학적 이슈들을 저자의 독특한 저술 방법으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은 고신교회의 신앙과 신앙적 삶이 “정통신학과 경건”이라는 것이다. 즉 고신교회의 신앙은 자유주의신학의 대척점에 있는 ‘정통신학’이요, 고신교회의 신앙적 삶은 친일파의 비겁하고 타협적인 배교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용감하고 순결한 저항적 ‘경건’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평형의 신학: 신앙과 삶”으로 소개한다. “필자는 고신공동체를 움직여 온 비범한 정신과 특징을 평형의 신학(Theology of Symmetry)으로 이름 짓고 싶다. 고신공동체의 특징은 정통신앙(성경적 교리)과 생활순결(경건)과 자발적 열정(체험신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신교회의 이러한 특징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자,’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행동강령으로 표현되어 왔다.”
“평형의 신학의 중심에는 ‘정통신앙과 생활순결’이라는 신앙과 삶이 있다. 평형의 신학은 (1) 개혁주의 정통신학, (2) 성령체험과 자발적 신앙, (3) 생활순결의 삶-신행일치로 구성되어 있다. 믿는 것과 행하는 것, 고백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 지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의 균형 유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고신교회의 특징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생각하는 고신의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정체성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사상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고신교회의 역사를 사건별, 시대별로 서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역사서로 보기 어렵다. 고신교회사 기술에 있어서 저자는 자신의 논점으로 사건들을 통찰하고 해석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필자는 이것을 역사에 대한 ‘사상사적 평가’라 부르고 싶다. 역사 기술은 크게 사건 중심의 방법과 의미 중심의 방법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저자의 방법론은 후자에 속한다. 물론 이 두 가지 방법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사상사적 평가의 특징들
고신교회역사를 위한 저자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고려신학교와 고신교회가 분리주의의 산물이 아니라고 역설한 것이다. 이 책이 분명하게 지적하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초대교회 시대의 도나투스파와 종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 그리고 해방 후 한국교회의 재건파 등의 공통점을 ‘교회론적 분리주의’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저자의 분명한 주장은 종교개혁자들이 분리주의들로 간주될 수 없고 종교개혁이 분리주의가 아니듯이 고신교회와 고려신학교를 설립한 사람들도 역시 결코 분리주의자들이 아니며 그들이 세운 교회와 신학교도 결코 분리주의의 산물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칼빈은 사돌레토 추기경에게 답하는 자신의 글에서 두 종류의 분리주의를 제시하는데, 하나는 제세례파, 다른 하나는 로마가톨릭교회라는 것이다. 칼빈에 따르면 전자는 ‘완전 순결의 분리주의’이고 후자는 ‘권력 남용의 분리주의’다. 재세례파에 따르면 로마교회가 도덕적 순결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거룩한 교회가 아니므로 로마교회를 떠나야만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로마교회에 따르면, 교황이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이므로 비록 성경의 진리를 가르친다 해도 교황에서 순종하지 않을 경우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파문할 절대 권력은 로마교회만의 소유다.
하지만 칼빈은 지상교회 가운데 완전히 순결한 교회는 없다는 점, 교회의 거룩성이 신자의 거룩한 삶이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기초한다는 점, 그리고 바울이 도덕적으로 심히 타락했던 고린도교회도 교회로 인정했다는 점 등을 들어 재세례파의 주장을 반박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한다. 로마교회를 향해서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지상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며 어떤 지상대리자도 세우시지 않았으므로 로마교회의 절대 권력을 부정하고 종교개혁자들과 그 추종세력에 대한 교황의 파문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한다.
역사적 분리주의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감안한다면, 친일세력 중심의 한국장로교회 남부총회로부터 부당하게 축출된 사람들이 세운 고신교회와 고려신학교는 결코 분리주의의 산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고신교회의 태동은 해방 후 자숙과 회개를 거부한 한국교회로부터 스스로 분리해나간 재건파의 태동과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16세기에 역사적 교회의 정통성을 전통적 로마교회가 아닌, 교황의 부당한 권력에 의해 파문된 종교개혁자들과 그 추종세력의 개신교회에서 찾아야 하는 것처럼, 해방 후 한국장로교회의 정통성은 총회의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축출된 고신교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고신교회의 태동을 분리주의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데, 이것이 저자의 탁월한 사상사적 평가를 반영하는 이 책의 첫 번째 특징이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해방 후 10년의 한국교회역사를 자세하게 다룬 김양선의 고신교회 태동역사와 관련한 서술 가운데 비역사적인 부분과 잘못된 관점의 평가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조목조목 비판하는데, 이것이 사상사적 평가의 두 번째 특징이다.
1938년에 제27회 장로회총회가 신사참배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에 대해 김양선은 자신의 책에서 해방 후 개최된 남부총회의 결정안건 가운데 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정을 취소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기록했고 또한 1947년의 제33회 총회(제2차 남부총회)가 “신사참배 결의를 재취소”한 것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김양선의 기록이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1954년의 제38회 총회가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정을 취소했다는 기록 이전의 어떤 총회록에도 그와 같은 내용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즉 김양선의 주장이 총회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상사적 평가의 세 번째 특징은 해방 후 개최된 한국장로교 남부총회가 1943년부터 해방까지 중단된 장로교총회를 계승한답시고 총회의 차수를 1회가 아닌 32회로 정한 것이 진정한 계승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해방 후 최초로 설립된 고려신학교가 명실상부하게 평양신학교의 정신과 신학을 계승함에도 불구하고 장로회신학교와 총회신학교와는 달리 졸업 차수를 1회로부터 시작한 사실에서 평양신학의 실제적 계승의 정당성을 찾은 것도 저자의 뛰어난 사상사적 관점이다.
이밖에도 저자는 한국교회가 한국교회 정치판처럼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다고 강조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의 다른 저술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의 논점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출옥 성도들이 지키고자 했던 고신교회의 정통신학이란 ‘역사적 개혁주의’ 즉 ‘칼빈주의’로 통한다. 또한 일본 강점기 때 김재준 박사를 비롯하여 신사 참배와 배교에 앞장 선 진보적 친일파 교회지도자들을 시류와 상황에 따라 변신하는 ‘맥락주의자들’(Contextualists)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한 것도 저자의 독창적 관점의 산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빠뜨릴 수 없는 저자의 사상사적 논점을 하나 더 든다면 그것은 신자가 세상 법정에 호소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박윤선 교수와 송상석 목사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목회자다운 박윤선, 신학자다운 송상석”으로 평가한 점이다. 신학자 박윤선 교수의 결론은 목회적이고 목회자 송상석의 결론은 신학적이었다는 역설적 사실을 잘 간파한 빛나는 논지다.
심층연구의 필요성
저자가 제6부의 21장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정통신학과 생활순결’은 이근삼 박사가 한국교회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고려파 교회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 두 가지 요소다. ‘신학’과 ‘신앙’은 분명 서로 다르게 정의되는 단어지만, 저자는 그 둘을 상호 교차 가능한 단어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정통신학’과 ‘정통신앙’은 내용상 동일한 것인데, 저자의 이런 사고는 아마도 신학과 신앙이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정말 고신교회의 정체성이 정통신학과 정통신앙에 있다면 무엇보다도 16세기 종교개혁과 신앙고백,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역사와 신학, 17-20세기의 개혁파 정통신학의 역사 등에서 고신교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연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실상은 이런 것들에 관심조차도 없다. 고신교회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크기’와 ‘성장’에 있다. 즉 ‘현재의 고신교회를 앞으로 얼마나 더 크게 키울 수 있을까?’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 고신교회의 현실이다.
신자가 세상 법정에 호소하는 문제도 생각처럼 결론이 단순하지 않다. 현재 고신교회 총회의 결정에 따르면 신자는 어떤 경우에서 세상 법정에 고소하거나 고발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단순논리나 정치 입장이나 신앙 분위기 등으로 일방적인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교회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보다 진지하고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어쩌면 과거 총회가 이런 문제들을 정치공학적인 접근이 아닌, 진지하게 신학적이고 교회 미래적이면서 현실적으로 고민했더라면 분열의 아픔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 문제 때문에 분열되는 일이 없으리라 누가 호언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금 고신교회는 이미 교육부 산하의 고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 및 복음병원이라는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 기관들은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기관에 소속된 구성원들 역시 법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을 신앙적이면서 동시에 합법적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은 그 둘이 상충되기도 한다. 과연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인의 양심과 건덕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합법적일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60년대 초에 발생한 ‘합동과 환원’ 사건을 다루면서 ‘환원’ 측에는 분열의 책임이 전혀 없고 오롯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총회 측에만 ‘분열’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 환원 측에 책임이 없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 압축되는데, 하나는 총회 측의 약속 불이행이고, 다른 하나는 ‘합동’ 자체가 불법적이었으므로 무효라는 것이다. 합동 당시 연동 측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합동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이다. 연동 측은 불법적이었는지 모르지만 고신 측은 총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합동을 결의했다. 그렇다면 ‘환원’도 최소한의 공식적인 격식과 형식을 갖추었어야 하지 않는가?
물론 그와 같은 공식적인 격식과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분열’의 책임을 완전히 면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환원’이 전적으로 옳을 일이라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환원 당시 세 박사, 홍반식, 이근삼, 오병세 목사는 자신들의 ‘성명서’에서 “고려신학교 복구의 방법은 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원에 동참했던 이유는 “그 동기”가 “순수하고 그 정신이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것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기가 순수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잘못은 잘못이라 인정해야 하고 져야할 도의적 책임 역시 회피거나 변명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자세야말로 고신교회가 지향하는 ‘순결생활’일 것이다.
필자는 고신교회역사에 관한 다른 저자들의 책을 읽을 때도 의문이 들었고, 이번에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도 과연 고신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고신교회의 정체성을 두 가지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저자의 주장처럼 하나는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에 나타난 “정통신학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고려신학교 설립이념에 나타난 “생활의 순결과 순교적 이념”일 것이다. 이것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코람데오” 혹은 “신행일치”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가운데 고신교회의 존재의의를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신교회가 ‘회개하는 교회’(ecclesia poenitens)로 시작한 태동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자신을 돌아보고 자숙할 줄 아는 교회로 출발한 것이 바로 고신교회가 아닐까? 고신교회의 태동 동기가 이러하다면 자성과 회개의 정신을 잃어버린 고신교회는 상상할 수 있겠는가? 종교개혁의 도화선도 바로 회개였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이므로 회개는 당연지사다. 하지만 자성과 회개의 정신이 사라진다면 그 자리에는 교만과 아집과 이기적인 욕망만 남아 영혼을 파멸시키는 율법주의자만 양산될 것이다. 고신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 황대우 박사는 고신대학교 교수(교회사)이다.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네덜란드개혁교회신학대학(아폴도른, Th.D.)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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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의 머리말과 차례는 다음과 같다.
머리말
교회사를 돌아보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신앙과 삶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신앙공동체들이 있었다. 이 교회들은 영적, 신앙고백적 탁월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했다. 순수한 기독교 신앙은 대부분 소수파(Dissenters)로 일컬어진 이러한 신앙공동체들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왈도파·후스파·타볼파·롤라즈·종교개혁교회들·청교도·독일고백교회들·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들 등이 그들이었다. 이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박해와 조롱, 죽음과 고난을 무릅쓰고서 자기 시대의 사명을 다하여 전체 기독교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했다.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탁월한 신앙공동체마다 그 교회를 이끌어 간 비범한 정신이 있었다. 고대교회의 공의회는 진리수호, 동방교회는 신성화(神聖化: deification), 중세수도원은 신인합일(神人合一)이 그 특징이었다. 프랜시스수도단은 청빈과 선교, 왈도파공동체는 성경적인 단순한 신앙과 설교사명, 경건주의 운동은 내적 체험과 기쁨생활, 청교도들은 칼빈주의 교리와 경건한 삶의 균형이 두드러졌다.
한국장로교회의 일원인 고신교회는 바울·어거스틴·칼빈, 칼빈주의·구프린스톤신학·웨스트민스터신학·평양신학으로 이어진 개혁주의 신앙과 그 전통을 따라 복음진리를 전수받았다. 이 교회는 칼빈주의라고도 불리는 개혁주의 정통신학(Reformed Orthodoxy)을 지향하며 그 신앙노선에 서서 사도들이 전해 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확인한 신앙원리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필자는 고신공동체를 움직여 온 비범한 정신과 특징을 평형의 신학(Theology of Symmetry)으로 이름 짓고 싶다. 고신공동체의 특징은 정통신앙(성경적 교리)과 생활순결(경건)과 자발적 열정(체험신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신교회의 이러한 특징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자,’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행동강령으로 표현되어 왔다.
고신교회의 삶과 경건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순교정신·일사각오·진리파수·원수사랑·프로테스탄트저항원리·절제정신·하나님영광 제일주의·참회·성결·칼빈주의 문화관·신앙의 단순성 등이다. 이 책은 이러한 요소들 가운데 일부만 다루고, 추후 다른 지면에서 상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고신교회는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오점과 허물을 갖고 있다고 본다. 완전주의 교회관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 ‘주름잡힌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는 교회’(엡5:25-27)를 지향한다. 고신교회의 역사는 성경적인 신앙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과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하게 살고자 했던 신앙의 유산(살후2:15)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고신교회의 역사에서 드러난 신학과 삶의 모습을 소개한다. 이는 광복 후 한국교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상이한 교회이해와 신앙의 흐름과 고신공동체의 특성들인 바, 그것은 구체적으로 신앙노선, 교회표지, 신학전통, 성령론, 국가법정소송과 교회분열, 자유주의 신학 논쟁 등을 다룬다. 아울러 고신교회의 역사적 정당성과 존재의의를 확인하고 희망 찬 미래로 나가는데 필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고신교회의 신학과 영적 유산은 고신공동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고신교회만을 위해 저술한 것이 아니다. 고신교회가 가진 긍정적인 유산들이 한국교회 전체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하고 또 세계기독교를 빛내는 항구적인 가치를 가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는 필자가 고신교회의 신앙유산들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고 느낀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고신교회가 가진 긍정적인 유산들, 곧 영적인 보배들을 발굴하고 한국교회가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고백하며, 그의 말씀에 따라 살고, 진리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저술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고신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존재의의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 데는 불가피하게 이와 상반되 견해를 가진 동료 학자들의 주장들을 비평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학풍은 인신공격과 거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타인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는다. 이러한 풍토에서 필자가 용기를 내어 동료 학자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한 것은 궁극적으로 소의보다는 대의를 위한 것이다. 잘못된 역사서술이나 평가를 문서화 된 형태로 교정하지 않고 남겨두면 그것이 곧 정사(正史)로 남게 된다.
교회가 개혁해야 하고 버려야 할 것들을 붙잡고 있거나, 변해야 할 것들을 변하게 하지 않으면 부패하거나 화석화 되어 활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변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포기하면 교회가 생명력을 잃게 된다. 고신교회가 새천년기에 들어서면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들은 버리거나 변해야 할 것을 굳게 붙잡고 있는 사람들과, 붙잡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을 포기하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신교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세계교회가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진리에 충실하여 생명력을 가진 활력 있는 신앙공동체가 되도록, 버려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소개한다.
이 책은 고신교회 출범 50주년(2002)을 맞아 쓰기 시작하여 고신대학교―고려신학대학원의 설립 60주년(2006)을 기념하여 출간하게 되었다.(이하 생략)
차례
머리말/ 3
차례/ 7
제1부 신앙고백공동체
1. 한국교회 재건 기본원칙/ 11
2. 교회 재건의 변주곡/ 37
3. 한국장로교회와 개혁교회관/ 67
4. 고신교회 설립의 교회론적 기초/ 89
제2부 개혁주의 정통신학
5. 박형룡과 개혁파 정통신학/ 127
6. 말씀과 성례/ 159
7. 고신교회의 신앙노선/ 187
제3부 평형의 신학
8. 정통신앙과 생활순결/ 235
9. 고신교회의 성령론 이해/ 271
10. 오소서 창조자 성령이여!/ 296
제4부 역사적 정당성
11.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교회관/ 327
12. 고신파 책임론/ 363
13. 고신교회 설립은 부당한가?/ 387
14. 고신교회의 환원 이야기/ 407
15. 재분리와 환원의 차이/ 453
제5부 신학적 정체성
16. 건덕론과 방임불가론/ 483
17. 법정고소 시비와 교회분열/ 513
18. 국가법정소송, 허용적인가?/ 545
19. 성경관과 에큐메니칼 사상/ 567
제6부 자기성찰과 희망
20. 비판정신과 자긍심/ 611
21. 고신교회의 존재의의/ 630
참고문헌/ 635
사진목록과 출처/ 655
찾아보기/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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