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아소피아대교회당 (현 이스탄불) ㅅ
교회사와 해석학적 조건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2
2.1 역사와 진리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항상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정황과 관련을 갖고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특별계시라는 신적인 영역 외에, 인간이 무오(無誤)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상상적, 형이상학적, 초역사적, 초인간적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합리적으로 절대적이거나, 명제적으로 무오한 진리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기의 창문을 거쳐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의 사고 틀 속에서 사물을 이해한다. 고장 난 도량형기로 대상을 파악하면 옳은 것이 그릇된 것으로 보이고 그릇된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사물, 역사, 진리 이해에 대한 인간이성의 제한성을 의식하면서 부단히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와 절대성이 아닌, 확실성을 탐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2 비평적인 사람은 인간 이해의 한계와 해석학적 조건들을 깊이 고려한다.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왜곡과 편견 그리고 해석학적 조건에 대해서도 냉철하다. 본문을 자신의 선이해에 밀어 넣어 맞추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타인의 견해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다. 본문을 가지고 자신의 선이해를 검토하고, 그 검토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시각을 기꺼이 교정한다. 본문에 대한 해석과 해석자의 세계에 대한 해석과 해석자 자아에 대한 해석에 관심을 가진다.
2.3 한국교회사 연구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실증주의는 ‘사실’에 근거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역사연구방법이다. 역사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문과학에서 실증적인 태도로 연구에 임하는 것과 실증주의적 접근 또는 객관적 역사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2.4 역사연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건전 타당한 해석과 가치평가를 제공하는 학문이다. 역사와 그것에 대한 가치 평가는 사관(史觀)에 따라 달라진다. 관점에 따라 특정 사건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선과 악, 의와 불의, 정(正)과 사(邪)의 자리가 뒤바뀌기도 한다. 교회사도 관점에 따라 사건의 중요성이 결정되고 기준에 따라 가치평가와 해석이 달라진다.
2.5 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관이다. 교회의 역사, 정체성, 존재의의는 성경과 진리성 중심으로 접근할 때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교회사는 신앙고백적으로, 교회론 관점으로 파악해야 할 학문영역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신앙표준으로 삼는 규범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장로교는 성경, 신앙고백, 신학, 교회헌법이라고 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교회사의 독립성은 역사학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신학이라고 하는 해석의 차원을 가지는 데 있다. 장로교회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개혁신학과 장로회 치리회 원리를 따라 기술하고 평가해야 타당성을 지닐 수 있다.
2.6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창문을 거쳐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의 틀 안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점에서, 필자의 사관이 ‘고신파’ 시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프로테스탄트 시각, 개혁신학을 반영함은 틀림없다. 자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특정 교회 또는 그룹의 시각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고, 신앙고백, 치리원리, 개혁신학에 충실하며, 또 양심, 합리성, 상식, 사실에 일치한다면 그러한 시각이 역사해석에 투영되는 것은 칭찬할 일이지 비난할 사안이 아니다.
2.7 하기오그래피(hagiography)는 성인열전을 기술하는 영웅주의 사관이다. 자파의 부끄러운 역사는 감추고,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영웅적으로 확대 기술 평가한다. 역사를 아전인수 격, 견강부회 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반면, 역(逆)하기오그래피는 자기 공동체의 역사를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자학(自虐)사관이다. 순교정신, 저항정신, 투쟁정신이 반골기질과 부정적 심성과 결합하여 자기 교회의 역사를 폄하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기오그래피와 역(逆)하기오그래피는 신학적 함의를 지닌 교회사적 사건을 신앙고백, 신학, 치리회 규칙을 무시하고, 해석학적 조건에 대한 검토 없이 판단하면 개혁신학 교회론에 충실한 신앙고백공동체를 ‘반교회적 운동’이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온건한 교회를 ‘교회 밖에서의 운동’이라고 단정하는 따위의 오류를 범한다.
2.8 교회사는 신학(theological science)이며, 교회사가는 신학자이다. 교회사 연구는 역사학 방법론을 터득한 신학자-역사신학자가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 역사학의 시각으로는 규범공동체인 교회의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교회사는 성경적, 신학적, 신앙고백적 치리회적 기준을 가지고 접근할 때 건전 타당한 해석을 할 수 있다.
2.9 개인은 환경과 전통의 상호 작용 안에서 존재한다. 보고 듣는 대로 행동하고 처신한다. 자식은 부모의 흉을 보면서도 닮는다. 보고 듣는 게 그 쪽이면 그 쪽 방향으로 머리가 발달하고 관심의 폭이 넓어진다. 한 마을의 앞뒷집에 살아도 집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말이 적어도 설득력이 있는 있고, 사소해 보이는 것에도 품위가 돋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속담에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했다. 자기가 속한 교회의 역사와 정체성과 존재 의의에 대한 지식과 자부심-자긍심은 구성원들을 왕대로 자라게 한다.
2.10 교회사는 신앙 전통을 전수하는 채널이다. 선대의 교회가 물려준 삶, 신앙고백, 진리, 정신적 유산 등을 전달하고 소중히 여기게 한다. 인간의 삶과 신앙과 추억들을 실타래처럼 뭉치게 한다.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서로 엮어 신앙전통이라는 아름다운 양탄자를 만들어 낸다. 연속성, 안정감, 일체감을 제공한다. 유익한 경험, 행복한 삶, 좋은 추억, 인고의 경험들은 불행한 기억들과 함께 현재의 교회, 신앙고백공동체로 연결시킨다.
2.11 고신교회의 신학적 신앙적 정신적 기풍(ethos)은 선대 신앙인들이 형성하고 체질화한 교훈의 현현(顯現)이다. 설교 강단 아래에서 듣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가 교회의 전통을 형성하고, 그것이 가치판단에 영향을 준다. 교회는 전통이라는 과정을 거쳐 도전을 이겨내고, 건전한 공동체를 계승하며,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한다. 고신교회는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특별한 출범 동기와 과정 그리고 소중한 이야기를 가진 신앙고백공동체이다.
2.12 고신교회는 자랑스러운 역사, 정체성, 존재의의를 가지고 있다. 작은 규모의 신앙고백공동체라도 물려받은 전통에 따라 큰 생각을 하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영향력을 가진 행동을 할 수 있다. 계승하고 있는 가치관, 철학, 신념, 스타일, 신조, 정신, 관습 등 고신교회의 전통은 건실한 신앙, 삶, 가치관의 밑거름이다. 고신교회가 복음열풍을 일으키고 복음한류 파도타기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를 뒤덮을 수 있다.
위 글은 제2회 고신포럼 (20200217)에서 발표한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미출간)의 일부이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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