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다음
1. 저는 비록 치우치는 인간이지만 분별하고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포털에 접속할 때 네이버와 다음에 함께 접속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굳이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을 골고루 살펴봅니다.
2. 그렇다고 제가 균형을 잡고 있느냐 물으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노력은 하지만 저도 인간이고 더군다나 현자도 아닙니다. 감사한 것은 적어도 독선적이지 않고 다른 생각에 마음을 닫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이 땅에 서로 굳게 문을 닫은 다른 두 세상이 있는데,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세상입니다. 약간 유아스런 발상이지만 양쪽을 함께 들여다보는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4. 우선 네이버에 있지만 '다음'에 보이지 않는 기사들이 많고 네이버에는 보이지 않는 기사가 다음에는 주요 기사로 등장합니다.
5. '다음'의 세상에서 현 정부와 현 여당은 신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은 무오하고 위대합니다. 오류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예를 들면 김현미.이해찬 발언이나 청와대 인권위 공문) 간혹 있다고 해도 댓글을 보면 기사의 내용과 상관없이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이 줄기차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현 정권의 정책이나 행정에 대해 조금만 비판적인 발언을 해도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습니다.
6. 그와 반대로 네이버에서 현 정부와 현 여당은 무능하고 부패한 데다가 심지어 독재까지 일삼는 악한 정권입니다. 오류와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잘한 일에 대해서는 조작이니 꼼수니 하면서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입니다.
7.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가끔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정반대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세상을 지켜보면 사람들이 왜 전쟁을 하는지 그리고 전쟁이 나면 어떻게 적이지만 같은 인간들에게 그토록 가혹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8. 저는 어느 쪽이든 과격하거나 폭력적이지만 않으면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가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먼저 정치적 이유로 관계를 단절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있지만, 상대 진영에 대해 연일 과격하고 공격적인 발언을 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보내드렸습니다.
9.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이 두 세상이 더욱 뚜렷하게 등장합니다. 그래서 어느 편에 서길 강요받고 조금만 자기 진영에 불리한 발언을 하면 거세게 공격하는데, 발언해도 문제이지만 침묵하면 또 어느 편인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목소리를 내라고 공격받습니다. 그래서 때로 한 쪽으로 편승하여 편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10. 그러함에도 양쪽을 함께 품어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제가 목사이기 때문이고 목사로서 자세가 온라인 공간에서도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호남에서도 목회했고 대구에서도 목회했습니다. 이분들의 사고는 전혀 다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까지 두 교회의 성도님들과 교통을 누리고 있고 그 점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9. 요즘처럼 진영이 뚜렷하고 자기편이 아니면 다 적이 되는 무서운 세상에서 편이 없이 산다는 것은 십자가이고 외로움이고 짐일 수 있습니다. 바리새파도 사두개파도 헤롯당도 아니셨던 예수님이 무차별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신 것과 같습니다.
10. 선교사님 한 분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어느 교회가 선교비를 끊겠다고 협박했다 합니다. 이런 현상은 러시아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저에게도 무서운 일입니다.
11. 그렇지만 저는 교회의 목사로서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함께 품어가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 두 세상을 하나 되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셨고 교회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12. 간혹 보면 한쪽 세계에서만 환영받는 목사가 자기 의를 과시할 때가 있는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목사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가 최우선입니다. 한 개인일 때는 자유지만 목사는 부모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일만 교사가 있지만, 아비는 적습니다.
13. 제가 목사라서 그런지 저는 정치보다는 형제가 서로 다투는 현실이 더 마음이 아픕니다. 선동하여 형제를 다투게 하는 목사는 좋은 목사가 아닙니다. 그들의 길을 따르면 끝에 가서는 예수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14. 제가 바라는 것은 부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잊지 말고 정치에서도 예수가 주가 되시고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계적 통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이 되지만, 교회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최갑진 목사 페이스북에서 2020.1.16.
진보든 보수든 조국이나 전광훈이든 하나님보다 절대시 되면 그게 바로 우상입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정치적 우상숭배가 가득합니다. 일례로 교회가 좌나 우로 나뉘어서 서로를 공격하는 현상을 보면 그 살기가 유대인이 헬라인을 대하는 것보다 결코 적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막힌 담을 허무시고 둘이 하나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건만 세상에 제도 하나 세우고 허무는 일로 교회가 서로 분쟁하고 원수가 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모스크바 현지 선교사님들 사이에서도 이 일로 다툼과 분쟁이 있다고 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함께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동지들인데 서로 그리 쉽게 죽이는 말을 뱉는다 하니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수처가 모스크바의 복음화와 하나님나라 건설을 가로막는다면 이것이 얼마나 교회에 큰 손해입니까?
공수처가 나라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공수처가 나라를 허무는 것도 아닙니다. 공수처를 찬성하는 분들은 이 제도...가 실험적 제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도는 분명 허점도 있고 어떤 역할을 할지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그 제도 외에도 다양한 방법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절대화 하여 반대하는 형제를 원수대하듯이 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가하지 않습니다.
공수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면 좋겠습니다. 세상 질서에 순복하기를 하나님은 요청하십니다. 권세는 위로부터 나옵니다. 분명한 악이나 교회를 박해하지 않는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여 세상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빨갱이로 몰고 가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좌든 우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그리스도인의 교양을 지키며 사랑을 우선해야 합니다. 윤석열 총장이 문대통령의 의도와 다른 길을 간것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이해 밖에서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면 무너질 나라가 없고 하나님이 무너뜨리시면 세워질 나라가 없습니다.
정치는 우리의 삶과 신앙에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영역에 여전히 그리스도가 주가 되셔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그 제도를 지켜 주신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민주주의란 자고로 서로 다른 의견들을 협의해 가는 성경적인 제도 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신념을 따라 정치 행위를 하되 가말리엘의 정신을 기억하고 형제를 관용하면서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제가 주제 넘은 것 같긴 하지만, 공수처 설치 문제로 선교사님들마저 서로 다툰다 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이 글로 표현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바라보면서 형제를 향한 그 살기를 잠시 누그러뜨려 보자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최갑진 목사 페이스북에서 20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