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 사진: BTVnews
국무총리의 불상 배례
전 국무총리 이낙연 씨의 종교는 개신교이다. 영광중앙교회(전남, 예장통합 김칠수 목사)에서 2003년 경 세례를 받았고, 서리 집사로 봉사했단다. 서울에서는 신반포중앙교회(서울, 예장 대신, 김지훈 목사)에 출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대통령권한대행 황교안 씨도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한다.
이낙연은 1952년생으로 제16-19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라남도 도지사,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주자 물망에 올라 있다. 매끄러운 말 솜씨와 능란한 처신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이낙연은 기독교인들이 싫어하는 ‘차별금지법’ 발의자 12명 중의 한 명이다. 국무총리 후보자 물망에 올랐을 때, 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안 발의에 참여했다. 이 법안은 “성별․학력․지역․인종․종교 뿐만 아니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대하여 차별할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의안번호 3793번, 2013년 2월20일 발의)”는 내용이다.
이낙연은 국무총리 재임 중인 2019년 5월 24일경, 천태종 대전 광수사에서 ‘부처님’ 께 지극한 마음으로 배례(拜禮)했다. 불교방송(BTN news)은 “교회 집사인 이낙연 국무총리 절에서 절하다”(2019.5.25. 방송)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기독교신자로 알려진 이낙연 총리가 대전 광수사에 도착한 후 곧 바로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같은 기독교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에서 불교 의례를 거부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라고 했다. 이낙연은 단양 구인사에서도 엎드려 불상을 향하여 극진하게 큰 절을 하고 두 손 바닥을 위로 향하는 예를 표했다.
현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 씨는 대통령 직무대행 시절 영천 은해사를 방문했을 때 불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 불교계는 '부처님'에게 예의를 표하지 않았다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들은 덩달아 ‘예의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자기 신앙에 충실한 기독인을 예의 없는 종교인으로 몰아갔다.
과거, 장로 김영삼 대통령도 사찰을 방문해 불상을 향하여 절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불교계와 언론이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 이후 사찰을 방문할 때 승려들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는 합장을 했다. 합장은 불교권 아시아인들의 인사법이다. 같은 합장이라도 불상을 향한 합장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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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향한 배례 곧 예배는 우상숭배이다. 이낙연이 왜 우상숭배를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정치인으로서 불자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의 표시였을 수도 있고, 종교적 관용 또는 융통성(flexibility)을 발휘했을 수 있다. 장차 대권 도전에 필요한 불자들의 표를 의식한 행동일 수 있다.
어느 신학대학원은 목사후보생 입학생들을 불당에 데려다가 불상에게 절을 하는 것으로 개학 행사를 한다. 기독교계에도 상대주의 신념에 근거한 종교다원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영광중앙교회 또는 반포중앙교회가 우상숭배를 한 이낙연에 어떤 류의 치리회적 지도를 했는지 궁금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대통령, 국무총리, 서민이 따로 있지 않다. 그가 국무총리라는 신분을 가진 공인인 점을 고려하여 교회가 침묵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에 미치지 못하는 종교집단임에 틀림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다. 자신의 종교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다. 황교안이 자신이 믿는 기독교 신앙에 따라 불상을 향해 절을 하지 않은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칭송해야 할 일이다.
성숙한 불교계는 사찰을 방문하는 기독인에게 불상을 향해 절을 하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예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기독인과 불자가 종교적 자기 정체성과 행동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친분과 사귐을 가짐이 바람직하다.
기독인은 불상을 향하여 절을 하지 않는다. 성경이 금하기 때문이다. 창조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불상을 향한 배례-예배는 우상숭배이다. 이것은 가급적이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기독교 전통과 예법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행위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이 얕은 분들이 시험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이 증오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끌어오는 행위이다.
불상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며, 생명 없는 물건이다. 불상에 절을 하는 행동은 제2계명 위반이다. 일제말기의 신사참배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하면서 일본이 망하기를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이낙연이 불당에서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고 그것을 향하여 극진한 절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를 범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했다.
한국의 많은 기독인들은 지금도 명절 조상제례 때마다 죽은 조상에게, 조상을 상징하는 물건을 향하여 절하기를 거부하는 문제로 고충, 고통을 겪고 있다.
이낙연의 정치적 지위와 신분은 그의 우상숭배 행위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혹자는 그가 기독교인들만의 총리가 아니며, 특정 정당만의 총리가 아니며, 특정 단체의 총리가 아니라 전 국민의 총리이므로 공식 행사나 타종교의 대표들이 있는 불당에서 공인답게 불교 의례를 해도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신사참배 거부는 일제의 핍박과 억압, 인권 유린과 민족 말살에 대한 순교적 저항이었지만, 오늘날의 불교계가 이러한 의식을 강요하지 않으므로 불상을 향해 큰 절을 해도 무방하다고 합리화할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모두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손으로 만든 물건에 종교성을 부여하여 섬기는 행위를 금한다(시 115:4). 왜 우상숭배를 금할까? 그것을 하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십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도 말라”라는 두 가지 계명으로 시작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고 제사장 나라로 삼았지만, 이집트에서 430년을 지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사실과 돌아갈 땅이 있음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바로를 신으로 섬기고 태양신과 농사의 신인 소와 다산의 신들을 섬기는 풍습에 익숙해 있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이집트의 우상숭배에 익숙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이집트에서 흔히 보았고 숭배하던 우상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우상숭배에 익숙해 있었다.
우상 자체는 생명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사탄은 종교성이 부여된 비인격적인 물건을 이용하여 사람을 노예 삼는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거나 미신에 사로 잡히게 된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섬기고 의지하고 싶어 한다. 사람은 어떤 형체를 통해 사물을 파악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신을 돌이나 나무를 깎아 구상화(具象化)한다. 위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해, 달, 별, 바다에게 의지하고 보호 받으려는 심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우상을 만들어 예배하고 수호신으로 삼아야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 불상, 금송아지, 위패, 사진을 붙여놓고 그 앞에 절을 하고 복을 구한다. 죄성을 지닌 인간 본능의 원시적 표현이다.
국무총리 이낙연의 구인사 불상 참배, 사진: 금강TV 켑쳐
우상과 피조물은 인간에게 복을 줄 능력이 없다.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숭배함은 주객이 전도된 행위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한 뒤 우리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맡겼으며 이 땅에서 번성하고 충만하게 살라고 했다.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려야 할 인간이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고 그것들을 향하여 복을 달라고 기원하며 행운을 비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위대한 인물은 존경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만물과 형상은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이런 것을 숭배하면 안타까워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체로 만들었다. 사람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한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싶어 한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배은망덕 행위이다.
창조자 하나님은 영(Spirit)이다. 그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과 공의와 선과 진실이 무한하며 영원하고 불변하다. 하나님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이는 것은 신앙과 관련이 있다. 기독인은 신(神)을 어떤 형상이나 나무나 돌로 표현하지 않는다. 비형상적 존재로 파악한다. 조상(祖上)을 신격화 하지 않으며, 조상제사를 하지 않는다. 위패나 조상(彫像)을 만들지 않고 그것에 참배하지 않는다.
기독인은 어릴 때부터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상상하면서 자란다. 왕성한 두뇌 활동을 한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신께 올리는 감사와 찬양의 예배는 지적 능력을 자극한다. 이 때 만사를 깊이 생각하는 탐구력과 상상력이 길러진다. 비시각적 두뇌훈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형체가 없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동안 우리의 두뇌는 활동 영역을 넓힌다. 창조성, 역동성, 상상력을 증대시킨다. 기독인들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사고 훈련과 관련되어 있다.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행복헌장이다. 십계명은 기독인에게 구별된 삶을 요구한다. 계명은 자기의 백성들이 잘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숭엄한 사랑을 담고 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우상숭배를 행하는 자는 삼사대까지 죄를 묻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 우상숭배가 많이 하나는 나라들을 보라. 대부분 빈곤국이다.
현대인의 우상은 손으로 만든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일, 탐심, 돈, 이성, 게임중독, 스포츠 중독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은 우상이다. 기독인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명한 사실을 인정하는 강력한 표시이다. 오직 창조자, 전능자 하나님만이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이며, 그 밖의 어떤 존재도 경배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계명을 부인하는 행동이다. 국무총리 이낙연, 서리집사 이낙연, 기독교인 이낙연 씨가 불상을 향하여 극진한 정성으로 배례를 한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이 나라 최고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나님이 금하는 우상숭배를 했다면 그는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로 행하는 자이다. 이낙연은 기독인일까? 그의 우상숭배를 경책하지 않는 한국교회는 선지자적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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