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설교학강의: 논지에서 설교까지
김기홍 목사 (분당 아름다운교회 원로)
<교회와 신앙> (2018.2.12.)에서 올김
복음의 내용을 논지로 삼아서 요지와 본문을 만들어보자. 언제나 기본적으로 마음에 가지고 진행할 내용이 있다. 예수께서 내게 해 주신 일을 선포하고 그것을 매일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설교자 스스로 훈련해야 할 일이 있다. 논리 진행이다. 서양에서는 어려서부터 하는 훈련이다. 동양에서는 교사들부터 거의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책이나 영화나 음악이나 심지어 미술까지도 반드시 논지가 있어야 한다. 주제, 테마 다 같은 말이다. 그것이 없다면 뼈 없는 사람처럼 설 수가 없다.
하지만 뼈만 가지고는 몸이 되지 않는다. 거기 입힐 여러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 모든 작품은 두 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진다. 논지와 몸이다. 몸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논지가 옳다는 증명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논지와 증명이 모든 작품의 두 요소이다.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논지와 증명이다.
증명이 제대로 되려면 일단 접하는 사람이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 다음은 설득이다. 가능하면 감동적으로 설득되어야 한다. 설교는 거기 더해서 영적인 깨달음과 결단도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영적 깊이와 깨달음이 많아도 논리가 없으면 전달해 줄 수가 없다. 거기에 감동도 겸해야 한다.
정리하면 설교의 요소는 논지와 증명이다. 논지는 복음이어야 하며 증명은 감동적인 논리 진행이어야 한다. 박사논문이건 책이건 짧은 수필이건 설교건 반드시 제목이 있다. 제목은 질문을 내포하며 그 질문의 답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그 답을 전체 내용으로 주지만 한 문장으로 하면 바로 논지이다.
“한국 사람들의 길어진 수명”이란 제목이 있다고 치자. 전체 내용은 두 가지의 질문을 내포한다. 얼마나 길어졌느냐와 왜 길어졌느냐이다. 얼마나 길어졌느냐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통계만 주면 된다. 하지만 왜 길어졌는지는 설명하는 사람의 주장이 들어간다. 그 주장이 한 마디로 논지이다.
설교 논지로 “불멸의 지체”를 보자. 모든 제목은 이제부터 제목이 가진 질문의 답을 준다는 약속이다. 불멸의 지체가 무엇인가를 한 마디로 하면 이렇다. 예수의 몸인 교회다. 예수와 하나 된 나다. 둘 다 맞는 답이다. 그렇다면 하나씩 논지로 삼아서 ‘불멸의 지체’ 1과 2로 두 번의 설교를 할 수 있다.
시간상 둘을 하나로 합치면 “불멸의 지체는 그리스도와 한 몸 된 나와 교회이다.”가 된다. 이것이 논지이다. 그러면 계속 질문이 일어난다. 신앙 초보자들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라고 묻겠지만 기성신자들은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를 물을 것이다. 그 대답을 몇 개 쓰면 대지가 된다.
1) 그리스도가 돌보신다.
2) 그리스도의 경험이 나의 경험이다.
3)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다.
4) 그리스도처럼 절대로 망하지 않고 불멸한다.
더 많이 쓸 수 있겠지만 무한정 시간이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여기서 줄인다. 여기서는 이 대지들이 이번 뼈대를 이루어 설교가 진행될 것이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가서 각 대지들을 질문으로 삼아 답을 만들어 본다. 그러면 그것이 소지 또는 대지의 내용이 된다. “그리스도가 돌보신다”하면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돌보시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쓰면 된다. 그래서 적합한 설명을 더하면서 발전해 나간다.
[ 1단계 ]
제목: 불멸의 지체
논지: 그리스도와 하나 된 신자들은 불멸의 몸이다.
1.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모든 시험에서 구하신다.
2. 지체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3. 그리스도의 지체는 멸망치 않고 영원히 일어난다
4. 현생도 그리스도를 의지해 그리스도처럼 산다
[ 2단계 ]
도입부문: 인간의 천함.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 됨
1. 선인장가시, 옷가지 태우는 예화, 내 몸의 소중함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소중함,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주장하라. 그가 돌보신다.
2. 그리스도의 죽음의 내 죄와 저주의 죽음, 그의 사심은 우리의 영원한 삶,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남긴 고난을 신자의 몸에 채운다.
3. 그리스도의 뼈는 꺾이지 않음, 세상왕국의 허무함과 교회의 영원함, 무궁한 생명, 그것의 적용, 매일매일 이 사실을 확인하고 적용하라.
4. 매일 매일 자기의 힘으로 힘겹게 살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산다. 그리스도의 존귀함으로 능력으로 기쁨과 감사로 그리스도로 산다. 그것이 영적인 삶이요, 영원한 상급을 만드는 삶이다.
[ 3단계 ]
불멸의 지체, 고전 12:12-27
인간의 값은 얼마일까? 경우에 따라 극에서 극이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은 하늘보다도 귀하다. 그 외에는 강아지만큼도 가치가 없게 된다. 중국 천안문 사태 때에는 5천명이 탱크에 깔리고 기관총으로 집단사살을 당했다. 이라크에서도 수천수만의 쿠르드 족이 독사스로 처참하게 죽었다. 남은 다 파리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보는 사람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렇게 인간은 서로들 천대하면서 지낸다. 결국에는 자신도 영원한 멸망으로 지옥의 천대를 받는다. 나 자신을 아무리 소중히 여겨도 남들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무시하고 무관심해 한다. 심지어 멸시하고 혐오한다.
그러나 나를 세상보다 소중히 여기는 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 만은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나를 자신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위해 죽고 지옥까지 간다.
그의 세상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사람이 되어서 살며 멸시 천대에 고난 받고 죽고 부활하고 한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다. 그리고 나를 돕기 위해 내 안에 들어와 한 몸이 되어주셨다.
그와 하나 되는 순간에 나는 그의 존귀함을 나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것은 이론이나 상상이 아니다. 영적 사실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나의 존귀함은 한 몸 된 그리스도에서 나온다.
그리스도는 두 방법으로 우리와 한 몸이 되었다. 첫째는 우리 안에 영으로 들어오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 둘째는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그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가 한 몸이 되게 하셨다.
이 한 몸 됨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실제이다. 우리 속에 영혼이 있듯이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 계시다. 또한 몸의 여러 부분이 있듯이 교회 구성원도 각자의 하는 일이 있다. 이 한 몸 됨을 깨닫지 못할 때 그리스도의 모든 은사는 힘을 발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하면서 그와 우리가 한 몸 되었음을 강조하신다. 그와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는 능력이 넘친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해 지체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그냥 보통 사람이다. 한 몸 됨은 영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효력은 그렇지 않다. 의식하고 믿어야만 한다.
설교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 의식에 들어오시는 것이요 성찬은 한 몸 됨이 눈에 보이도록 나타난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예수와 한 몸이다.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믿어질 때 성령은 강하게 그 말씀대로 일하신다.
잘 안 믿어져도 그대로 의식만 해도 힘이 나온다. 신자는 자신이 예수와 한 몸임을 늘 의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 이 사실을 의식만해도 예수의 신비한 힘이 삶을 강하게 만든다. 마음까지도 예수의 마음처럼 된다.
확인해 보라. 내가 그리스도와 정말로 하나 되었는가? 내가 손을 들 때 그도 드시고 내가 걸을 때 그도 내속에서 같이 걸으시는가? 이것만 확실하다면 우리는 복된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와 하나 됨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특권을 가지고 살게 된다.
1. 그리스도는 자기의 몸을 돌보신다.
손에 가시가 박혔을 때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지체는 편히 쉬고 손만 고통 받는가? 온 몸이 다 함께 고통스럽다. 한 잠도 자지 못한다. 한 몸임을 믿을 때 우리가 괴로울 때 그리스도 역시 괴로워하신다.
그리스도는 자기 몸의 고통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어떠한 아픔 어떠한 불 시험 가운데서도 건져 내신다. 머리털도 타지 않게 하신다.
더러운 옷가지를 사람들은 불에 던진다. 바보라도 던진 뒤에는 빨리 손을 빼낸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몸을 불 속에 그냥 남겨두겠는가? 그의 몸 된 신자가 느끼는 확신이다. 현재 일이나 미래 일이나 무엇을 두려워하랴!
그리스도의 몸 중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어느 부분이건 없어서는 안 된다. 손, 발, 보이는 부분, 안 보이는 부분 모두 다 귀하기만하다. 누가 돈을 많이 준다고 내 몸을 한 부분 떼어내 팔겠는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사실을 믿으라. 스스로 소중히 여기라.
나 하나쯤 빠져도 되겠지 하면 그리스도의 몸 될 자격이 없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이 얼마나 고통하며 제 구실을 못하는지 관심이 없어선 안 된다. 아무리 큰 건물이라도 작은 벽돌 하나라도 빼어낼 수 없다. 주와 한 몸임을 깨닫는 사람은 긍지와 함께 능력을 느낀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를 따른다. 몸이 전쟁터에 나갈 때 손발만 가고 머리는 남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따로 따로 논다면 죽은 사람이다. 언제나 몸은 머리의 명령을 따라서 움직인다. 발이 가는대로 온 몸이 같이 움직인다. 그리스도는 신자의 머리요 교회의 머리이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서 악한 장소에 있을 수 없다. 악한 일을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살며 그리스도처럼 사랑한다. 그리스도가 이 사람을 통해서 표현된다.
2. 그리스도의 지체는 그리스도의 경험을 나눈다.
몸의 한 부분이 영광을 받으면 다른 부분도 그러하다. 몸의 한 부분이 저주를 받을 때 다른 부분도 그렇다. 머리가 죽으면 온 몸이 다 죽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험을 그대로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
그의 죽음은 그의 지체인 우리가 죽은 것이요 그가 저주와 형벌을 당함은 그의 지체인 우리가 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무서운 벌로부터 제외된다. 우리는 이미 죄의 모든 대가를 완전히 지불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지체 곧 우리가 부활한 것이다. 그 부활의 생명은 우리 속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가 사탄의 본거지요 저주의 본부인 죽음을 파괴한 것은 곧 그의 지체인 우리가 한 것이다.
사망의 쏘는 힘은 우리를 떠났다. 율법의 권세도 그쳤다. 그의 부활은 자기의 지체 속에 영원한 생명을 넣은 것이다. 그 생명이 내 속에서 넘쳐 나온다. 그것은 기쁨이요 평안이요 건강이요 창조력의 충만이다. 믿음으로 느끼라.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지체된 나를 본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음으로 끝까지 주장한다. 이 믿음이 나의 삶 전체를 주관한다.
주의 지체는 주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 남은 고난이 무엇인가? 복음 전하기 위해서 어려움 당하는 것이다. 이 일은 신자들의 몫으로 주어졌다. 복음 위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았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 일을 위해서 고난을 자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이 우리 자신의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말씀대로 믿고 주장하라. 교회에 권세를 주고 신자 개개인에게 놀라운 경험을 하도록 하신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은 참된 기쁨을 맛보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신자들을 통해서 말하고 사랑하고 복음 전하게 한다.
3. 그리스도의 지체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유월절 양은 뼈를 꺾지 않는다.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뼈가 상하지 않았다. 뼈는 권능을 의미하기에 그의 뼈를 꺾지 못하게 하셨다. 옆의 강도들은 다리뼈를 꺾어 죽였다. 그리스도의 몸은 절대로 꺾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위대한 인물들과 나라들이 일어나고 망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았다. 지하에서도 감옥에서도 꾸준히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스도의 지체, 우리도 그러하다. 혹시 핍박받고 멸시와 천대가 있다 해도 그리스도의 몸은 망하지 않는다. 영원하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전도도 많이 하지만 결국은 그리스도를 배반한다. 그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갑은 손과 꼭 같이 몸을 위해서 일하지만 마지막에는 불에 던져지고 만다. 그리스도의 의복은 수십 년을 그와 함께 다니며 몸을 보호했지만 끝에는 찢겨 원수들의 손에 들어갔다. 가룟 유다도 그리스도와 권능을 행했지만 급기야는 마귀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은 찢겨져도 그리스도에 붙어 있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이들은 영원히 그와 하나이다. 아무리 상하는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난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밟혀도 영광스럽게 피어오른다. 부활하는 그리스도처럼 지옥의 저주라도 밟고 다시 선다.
4. 그리스도의 힘으로 산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낳았다. 우리는 그의 확실한 자녀요 가족이다. 예배 참석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와 한 몸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있다. 기도할 때도 우리는 그리스도로 필요한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웃을 만날 때도 일을 할 때도 우리는 그리스도로서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처럼 대하신다. 그리스도처럼 귀히 여기시고 그처럼 모든 특권을 주신다. 우리의 복종과 헌신이 아주 적어도 그리스도의 분량만큼 완전한 것으로 받아 주신다. 영원한 기업을 상으로 주신다.
그리스도의 몸 된 확신을 날마다 시간마다 새롭게 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보화를 내가 공유함을 믿으라. 잘 안 믿어져도 말씀대로 주장하라. 그러면 그의 피가 내 속에 용솟음치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살이 내 육체를 강하게 하고 그의 마음이 내 얼굴을 빛나게 한다. 그리스도는 나를 통해서 지상의 삶을 계속하신다. 내 안에는 그의 생명이 있다. 그의 마음과 꿈 그리고 사랑이 넘쳐난다.
이대로 느낌이 안 와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느낌을 만들라. 느낌이 믿음을 주는 게 아니다. 그건 세상 방법이다. 우리는 말씀대로 믿어서 느낌을 만든다. 그렇게 감사와 기쁨을 만든다. 그렇게 말씀을 능력으로 만든다.
그렇게 그리스도처럼 어둔 세상을 비취고 그리스도처럼 새 세계를 창조하리라! 세상 사람들이 어디서 그리스도를 만나랴? 바로 나를 통해서 아닌가! 바로 주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아닌가! 우리는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