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우리나라 전통가치의 고전 <국제시장>
하늘이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도운 이야기 <국제시장>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본래의 표현에서 다소 의역된 것으로,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의미가 보다 명확한 뜻일 것이다. help oneself에서 help는 ‘aid’가 아니라 단지 ‘do’인 까닭이다.그런데 이 단순한 문자적 오역 같은 의미의 이행 속에는 점진적으로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들어온 강력한 우리식 이신주의(deism) 기제가 엿보인다. ‘스스로’ ‘돕는다’ 라는 문형이 갖는 모순도 대단히 이신(理神)적이지만, 그러면서 또 ‘하늘’에게는 도우라는 문형은 더할 나위 없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국제시장>은 근래 우리 사회를 수몰시켜 온 이와 같은 우리식 이신주의를 여실히 폭로했던 클리셰로서 가치가 있기에 그 개요를 살펴보려 한다. 우선 4년 전 개봉 당시의 젊은 비평가들의 이 작품에 관한 비평을 복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아는 감동이지만, 좀 더 세공이 필요했다. 아는 역사, 예상 가능 지점의 눈물인데, 그 기술이 미비. 이미 알아서 인지하는 것과 영화적 구축을 통해 관객이 호응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보편적 정서를 끌어낼 세공이 부족.” ―별점 총10점 중 6.5/ 이화정 기자 <씨네21> 소속.
“아버지 세대에 주는 위로 혹은 면죄부. 집단 정서를 건드리는 신파 코드는 공감을 부르기보단 호소에 가까운 방식이다. 아버지 세대에 건네는 눈물 어린 위로, 혹은 낙천적인 향수를 통해 그들 세대에 주는 어떤 면죄부.” ―별점 총10점 중 6.5/ 이은선 기자 <매거진 M> 소속
“어딘가 익숙한 넋두리. 이만큼 살게 된 게 누구 덕분인 줄 아냐는 언젠가 들어본 넋두리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 기성세대에게는 절절한 헌사겠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영 불편한 자리가 될 수도.” ―별점 총10점 중 6.5/ 이지혜 기자 <맥스무비> 소속
하늘이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도운 이야기 <국제시장>
아버지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이 같은 편향된 반응은 형식상 문화 비평이지만, 사실은 ‘아버지’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적잖이 종교적이다. 이기적인 신적 기제란 대개가 사회적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그런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자기중심에서 비롯되는 종교성에 기인하는 까닭이다(Richard Dawkins). 결국에는 그것이 고스란히 자기 발로 딛고 사는 세상의 환경으로 되먹임 되어 고착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치 단계를 거칠 때 그것은 전체주의에 봉착하고 마는 것이다. <국제시장>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탈출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또한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딸의 이야기는 아니란 소리가 아니라, 마치 man이 남자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을 표지하듯, 아들이라는 주체는 모든 자식을 표지한다. 그래서 그것은 마치 ‘독생자’란 말이 독자(獨子)가 아닌 단독자(獨者)로서 주체를 표지하듯이 <국제시장>에서의 ‘아들 이야기’라 함은 아버지를 둔 모든 사람, 특히 아버지를 둔 모든 한국인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독생자’(獨生子)란 말은 그리스어의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를 한글 성서로 번역한 말인데, 영미권에서 모노게네스를 only begotten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서 비롯된 사실상의 오역에 가까운 말이다. [* begotten: beget/‘자식을 보다’의 과거분사]
‘자’(子)나 ‘Son’은 다 의역에서 온 표현이다. 모노게네스는 결코 only begotten(자식을 보다)의 어원이 될 수 없다. 이 용어가 담긴 문맥을 통째로 옮겨서 살펴보면, 모노게누스 파라 파트로스(μονογενο?? παρ? πατρ?? /요 1:14)는 단지 “아버지로부터 독생한 {어떤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서열 2위로서의 어떤 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일한(Only/unique) 어떤 것에 관한 표현이다. 그러면 이 유일하다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국제시장>의 덕수 아저씨에게 옮아가버린 아버지의 자아와도 같은 것을 말한다. 덕수 아저씨로 하여금 아버지 흉내를 내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 흉내는 삼성그룹이나 대한항공이나 또는 큰 교회를 물려받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고유한 행동이 아니다. 덕수 아저씨는 무거운 짐만 물려받았는데도 자기 아버지 흉내를 낸다. 그는 ‘아버지처럼’ 가족을 지키고 생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에게는 자꾸만 희생하고자 하는 본성이 솟구친다. 희생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처럼.’그래서 그는 그렇게 아버지를 ‘보여주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로부터 온 모노게네스’이기 때문이다(요 1:14).
영화 국제시장 중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생물학적 외아들이 아니라 바로 그 모노게네스이다. 유일하게 아버지를 보여주는 자이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에 있는 그 유일한(모노게네스) 하나님을 보여준 것이다(요 1:18). 어떻게? 덕수 아저씨처럼 아버지께서 맡긴 자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한 것이다. 희생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로부터 온 모노게네스’이기 때문이다(요 1:14).이것이 아버지의 이야기이면서 아들의 이야기가 되는 원리이다. 또한 아들만이 아닌 딸의 이야기이기도 한 원리이며, 궁극적으로는 아버지를 둔 모든 사람 한국인의 이야기인 원리이다. 실제 우리에게도 내재된 가족을 지키려는 희생의 본성이 이 지점에서 출원한다. 우리도 역시 덕수 아저씨처럼 (대한한공은 커녕) 아버지의 빚만 대신 짊어졌더라도 그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왜, 아버지의 본성, 모노게네스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독자’, ‘외아들’, ‘장남’, ‘남자’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모노게네스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이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는 진정한 이치인 것이다.
국제시장(國際市場, 부산시 중구 신창동 4가 83번지)은 이와 같은 ‘독자’(獨者)들이 생존해서 형성했던 실제 시장의 이름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일본이 철수하면서 시장 터를 잡은 이래,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1948년에 「자유시장」이라는 정식 이름으로 본격 가동되었다. 「국제시장」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1950년 5월) 미군이 주둔하면서 군용물자를 포함한 모든 구호물자들이 이곳에서 자유롭게 거래된 까닭이다. <국제시장>이란 또 다른 의미의 ‘자유시장’인 셈이다. 이러한 ‘국제시장’, 즉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업들이 우리나라에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