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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예식 관련 용어 개선

 

 

예배의 변화와 갱신을 연구해 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발전연구원은 최근 '한국교회 잘못된 예배용어, 이것만은 고치자'라는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아래는 예배, 예식과 관련된 용어들로 적절한 것을 추려낸 것이다. 김세광 교수(서울장신대, 예배학)의 발제문을 부분 편집한 것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1. 사회자 ⇒ 인도자(예배시)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사회(司會)라는 말은 회의나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사회자라고 하면 마땅히 일반 회의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예배가 아닌 결혼예식이나 임직식 같은 인간 중심의 의식에서는 진행을 맡은 사람을 사회자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현장에서 사회자라는 명칭은 경건성의 결여를 느끼게 하므로 단순한 사회자(presider)의 개념을 넘어 예배 인도자(Worship Leader)로 부름이 타당하다. 인도(引導)의 사전적 의미는 "알려주며 이끄는 일"이므로 예배 인도라는 말을 회의에서의 사회와 구분지음이 타당하다고 본다. 본 교단 1998년 총회에서 통과된 표준 예식서에는 모든 예배의 진행자는 인도자(引導者)로, 성례전과 같은 예전의 경우는 집례자로 표기하였음을 밝힌다.

2. 성가대 ⇒찬양대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최근에 '성가대'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출판사들이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 부르는데서 보편화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세이카다이...성가대(聖歌隊)'가 그대로 직수입되면서 성경에도 없는 '성가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우리의 '찬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행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가대'라는 용어는 성경의 정신과 우리의 고유한 이름인 '찬양대'로 바꾸어 부름이 타당하다.

3.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용불가(설교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는 한 인간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하여 어떤 사실이나 바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빌고 원하는 뜻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표현이 설교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연구 검토시킨 바 있는 본 교단 총회는 1981년 65회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첫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기에 설교에 인간의 기도식 기원이나 기도 등의 형식을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설교는 설교대로, 기도는 기도대로, 축도는 축도대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의 사용은 회중에게 자극을 주고 흥분시켜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고는 안 되게 만들어 설교의 질서를 문란케 하고 미신적 기복 사상을 키워 줄 우려가 있다. 넷째, 설교의 근본 목적이 흐려지고 회중들에게는 설교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아멘"을 하게 하는 식으로 유혹되기 쉽다. 연구위원회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보고하면서 설교시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를 하지 않도록 건의하였고 총회는 이를 아무 이의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서 한국교회의 설교 사역을 바로잡는 일이라 보아 설교시에 이 말의 사용을 억제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4. 대예배 ⇒ 주일 예배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데 있어서 큰 예배가 있고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가 예배일진대, 거기에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지칭하여 대예배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교회들이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 때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대예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대예배가 있다면 소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어떠한 예배도 하나님 앞에서 소예배일 수가 없다.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한에 있어서, 어떤 예배도 소예배일 수가 없다. 다만 예배일뿐이다. 물론 시간별로 예배를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라든지, 주일 저녁(오후) 찬양 예배라든지, 혹은 시간에 따라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예배"라는 용어는 합당한 말이 아니다.

5. 열린 예배 ⇒ 열린 집회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에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이 예배는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로 알려진 집회의 형태로, 서울의 한 대형교회를 통하여 소개되면서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본래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구도자"라는 부자연스러운 번역 대신에 1990년대 초에 유행하던 "열린"이라는 단어로 의역한 것으로 "구도자의 집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열린 예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형식과 접근 방법을 택한 구도자의 집회를 말한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이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 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 혹은 구도자들은 아직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 예배드릴 자격도 없고, 예배드릴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또 한 가지 예배의 기본 정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감사로 응답하는 드림에 있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받거나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볼 때 열린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응답의 행위여야 하지,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예배가 회중지향적이 되고, 예배의 근본적인 목적이 드림에 있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그 예배를 통해서 얻어내는데 목적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영혼구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집회이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차라리 "열린 집회"로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많은 교회에서는 불신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한 "구도자의 집회"와는 별도로 신자 중심의 "열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즉 구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도 집회로서의 열린 예배의 개념보다는 기존 신자들에게 새로운 생동감을 주는 예배로서의 열린 예배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예배는 주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형식적이고 딱딱한 전통적인 예배를 벗어나서 잔치적이고 시각적이며 회중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많이 격려하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인데, 이를 가리켜서 "열린 예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 자체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능하면 "열린 예배"라는 용어의 사용은 삼가는 좋겠다. 의미상으로도 "열린 예배"가 있다면 "닫힌 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무엇이 열린 예배이고, 무엇이 닫힌 예배인가? 또 무엇에 대해서 열려있고, 무엇에 대해서 닫혀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굳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활기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열린" 이라는 용어보다는 "젊은이 예배" 혹은 "찬양 예배" 등으로 사용하고,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6. 예배봐준다 ⇒ 사용불가

흔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개업예배를 봐준다" "구역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 행위이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 참된 감사와 찬양과 헌신과 고백의 응답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구원의 은총을 깨달은 내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으로 드리는 행위요, 응답하는 행위이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드리거나 봐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치 "점을 봐준다"는 미신적인 용어를 상기케 하는 "예배봐준다"는 표현은 예배 신학적으로 볼 때에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용어이다.

7. 준비찬송 ⇒ 사용불가

찬송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곡조가 있는 시이다. 찬송은 하나님 앞에 곡을 붙인 성도들의 경배의 표현이며, 기도이며, 때로는 성도들의 신앙고백과 결단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생각하고 감사의 응답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이면 열심히 찬송 부르는 것을 성도의 바른 자세로 알고 찬송을 열심히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찬송의 생활이 습관화 되다보니 때때로 찬송의 목적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준비찬송"이라는 말에서 찾아보게 된다. 교회에서 "다같이 준비 찬송을 부르면서 앞자리부터 채우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할 찬송을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런 말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찬송을 시간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나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준비찬송"이라는 용어는 마땅히 사용해서는 안 된다.

8. 예배 / 예식 / 기도회 ⇒ 구별사용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이다. 그래서 예배와 각종 기도회로 한 주일에 여러 차례 모인다. 주일 낮을 비롯하여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그리고 매일 새벽 등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세계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모임에 예배라는 명칭을 붙여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돌, 회갑, 추모 등의 모임에도 예배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배와 예식과 기도회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신 창조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하여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결코 인간을 위한 모임이거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배와 예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돌, 회갑, 추도, 입학, 졸업, 결혼, 입당, 임직, 교회 창립 등의 행사를 할 경우에는 예식으로 표현하고, 예배와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목적으로 모이는 수요 저녁 모임과 금요 철야 혹은 심야 모임 그리고 매일 새벽 모임 등은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리고 새벽기도회 등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본 교단 총회를 통과한 「표준예식서」의 정신을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주일예배, 주일저녁 찬양예배, 교회학교(주일학교)예배, 수요기도회, 철야기도회, 경건회(각종 회의 시작 전)

9. 헌금 ⇒ 봉헌

한국 교회의 예배 순서 가운데 "헌금"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 순서는 원래 봉헌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 예배 속에서 봉헌의 순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봉헌의 의미는 단순히 돈이나 예물을 드리는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봉헌은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성도들이 드리는 응답적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다. 즉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정성을 다하여 경청한 무리들이 스스로 우러나는 감사의 응답으로 내어놓는 모든 마음과 정성의 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순서를 "헌금"이라는 용어로, 즉 단순히 돈을 바치는 행위로 지칭하는 것은 봉헌의 의미를 아주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헌금"이라는 용어보다는 "봉헌"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이 마땅하다

10. 축제 ⇒ 잔치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축제'를 "축하하고 제사지냄"이라고 단순하게 풀이하여 실어 놓았으나 이가원과 임창순의 東亞漢韓中辭典 에서는 "축제란 제사 이름이니, 묘문(廟門) 안과 밖에서 이틀에 걸쳐서 드리는 묘문제로서 조상을 사당 안에서 제사지내고, 그 다음날 사당 밖에서 지내는 제사이다"라고 정의해 놓았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마을 제사를 영어의 Celebration 과 Festival 같은 축하행사를 보면서 자신들이 제사에서 마음놓고 떠들고 소리지르면서 춤추는 고유한 행사와 모양새가 비슷함을 알고, 1928년에 '축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그들의 사전에 도입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은 축제의 문제점을 보면서 이제는 성경대로 잔치, 또는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등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예를 들어 성령 축제..성령 잔치, 부활절 축제..부활절 절기 행사, 성탄 축제..성탄 축하 행사 등이다. 참고로 공동번역에서는 57회, 표준 새번역에서는 13회에 걸쳐 무분별하게 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개역 성경과 개역 개정판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11.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이 주신 복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복에 관한 표현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축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상과 같은 표현들을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복을 비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음의 성구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비는[祝福]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降福] 분임을 잘 밝히고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개역 한글판 창 12:3) "그가(멜기세덱)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개역 한글판 창 14:19)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는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또는 "복 내려(베풀어) 주시옵소서."로 바로잡음이 타당하다.

12. 룻기서, 욥기서, 잠언서, 아가서 ⇒ 룻기, 욥기, 잠언, 아가

룻記書, 욥記書, 箴言書, 雅歌書 등으로 말하거나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 자체에 記, 言, 歌 등이 있어 '書' 자가 의미상 과잉표현(redundancy)이 되므로 그렇게 쓸 수가 없다. '創世記' 나 '출애굽記' 에 '書' 자를 붙여 '創世記書'로나 '출애굽記書'로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啓示綠'에 '書' 자를 붙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말 성경이 바로 쓰고 있으며, 같은 한자를 중국어나 일본어 성경 책명에서 그렇게 쓰지 않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3. 시편 ○장 ○절 ⇒ 시편 ○편 ○절

많은 사람이 시편의 장 절을 나타낼 때, 시편 몇 장 몇 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몇 장과 몇 절은 산문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편의 구분을 신구약의 다른 책의 구분을 나타내는 '장' 과는 달리 '편'을 쓰는 것은 같은 한자를 쓰는 중국어 성경이나 일어 성경에서도 우리나라와 같다.

14.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설교용어)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시는 하나님(기도용어) ⇒ 사랑하는 하나님

설교를 할 때 흔히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라고 하는 말은 말하는 이가 그 동사 '사랑하시는'의 주체가 될 때에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말하는 주체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존대를 나타내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기도를 할 때에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란 말도, 그 '사랑하시는'이란 동사의 주체를 말하는 이 자신을 가리키는 뜻으로 말하는 경우라면, 즉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면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옳지 않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경우를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의미는 흔히 '사랑하시는 시민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경우처럼 그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고 말하는 이(화자)인 것이 분명하다. 만일 사랑하는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라 해야 분명하다.

15.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 ⇒ 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다같이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예배시에 성도들은 결코 주기도문을 단순히 외는(외우는) 것, 즉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 뜻을 바로 새기면서 음송(吟誦)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표현은 "다같이 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 "다같이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라는 표현도 그와 같은 경우로서 옳지 않다. 즉 "다같이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주기도문을 외운다"라는 표현이나 "사도신경을 외운다"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주기도나 사도신경을 진지하게 뜻을 생각함이 없이 형식적으로만 소리내어 외는 행위이다.

16. 제사, 제단, 제물 ⇒ 예배, 성단, 예물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온 소나 양을 잡아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제물의 피를 단에 뿌린 뒤 그것을 불살랐다. 이것이 곧 레위기의 제사요, 이 단이 바로 모세의 제단이며, 죽임을 당한 소나 양들이 희생의 제물이었다. 이 제사는 마침내 모든 제물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완성되었고, 신약시대에 들어 예배로 내용과 형식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한국교회는 지금도 예배를 제사의 의미로 이해하며 다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기도의 제단에 나와서, 작은 제물을 바칩니다." 한국 문화의 특징으로서 제의적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점을 지적한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신화, 민속, 종교의식 등이 모두 제단 근처에서 성육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구약의 제사용어를 예배 속에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부자연스러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 역시 제의적인 문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제사는 '예배'로, 제단은 '성단'으로, 제물은 '예물'로 바꾸어야 한다. 한편, 제단을 '강단'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이것은 성례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교만 이루어지는 단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므로 '성단'이라 함이 적절하다.

17. 영시(0시)예배, 자정예배 ⇒ 송구영신예배

영시(0시)는 하루가 끝남과 동시에 또 하루가 시작되는 밤 12시 정각, 곧 자정을 가리키는 시각이다. 교회가 이 시각에 의미를 부여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한 해가 지나가고 다시 시작하는 연말연시의 자정에 국한된다. 그러므로 연말연시의 0시에 드리는 이 예배를 영시예배나 자정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예배는 감리교회의 존 웨슬리가 언약갱신예배(Covenant Renewal Worship)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였는데 새로운 해를 맞아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예배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 날짜의 특성을 강조하여 야성회(Watch Night Worship)라는 이름이 나왔고, 한국교회에서는 단순히 시각만을 앞세워 0시예배라 부르고 있다. 예배가 시작되는 시각을 예배의 명칭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낮11시예배, 밤7시예배가 예배의 이름이 될 수 없듯 0시예배 역시 마찬가지다. 또, 0시는 예배 시작 시각도 아니다. 교회에 따라 밤 11시나 11시30분에 시작하여 고백의 시간을 갖고 새 언약을 세우는 중에 새해를 알리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을 가리켜 '송구영신', 또는 '송영'이라 한다. 이 의미가 예배의 성격 및 내용과 일치하므로 '송구영신예배'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송영'은 '송구영신'의 준말이지만, 찬양에서의 '송영'과 동음이어서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18. .. 기도로 폐회합니다 ⇒ ......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 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예배가 끝날 즈음해서 예배 인도자가 이제 "○○○ 목사님 축도로 폐회합니다", "○○○ 장로님 기도로 폐회합니다" 또는 "○○○ 집사님이 폐회기도를 해 주시겠습니다"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교회 안의 각종 회의에서 그 회의가 끝날 무렵 의장이 "○○○ 장로님의 기도로 폐회합니다", "폐회기도를 ○○○ 집사님이 해 주시겠습니다"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무의식중에 예배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예배가 회의가 아닌 이상 반드시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주일날 드리는 주일 낮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회나 수요기도회, 금요밤 심야기도회 등도 비록 우리가 관례를 따라 ○○회라고는 하지만 이들은 바로 예배의 일종이므로 이 때에도 "○○○의 기도로 폐회합니다"와 같이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교회 밖 어느 곳에서 드리는 예배든지 예배가 끝날 때 위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은 안 된다. 예배는 어느 경우나 '○○회'가 아님을 분명히 새겨둘 필요가 있다.

19.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 ⇒ 주장하시고, 인도하시고

예배드릴 때 기도 인도자가 기도의 마무리를 하면서 '예배의 시종을 하나님께 의탁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와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예배의 시종을 하나님께 의탁드리며'는 바람직한 표현이 못된다. 의탁은 '어떤 것에 몸이나 마음을 의지하여 맡긴다'는 의미다. 내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거의 '그가 대신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인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이 예배를 도리어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방관자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이 예배를 하나님께 의탁하면서'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필요할 시는 "이 예배를 주장하시고" 또는 "이 예배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로 쓸 수 있다.

20. 일요일(공일) ⇒ 주일

그리스도인은 일요일(공일)을 '주의 날'(계1:10)을 뜻하는 주일이라고 해야 한다.

현재 총회 헌법의 예배와 예식에 주일이 안식일과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별도의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다.(제87회 / 2002년)

21. 기도를 시작할 때 성경구절을 읽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전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뢰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하신 말씀을 그 분께 다시 들려드린다는 일은 경우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기도를 시작하는 이들 가운데 마치 사람을 훈계하듯 설교처럼 기도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로 "아버지"를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6:9).

22. 하나님 앞에서 사람에 대한 존대어법은 삼가야한다

우리말 어법에서는 듣는 사람이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어를 쓰지 않습니다. 예컨대 "아버지, 누님이 오셨어요"하는 것은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듣는 '아버지'는 '누님'보다 더 손 위 인물이기 때문에 이럴 경우에는 오히려 "아버님, 누나가 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신 하나님이 최상위자이시므로 다른 어떤 인물에도 존칭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우리 성도님들이" 또는 "우리 목사님께" 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로마가톨릭의 기도문에서도 확인됩니다. 예컨대 성만찬기도 제3양식에서 '중보의 기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를 돌보시어 주님의 일꾼, 교황 000와 저희 주교 000와 모든 주교와 성직자와 ... 굳건하게 하소서." 이 기도문에서 "교황님" "주교님"하고 호칭하지 않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우리 성도님들"이란 표현보다 "저희들", "우리 목사님께"라는 표현보다는 "주께서 세우신 사자(使者)에게" "주님의 종에게"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23.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기도를 마치는 즈음에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 "라고 기도하는 이들이 있음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는 십중팔구 틀린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 이전에 이미 입례송, 묵상기도, 개회찬송, 성시교독, 신앙고백, 회중찬송 등의 여러 순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시간이 예배의 '처음 시간'이라면 기도 이전에 했던 다른 순서들은 예배의 순서가 아니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모순일 수 있습니다. 굳이 이런 표현을 쓰려면 "지금 예배하고 있사오니"라는 말로 바꾸어 써야 합니다.

24. 예수 공로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고(요 1:12), 예수께서는"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6:2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 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끝을 맺을 때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출처: NCCK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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