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적 이단, 실천적 이단
신종 한국형 이단자로 맹렬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교세를 급속히 확장해 나가는 어느 사이비 종교 창설이며 사실상의 교주가 대형집회에서 열띤 강연을 하는 동영상 세 편을 보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집중하면서 시청했다.
인내심이 필요했던 까닭은 사악한 내용 시청이 시간낭비라 생각되었고, 성경을 풀이에서 초등학생이면 판단할 수 있는 논리의 오류에 몰입된 주장을 하고 있었 때문이었다. 동원된 수만 명의 청중은 논리적 함정을 인식하지 못한 채, 상식적으로 전혀 성립되지 않는 '교주'의 괴상한 성경해석, 저열한 주장, 조잡한 적용에 열광했다. 예컨대 비유 풀이와 영해는 비행기는 기차, 기차는 차고, 차고는 고향, 고향은 향수, 향수는 수학, 수학은 학생, 학생은 생물 따위의 논리로 연결시켰다. 수많은 관중은 아멘을 복창했다.
대한민국에 이처럼 비논리적인 종교인이 많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탄에게 홀려 정신을 완전히 잃은 집단이었다. 하나님의 불심판과 지옥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이들을 사단(邪團)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악을 조장하는 거짓말을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앞길을 망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어지럽힌다.
최근, 고신대학교 신학과의 황대우 교수의 ‘교리적 이단과 실천적 이단’ 구분의 글이 교계의 화두로 부상했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를 ‘교리적 이단’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본다. 기독교의 중추적 교리인 신론과 기독론에 국한시켜 판단하여 그러한 주장을 펼친다. 학자답게 이단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엄밀히 좁혀 적용한다. 일반 대중의 ‘이단’ 용어 사용에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는 종교개혁자 부써와 칼빈을 전공한 신학자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교리들을 가지고 있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마리아론은 제1차 바티칸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의해 교리로 정착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천명한 교리들 가운데는 로마가톨릭교회를 ‘교리적 이단’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적 천명이다. 이 주제는 최덕성, <교황신드롬>(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6)이 상론한다.
종교개혁 500년 기념 해를 맞이하는 기독교계의 최대의 과제는 프로테스탄트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재결합이다. 교회역사와 교회론 시각을 가지고 보면 이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없어보인다. 두 그룹의 재결합의 전제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가르침과 성경으로 돌아가는 개혁이다. 전제군주제도의 황제처럼,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교황을 매년 선출해 봄직하다. 그러나 현 상태의 두 그룹의 단순한 재결합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다. 필자가 이러한 요지로 종교개혁 500주년 공동학회(2017, 소망교회수양관)에서 발표한 논문은 장차 500년 또는 1000년 뒤의 두 교회의 성경적 만남과 변화를 재촉한 글이다.
이단 논의의 초점은 특정 집단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는가에 있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로마가톨릭교회는 지상이 존재하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전제군주 체제이다. 이 집단은 성경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집단 안에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를 구원자-그리스도로 진심으로 믿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구원이 없다고 할 것인가? 교황의 교회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상식에서 벗어난 교리들을 철폐할 것을 촉구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형식적, 명목상의 신자들은 구원과 무관한 자들임에 틀림없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초판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명시한다. 로마가톨릭교회를 적그리스도라고 단정하지는 않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가들은 이 교회를 부패한 교회, 숭상 숭배를 행하는 교회, 미신이 가득한 교회로 보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혁신학 진영의 교회들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여기지만,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를 교황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하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교회를 개혁하고 싶어 했다. 신학자 존 칼빈은 교황의 교회 안에 참 교회의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로마가톨릭교회가 ‘은혜의 방편' 또는 ‘구원의 방편’에 해당하는 말씀, 성례, 기도를 심각하게 부패시키고 훼손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집단이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 집단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예장 고신 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가 베푼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 입교문답을 하여 교회의 정회원으로 받아들인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삼위일체교리를 부인하지 않으며, 세례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기 때문에, 그 세례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례의 효력은 집례자의 경건이나 의도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말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27장 3항).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대속제물이 되었듯이 세례는 누구에게든지 한 번만 베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제28장 7항). 로마가톨릭교회의 세례를 인정함은 이 교회 안에도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없지 않음을 시사한다.
황대우가 말하는 '실천적 이단'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진 이단-시이비 집단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1) 지도자가 매우 권위적이다. 전제군주 지위에 있기도 한다. 그의 말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 (2) 배타적 발상을 가지고 다른 기독교 그룹이나 교회를 적대시한다. (3) 다른 그룹으로부터 분리, 고립 현상을 보인다. (4)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억제한다. 구성원을 우민화하여 비평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 (5) 여러 가지 공식 행사들에 참여를 강제하고, 참여도가 떨어지면 비판하고 정죄한다. 이탈자를 이단시한다. (6) 자파 집단을 떠나면 복을 받지 못할 자로 여기고, 심지어 구원에서 떨어진 자로 단정하기도 한다
특정 그룹이 이 같은 종교-사회적 특징들을 다소 지니고 있다고 하여 이를 근거로 이단, 사이비 종파라고 단정함은 성급한 판단의 오류이다. 교리적으로 정통적이면서도, 이러한 특징들을 보이는 미숙한 교회가 있을 수 있다. 어느 교회가 완전함을 갖추고 있는가? 지상의 모든 교회는 불안전하다. 큰 규모의 개신교회 지도자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테지만 위와 같은 종교-사회적 특징들을 이런 저런 형태로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교회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악성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의 올바른 지도자는 '실천적 이단'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는 특징들을 개선, 개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리포르만다' 정신을 존중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보편적 본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특정 그룹의 이단성 또는 사이비성 판단은 교리로 결정된다.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종말론에 따라 판단된다. 교회론을 이단판단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나투스주의자들처럼 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다. 기득권을 가진 다수 세력이 신진 소수 세력을 배제할 동기로 '이단' 정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기독교 역사는 교회제도와 교회론의 다양성을 인정해 왔다. 감독제, 장로회, 회중제(회중교회, 침례교회, 자유파교회)를 따른다고 하여이단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전도단체, 패라처치 운동, 독립 선교회 등을 교회론과 관련시켜 이단으로 단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기적 행함 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기독교는 이단인가? 하나님의 구원역사 과정에서 나타난 초자연적 사건들을 불신하며, 예수 그리스도 밖에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이단이다. 한국 기독교장로회와 한국 감리교회 안에 이런 주장을 하는 신학자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이 교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자파 구성원들의 이단성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이단판단의 기준은 성경이다. 흥미롭게도 거의 모든 이단들이 성경에 호소한다. 성경을 아전인수, 견강부회 식으로 해석한다. 전체와 부분을 통전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자기 집단의 성경 해석,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 또는 시각을 절대시한다. 자파 또는 자기 전제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한다(exegesis). 성경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가져나온다(eisgesis). 상황에 따라 교리를 바꾸거나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교리와 실제로 믿는 교리가 다른 이단도 있다. 지도자의 거짓 예언을 신의 음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단이 성행하고 사이비 종파의 유혹과 도전이 극심한 시대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감정적 접근이나 편협한 이단정죄는 교회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성경, 교회사, 교리사, 교의학의 통찰을 수반하는 성경해석에 기초한 판단이 설득력을 지닌다. 건전한 성경해석이 중요하다. 최덕성, <위대한 이단자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의 제20장 "이단판별의 주체와 기준"과 제21장 "이단바로보기"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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