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캅을 쓴 무슬림 여인
무슬림 난민 일기, 제주에서
제주도에 무사증 제도를 이용하여 예멘인 561명이 입국하면서 무슬림 난민 문제가 화두로 대두됐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서명자가 닷새 만에 24만여 명을 넘더니 몇 일 사이에 60만 명을 넘어섰다. 무슬림 난민은 절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한국 사회의 여론은 부정적이다.
대한민국은 UN 난민기구와 OECD 난민협약 가입국이다. 난민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한국을 거쳐 간 난민들은 많지만, 지난 25년 동안 정부가 난민 지위를 인정한 사람은 800명 남짓하단다.
하나님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에게, 한국인과 예멘인에게 똑같이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리신다. 기독인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도 난민이었다. 출생 직후 헤롯의 위협을 피하려고 피난길에 올랐다.
무슬림들은 기독인의 사랑의 대상이다. 사랑은 차별과 배제, 혐오와 폭력을 넘어 창녀와 세리, 병자와 장애인,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을 사랑할 때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난제는 심상치 않다. 예멘인 무슬림 난민은 우리가 환영해야 할 강도만난 이웃인지, 경계하고 배척해야 할 부류의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
이슬람 종교를 신봉하는 무슬림 난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유럽 여러 나라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종교적 문화적 배타성, 성폭력, 성추행, 테러 등이 증가하고 있다. 무슬림 난민을 유입시킨 유럽 국가들은 급격하게 이슬람화 되고 있다. 프랑스 인구의 10퍼센트는 이슬람이다. 전통적 유럽의 가치는 거의 사라졌다. 레바논은 무슬림에 대한 무분별한 난민 수용정책을 펼쳐 온 탓으로 레바논이슬람국으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
무슬림 난민 문제는 인도주의, 관용정신, 원수사랑의 실천 그 이상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엄중한 국가적 사회적 종교적 사이다. 아래의 글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무슬림의 일기 형식으로 이슬람 전문가들의 주장과 걱정을 고백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슬람의 세계정복 정책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샤리아가 해결책이다," "이슬람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샤리아율법으로 네덜란드를"
제주는 알라의 땅이다. 세계지도에 나오는 모든 땅은 알라의 땅이다. 난민 후보 생활비도 한국이 주는 것이 아니라 알라의 것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알라 하나님을 믿는 신도들이 알라의 땅 제주에 살려고 왔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번잡하게 우리를 난민으로 취급한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난민신청을 하고 있다. 이슬람 칼날이 서지 않고 파괴적인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 무슬림 난민이 제주에 온 것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목적이지만, 최종 목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대한이슬람제국' 건립이다. 우리는 한국의 이슬람화 선봉에 서 있다. 한국이 이슬람 난민을 허용하면 조만간 이슬람사회, 이슬람 국가로 바뀔 것이다. 레바논에는 반세기 전에 기독교인 수가 많았지만 난민유입 정책 덕분에 짧은 기간에 이슬람국가로 바뀌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자들을 알라의 이름으로 모조리 도륙할 것이다. 특히 기독교인과 천주교인은 씨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국가(IS)이든 아니든 우리 무슬림이 목표하는 것은 이슬람국가 건설이며, 이슬람 법률에 의한 이슬람 사회, 이슬람 국가 건설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법과 이슬람법이 충돌할 때 마땅히 이슬람법에 따른다. 대한민국 법을 거절한다. 대한민국의 법을 포함하여 인간의 법은 언제나 바뀌지만 신의 법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유한 이슬람법인 코란, 샤리아, 하디스(창시자 무함마드의 행위록) 세 율법서에 따른다. 이 법전에 따라 일부다처, 성폭력, 폭행, 자살테러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강간은 우리의 풍습이며 문화이다. 우리는 유럽에 사는 난민들처럼 한국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인 이슬람 커뮤니티 만들 것이다.
이슬람은 종교 그 이상이다. 이슬람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상, 군사 시스템이다. 이슬람 사회는 신정사회, 정교일치사회이다. 집회, 언론의 자유가 없다. 인권과 민주주의와는 상극이다. 카이로인권선언문이 밝히듯이, 인권법과 이슬람 율법이 상충될 때 우리는 이슬람 율법을 우선시한다.
우리는 어디서나 일부다처제를 강력히 유지한다. 4명의 아내 외에도 수의 제한 없이 많은 성노예를 거느릴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의 딸과 부인조차 우리의 성노예가 될 수 있다. 사춘기 시작 안 한 여자아이를 강간하는 것은 정당하다. 결혼했다가 싫으면 이혼해도 된다. 9살부터 섹스가 가능하다. 11살이면 처로 데려와 일을 시킬 수 있다. 남편과 부인은 평등하지 않다. 처는 남편에게 노예다.
왜 유럽의 이슬람 종교인 난민들이 모인 곳에 집단적 성 범죄가 극성을 부리는지 아는가? 우리의 눈에는 여자가 부르카, 니캅, 차도르를 쓰지 않고 거리를 행보하는 것 자체가 "제발 저를 강간해 주세요"라는 요청이며, 성폭행, 성추행을 갈망하는 초청 표현이다. 우리는 히잡조차 착용하지 않은 대한민국 여인들을 닥치는 대로 추행, 폭행할 것이다.
무슬림 남자의 성적 욕구해소 책임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있다. 여성복지부장관과 영부인이 직접 해소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 이슬람 남자는 한국인 여인과 결혼을 할 것이다. 살다가 실증나면 딸록, 딸록, 딸록 세 번 말할 것이다. 그러면 합법적인 이혼이 성립된다. 이혼하고 다른 한국인 여자와 결혼하면 그녀는 새로운 네 번째 아내가 돨 것이다.
'이슬람'은 복종을 의미한다. 이슬람 신자는 이슬람 율법과 전통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 묻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이 과연 '평화의 종교'이며, 알라라는 용어가 어디에서 비롯되어었으며, 코란의 아브라함과 성경의 아브라함이 같은 인물인지도 묻지 말라.
'타끼야'(taquiya, taquiyah)는 특수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이슬람 율법 조문이다. 알라, 이슬람공동체, 코란을 위해서는 무슨 거짓말도 무방하다. 제주에서 난민 인정을 받는 것이 한국울 이슬람화 하고, 이슬람 공동체 건설에 이바지하는 일이므로 어떤 거짓말도 허용된다.
이슬람 '타끼야' 율법에 따르면,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아도 알라는 용서한다. 진심으로 하지 않은 맹서는 유효하지 않다. 예컨대 한국 이민국에 '나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어도 그것이 내 진심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거짓말을 해도 합법적이다. 무슬림 남자가 어느 한국 여자와 결혼서약을 한다고 치자. 마음속으로 "이건 나의 진심이 아니야" 하고 생각하면 그 서약을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
우리는 무슬림끼리 사는 공동체를 '평화의 집'이라고 한다. 기독교인, 불교인, 힌두교인 등 여러 종교인들과 비무슬림 신도들과 함께 사는 곳을 '전쟁의 집'이라고 한다. '전쟁의 집'에서 하는 거짓말은 죄가 아니다. 한국은 전쟁의 집이다. 이슬람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꾸란은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위장할 목적으로 '타끼야'로 번역되었다고 보면 정확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우리에 대한 난민지위 부여를 환영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하나님의 구원에 제한이 없다고 선언한다. 이슬람을 구원의 종교라고 본다. 종교다원주의,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를 지향하는 단체들은 우리 이슬람 난민을 환영한다. 예수를 그리스도가 아니며, 알라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는 자, 인간이 된 아들이 있다고 말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이슬람 교리에 주의하지 않는다.
제주 무슬림 난민 신청에 반대하는 한국인들이여, 잘 기억해 두라. 지상에는 57개의 이슬람 국가, 알라 신정국가가 있다. 전 세계의 무슬림 무장단체 31개가 이슬람국가(IS)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우리는 이슬람을 반대하는 자와 이슬람 신도가 아닌 자를 죽이면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 거룩한 전쟁에서 희생당한 자는 천국에서 여러 명의 가슴이 크고 향기 나고 아름다운 처녀들을 상으로 받는다. 큰 눈을 가진 72명의 처녀를 아내로 얻을 수 있다.
한국은 연간 3천 건의 난민 판결을 하고 있으며, 막대한 행정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대부분 가짜 난민으로 판정되어 왔다. 무슬림들의 난민 신청으로 우리나라 행정이 마비될 사태가 오고 있다. 이러한 진통은 대한민국이 대이슬람국화로 나아가는 과정에 따르는 통과례다. 한국인의 아내들과 딸들이 우리 남자 무슬림의 자녀들을 낳는 사회로 가는 과정의 진통이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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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신랑 신부들 , 용감한 이슬람 전사에게 상으로 준 어린 신부들(여러 명의 부인 중 한 명)
참고: 아래의 동영상은 어느 무슬림의 스웨덴 방송과 인터뷰이다. 기윤실 관계자들의 반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