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신앙과 찰스 피니

by dschoiword posted Dec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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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

 

정통신앙과 찰스 피니

 

 

장로교 신앙에서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웨민신고는 장로교 신앙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권위있게 사용되고 있는 신앙문서이다미국의 개혁신학자들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를 웨스트민스터 스탠다드’(Westminster Standard)라고 부른다말 그대로,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는 장로교 신앙즉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이해와 토론에 있어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인 것이다.

 

미국의 장로교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토론의 대상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를 장로교회 신앙의 표준문서로 받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미국 장로교 역사는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에 대한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었다올바른 참 신앙을 추구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에 대한 거부하지 않았다그러나 바르지 못한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웨민신고를 거부했다많은 신학논쟁과 장로교단 분열의 과정에는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에 대한 심각한 찬반의 논쟁이 있었다.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가 미국 장로교 신앙의 표준 문서가 되도록 심혈을 기울여서 투쟁한 대표적인 두 사람은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와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이다찰스 핫지는 1851년부터 1878년까지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장을 역임하면서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이 장로교 신앙의 표준으로 정착되도록 힘을 다하였다.

 

남북 전쟁 후 일어난 분열되었던 남부의 장로교단의 재통합은 양측이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에 동의한다고 서약하는 것을 기초로 이루어졌다찰스 핫지의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에 대한 강력한 주장이 없었다면일어나지 못했을 일이었다찰스 핫지의 신학은 그의 아들 A. A 핫지와 벤자민 워필드에게로 계승되었고그들도 역시 웨민신고가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로 정착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벤자민 워필드 등에게서 개혁신학을 배운 메이첸이 프린스턴의 신약학 교수가 되었고메이첸은 그 이전의 누구보다 더 강력하게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그는 장로교 신앙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에 기초해야 하고분열된 장로교회의 일치도 오직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설파하였다.

 

그래서 메이첸은 프리스턴의 동료 교수 찰스 어드먼이 총회장에 선출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저지하였다왜냐하면 어드먼의 사상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을 추구하지 않는 노선이었기 때문이다.1) 1936년에 메이첸이 미국북장로교로부터 면직당하고 새로운 장로교단을 출범시키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근본적으로 메이첸의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에 대한 철저한 자세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2)

 

어떤 사람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가 오직 장로교 사람들 속에서만 권위있는 신앙의 문서로 인정되었을 뿐이라고 폄하한다사실과 다르다말 그대로 올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를 참된 신앙을 위한 중요한 가르침으로 믿고 인정했다.

 

장로교 목사가 아니었으면서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에 대하여 장로교 목사 이상의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던 대표적인 사람은 1차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였다에드워즈는 1726년부터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토다드가 담임하는 회중교회인 노스햄프턴교회에서 부목사로서 목회사역을 했다그리고 1729년 솔로몬 스토다드가 죽자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고 이후 두 번의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였다.

 

에드워즈는 에드워즈는 회중교회의 목회자였음에도 계속하여 많은 장로교회 목사들과 깊은 교제를 유지하였다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로 자리매김한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과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실제로 에드워즈는 친구 장로교 목사 존 어스킨에게 뵤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산앙고백서의 내용에 서명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고 장로교 정체에 서명하는데도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3)

 

교파를 초월하여 올바른 믿음을 추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동의하였거나자신의 신앙을 위해 깊이 참고했다올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에 대해 조롱하거나 적대감을 보였던 사람은 없었다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 가운데 웨민신고에 대해 노골적인 조롱과 적대감을 보인 사람은 찰스 피니였다찰스 피니는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비판하였다.

 

교회를 위해서 의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한 것이라고 간주되는 권위적인 표준을 만드는 영감을 받지 않은 모든 시도는 그 자체로서 경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황의 근본교리의 묵시적 억측과도 같다웨스트민스터 총회회원들은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 법을 주는 교황의 필요성을 당연하다는 것보다 더한 일을 하였다그들은 불멸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혹은 차라리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자신들의 신조를 만들고그것을 마치 모든 세대의 교황처럼 지키고 있다.”4)

 

찰스 피니는 장로교회가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를 작성하고 중요한 문서로 여기면서 깊이 참고하는 행위는 교회를 경건하지 못하게 만드는 나쁜 행동이라고 비방한 것이다그리고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를 신앙의 권위있는 문서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장로교 신학자들의 노력을 마치 천주교의 교황제도나 그와 관련된 악한 일들과 같은 것이라고 매도했다.

 

혹은 보다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이에 맞추어 만든 요리문답서들을 권위있는 기본 교리로서 받아들이는 자들은 교황의 가장 불쾌한 원칙들을 불합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그리고 그들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들을 교황의 권좌에 올려놓고 성령의 자리에 두었다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의해서 작성된 도구를 19세기에 교회의 표준문서로 인식하거나 혹은 지적인 산물로 이해하는 것은 놀라울 뿐이다그러나 나는 이것이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5)

 

찰스 피니는 장로교가 웨민신고와 요리문답서를 작성하고그것을 중심으로 신자들의 신앙을 지도하고 교회의 신앙을 관리감독하는 행위가 마치 죄악된 천주교가 교황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성령을 대신하여 교회를 다스리게하는 것과 같은 죄악이라고 비판하였다그리고 17세기에 작성된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를 자신이 살았던 19세기의 교회에 적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한심한 일이라고 조롱했다.

 

대체 찰스 피니는 모든 올바른 신앙의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에 대해 이와 같은 자세를 가졌던 것일까그 이유는 간단하다피니의 기독교 이해는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내용과 전적으로 달랐기 때문이었다피니는 원죄자유의지중생회심성화에 대하여 성경과 장로교의 신앙과는 전혀 다른 이해와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6) 한 마디로 피니의 신학은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 버전령이었던 것이다그러므로 웨스트민터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이 찰스 피니에게는 우습게만 보였고한탄 조롱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찰스 피니는 부흥에 대한 매우 혁신적이고 새로운 신학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었다피니는 부흥이 성령의 주권과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는다고 여기지 않았다대신에 인간이 부흥을 위해 필요한 수단들을 적절하게 사용할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부흥에 대한 피니의 이런 사상은 전통적인 장로교의 신앙과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방법이었다.7)

 

각주

 

1) 숀 마이클 루카스, <장로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김찬영 역), (부흥과개혁사, 2014), p. 275. 

2) 앞의 글, p. 277. 

3) 앞의 글, p. 238. 

4 )Charles Finney, Lecture on Systematic Theology (New York: George Doran Company, 1878), xii. 

5) 앞의 글

6) 숀 마이클 루카스, <장로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김찬영 역), (부흥과개혁사, 2014), p. 249. 

7) 앞의 글, p. 248.

 

정이철 목사의 글 일부, <바른신앙>(20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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