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기무라 사오리, 본문 내용과 무관 (유튜브 캡처)
크리스천 트랜스젠더
육군 병사는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군국 병원 채플 주일 예배가 끝난 뒤였다. 채플 설교를 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잠시 입원 치료를 받으려고 상당히 규모가 큰 국군통합병원(부산 수영)에 잠시 입원을 했던 1972년경이었다.
“귀한 설교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군 군복을 입은 병사가 상냥하게 말했다. 채플(교회) 안에서 귀빈을 안내하고 인사를 하는 직책을 맡은 자처럼 보였다. 자태와 목소리는 여자 모습, 여자 음성이었다. 남자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태도는 여성처럼 다소 곳하고 친절했다. 상병 계급장이 달린 군복 가슴은 젊은 여성처럼 약간 솟아 있었다. 그의 생얼굴은 예쁜 아가씨였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전도사 님’이기에,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하다고 했다. 외형은 남자이고, 내면은 여자다. 남자로 태어났고, 남자로 출생신고가 되었고, 씩씩한 남자 아이로 자랐다. 남학생이기에 남자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입영 신체검사를 받아 당당히 육군 병사로 입대했다. 남자들과 함께 고된 군사 훈련을 받아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음성, 자태, 감수성, 성향이 여자였다. 매달 겪는 생명 현상 때문에 고생을 했다. 지금도 매달 남자의 신체를 가진 채 여자의 일을 감당하느라 큰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고향은 전라남도 어느 지역이라고 했다.
“왜 병원에서 왔는가?” 하고 묻자 “성 전환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성 전환수술, 시험 수술이라고 했다. 수술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고된 군사 훈련과 병영 생활을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하고 위로하자, 힘들었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했다. 성경 말씀 따라 신자답게 살려한다고 했다.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병사의 음성에는 약간의 긴장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평안해 보였고, 표정은 밝았다.
트랜스젠더 후보자,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의 삶 속에서, 병영생활에서, 채플에서 그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에 덕 입어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그가 수술을 받으면 한국 최초의 트랜스젠더가 된다. 트랜스젠더라고 하여 그가 동성애 지지자일 것이라고 하는 판단은 오류이다. 그 병사는 '바이섹슈얼'이 아니다. 남자도 사랑할 수 있고 여자도 사랑하는 병적인 심리를 가진 자가 아니다.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를 두는 우리 사회의 타락한 성 풍조와 무관하다. 나는 그에게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행위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역행하는 죄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세상에는 흑과 백만 있는 게 아니다. 회색도 있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컬러들이 있다. 전쟁터에는 아군과 적만 있는 게 아니다. 적도 아니고 아군도 아닌 언론사 기자, 적십자봉사자, 국경없는 의사회 의료인들이 있다. 예외적이지만, 사람 가운데는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존재도 있다. 내가 만난 그 크리스천 트랜스젠더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아들인 동시에 딸이고, 교회 안에서는 형제인 동시에 자매이다.
그녀는 오늘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LGBT(남성동성애자, 여성동성애자, 바이섹슈얼, 트랜젠더)의 물결과 전혀 무관하다. 남성와 여성을 동시에 부여받은 기이한 그는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인권을 가지고 있다. 이 크리스천 트랜스전더는 하나님이 부여한 성을 자의적으로 바꾸려는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
흑백논리는 어떤 종류의 원소가 단 두 개밖에 없는 것으로 가정하여 만사를 둘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것으로 추리하는 오류이다. 중립지대나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단세포적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흑백논리 사고를 가진 자들은 말한다. "검정색이 아니므로 흰색이다." "내 편이 아니므로 적이다." 앞에 가는 자는 다 도둑이므로 뒤에 가는 자는 틀림없이 경찰이다." "봐, 네 말이 틀렸잖아. 그러니까 내 말이 맞아." "그는 기독교인이든지 아니면 공산주의자일 것이다. 그가 교회에 다닌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나는 흑백논리라는 오류추리의 횡포를 목격했다. 촛불 지지자가 아니므로 불의한 자이며, 태극기 지지자가 아니므로 종북자라고 하는 발상이다. 이 횡포는 특정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을 싸잡아 악의 세력으로 단정하는 어느 출판사 지식인 대표의 가지런한 글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흑백논리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일반대중의 사고형태가 단세포적이기 때문이다.
설교자들 가운데도 흑백논리에 충실한 자들이 있다. 천국과 지옥, 상과 벌, 의와 불의, 천사와 사탄, 축복과 저주, 하늘과 땅, 선과 악을 대조시키는 설교자가 인기를 얻는다. 감동을 준다. 그러나 위험천만이다. 미신과 독단에 빠진다. 논리의 지뢰를 밟는다. 흑백 사진기로 총천연색의 삼라만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중요한 하나님의 진리는 대부분 흑백을 넘어선다.
기독론 강의실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양성론'을 설명할 때마다, 오래 전 국군병원에서 만난 그 '형제-자매'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물을 천연색으로 바라보고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함을 의식할 때마다, 흑백논리의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생각난다. 성경을 흑백 안경으로만 읽는 사람을 만날 때, 신론, 기독론, 구원론을 흑백 창문으로만 이해하면서 자기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제, 자매들을 대할 때마다, 그 크리스천 트랜스젠더가 생각난다. 살아 있으면 올해 66세 정도의 할머니이리라.
동성애자, 트렌스젠더, 성차별금지 따위의 현대 사회의 주제들이 내가 만난 크리스천 트랜스젠더에게 부당한 편견를 주지 않기를 바란다. 사물은 흑과 백으로 보는 사고는 편견과 지적 폭력을 가져올 수 있다. 세상에는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경우가 없지 않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201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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