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 교정
총신 제1회 졸업생, 1952
'총신'의 설립연도 또는 제1회 졸업 연도에 관한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기독공보>>[2382호] 2002년 09월 14일(토)의 보도문으로 보이는 이 글은 '총신'에 1951년에 입학하여 1952년 4월에 '총신 재1회 졸업생'으로 헉교를 떠난 분들이 2002년, 50년 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는 내용이다.
박형룡 박사가 1948년에 고려신학교 학생 절반 가량을 데리고 분열해 나가서 시작한 학교의 이름은 '장로회신학교'이다. 남산에 있는 일제의 조선신궁 건물에서 시작했다. 한 달 가량 공부를 시키고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학교는 우여곡절 끝에 1951년 무렵 '총회신학교'로 바뀌었고 1959년에 현재의 합동, 통합이 분열할 때, 현 총신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로 갈라섰다.
아래의 보도문이 말하는 '총신'은 1948년에 설립한 '장로회신학교'와 직결된 '총회신학교'로 보인다. 총신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로 나뉘어진 그 학교임에 틀림없다. 1951년에 설립된 다른 '총신'이라는 학교는 없다.
아래의 글은 현 총신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학교 설립연도, 졸업생 차수에 대한 표기들이 '역사날조'임을 입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배출하는 학교들의 '역사날조,'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총신 1회 졸업 50주년 기념대회
[2382호] 2002년 09월 14일 (토)
한국 전쟁이 한창 진행 중에 있던 1951년에 입학, 52년 4월에 졸업한 총신 1회 졸업생이 50년 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5일 오후,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30여 명의 동창생과 가족, 그리고 이미 별세한 동창생들의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총신 제1회 졸업 50주년 기념대회'(대회장: 김애주 박성준)를 가진 이들은 모두 목회 현장을 떠난 백발의 노인으로 실로 50년 만의 만남이었다. 특히 이날 모임은 40일 금식기도 후 몸조리를 잘못해 1백5명의 동창생 중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난 고 조종술목사를 비롯해 단신으로 전 생애를 전도사역에 쏟은 후 모든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육신마저 기증하고 고인이 되어 버린 고 김진실전도사 등 먼저 간 동창생들을 위한 추모회도 처음으로 가졌다.
"그동안 한 번도 먼저 간 동창들의 가족을 돌아보지 못하고 이번 행사를 앞두고 처음으로 고인들의 가족을 찾아 한없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이영백 목사는 "아버지 없이 평생 자녀들을 위해 사모의 자리를 지켜 온 미망인들을 대할 때 미안한 감이 들었다"고 유족에 대한 보고를 하자 참석한 동창들은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이어서 추모회를 인도한 고현봉 목사는 추모사를 통해 "먼저 간 동창들은 신학 졸업으로는 우리의 동창이지만 사명 완수에 있어서는 우리의 선배이며,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은 결코 측은과 가련의 대상이 아니라 진실로 축하와 흠모의 대상으로 높이 평가하여 고인의 신덕을 추모해야 할 것"이라며, "먼저 승리하신 학형들이 못 다하신 복음 사역까지 담당하리라는 연대의식을 가지고 남은 날을 복음사역 완수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개개인의 성공과 업적이 아닌 총신1회 동창 1백 5명 전체의 복음 사역이 극대화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또한 이날 가진 예배에서는 미국에서 온 김순풍목사가 설교를 통해 "이제는 주님의 곁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이번 모임이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르지만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기도와 말씀으로 묵상하는 교제하는 삶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에 동참하자"고 말했다.
이어서 열린 성찬식에서는 "평생 목회에 몸을 바친 목회자로서 목회 현장에서 자신의 피를 나누는 삶이 되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자"며, "남은 짧은 생애 동안 그리스도의 삶을 나누자"고 다짐했다.
이날 모임에 이어 참석자들은 6, 7일 양일간 강원도 설악산 등을 관광했다.
총신 1기 졸업생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신학생들을 중심으로 피난지인 부산에서 입학, 다음 해인 52년 대구에서 졸업을 했다.
피난지에서 신학 수업을 할 수 있었던 당시를 회상하는 대회장 김애주 전도사는 "변란으로 국토의 남단까지 밀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황과 신학과 노선문제로 혼란한 때 장로교회를 수호하기 위하여 설립한다는 취지로 여러 신학교를 통합하여 '총회신학교'가 51년 5월 1일 개교했다"며,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알고 너도나도 앞다투어 전ㆍ입학한 남북한 신학도들이 총신 1회 졸업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서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면 오직 복음이다'라는 신념으로 교실로 사용하는 교회당에 꾸러 않아서 면학한 우리들"이라고 소개했다.
매월 서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각각 월례 모임을 가지며 친교를 나눠 온 이들은 졸업 기념 40년이 되던 해인 1992년에 서울과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동창회를 가진후 처음으로 '희년을 거룩하게'와 '감사와 다짐'이라는 표어와 주제로 한 자리에 모였다
출처: http://blog.daum.net/chosamo/5541
조동천 목사, 2012.06.08 21:28 입력
http://www.pck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3455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저작권자 ⓒ 리포르만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 시 출처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