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신학과 교리를 대변하는 공간
<리폼드가디언>(2016.3.17.)에 게재된 글
이종현
30일간의 유럽여행. 5개국 18개 도시를 돌며 많은 곳을 들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는 예배당이다. 아마도 숙소 다음으로 많이 머무른 장소가 아닐까 싶다. 예배당에 한 번 들어가면 회중석에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편안히 앉아 내부를 구경하곤 했었다. 그렇게 여러 번 예배당을 살펴보다 보니, 정확한 이름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낯선 것들이 종종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규모가 큰 로마 카톨릭 성당에는 외벽을 장식하는 각종 성상(聖像)이 꼭 있다. 하지만 개신교회 예배당은 그렇지 않다. 유럽의 개신교회 예배당 가운데는 본래 카톨릭 성당이었던 곳이 많다. 종교개혁은 예배당의 모습도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자들은 왜 예배당의 모습과 구조에 변화를 주었던 것일까?
이는 당대의 신학과 교리가 예배당에 집약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과 전통’이라는 원리를 따라, 사람이 만들어낸 온갖 것으로 예배당을 채우고 꾸미는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를 따라, 예배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온갖 비성경적인 것들을 몰아내는 길로 나아갔다.
이처럼 예배당의 모습과 형태가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해가면, 그 시대 교회가 무엇을 믿고 가르쳤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참된 교회와 진리에서 이탈한 교회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존재하는지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초대 교회와 중세 시대 교회의 예배당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성도들은 같은 성도의 집이나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때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예배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성도가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예배당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박해가 본격화한 뒤에는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초대 교회 성도에게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가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되자, 성도들은 더는 지하로 숨지 않아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지상에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유형(有形)의 ‘건물’이 본격적으로 지어졌다. 바실리카(Basilica), 고딕(Gothic),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 등 당대의 주요 건축 양식이 예배당 건축에 사용되었으며, 이 시대부터 예배당은 점차 하나의 성역(聖域)으로 간주되면서 우상화되어갔다. 또한, 성직자를 일반 신도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풍토가 자리를 잡았으며, 예술을 빙자한 이방 종교의 형상과 의식이 교회 안으로 무분별하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특정 장소의 성역화, 성직자와 회중 간의 구분, 이방 종교 형상과 의식의 혼입은 중세 시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세상을 끌어안은 교회는 무지와 미신 속에서 깊이 부패하였고, 복음의 진리는 회중에게서 끝없이 멀어져갔다. 그러한 영적인 어둠은 예배당 구조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 예배당이 표현하는 거짓 가르침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당은 철저한 위계질서 체계를 따라 예배당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사용한다. 회중은 신랑(身廊, nave)에 자리를 잡고, 성직자와 성가대는 내진(內陣, chancel)에 자리를 잡고 예배를 드린다. 모든 예배 의식은 내진에서 진행되며, 회중은 신랑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래서 강론이 회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이루어져도 크게 관계가 없었으며, 성만찬도 성직자와 회중 사이에 차등을 두어 참여하게 하는 일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로마 카톨릭 교회 예배당은 성직자가 일반 신자보다 우월하며, 일반 신자는 성직자의 말과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사상을 집약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 베네치아의 산 조르고 마조레(San Giorgo Maggiore) 성당의 신랑(nave).
신랑 저 너머로 성상이 보인다.1
▲ 하이델베르크의 성령 교회.
카톨릭 성당이었다가 개신교 예배당이 되었다. 기둥 사이 공간이 신랑이다.
▲ 옥스퍼드에 있는 한 교회 예배당. 동그라미 안쪽 공간이 내진(chancel)이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구분하는 흰색의 구조물을 볼 수 있다.2
▲ 세인트앤드루스의 한 교회 내진 안쪽에서 찍은 사진.
정면에 흰색의 분리 구조물이 보이고 그 너머로 회중석이 보인다.
▲ 에든버러 세인트 자일즈 교회의 내진 안쪽에 있는 낭독대 또는 설교단3
또한, 로마 카톨릭 교회 예배당은 온갖 우상과 미신적인 요소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런 것들에는 대표적으로 성상(聖像), 성모상(聖母像), 십자고상(十字苦像) 등이 있다. 이러한 것을 예배당 안에 들여놓는 행동은 십계명의 제2계명4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죄악이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나님에 대한 유형적인 형상은 영이신 하나님의 본성과 완전히 반대되므로, 이러한 우상을 용인한다면 참된 경건은 부패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다.5 로마 카톨릭 교회 예배당은 참된 경건을 잃어버리고, 우상과 미신을 섬기고 있는 그들의 실상을 잘 대변해준다.
▲ 성 베드로 성당 본당에 있는 십자고상
▲ 성 베드로 성당 본당에 있는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금상
▲ 성 베드로 성당 본당 천장화
▲ 암스테르담의 한 성당 내부.
중앙에 십자고상과 성상들, 그리고 제단이 보인다.
로마 카톨릭에서 행하는 또 다른 미신적이고 타락한 우상숭배 행위는 바로 미사이다. 미사는 죄 용서를 얻기 위한 제사 의식이다. 다시 말해, 로마 카톨릭 교회는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계속 반복한다. 그들은 그렇게 그리스도를 ‘날마다’ 희생 제물로 드리는 제사에 참여하는 행위, 즉 일종의 자기 공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6
하지만 미사는 단 한 번의 돌아가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드리신 단 한 번의 십자가 제사를 밀어내고, 사제가 축성한 빵과 포도주를 그 자리에 갖다 놓는다. 구원은 그 빵과 포도주를 먹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밖에도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는 성경이 아닌 이방 종교에서 비롯한 성인 숭배, 마리아 숭배 등의 의식과 세례구원, 외경(外經: 정경 66권 이외의 영감되지 않은 기록물), 연옥 등의 거짓 가르침이 사방에 촉수를 뻗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제의 종교 권력을 굳건하게 하고, 사람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했다.
▲ 내진 안쪽, 애프스(apse)라고 불리는 장소에 있는 주교의 의자(바티칸 베드로 성당).
주교의 의자7 바로 밑으로 제단이 보인다.8
종교개혁자와 그 후예는 어떻게 예배당을 개혁했을까
우선, 예배당 안의 우상과 관련한 요소를 제거했다. 십계명의 제2계명에 따라 조각상, 회화, 장식품 등 잘못된 종교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없애버린 것이다. 물론 모든 개신교 교파가 그렇게 개혁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루터는 이러한 요소가 비본질적이라고 여겨서, 예배당 안의 십자고상, 제단, 세례반(洗禮盤) 제거를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 루터 교회에는 그러한 것들이 그냥 원래대로 남아 있는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취리히에서 개혁운동을 이끈 츠빙글리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하여 오르간까지도 파괴했다. 그러니 성가대석도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한편, 칼빈은 이러한 루터와 츠빙글리의 장점을 모두 취하여 폭력을 쓰지 않으면서도 우상숭배와 관련 있는 것을 예배당에서 모두 몰아내기에 힘썼다.
또한, 매번 드리는 미사를 철폐하면서 신랑과 내진을 구분하는 구조물과 주로 예배당 동편 끝에 있던 제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를 그냥 단순한 공간으로 남겨두었다.9 고해소(告解所) 역시도 제거했다. 이는 일개 사람에 불과한 신부를 거쳐서 회개하게 하는 고해성사 제도가 성경적으로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외벽의 성상이 제거된 에든버러 세인트 자일즈 교회의 모습
▲ 확대한 모습
▲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교회 예배당.
츠빙글리가 1531년에 전사할 때까지 이곳에서 설교하였다고 하여 종교개혁의 모교회(母敎會)로 불린다.
종교개혁 때 파괴한 예배당 안의 각종 장식을 복원하고 있다.
▲ 제네바의 탕플 들 라 마들렌(Temple de la Madeleine) 교회 예배당.
십자고상이 아닌 십자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예배당 구조를 복음과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데 적합하게 바꾸었다. 물론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는 주로 기존의 로마 카톨릭 성당을 고쳐 사용했으므로, 원래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면 개신교회 예배당에는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구조가 한결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배당에서 제단이 차지하던 중요성과 지위는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개신교 교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다소 느슨한 신학적 노선을 취한 독일의 루터파 교회 예배당 대부분은 예배당 정면에 커다란 십자가를 설치한 제단을 가장 가운데 두고, 그 양옆으로 설교단과 낭독대를 나란히 두는 구조로 지어졌다. 또한 2층 회중석을 갖춘 예배당도 이때 나타났는데, 이러한 2층 구조는 오직 개신교 예배당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되었다.10
▲ 베를린의 성 마리 교회.
개신교회이지만 로마 카톨릭 요소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역시 전반적으로 전통을 중시한 영국에서는 기존의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고, 회중이 설교자의 모습을 잘 보고 설교를 잘 들을 수 있는 형태로 구조를 바꾸었다.11 특히 1666년에 일어난 런던 대화재 이후, 84개의 교회가 새로 예배당을 건축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말씀을 중시하는 개신교의 특징을 극대화한 이들이 바로 청교도이다. 미국 청교도 예배당의 특징은 실용성, 기능성, 검소함이다. 청교도는 국교회나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십자형이나 강단이 동쪽을 향하고 입구가 서쪽을 향하는 구조로 예배당을 짓지 않았다. 로마 카톨릭의 상징주의, 의식주의 건축 양식을 배척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서 명백하게 요구하지 않는 양식은 전혀 추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예배당을 지었다.12 또한, 강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하나님 말씀을 분명하게 듣게 하려고, 예배당 출입구 맞은편 한가운데 강단을 높이 설치했다.13 성찬대는 이동 가능한 작고 간소한 것으로 강단 앞쪽에 두었다.
▲ 미국 뉴햄프셔 샌다운 청교도 예배당.
설교단의 높이가 1층에 앉은 사람의 머리보다 1.8~2.1m 높다.
예배당 안의 장식은 극소화했고 강단 앞에 간소한 성찬대를 두었다.14
▲ 스펄전 시대의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 예배당.
중앙에 강단이 보인다.
▲ 현재의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모습
성도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지, 더 좋은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요 4:21~2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매주 예배드리는 예배당이 아무렇게나 지어지고 꾸며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배당은 예배당답게 온갖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경건하고 거룩하게 지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복음과 진리가 선포되고 가르쳐지며,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교제를 나누기에 적합하게 지어지고 단장되어야 한다.
▲『긍정의 힘』으로 유명한 조엘 오스틴이 시무하는 레이크우드 교회 예배당.
세상의 공연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화려한 조명과 대형 화면, 성능 좋은 음향 장비 등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편하게 하는 요소가 다분하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예배당으로 알려진 여의도순복음교회.
레이크우드 교회와 마찬가지로 대형 화면, 화려한 조명과 강단 장식 등이 보인다.
▲ 로잔에 있는 작은 개혁교회15 예배당.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린 직후의 모습이다.
설교대 양옆으로 시편 121편 1~2절16과 디모데전서 4장 9절17이 적힌 앨범이 보인다.
설교강단 바로 옆에는 오늘 부를 찬송 번호가 적힌 팻말이 걸려있다.18
잘못된 신학과 교리는 예배당 구조를 화려하고 웅장하게 한다. 그리고 설교하기에 적합한 구조가 아닌, 의식을 행하기에 적합한 구조를 택하게 한다. 그런 예배당에는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만한 것들이 넘쳐난다. 그런 것에 눈이 먼 교인들은 하나님의 참 영광을 볼 수 없다. 자기 공로와 능력을 과시하며 서로 경쟁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실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은 낮추어지고 부인되어야 한다. 예배당은 외적인 영광이 넘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넘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다른 외적인 것을 절제하는 그곳에,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실 것이다.왕이 있는 곳은 그곳이 초가집일지라도 어디나 궁전이다.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
참고자료
존 칼빈, 고영민 옮김, 『기독교강요 2』, 기독교문사, 2006.
존 칼빈, 『기독교강요(하)』, 생명의 말씀사, 1986.
홀톤 데이비스, 김상구 옮김, 미국청교도예배』, CLC, 2014.
김소영「한국교회의 예배당 건축에 대한 예배학적인 고찰」, 신학과 목회 제 19집, 2003, pp. 243~289.
이우진, 「예배공간에 대한 개혁주의적 고찰」, 석사학위논문, 합동신학대학원, 2004.
사진 출처
그로스뮌스터 교회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레이크우드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
각주
1 14세기까지 성당 신랑에는 좌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2 예배 때, 회중은 둘 사이를 구분하는 구조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
3 낭독대와 설교단은 보통 내진 양 옆쪽 끝에 각각 자리한다.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떠한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양이든지 만들지 말며,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도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도 말지니라(출 20:4~5, KJV).
5 존 칼빈, 『기독교강요 2권』, 고영민 옮김, 기독교문사, 2006, p. 262.
6 존 칼빈, 『기독교강요 (하)』, 김종흡 옮김, 생명의말씀사, 1986, pp. 524~525.
7 성당(cathedral)이라는 말은 바로 이 주교좌(主敎座, cathedra)라는 단어에서 말미암았다. 예배당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도록 높이 설계하였다.
8 김소영의 글 「한국 교회의 예배당 건축에 대한 예배학적인 고찰」, 신학과 목회 제19집, p. 257에 따르면, 제단은 원래 내진의 중앙이나 신랑에 가깝게 설치되었으나, 중세 후기에 주교좌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9 이우진, 「예배공간에 대한 개혁주의적 고찰」,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2004, p. 31.
10 김소영, 「한국 교회의 예배당 건축에 대한 예배학적인 고찰」, 신학과 목회 제 19집, 2003, p. 261.
11 같은 책, p. 263.
12 홀튼 데이비스, 『미국 청교도 예배』, 김상구 옮김, CLC, 2014, p. 347.
13 같은 책, p. 343.
14 홀튼 데이비스의 책 『미국 청교도 예배』 pp. 344~345에 따르면, 이러한 성찬대의 배치는 기념설(성찬식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신학 이론)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15 로잔에 있는 5개의 개혁교회 중에 4개의 교회가 프랑스어로 예배를 드린다. 영어로 예배드리는 교회는 이곳이 유일하다.
16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7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8 이곳에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볼 수 있는 휘황찬란하고 화려한 장식이 전혀 없다. 하지만 바른 복음의 교훈을 듣고, 참된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