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가 재건은 성경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김경열
시류가 작년 글을 끄집어 내도록 하는군요. 저는 과거 어떤 글에서 대 구약신학자인 월터 카이저 교수(미국 고든콘웰신학교 총장)의 <이스라엘 국가 재건 = 이스라엘 회복>으로 보는 해석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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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2천년 만의 국가 재건이란 보통 사건일 수 없기에 그것이 성경적인 예언의 성취일 가능성을 남겨 놓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사건이 너무 특별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선민이고, 그로 인해 그들은 여전히 구별된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0%를 차지한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도 오래도록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국가 재건이란 사건은 대단히 특별한 사건으로 간주되었기에 그것이 성경 예언의 성취일 거란 생각을 머리 속에서 벗겨 내기란 매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대원 시절 성경 신학을 공부하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한 결과 그것이 신학적으로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구약의 옛 이스라엘, 즉 육적 이스라엘의 기능과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신약의 새 이스라엘, 즉 영적 이스라엘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교회입니다.
그것을 ‘대체 신학’이라 부르든 ‘성취 신학’이라 부르든 상관 없습니다. 이것이 명료한 신학적 결론입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세상 열방과 더불어 구원의 반열에 합류하는 한 민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신학적 결론 외에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되어야 합니다. 다름 아닌 "민족" 개념을 "국가" 개념과 등치하며 혼동하는 오류입니다. 민족은 땅을 갖는 국가를 수반할 수 있으나, 반드시 민족이 국가의 형식을 띄진 않습니다.
오늘날 아랍 지역에 <쿠르드 족>이라는 유목민들이 삽니다. 그들은 3천년이 넘도록 단일 민족을 유지하며 생존해 왔습니다. 무려 3천만명이나 되는 인구입니다.
그들에겐 국가가 없고, 국경선도 없습니다. 중세 한때 왕조도 설립되어 국가의 성격을 약간 띨 뻔 했으나, 여러 국가들을 넘나들며 방대한 곳에 흩어져 사는 유목민의 특징상 국경선이 그어진 땅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에 오늘날까지 국가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국가를 이루려 노력하지만, 자치구를 보장받았을 뿐 이제와서 국가 설립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프리카를 살펴 봅시다. 서구 열강이 침입하기 전 수만년을 수 많은 종족들이 공생, 경쟁하며 국경선없이 대략적인 영역 개념만 지닌 채 이 땅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식민 제국이 들어와 멋대로 국경선을 그어 놓았고, 그것이 오늘날 보는 아프리카의 직선 국경선입니다. 그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같은 종족이 국경선을 사이로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되고, 심지어 원수가 되기도 했으며, 강제로 그어진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종족 간의 피튀기는 전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그 종족들에게 "국가"란 무엇일까요... 우리 한 민족도 만주의 조선족, 우즈벡의 고려인 등 여러 곳에 분포해서 사는데, 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전혀 무의미하고, 이를테면 조선족은 스스로 중국인으로 생각하며 축구할 때도 너무나 당연히 중국 응원합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한 국가에 여러 인종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엔 50개 종족이 자치구를 이루며 살고, 미국엔 더 많은 인종이 미국 국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더욱 심한데, 나이지리아의 경우 여러 다양한 부족이 무려 5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좁혀서 유대인만 가지고 따져봅시다. 지구상 유대인은 현재 1,400만명 가량됩니다. 그중 절반이 채 안되는 550만명만이 이스라엘 본토에서 살고, 나머지는 미국 600만을 비롯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재건이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면, 그렇다면 미국 국적의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른 세계 여러 나라 국적의 유대인은 물론이고 말이죠.
더구나 오늘날 유대인은 더 이상 혈통적 단일성을 말하기 어려운 다양한 부류가 존재합니다. 이디오피아에도 몇만의 흑인 유대인들이 존재하죠.
성경은 마지막 날에 세계 "열방"과 "나라"가 구원에 합류할 것을 말하는데, 분명 영토 개념이 아닌 "민족" 개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각 종족에게 영토가 할당될 수는 있으나, 꼭 그것이 "국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도 "약속의 땅"을 받기 전에 광야에서 땅 없는 백성이었으나 이미 택함받은 민족, 즉 선민으로서 구원의 혜택을 누리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땅은 약속의 선물로 주어졌는데, 땅은 구원사적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예시하는 예표적 기능을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교회의 등장과 더불어 땅의 기능은 종결되었습니다.
분명 바울은 이스라엘이 종말에 결국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으로 예언합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 역시 ("국가"가 아닌) 남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된 운동 그룹이나 신학자들이 그것을 "이스라엘 국가 재건"으로 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어이없는 오판인 것입니다.
이 배경에는 사람들이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근거없는 환상을 품고 있는 측면도 강합니다. 현재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의 20%는 무신론자이고 80%는 유신론자를 자처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은 명목상의 유신론자이고 실제적으로는 15-20%만이 정통 유대교를 따르는 진정한 유신론자로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교 혹은 야웨 종교가 그들에게 단군 신화처럼 어떤 "민족 정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 잘 믿는 사람들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11:26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란 말을 유대인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됩니다. 이것은 헬라어 어법과 전체 문맥을 고려한 주경학적으로 볼 때 옳지 않습니다. 특히 로마서 9:27; 11:7은 ‘이스라엘 중에 남은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이 구원의 대열에 합류할 때, 분명히 그 대상은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로서 그들의 회심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지, 이스라엘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이 예수 믿게 되는 날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국가에 사는 유대인들을 포함한 전 세계 유대인들 중의 "남은 자"가 구원받을 날이 옵니다. 즉 전 세계의 구원받을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국가가 재건이 되었든 안되었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국가 재건은 놀라운 사건이긴 하지만, 결코 어떤 성경적인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특출난 민족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 힘은 그들의 구약에 기반한 탈무드 교육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토라 교육의 배경을 전혀 무시하고 다른 사람은 지나치게 특별한 의미를 두나 분명 탈무드 교육의 특수하고 탁월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하니 구약 성경의 힘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여전히 선민의 기득권을 유지한다는 의미로 연결될 당위성은 없습니다.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참고로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의 저력을 자본의 힘과 우수한 인재의 발굴 및 양성에 올인하는 그들의 교육열에서 찾기도 합니다. 실제로 유대인의 평균 지능지수는 보통 수준입니다.
어쨌든 이런 운동을 하는 그룹들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스라엘의 땅의 회복에서 더 나아가 헤롯 성전이 결국 아랍 수중에서 완전히 이스라엘에게 넘어와 마지막엔 제사장들이 다시 세워지고 최종적으로 성전의 동물 희생 제사가 다시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교 내에서조차 다만 1%도 안되는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의 신념일 뿐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수년간 공부하고 오신 분들에게 확인한 바로는 나머지 15% 정도의 유대 정통주의자들도 AD 70년 성전 파괴 후, 성전 기능의 폐지와 더불어 율법 종교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신학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정부와 유대 정통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성전 터전인 현재의 무슬림 황금사원 (=바위 사원)의 수복에 별 관심이 없고, 그것을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투 예루살렘을 주장하고 세대주의적 성향을 띄고 신사도주의를 추종하는 미국 기독교와 그 영향을 받은 많은 한국 교회가 유대 성전의 복구와 제사의 복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심각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심하게 말하면 이건 일종의 이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의 죽음과 더불어 모두 성취 후 폐지된 성전/제사장/동물 희생이 다시 재건된다니 이게 이단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예수님이 결국 이 모든 것을 대신하여 쓸데없이 죽으신 것으로 만들게 되니 이단 중의 이단이죠.
월터 카이저의 심각한 문제는 "땅"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스라엘 땅을 여전히 신학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보고, 그 땅이 결국 이스라엘에게 회복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땅의 기능은 예수의 오심과 더불어 종결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성전-백성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명백하게 구약에서의 땅은 그 땅의 중앙에 놓여 있던 성전과 더불어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며 그 기능이 종료되어 완전히 폐기되었다면, 땅 역시 더 이상 어떠한 의미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그 땅의 의미와 그것이 백성에게 주는 복도 이미 교회로 다 넘어왔습니다. 젖과 꿀은 이제 새 이스라엘인 교회에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기쁨을 만끽합니다.
사실이 이러한데 그 "땅의 회복"이 중대한 신학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니요. 이건 어찌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를 부인하는 매우 위험한 주장입니다. 월터 카이저와 같은 큰 학자가 이런 점을 간과하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건만, 성경은 분명 종말의 시기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결국에는 예수를 믿고 교회에 편입된다고 명백한 성경적 가르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들은 여전히 구원의 대상이고 구원의 반열에서 유대인이 배제되어선 안 됩니다. 월터 카이저 박사도 이 점을 동일하게 이야기 하고 있으며 저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과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건 명백한 신학적 오류입니다.
'백성'이란 말 자체가 '왕'이란 주권과 '나라'라는 통치 영역이 포함된 개념인 것을, 즉 기본을 놓쳤습니다. 또 '민족'은 혈통적 분류이고 '나라'는 정치적 분류로 서로 상충되거나 서로 배척하는 개념이 아니어서, 위와 같은 논리는 성립이 안됩니다 잘못된 기초 위에 지은 구조물 처럼 오류를 기초로 주장된 글도 첫단추를 잘못 꿴 것과 같아서 전개 과정과 결과도 오류가 됩니다 대체신학도 성취신학도 불명료한 것들에 불명료한 이름들을 붙여놓은 것인데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 것이 뭘 근거로 그리 명료하다고 주장을 하시는지요? '땅의 회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를 왜 무산시킵니까? 매 주장이 근거도 논리도 많이 부실합니다
공부와 준비를 더 하신 후 다시 주장하시면 . . .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