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싫어하던 소년 시절
학문을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며 채찍을 무서워하던 소년 시절
하나님, 나의 하나님, 선생님에게 복종하고 웅변술에 능한 것이 내가 세상에서 번영하고 명예와 부를 얻게 첩경이었습니다. 그것을 내 소년기에 강요당할 때 나는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조롱을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이 목적 때문에 학교에 가서 문학을 배웠습니다만 가련한 나는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데 게을러 매를 맞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매를 맞고서라도 공부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이전의 많은 사람들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들도 아담의 후손들에게 수고와 슬픔을 더해 주는 그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주님, 그때 쯤에 나는 당신께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서 우리의 이해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당신에 대하여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즉 당신은 비록 우리의 감각에는 나타나시지 않더라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시는 어떤 위대한 존재이심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도움과 피난처가 되시는 당신께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기도를 드리는 중 묶인 내 혀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어린 나였지만 적지 않은 정성으로 학교에서 매 맞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을 때一그것이 나에게 어리석은 것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一어른들, 더욱 나의 불행을 원치 않는 내 부모님까지도 나의 매 맞음을 웃음거리로 여겼으니 그때 이런 일은 나에게 대단히 심한 마음의 고통이 되었습니다.
주님, 가령 세상에 위대한 정신력을 가진 자가 있어서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의지한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까닭으로 큰 용기를 얻어 세상 사람들이 심히 무서워하고 피하려 하는 형틀이나 쇠갈고리 또는 여러 가지 형벌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물론 어떤 자는 마음이 굳어져 그런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부모님들이 선생님들에게 매 맞는 우리를 보고 비웃는 것 같이 그 사람이 이런 형벌을 무서워하는 자들을 향하여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처럼 사람들이 형벌을 무서워하여 피하려고 시도하는 것에 못지않게 매를 무서워했고 그것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공부 곧 쓰기, 읽기, 학습에 항상 태만하여 죄를 짓곤 했습니다.
오, 주님, 그때 내게 능력이 없고 기억력이 부족했던 게 아닙니다. 당신의 은혜로 나는 내 나이에 적합한 능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어 이것 때문에 선생님들로 부터 벌을 받았습니다. 사실 선생님들도 노는 데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른들이 놀이를 하면 일이라 하고, 아이들이 그 와 같은 놀이를 하면 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어린아이를 동정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또는 그 어른들을 딱 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공치기를 함으로 공부의 진도가 방해를 받았으니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공부 때문에 나는 훗날 성인이 되어 더 부끄러운 노릇을 했습니다.
나를 때린 그 선생님도 별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역시 동료 선생과 하찮은 논쟁을 했고, 논쟁에서 지면 내가 공치기 하다가 친구에게 질 때보다 훨씬 더 분노와 질투를 못 이겨 몸부림쳤습니다.
Augustine, Confessiones (397-400), Book 1, chapter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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