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그리스도교회의 사죄 해프닝
1. 일본교회의 사죄문(謝罪文)
일본그리스도교회(日本基督敎會)는 1951년에 일본기독교단에서 환원하여 재조직된 교파이다. 이 교회의 1990년 총회는 “한국·조선의 기독교회에 행한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죄의 고백과 사죄”를 채택하고 성명했다. 내용은 주로 신사참배의 우상성과 그것을 강요한 죄를 고백하고 사죄를 구하는 것이다. 신사참배를 행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체제를 용인하고” 일본이 아시아와 태평양 여러 국가에 침략 전쟁을 일으킬 때에 그것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 것과,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신앙적 관점에서 그것에 반대하고 저항하지 않은 것 등에 대해 하나님과 이웃 앞에 용서를 구한다. 사죄문의 핵심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천황제 절대주의 밑에서 하나님이 아닌 자를 하나님으로 여기는 체제를 용인하고, 우리나라가 아시아, 태평양 여러 나라에 침략 전쟁을 넓혀갈 때, 그의 문제성을 깨닫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신사를 짓고, 그 나라 사람들에게 참배를 강요하였을 때, 신앙의 입장에서 반대하고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메이지시대 이래 한국·조선에 대한 침략 행위를 긍정하고 그것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서야 할 신앙 위에 서지 않고, 이웃 나라 많은 교회의 신앙고백을 짓밟고 신사참배를 강요한 죄를 먼저 유일신이신 하나님 앞에 참회합니다. 그 결과 많은 희생과 순교를 당한 한국과 조선의 기독교회에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빕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져야 할 십자가를 피하고, 말씀의 진리에 따라 대담하게 말해야 할 것도 말하지 않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지도 않고, 진실로 기도하여야 할 것을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사죄문은 이 같은 죄를 참회하거나 사죄하지 않은 채 지난 반세기 이상 불문에 붙였던 태만과, 부끄러움을 몰랐던 것을 반성한다. 방관자적인 기만의 죄를 참회하며, 잘못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의 죄를 분명히 하면서 스스로 성경 말씀에 따라 끊임없이 개혁하며, 진실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교회가 될 것을 다짐한다.
일본그리스도교회는 “천황 ‘즉위의 예’와 대상제(大嘗祭)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정부의 국수주의적이고 미신적인 발상에 항거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대상제 의식은 전통적 황위 계승의식이다. “천황제”는 패전 후에도 그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군국주의 부활의 근거가 되고 있다.
천황의 신격화는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는 유일신 신앙에 위배된다. 대상제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반된다. 신앙의 자유, 사상,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상, 언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천명한다.
2. 사죄문 전달 해프닝
1991년 가을, 한국장로교 각 교단 총회가 열리고 있을 때였다. 일본그리스도교회 의장 다까이 다까오(高井孝夫) 목사와 대표자 일행은 신사참배의 죄를 참회하는 내용의 사죄문을 들고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들을 찾았다. “한국·조선의 기독교회에 행한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죄의 고백과 사죄”를 가지고 방한했다. 재일대한기독교회 조재국 목사가 통역자로 대동했다.
이 사죄문은 재일대한기독교회와 선교 협력 관계에 있는 한국의 장로교 통합, 합동, 대신, 기장 각 총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전달됐다. 방문을 받은 교단들은 일본교회가 용서를 빌어 온 일을 “저들의 머리 숙임이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한 형제임을 느끼게 해 주는 손 내밈”이라고 보았다. 일본교회의 사죄 청원을 넙죽 받아들였고,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교회의 배도와 백귀난행 그리고 솔선수범은 일제조차도 깜짝놀랄 정도였으면서도 자신을 항상 전쟁 피해자로만 여겨 왔다.
다까이 일행은 9월 17일에 서울 소망교회에서 열린 장로교 통합측 장로교단 총회를 방문하여, 총회원 1,498명 앞에서 사죄문(謝罪文)을 낭독했다. 총회는 박수로 사죄문을 받아들였다. 다까이가 그 자리 총회석상에서 총회장 김윤식 목사에게 손수 전달했다.
통합측 교단은 지금까지 장로회 규범에 따른 우상숭배와 배교와 친일행각의 과거사를 한 번도 제대로 참회한 적이 없다. 친일파 기독교 인사들이 주도하여 출옥성도들 그룹을 총회에서 배제시켜 한국장로교회 제1차 분열 곧 현재의 예장 고신교단을 만들어 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자기 변호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열시킨 그룹이다.
이튿날 다까이 일행은 이리제일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기독교장로회 총회를 방문했다. 총회 석상에서 다까이는 사죄문을 낭독했다. 기독교장로회 총회는 “사죄의 표명을 엄숙하게 감사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총회장 김수배 목사가 일본교회가 “한국 민족과 교회의 고난을 위해 더불어 싸울 것을 밝힐 수 있는가”하고 질의하자, 다까이는 “우리의 교회는 작지만 손을 맞잡고 더불어 싸울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사죄문은 총회석상에서 총회장에게 전달됐다.
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에 관련된 사죄문을 “엄숙하게 감사의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김재준과 정하은 교수 그리고 관련자들이 그 동안 주기철을 포함한 신사참배거부운동 항쟁자들의 희생을 정통주의 신학 사상과 피안적 신앙에 의한 불필요한 희생이라고 단정해 오던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과거사 청산, 참회를 주장한 고려신학교파 인사들을 독선주의, 분리주의로 간주하고, 우물에 독 뿌리기식 독설과 폄하를 일삼았던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지극히 모순된다.
다까이 일행은 9월 19일에는 합동측 장로교과 기독교대한감리회 그리고 대신측 장로교 총회를 방문하고 각각 사죄서를 전달했다. 모두 호의적으로 받아주었다. 감리교 신학자 박봉배 교수와 윤성범 교수는 신사참배항거로 인해 희생한 사람들을 신앙이 연약한 자로, 우상숭배에 참여한 자들을 신앙이 강한 자로 평가했다. 주기철과 수진수난 신앙인들을 피안적 신앙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일본교회의 사죄문을 덜렁 받아들인 한국감리교회는 일제 말기에 한국장로교회 못지않게 배교와 친일 행각에 광분했다. 중요한 것은 이 교단이 광복 후 지금까지도 과거사 청산이나 양심고백을 한 바 없다는 사실이다.
다까이 일행은 9월 20일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를 방문했다. 의장 김성활(구세군대한본영 중령), 부의장 김성수(성공회 신부), 전 의장 김윤식(장로교 통합 총회장), 그리고 총무 권호경 등이 회합한 자리에서 사죄의 뜻을 전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신도군국주의에 의한 한국교회의 관제통합으로 이루어진 일본기독교조선교단과 그 기구의 연장이며 광복 직후에 조직된 조선기독교회의 후신이다. “‘하나의 교회’의 대명사인 ‘조선기독교회’가 해산되고, 그 대신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를 재건하는 형식으로 1946년 9월 3일에 ‘조선기독교연합회’”로 재조직된 기구이다.
한국교회협의회는 친일적 기구의 후신일 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그 구성 멤버 교회들은 친일파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우상숭배를 솔선려행(率先勵行)한 것과 천인공로할 여러 가지 죄악을 시인한 적이 없다. 과거사에 대해 참회고백문 하나 발표한 적이 없다. 장로교 멤버 교회들은 신사참배가 죄라는 것을 인정할 것과 공적인 참회고백(자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출옥성도들을 독선주의, 신성파, 분리주의라고 몰아붙이고 축출하던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교단들이다.
3. 세계교회들의 눈, 과거사 청산과제
1994년 초여름, 화란 암스테르담 부근에서 열린 국제신학자대회(International Theological Congress)는 헝가리, 남아공화국, 한국교회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필자가 참석하고 있었다. 이 학술대회에서 어느 네덜란드계 캐나다 신학자는 한국교회 자신이 신사참배를 비롯한 역사적 범죄는 참회하지 않으면서 일본교회의 사죄문은 넙죽 받아들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의 교회들이 다까이 일행의 한국교회 방문과 과거사 청산 문제를 주시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한국교회협의회가 일본교회의 사죄문을 넙죽 받아들인 것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의 여러 나라 교회들은 한국교회가 전쟁 중에 범한 끔찍한 죄악을 지금까지 참회한 바 없고, 공적으로 참회할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해 온 것을 알고 있다.
일본그리스도교회의 무분별한 사죄 해프닝은 한국교회와 한국교회의 광복 후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잘못한 게 없다고 하는 그룹의 교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죄문을 전달한 것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참회 사죄문을 받아들인 대부분의 교단들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신사참배를 시민의례라고 하여 우상숭배를 한 과거사를 참회한 적이 없다. 신사참배, 우상숭배를 죄 아니라고 억지로 우겨온 양심불량의 교회들과 교회협의 단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서양계 교회들은 교회의 과거사 청산과 양심선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피압박 민족, 박해받는 교회가 불가피하게, 한계상황에서, 삼엄한 공기 때문에 저지른 것이라고 하여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는 죄 용서와 은총의 복음을 핵심으로 하는 신앙공동체이다. 십자가는 용서, 사랑, 관용의 상징이다. 그렇다. 해방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는 너무도 위대하다. 그러나 그것은 공적으로 참회해야 할 의무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다. 독일교회, 불란서교회, 일본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이 공적 참회나 과거사 청산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의 은총이 범죄한 교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한국교회에 전달된 일본그리스도교회의 사죄문은 일제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자의로 솔선수범, 배교, 백귀난행을 저지르던 자들이 ‘해방’과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를 빌미로 자신의 과거사를 스스로 용서한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의인 열 명을 찾기 위해 소돔성을 방문한 천사들과 같이 우리나라를 찾아온 ‘특별한 손님들의 방문’이 있은 지 30년이 가까웠다. 일본그리스도교회의 사죄문은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한국교회의 불행한 과거사를 기억하게 한다. 3.1.독립운동 기념일을 앞둔 한국기독교를 향하여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것을 재촉한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진정으로 참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과거사 창산은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교회가 사회를 지도할 양심의 교사다운 자격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최덕성,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 (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0), 제5장과 제11장을 간추린 글이다. 전거(典據)는 위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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