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의 국가법정 송사
송상석 목사(1896-1980)는 해방 후 마산의 문창교회 목사로 시무했고,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교회에 이바지한 바 크다. 첫째, 기독교절제운동의 선구자이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과 조선 청년들의 아픔을 싸매면서 민족적 자존감을 갖게 하는 운동을 펼쳤다. 둘째, 교회 재산은 '교인총유'라는 판례(이른바 '송상석 법')를 남겨 거의 반세기 동안 적용된 한국교회 재산분규의 지표를 남겼다. 대한민국은 2006년에 이 판례가 교회 분쟁을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폐기하고, 대법관 김영란의 발의로 교회구성원 3분의 2 그룹이 재산 전체를 가지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친일과 배교의 대명사인 경남노회장 김길창 목사(현 경성대학교 설립자)는 문창교회(담임 목사 송상석)를 상대로 교회 재산 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박윤선 목사(당시 고려신학교 교장)는 피소당한 송상석 목사에게 법정변론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송상석이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자 뜻밖에도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겠다고 했고, 사임하여 서울에서 새로운 신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다가 얼마 뒤 복귀했다. 송상석의 교회의 법정 대응에 대하여 박윤선이 자신의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담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독인의 국가 법정 송사에 대한 신학자 박윤선의 견해는 목회자적이었고, 목회자 송상석의 시각은 신학자적이었다. 송상석은 장로교회의 원리와 노회의 전례를 간파하고 있었고, 칼빈의 기독교강요(일본어판)를 읽었으며,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기초한 기독인의 법정 소송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송상석은 예수를 믿기 전에 일제 경찰로 활동한 전력 때문에 해방 후 반민특위에 소환되었다. 송상석이 해방 후 출옥성도들 그룹에 가담하고 상당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한상동 목사 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그와 출옥성도들의 만남은 기구한 인연이다. 그는 일제시대 말기에 신사참배를 피해 황해도에서 과수원을 운영하고 민족교육을 목적으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옥살이를 했다는 일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호도이거나 오해로 보인다.
송상석은 자기 시대의 요구에 때로는 바람직하게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게 반응한, 교회사적인 주목을 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그의 교회사적 의의와 장점은 고신교단의 정치적 상황에서 파뭍히고 있다. 리포르만다(기독교사상연구원)는 "송상석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제11차 학술회(2018.12.6.)를 가졌다. 아래는 필자가 발표한 논문이다.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박윤선의 건덕론과 송상석의 방임불가론: 기독인 간의 법정소송에 대한 신학충돌
기독신자 간의 시비 건을 국가법정에 가져가는 것은 허용적인가? 예장 고신교회는 이 물음에 대한 상반된 견해로 말미암아 두 차례에 걸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고려신학교의 교장 박윤선 교수와 마산 문창교회 목회자 송상석 목사 사이의 논쟁(1957)과 고신교회와 ‘반고소측’ 사이의 대립이었다. 고신교회 제24회 총회(1974)는 국가법정에서의 성도 간의 소송행위가 결과적으로 부덕할 수 있으므로 소송을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고소측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소송할 수 없다’면서 분리하여 독자적인 교단(1975)을 만들었다.
고신교회의 신앙고백서는 “신자의 자유를 구실 삼아 어떤 사람들이 국가적이든, 교회적이든 간에 그것의 합법적 권세와 합법적 행사를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에 반항하는 것이며…, 교회의 치리와 국가 기관의 권세에 의해 문책되고 고소되는 것은 합법적이다”고 명시한다. 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은 신자가 신체와 재산상의 부당한 압박을 받을 때와 증오심과 복수심을 품지 않은 채, 경건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고소(告訴), 반소(反訴), 응소(應訴)가 가능하다고 한다.
박윤선은 고신교회 안에서 최초의 신학논쟁 된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 허용성 여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을 근거로 건덕론을 펼쳤다. 그는 진리운동을 펼치는 고신교회가 신사참배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마당에 그들을 법정에 세우고 또 싸우면서 어떻게 타인을 회개하도록 할 수 있겠는가, 신자 간의 세상법정 소송은 결과적으로 당사자에게 유익하지 않고 교회와 기독교 전체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주장했다. 이에 송상석은 방임불가론으로 맞섰다. 악을 방임하면 더 큰 악과 혼란을 교회에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론 논쟁에서 신학자 박윤선은 목회자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목회자 송상석은 신학자다운 방식으로 반격했다.
1. 예장 총회파의 교회당 명도 소송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6회 총회 계속회(1951, 부산)가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경남(법통)노회를 축출하자, 우상숭배의 죄 참회를 외치며 교회재건을 힘쓰다가 부당하게 제거된 경남노회 산하 교회들과 그 개혁운동에 동조하는 교회들은 불가피하게 독자적인 교회를 조직했다.
이에 총회측은 고신측 교회당을 접수하려고 접수위원회를 구성하고, 교회당과 재산의 명도(明渡)를 요구했다. 총회측 경남노회 유지재단 이사장 김길창 목사는 초량교회·영도교회·문창교회·거창교회·진주교회를 상대로 세속 법정에 명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길창은 유명한 경남 친일파 거두였다. 총회는 과거에 저지른 신사참배·우상숭배·신도침례·친일행각·백귀난행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출옥성도 그룹을 축출했고, 그들을 세상 법정까지 끌고 갔다. 각 지역의 대표적인 교회들을 상대로 교회당을 내 놓으라고 법정소송을 제기했다.
교회 안에 분쟁이 발행하면 예배당과 교회재산 문제로 말미암아 갈등이 증폭된다. 장로교회의 재산은 교인의 헌금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교단이 마련해 준 것이 아니다. 교회가 그것들을 노회, 총회 등의 유지재단에 증여하지 않는 한 그 소유권은 각 교회에 있다.
부산 초량교회의 한상동 목사는 교인들의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진리운동, 참회운동, 교회재건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회원 양성봉 장로가 총회측의 교회당 접수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서 재산권 쟁탈전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훼손하리라 생각하고서 교회당을 내어주고 떠났다. 재산을 잃어버리더라도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한편, 문창교회·영도교회·진주교회·거창교회는 쉽사리 명도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나 거창교회는 나중에 넘겨주기로 했다. 문창교회는 주기철 목사와 한상동이 담임 교역자로 시무한 교회였다. 총회측은 문창교회가 명도요구에 응하지 않자 법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피소된 문창교회 대표자 송상석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맞서 싸웠다. 마산지방법원 판결에서 패소판결을 받았으나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승소했고, 대법원이 교회재산 분할을 조정하여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문창교회는 광복 직후에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 진리운동을 지지했으나 이를 반대하는 어느 목회자가 부임한 뒤로는 지지를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목회자가 떠나고 송상석이 부임하여 진리운동에 동참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교회 안의 진리운동에 반대하는 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교회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오전에는 고신파가, 오후에는 총회파가 사용했다.
문창교회의 교회 재산을 둘러싼 법정투쟁이 시작될 무렵, 고신측 신도는 총회측 신자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십여 년에 걸친 재판 끝에 교인수가 적어져 총회측이 예배당과 사택을 차지하고, 고신측은 교회별관을 차지했다. 소송투쟁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고신측 신도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교회를 분리해 나갔다. 제2문창교회, 오동동교회(현 마산동광교회), 신마산교회, 마산감리교회를 세워나갔다.
박윤선은 고려신학교 학우회가 발간한 『파수군』에 세 차례에 걸쳐 송상석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우리의 걸어갈 길’(1957)은 재산문제로 신자끼리 법정에서 투쟁하고 비기독교인 판사의 판결을 받는 것이 진리운동의 건덕에 이롭지 않다고 역설한다. 차라리 재산을 내어주고 불의를 당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박윤선은 고신운동 10년 기념강좌에서 고신교회가 시정해야 할 첫 과제로 ‘예배당 쟁탈전 포기’를 꼽았다.
이에 송상석은 ‘교회소송문제 재검토’(1957)라는 글을 『파수군』에 세 차례에 걸쳐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박윤선이 ‘현실을 모르는 편의주의자이며 궤변론자’라고 공박했다. 총회파의 불법과 부당한 재산 명도 요청에 대응하는 것은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을 변호했다. 성경, 교회정치, 신학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자기 입장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박윤선은 자신의 권유가 당사자에게 먹혀들지 않고 교단의 공식 정책으로도 채택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고신운동, 진리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송상석이 국가법정 응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자신이 고신교회와 고려신학교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송상석이 이에 불응하자 박윤선은 1957년 2월에 교장 직을 사임했다.
경기노회 안의 이북출신 교역자들은 동향인 박윤선을 지지하여 경기노회로 하여금 고신교회 제7회 총회(1957)에 예배당 쟁탈전은 비성경적이므로 이를 중지시켜 달라고 하는 건의안을 올리게 했다. 총회는 이 건의안을 받고도 만족스런 답을 주지 않았다. ‘예배당 건물 소송 문제는 지금까지 되어 진 결과로 보아 피차 덕이 되지 못하니 이 문제는 믿는 형제들끼리 적극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위원 5인을 선정했다. 그러나 위원들은 신자끼리의 소송이 바람직하지 않으나 교회 재산의 소유권은 각 교회에 있으므로 총회가 개 교회나 개인의 재산권 확보를 위한 소송을 강제로 금지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기노회는 이에 불만을 품고서 1958년에 예배당 소송 문제를 그만둘 때까지 교제를 단절하기로 하고 ‘행정보류’를 결의했다. 경기노회장 전칠홍 목사의 이름으로 ‘행정보류 헌의서’(1957)를 총회에 제출했다. 예배당 소송 문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떨어지고, 기독교가 매몰당한다고 하면서 신자 간의 소송이 비성경적이라고 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것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진리운동은 저해되므로 작년 10월 임시노회로 모여 본 노회는 총회가 소송을 그만 [두게 할] 때까지 총회와의 행정관계를 보류하기 결의하였습니다.”
총회는 신자 개인의 시민적 권리행사를 제재하거나 타교파의 유지재단이 소송을 제기한 것을 취하하도록 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총회가 송상석과 문창교회로 하여금 재산권을 포기하도록 권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강제(强制)할 권한은 없다. 고려신학교의 교수들은 신앙정신 면에서 신자가 국가법정에 호소하여 투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나 예배당 소유권 을 둘러 싼 법적 대응 곧 응소를 정죄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견해를 표명했다. 고려신학교의 이사장 한상동은 이 문제를 주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하며 기다리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신교회 총회는 이북출신들이 주도하는 경기노회의 행정보류를 교회분리와 불법적인 파당행위로 여겼다. 총회는 행정보류를 선언을 포기하도록 하려고 권면위원을 선정했다. 이때, 박윤선도 경기노회가 행정보류를 선언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기노회 안의 행정보류측 인사들은 고신교회와 결별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고신파와 승동파와 합동 환원(1963) 뒤에 합동 교단에 합류했다.
2. 박윤선의 건덕론
박윤선은 국가법정에 제소된 송상석의 법적대응을 반대하면서 진리운동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전진력(前進力)이 없고 교착상태에 빠진다”는 말로 시작하여, 송상석의 법정 대응을 비난했다. 신덕(信德) 곧 교회의 건덕(建德)에 유익하지 않다고 했다.
박윤선에 따르면, 우리가 진리싸움에서 승리하려고 하면 형제의 마음을 얻고 덕을 쌓아야 한다. “지금 우리 단체는 타파 신자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것보다 건덕이 필요하다.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대외적으로 사랑과 덕을 잃지 않아야 된다.” 고신교회가 10년 동안 우상숭배를 회개하는 문제로 말미암아 반대파와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고, 진리를 파수한 것은 잘 한 일이다. 진리싸움도 싸움이었기에 손실도 있었다. 진리가 중요하기에 전국적으로 인심을 잃으면서까지 진리를 파수해 왔다. 그것은 잘 한 일이다. 우리가 타파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진리는 분변(分辨)하고 파수해야 하지만 편파심으로 그들과 장벽을 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도 복음을 믿는 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들은 우리의 적(敵)이 아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들의 마음을 얻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 있다. 진리 문제 이외의 사항은 무엇이든지 달라고 하면 주어 덕을 세우고 그들의 마음을 녹여 회개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을 보라. 그들은 진리투쟁에서 승리한 뒤에 로마가톨릭교회의 거창한 교회당 건물에 집착하지 않았다. 재래(再來)의 교회당을 지녀야 ‘법통’이 된다든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구히 그들과 싸워서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만리장성으로 막히게 되는 것을 원하는가? 우리가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다가 불가피하게 독자적인 교회를 형성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려면 그들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는 신덕을 소유해야 한다. 진리 문제 외의 것들 때문에 다른 교단 신자들과 격렬하게 다투면 그들과 담을 쌓게 된다. 이는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 교리에 저촉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박윤선과 초기 고신교회가 비고신파 교회들을 거짓교회로 보지 않은 점이다. 선민주의, 배타주의, 율법주의는 엿보이지 않는다. 고신교회는 타 교단에 속한 신자와의 법정투쟁도 고린도전서 6장의 가르침에 저촉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남용하지 않도록 했다. 이는 그들을 적 또는 거짓교회로 본 것이 아니라 ‘형제’로 여겼음을 반증한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고신교회가 출범하면서 내외에 공포한 선포문(1952.10.)은 고신측이 총회 교회를 장중보옥(掌中寶玉)처럼 사랑했다고 토로했다. “충고, 혹은 경고, 혹은 진정, 혹은 항의와 이의 등으로 반성과 시정을 요구”한 것은 “결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밉다든지 싫어서가 아니고 장중보옥같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박윤선은 한상동이 초량교회당을 내어주고 신덕으로 일관되게 나아가고 있으며 또 진리문제 이외의 일로 덕에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양보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 회개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말한다. “남들과 싸우고 소송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까? 우리 단체의 [수가] 적어도, 남들에게 대해 신덕 있게 행하며 고상한 정신을 보이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므로 영적 정복력을 가지고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박윤선은 송상석도 일을 바르게 하자고 하여 법정 대응을 하는 것이며 그가 그 문제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산권을 포기하고 법정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교회행정 문제로서도 우리 단체의 신분이 어떻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리 단체의 걸어갈 노선에 대하여 치명적인 [결함]을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리가 좋은 교파라도, 그 교리들을 파수하여 선포하는데 관계된 중대한 행정이 바르지 못하면 그 교리를 세상에 발휘시키지 못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윤선은 교회의 행정문제는 교리 문제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고신교회의 예배당 건물 문제에 대한 대외적 시책이 그러한 중대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박윤선은 교회당 건물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하여 소송에 가담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6장 1-7절의 말씀에 저촉된다고 한다. “이런 류의 싸움은 장기화되기 마련이다. 예배당 쟁탈전에 가담하는 것이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그것은 우리의 방향과 진로에 관련된 치명적인 문제이다. 부덕한 싸움에서 손을 떼고 곧바로 전진해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일이므로 즉각 그만 두고 대외적으로 성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거듭 말하기를 “신덕을 손상시키는 정도의 예배당 파수행위는 우리가 펼치는 진리운동에 치명적인 해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박윤선에 따르면, 예배당 쟁탈전 가담이 가져오는 해독은 네 가지이다. (1)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문을 막는다. 한 건물 안에서 2부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싸움구경을 시키는 격이다. (2) 개인 신자들의 신앙상 손해 곧 일시적인 물질의 손해를 감수하면 신앙상 큰 부흥이 있다. 응소로는 신자와 후배를 그러한 신앙의 용사로 키울 수 없다. (3) 영권(靈權)을 잃는 일이다. 곧 고신파의 교인 수는 적으나 바르게 살려고 하는 노력과 영권으로 반대파 보다 앞섰다. 그러나 예배당 쟁탈전은 고상한 신앙의 모범이 아니다. (4) 기타 손해가 많다. 불신법관 앞에 서야 한다. 재산 문제나 다른 교단에 속한 사람이기에 교회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라고 하지만 다른 교파 신자와의 법정투쟁도 신자의 이름에 손해를 가져다준다.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훼손한다. 기독교 전체의 명예를 손상한다.
박윤선은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이 서양사회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서양교회와 달리 비기독교와 긴장상태에 있다는 까닭으로 이를 극력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한국기독교는 기독신자끼리 세상 법관 앞에서 소송하는 문제에 서양의 기독교를 너무 본받지 않아야 됩니다. 그 이유는, 서양 나라들은 적어도 문화적으로 기독교화 되었으므로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대립이 격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와 긴장 하에 있습니다. 서양 교회들은 교회와 교회가 건물 문제로 소송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것을 극력 피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는 정통이란 것은 교회의 신조나 교리 등 신령한 복음진리를 내용에 달려 있는 것이지, 세상법정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신앙의 정통성이 교회당 소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윤선은 고린도전서 6장 초두의 신자 간의 소송에 대한 가르침이 일종의 금령(禁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쳐지나가는 말로 할 뿐 그 점을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이 본문을 주석하지도 않는다. 신학적인 해석을 하지도, 논리성 있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의 요점은 한 마디로 “남들과 싸우면서, 소송하면서 어떻게 남들을 회개시킬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열린 고려신학교 설립 10주년 기념강좌와 부흥회에서 거듭 신자 간의 소송이 진리운동에 방해되기 때문에 이를 삼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교정하지 않으면 고신파가 전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영력이 쇠퇴할 것이라고 했다.
박윤선은 국가법정 소송를 반대하는 자신의 지도가 관철되지 않자 고신교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지도 이론이 서지 않는 교계에서 ‘진리운동의 지도자 중 하나’라는 이름을 가지기가 너무 두렵기 때문”일 뿐, “현하 진리운동 총회가 기독교 단체인 사실을 부인함이 아니다”고 말했다. 고신교회가 지금의 모양으로 걸어가면 고신파다운 특징을 잃을 것이므로 자신은 “은퇴의 뜻으로 탈퇴선언”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총회석상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목사의 교단 탈퇴는 노회가 처리할 사안이라는 말을 듣고서 탈퇴하겠다고 한 말을 취소했다.
1957년 2월에, 박윤선은 고려신학교 교장 직임과 교수직을 사임했다. 고려신학교 이사회는 교장 직임만 사임하고 교수직은 유지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신학교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성경주석 집필에 매진하겠다고 말하고 그 말을 실행에 옮겼다.
3. 송상석의 방임불가론
송상석은 교회 재산권 문제로 처음 피소되었을 때 그 소유권을 넘겨주고 투쟁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인들과 함께 심적 고통을 겪으며 심경의 변화가 생겨 명도요청 소송에 맞섰다.
그는 『파수군』에 실은 ‘교회소송문제 재검토 1’(1957)에서 박윤선이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책임하게 자신을 비난, 공격한다고 말했다. 총회측의 제소로 자신은 남모르는 딱한 사정에 기막혀 울고 영예롭지 않은 일로 고통을 당하며 진상이 밝혀질 것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는 처지에서 뜻밖에도 같은 진영의 신학자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한 행위는 제소인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적개심을 조장할 뿐이다. 개인을 매장(埋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박윤선이 이 주제에 대한 세계 신학계의 견해를 도외시하고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점이다. 그의 교단 탈퇴선언은 고신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오류에 빠지게 한다. 그가 신학자, 성경주석가, 신학교 교장이라는 신분을 가진 공인이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박윤선과 송상석은 장로회신학교(평양)의 동기동창생이며, 진리투쟁 전선에서 함께 일하는 신우였다. 느닷없는 탈퇴라는 폭탄선언에 놀란 송상석은 박윤선의 “고려파 탈퇴선언은 교회소송 문제와는 하등의 관련성이 없다”고 말했다. 고려신학교는 고신교회 총회나 노회가 경영하는 학교가 아니다. 총회나 노회가 교회소송 문제에 찬성을 하거나 협조한 일도 없다. 교회소송 문제는 자신과 문창교회의 일이지, 고려신학교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 박윤선은 그와 아무 관계가 없는 문창교회 소송 문제를 신학교 교장 직책에 결부시켜 고려파에서 탈퇴하고 고려신학교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송상석은, 경남노회가 국가법정소송이 성경의 가르침에 저촉되지 않으며 장로회 헌법 규정상 적절한 조치라고 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경남노회는 교회당 건을 다루었으며, 그 결과로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적당히 처리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박윤선이 어찌 이를 모르는 체 하는가? 장로교 정치문답 제349와 제376문답이 명시하는 것처럼 교회재산 소유권은 각 교회에만 있으므로 재산권은 노회나 총회가 간섭할 사안이 아니다. 교회의 헌법은 교회재산을 국법과 법률에 입각하여 조처해야 된다고 명시한다고 말한다.
송상석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 해석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근거로 박윤선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한다. (1) 바울이 말한 고린도교회 소송 문제와 현재 한국교회 소송 문제는 그 성격이 다르지 않은가? (2) 교회 재산 소유권 확보를 위한 대응과 응소가 죄를 범한 것에 해당하는가? 교리에 위반되는가? (3) 성경은 국가법정 소송 재판을 부당하다고 말하는가? (4) 장로회 헌법의 규정을 어긴 것인가? (5) 고신파는 교회의 재산권을 포기해야 하며 또한 폭력적인 침략을 당할 때도 정당방위조차 하지 않아야 하는가?
송상석은 이 다섯 가지 밖의 주장들은 모두 지엽적인 것들이며 진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 시비를 위한 시비라고 말한다. 언필칭 소송이 건덕에 방해되고 은혜롭지 않다고 하지만, 그 일을 당면하고 있는 자신도 그 점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법정대응을 하는 것은 신자의 덕을 더 심각하게 손상하며 더욱 큰 폭으로 은혜 되지 않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송상석은 ‘교회소송문제 재검토 2’(1957)에서 이 문제를 더욱 치밀하게 논의한다. 고신교회가 진리운동을 시작할 때 그 일이 “대한예수교장로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이고 결코 딴 교파를 세우려고 한 운동이 아니었다”고 공약한 것을 상기시킨다. 총회측은 장로교회다운 정통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총회가 재산권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교회재산권 소유는 어느 종파, 교파에 있지 않고 각 교회에 있다. 이것은 장로회 헌법 규정만이 아니라 한국 법조계가 공인하는 바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총회측이 종주권(宗主權)을 앞세워 우리 교회의 재산을 자동적으로 소유하려고 하는가. 어찌 이를 용인할 것인가.” 법을 무시하는 사람은 진리를 파괴하는 자이다. 자기만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거나 진리를 바로 세우려고 법에 호소하는 것을 부덕스러운 일로 여기고 도외시하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인간의 상도(常道)를 역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 안에 향기로운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부덕(不德)한 일이 있는 것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향기로운 일에만 참가할 특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부덕한 일을 수습하는 데는 자신은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에게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중략)
그런고로 소송이 “(1) 죄가 되는가? (2) 비성경적인가? (3) 교리에 위배되는가?”를 검토하여 만일에 죄가 되지 않고 교리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이 용인하는 일이라면 일시적인 부덕과 은혜롭지 못함을 이유로 이를 고집하며 일종의 교리화 하려는 주장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송상석은 송상석의 교회당을 제단, 성전처럼 여기고 존엄하게 생각하는 신도들이 예배당을 빼앗긴다는 데 대해 많은 충격을 받고 많이 동요하고 있다면서 ‘교회소송 건의 응소동기’를 밝히고 방임불가론을 제시한다. 만일 악질적인 불법과 폭행을 피하려고 예배당을 모두 다 무조건 내어 준다면 이는 오히려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교회의 재산은 교인들이 총유(總有)이다. 총회측에 교회당을 무조건 내어주는 것은 더 큰 악을 조장하는 일이다. 악을 방임하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나고 더 많은 분규가 일어나 고신측 교회들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만일에 제 것을 안 빼앗기겠다고 응소하는 것이 죄라고 하면 고려파 교인들은 재산권을 다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악과 불법을 방임하는 것은 불의를 감행케 하는 기회를 증대시켜서 인간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안 될 것입니다.
송상석의 방임불가론의 핵심은 여덟 가지이다. (1)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데 대한 항거는 정당하다. (2) 예배당 안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예배를 방해하는 일이 거듭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피차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양편이 각각 다른 교단에 속해 있는 탓에 교회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법정 소송은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의 난제를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3) 예배당을 탈취하려는 상대방 측의 불법과 폭력을 배제하기 위한 응소가 죄이며 비성경적이며 교리위반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부덕하고 은혜롭지 않게 보는 것은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그의 근시안적인 편의주의, 굴욕적인 무사안일주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4) 기독교는 노예근성을 종교 또는 자주권이 없는 미신종교가 아니다. 약자가 국법에 의거하여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는 것은 정당하다. (5) 악과 불법을 용인, 방임하면 불의를 감행하게 하는 기회를 증대시켜 인간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게 된다. (6) 교회당과 교회의 재산은 해(該) 교회의 소유이다. (7) 예배당을 폭력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강도짓이다. 이러한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정당방위이다. (8) 응소는 교리와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다. 죄를 범하는 일이 아니다.
송상석은 쯔빙글리와 칼빈의 법정투쟁,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피득 선교사와 관련된 봉산신원교회 소송사건(1924), 대구남성정교회의 이만집 예배당 탈취소송 건(1923-1932) 등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들어 자신의 법정대응의 정당성을 변호한다. 장로회 정치문답과 신경과 성경의 여러 부분들을 언급하고 소송과 재판이 죄를 범하는 일이며, 교리에 위반되는 행위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해석한다. 이 본문이 피고로 소송에 대응하는 것조차 금한다고 보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응소를 정죄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기독교인이 국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송상석은 한상동이 초량교회당을 내어준 것과 문창교회가 교회당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응소하는 것은 상충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상동이 초량교회당의 명도요청을 받고서 교회당을 넘겨주고 조용히 나온 것도 잘 한 일이고, 문창교회가 그렇게 하지 않고 대응하는 것도 정당하다. 내어준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는가. 한상동의 그러한 태도와 전례가 보편적인 규범이 될 수는 없다. 초량교회당을 내어준 것을 과대평가 선전하고 문창교회당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 것을 과소평가 악평하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한다.
송상석에 따르면, 신자 간의 분쟁과 갈등은 교회법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 편이 교회법을 무시하거나, 교회가 통제할 수 없는 처지일 경우, 차선책으로 국가의 힘을 빌려 해결하는 것은 정당하다. 소송을 무조건 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소송을 당할 경우에 재산을 모두 다 내어주고 빈손으로 나오는 것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 안에 악이 성행하도록 만들고, 불의를 방조, 방임하는 일이다. 교회와 사회의 질서유지를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4. 박윤선의 반론: 교회규정으로 제재해야
박윤선은 송상석이 두 차례에 걸친 변론의 글을 읽고 ‘교회소송문제 재검토’라는 글을 『파수군』에 기고했다. 첫 글에서 제기한 건덕론을 보완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박윤선에 따르면, 고신파라고 하여 일반적인 정당방어를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문창교회의 재산권을 둘러싼 소송을 반대하는 것이며,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근거하여 교인 대(對) 교인, 교회 대 교회의 국가법정 소송을 반대하는 것이지 모든 류의 소송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고신교회가 타파(他派) 사람들, 특히 총회파 교회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사명을 가진 처지이고, 예배당과 부속 건물의 소유권을 둘러 싼 소송과 이에 대한 대응이 회개운동을 무력하게 하고 전도의 문을 가로막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고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단체는 수난 성도들이 진리를 위하여 예배당도 버리고 심지어 교회도 떠나 산중이나 암혈이나 옥중에서 수난당한 자들의 뒤를 따르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신앙과 덕과 주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재산이라도 필요하면 포기하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나의 이 말은 결단코 우리 단체가 일반적인 정당방어를 취할 경우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현하 한국장로교회가 싸움투성이가 되어 심지어 건물 한 채를 가지고 피차간 양보를 하지 못한 탓으로 혈투 전까지 벌어지는 마당에서 우리 단체로서는 이런 싸움에는 책임 없는 깨끗한 입장을 취하여 한국교회 역사상 모범을 보이자는 것 뿐입니다.
송상석이 ‘예배당 건물 문제로 일어난 국가법정 소송을 교회가 교리화하여 금지, 정죄할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하는데 대해, 박윤선은 교회가 이를 교리화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규정을 만들어 제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박윤선에 따르면, 신앙이나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교회는 성경을 보고 그 문제를 공동성(共同性) 있게 해결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금주금연을 시행하고 있으나 그것을 교리화하여 금하지는 않는다. 이를 금하는 성경 구절을 확실하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교회와 영국과 미국의 신자들이 술을 마시는 일이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교회의 행정적인 결정(決定)으로 이를 금한다. 한국에서는 주초가 유흥과 관계되어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방탕한 생활에 빠지는 일이 흔한 까닭 때문이다.
박윤선에 따르면, 문창교회의 국가법정 소송 문제는 교파와 교파 간의 문제이므로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해석과 해당된다고 하는 해석이 병립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교파와 교파 간의 법정소송 건을 교리화 하여 금할 수는 없으나, 바울이 교파, 교단이 다른 신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가르친 바 없으므로 이를 삼가해야 한다. 문창교회의 소송 건은 위 성경말씀에 역행한다. 교파와 교파 간의 소송에도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교회가 교인 간의 소송금지를 교리화 할 수는 없을 지라도 그것을 하지 말라고 규정할 수는 있다. 교회가 그런 종류의 “소송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일종의 교규(敎規)를 세울 수는 있을 것이다.” 문창교회의 응소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고전6:12)는 가르침에 역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 박윤선이 모든 종류의 국가 또는 세속 법정 소송을 반대하지 않으며, (2)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을 교리화 하여 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는 점이다. 특별한 경우의 신자 간의 소송 허용 가능성을 시사한다.
송상석이 교회의 재산소유는 해당 교회에만 있고 총회, 노회에 없으므로 총회나 노회가 간섭할 수 없으며 재산은 법률에 따라 처치함이 가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박윤선은 다시 건덕론으로 맞선다.
만일 한 교회 교인들이 양분되어 예배당 사용권을 다투는 경우에는 (재단 법인 소속이 없는 고로) 원칙상 신자들끼리 협의적으로 그 재산을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협의적으로 성사되지 않을 때에는 어느 한편이 포기하는 것이 유익하고 덕스럽고 신앙적입니다. 그 이유는 그런 사건을 가지고 법정에 가서 장기적으로 소송을 한다면 이는 신자의 명예와 그리스도의 이름에 수치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자들이 그만한 것을 협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주님을 모르는 이들 앞에 가서 그것을 판결하여 달라고 하는 까닭입니다.
박윤선은, 송상석이 경남노회가 이 건과 관련하여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처리하라’고 결정한 것을 가지고 타파 신자를 대상으로 국가법정에 소송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하여, 그것은 노회의 결정 정신과 다르다고 한다. 교회당 쟁탈전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을 통일하기 위해 한 개의 둥근 원칙을 세웠을 뿐이다. 무제한적으로 각기 형편을 따라 법정소송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부덕한 일이 생길 때는 노회의 충고를 받고 상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노회의 결정은 전도에 방해되는 건물 쟁탈전을 하는 것이 무방하다는 것은 아니다. 노회가 그 결정을 할 때는 국가법정 소송이 신덕에 방해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박윤선은 부득이 한 경우에 신자가 불신자를 걸어 국가법정에 소송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이 반대하는 것은 신자가 신자를 걸어 소송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뿐이라고 한다. 신자가 불신자를 상대하여 부득이하게 세상 법정에 갈 일이 있다. 그러나 신자를 상대한 경우에는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 건을 법정에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이 성경말씀의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박윤선은 자신이 모든 류의 소송을 다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해당하는 소송을 반대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본문을 주석하거나 그것을 신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고려신학교와 문창교회 소송 건은 하등의 상관이 없다고 하는 송상석의 주장이 성립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고려신학교가 진리운동의 선봉에 서 있으며 고신교회라고 하는 단체의 진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한다. 응소 건이 취소되지 않으면 회개운동이 특색을 잃는 줄 알고 지도자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진리운동의 연대관계를 근거로 서로 관련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을 언급하면서 “만일 서로 불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고 말했다. 송상석이 법적인 관점에서 하등 관련이 없다고 한 말을 박윤선은 연대관계의 관점에 관련성이 있다고 말한다.
박윤선은 성경이 과연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을 금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는 하지 않는다. 다만 거듭하여 “성경을 거스리는 소송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주장을 한다고 하여 고려파의 진리운동도 허사라고 할 필요는 무엇입니까?” 하고 응수한다. 고신교회가 진리운동, 회개운동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을 걸어 국가법정에 소송을 하면 회개하라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우리는 잊지 맙시다! 우리의 하는 일은 교파운동이 아니고, 아직껏 [우리는] 총회파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회개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고 말한다.
4. 송상석의 재반론: 고린도전서 6장 해석
송상석은 박윤선의 반박의 글을 읽고 그를 고신교회 전체와 진리 진영의 형제를 훼방하는 이적행위자로 규탄하면서 역공했다. 자신이 이 문제에 붙들려 6-7년 동안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문제해결을 기다리는 참담한 상태이며 “심장주머니가 터질 지경”인데, 동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근거 없는 주장으로 상대방을 이롭게 만든다고 지탄한다. 자신은 불가피하게 제소에 대응하고 있으며, 교회의 재산 소유권이 해당 교회에 있는 사실과 교인들의 기부금으로 장만한 재산을 지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장로교 규정과 정치문답 조례, 총회측과 고신측의 재산 관리 규정이 다른 점 등을 언급하면서 입증한다. “재산이 재단법인에 속한 것이면 쟁론도 없고 소송도 있을 이유가 없지만, 해당 교회의 소유이므로 이를 빼앗으려는 소송에 대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고 말한다.
송상석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더욱 구체적으로 강해하고 신학적인 해석을 결들여 ‘교회소송문제 재검토 3’이라는 제목으로 『파수군』에 기고했다. 고린도교회의 특수한 사정과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일곱 가지의 설문(設問)을 제기하고 그것들에 대한 답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전개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은 교황 그레고리 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논의가 된 본문이다. 칼빈 선생도 ‘소송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방패로 세우고 나타나는 상례(常例)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박윤선은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한다. 그 증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고린도전서 6장은 ‘어느 형제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에 [다른] 형제(제3자)에게 재판(또는 중재)을 받으라’고 한다. 고린도교회라는 같은 치리기관 아래 있는 교인이 이 교훈에 순종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 총회측 교회의 교인들과 고신측 교회의 교인들은 같은 치리기관 아래 있지 않다. 고신측 교회 교인이 총회측 교회에 가서 치리를 받고, 총회측 교회 교인이 고신측 교회에 와서 치리를 받으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치리기관이 같지 않기 때문에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서 가르친 예수님의 교훈이 적용될 수 없는 처지이다.
둘째,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하지 말라’는 이 말에 나오는 ‘불의한 자’는 세 가지에 해당한다. (1) 이교도 법관―회개하지 않는 자, (2)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는 법관, (3) 심령이 어두워 사리(事理)를 바르게 판별하지 못하는 자이다.
위 가르침은 고린도 지역에서 국가법정에 소송을 하는 기독신자들과 그 당시의 고린도지방 재판관들의 비정상적인 처사를 전제로 하여 경계한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 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규정으로 볼 수 없다. 바울 자신도 고린도에서 유태인들의 제소를 받아 총독의 심판을 받았고, 로마의 비기독교인 황제에게 상소했다. 그러므로 위 본문은 때와 장소와 사람을 불문하고 불신자 재판관 앞에 서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정당방위 차원의 소송은 정당하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이방 불신 황제에게 호소하여 자기 민족을 구출한 것을 보면 성경은 사리사욕을 떠난 기독교 단체와 윤리를 위한 소송의 정당성을 용납하고 있다. 한 교회 안의 형제끼리 다툼이 생길 때에 그 교회 치리기관을 도외시하고 즉각 불신법정에 제소한 것을 꾸짖은 것이다. 지극히 사소한 것들(고전 6:2)까지 교회의 중재 역할을 경유하지 않고 곧장 세상 법정에 가져감으로써 마태복음 18장 15-17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할지언정’이라고 한다. 이것은 원고와 피고가 서로 격분하여 행악과 패역을 참지 못할 뿐더러 형제를 해치려고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사소한 일로 한 교회 안에 있는 형제에게 교회의 치리기관을 벗어나서 곧장 불신법관 앞에 가서 세도를 부리고 뇌물을 써가면서 약한 형제를 억울하게 한 일에 대한 교훈이다.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소송을 남용하는 일이 많았다(고전6:7). 문창교회 건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생활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자기 것을 포기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넷째, 예수께서는 재판을 부정하지 않았다. 억울한 일을 당해 법정에 호소하는 것은 정당하다(눅18:1-8).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기본 권리이다(벧전2:13-14).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이 무법자들로부터 곤욕을 당할 때 불신 로마총독과 황제에게 제소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약한 신자가 불법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로부터 침해를 당할 때에 국법에 호소하여 보호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은 국가와 소송제도를 허락하셨다. 그런데도 사람이 어찌 함부로 이 제도를 부정하며 소송을 하거나 응소를 하는 일로 형제를 저주하며 그릇된 판단을 하는가? 정당하게 제소하는 소송이 덕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왜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소송을 용납하셨는가? 국가법정 소송이 덕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상태를 피하려고 하면 진리의 종들이 실천하고 성삼위 하나님께서 용납하고 간섭하고 계시는 국법에 맡겨서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고 선량한 방책이 아닌가?
다섯째, 국가법정 소송을 부정하고 배격하는 것은 인기전술로 보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일종의 호기심으로, 성경을 세밀히 살펴보지도 않고, 다만 자기의 주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과 같다. 박윤선은 처음에는 국가법정 소송, 응소가 죄라고 말하더니 그 다음에는 비진리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교리에 위반된다고 하고, 또 그 다음에는 비성경적이라고 하고, 지금은 이상에 말한 모든 것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덕이 되지 않고 은혜롭지 않다는 이유로 불신자 재판관 앞에 서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24장은 말미에서 “부득이 하여 이혼하게 될 때에는 법관 앞에 가서 하고 자의로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법관 앞에 가서 판단을 받는 것이 성경적인 교훈이라는 뜻이다. 장로교 정치조례 제349문답, 제376문답, 제377문답은 교회의 재산은 국법과 법률에 의하여 조처하라고 한다. 재산권 문제가 발생할 때 그것을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일이 아니다.
여섯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건축과 관련하여 바벨론 재판정에서 승소했다. 기독교의 개인 윤리와 단체 윤리는 구분해야 한다. 교인들에게 개인재산은 법적으로 확보하라고 하면서, 교회가 소유한 재산은 법에 따르지 말고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일곱째,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장로교회의 신학적 기초이다. 위 제4권 20장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의 분쟁과 무절제로 말미암아 불신자들로부터 우롱을 당하고 있었다. 형제와 형제가 분쟁을 하고 있었다. 바울은 우리가 침해를 받을 때 대응하지 않고 그대로 참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탐욕에 불타올라서 남의 재산을 두고 서로 격분하여 소송을 하는 그런 일이 교회에 손해를 초래했다. 바울이 금한 것은 광기를 가진 법정쟁론이다. 모든 류의 소송을 완전히 금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칼빈의 가르침이다. 송상석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일본어 번역판을 읽고서 답한다고 밝힌다.
송상석은 수년 뒤에 출간한 『법정소송과 종교재판』(1976)에서 “성도 간의 문제를 교회법정의 재판 절차를 밟지 않고 불신법정에 제소하는 것은 법과 도리 상 성도의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언급하면서 신자 간의 불신법정 소송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자신이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로부터 법정에 기소되고 고신교회 총회로부터 목사 면직저분을 받은 상태에서 자기를 환영해 주는 ‘반고소 고려교단’의 입장을 강하게 의식한 말로 보인다.
5. 목회자다운 박윤선, 신학자다운 송상석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론 논쟁에서 신학자 박윤선은 목회자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목회자 송상석은 신학자다운 방식으로 반격했다. 박윤선은 이 주제에 관련된 성경본문을 신약전공 신학자답게 분석하거나 교회의 신앙고백과 개혁주의 신학에 따라 검토하지 않고 다만 건덕·신덕·은혜 되지 않음·진리운동에 방해됨·전도의 문이 막힘 등 현실 상황에 호소했다. 그는 ‘성경이 그것을 명백하게 금한다’고 말하지 않고, 진리운동이 성공하자면 신덕을 쌓고 좋은 소문을 얻어야 하므로 문창교회의 응소는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윤선이 자신의 지도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려신학교 교장, 교수직을 사임한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고려신학교가 진리운동의 선봉에 선 것과 문창교회 건이 연대 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지역 교회의 응소는 진리운동 그룹의 표상인 고려신학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연대관계를 고려하여 송상석에게 재산을 넘겨주라고 권면할 수 있지만 신학교 교장 직임을 담보로 송상석과 문창교회의 응소를 규탄하고 학교를 떠난 것은 합리성을 벗어난 행동으로 보인다.
반면, 송상석은 신학자답게 논의를 진행했다. 그가 펼치는 역사신학, 교의학, 성경해석학적 고찰에 바탕을 둔 논증의 정확성은 접어두더라도, 접근방법은 학자적이었다. (1) 신자와 불신자, (2)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법을 따라 교회 안에서 문제해결을 시도한 뒤에, (3) 치리회가 서로 다를 경우에 신자가 국가법정에 호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원고와 피고가 같은 교단에 속해 있지 않는 탓에 재산권 문제를 교회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상석은 자기 재산이 아니라 교회의 재산을 보호하고자 고소에 맞섰다. 기독신자인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하면 그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않는 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교회재산은 총회나 노회의 소유가 아니라 교인들의 헌금으로 모아진 교인의 합유(合有) 또는 총유(總有)이다. 그 재산을 무조건 내어주는 것은 청지기의 도리가 아니며, 악과 불법을 방임하는 일이다. 불의를 감행하는 기회를 증대시키고,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게 된다고 보았다. 불의를 방임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교회법정이 판결할 수 없는 재산권 같은 문제는 국가법정에서 판단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송상석은 주장은 이처럼 신학, 역사, 논리에 호소하며 매우 치밀한 논의를 전개했다. 일본어로 번역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분석하여 참고 적용했다. 신학자 박윤선과 목회자 송상석의 논쟁은 후자의 승리로 평가된다. 소송을 인간생활의 가장 저급한 행위로 보는 한국사회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건덕’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그리고 법정 소송이 난무하고 국가 법정이 교회의 고유한 사안을 결정하는 악습이 반복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어느 편이 진정으로 승리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평가해야 할 사안이다.
송상석이 법정대응 투쟁에서 확인한 ‘교인 총유’(總有)라고 하는 판례는 약 50년 동안 한국교회의 재산권 재판의 기준이 되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2006년 4월, ‘총유’ 개념의 판례가 교회의 분쟁을 부채질하고, 갈수록 교회 재산권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는 점을 고려하여, 그리고 교회는 법인이 아니라 사단(社團)이라는 이유를 근거로, 교회가 분열할 경우 교인 2/3 이상을 확보한 경우에만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판결했다.
리포르만다(기독교사상연구원 제11차 학술회, 2018.12.06.) 발표논문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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