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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HIM 회복 컨퍼런스 당시 기도회 모습(사진출처:현대종교 9월호) |
월간 「현대종교」가 신사도운동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신사도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현대종교 9월호는 ‘신사도운동이란 무엇인가?’, ‘신사도운동은 건전한가?’, ‘신사도운동 관련 논란 단체들’, ‘신사도운동 집회현장’ 등의 기획기사를 통해 신사도운동의 신학적 키워드와 유래, 비판, 유관 단체 등을 집중 조명했다.
현대종교 측은 “신사도운동과 관련 은사지속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긍정적이고, 은사중지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부정적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댈 문제가 아니다”라며 “대부분의 신사도운동 관련자들이 인도하는 집회에는 입신, 금가루 등의 신비적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로 인해 신사도운동은 곧 신부주의로 판단하는 경향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신사도운동은 신비주의를 포함하고 있을 뿐, 신비주의는 신사도운동의 전체가 아니라 한 특징일 뿐이다. 자신만의 신학적 키워드를 갖고 있는 신사도운동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기획기사의 취지를 밝혔다.
한편, 아래는 「현대종교」 9월호에 게재된 내용의 일부다. 전체 기사 내용은 해당 권호 및 현대종교 홈페이지(http://www.hdjongkyo.co.kr)를 참고하면 된다.
# 신사도운동이란 무엇인가? - 신학적 키워드
교회성장학자였던 피터 와그너는‘사도’와‘선지자’가 성경시대에만 있던 은사가 아니라며 국제사도연맹(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이라는 사도들의 모임을 창설했다.
당시 체 안, 신디 제이콥스, 척 피어스, 로렌스 콩 등이 피터 와그너와 함께 했다. 물론 와그너 이전에도 자신을 사도라 칭하며 활동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와그너 역시 자칭 사도들을 통해 2000년 4월 28일, 사도로 임명되었다. 또한 신사도운동의 주요 신학적 주제들은 이미 존재했던 사상들이다.
그럼에도 와그너를 신사도운동의 주창자라 부르는 이유는 이 운동을 조직화, 체계화,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은 한국에까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영적도해, 번영신학 등은 한국교회 깊숙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대부분 신사도운동가가 인도하는 집회에는 입신, 금가루 등의 극단적 신비주의 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신사도운동=신비주의’로 판단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신사도운동이 신비주의를 포함하고 있지만 모든 신비주의 집회를 신사도운동이라고 싸잡아 맬 순 없다. 신사도운동은 은사지속론이면 찬성, 은사중지론이면 반대라는 이분법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신비주의는 신사도운동의 한 부분일 뿐이며 신사도운동은 나름의 신학적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1. 사도와 선지자직의 계승
New Apostolic Reformation. 말 그대로 신新사도 운동이다. 현시대에도 성경시대와 같이 사도와 선지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사도운동의 핵심사상이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세 부분의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엡 4:11,
첫 번째 부분은 에베소서 4:11이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직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은 오늘날에도 사도와 선지자의 직임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경은 100퍼센트 영감 된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구절에 대해서는 60퍼센트만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부분은 에베소서 2:20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물론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미래 교회성장을 위한 운영의 주요 임무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위임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모퉁이 돌로 남아계시다. 모퉁이 돌은 터가 아니다. 그러나 터를 지탱해주는 부분이다. 터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없는 교회는 불완전한 터 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분은 고린도전서 12:28이다. 고린도전서 12장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주신 영적 은사에 대하여 성경 가운데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28절은 영적 은사를 숫자적인 순서대로 배열한 유일한 구절이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순열은 단순히 임의대로 한 것이 아니다. 비록 계급적인 조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의도하신 질서에 따라 배열된 것이다. 사도들이 첫 번째에 나오고 그 다음이 선지자들이다. 다른 모든 은사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적절하게 관계되어 있을 때에만 최고의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2. 열린 유신론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이란 캐나다 출신의 신학자 클락 피노크가 그의 노년에 주창한 신학이다.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의 예정이나 작정을 거부하는 사상으로 개방 신론이라고도 불린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미래에 대해 스스로 알지 않기로 작정하고 피조물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한다는 뜻이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을“확고한 열린 유신론자”라고 밝힌다.
3. 도미니온
Dominion. 통치를 뜻한다. 피터 와그너가 주장하는 통치신학이란 인간이 아담의 타락으로 사탄에게 빼앗긴 세상의 통치권을 다시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신사도운동은 세상을 종교, 가정, 교육, 정부, 미디어, 예술과 연예, 비즈니스 영역으로 나누고 이를 일곱 산이라 지칭한다. 일곱 산을 정복해 사회변혁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것을 지배하는 가장 꼭대기에는 사도들이 있다.
4. 세상을 변화시키는 두 기둥
피터 와그너는 도미니온을 이루기 위해 두 기둥을 제시한다. 두 기둥은 일터교회와 부의 이동이다. 먼저 첫 번째 기둥인 일터교회. 피터 와그너는 교회를 ‘핵교회’와 ‘확대교회’로 구분한다.
‘일터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속해 있는 직장을 뜻하며, ‘부의 이동’은 부가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를 변혁시켜온 주체인데 특히 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말한다. 와그너는 가난의 영을 파쇄하고 번영의 영을 초청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도 한때 가난의 영에 붙잡혀 있었다며 가난의 영을 파쇄한 경험을 전한다. 개혁은 제도적인 빈곤을 뿌리 뽑을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영적도해와 지역귀신론
피터 와그너는 영적도해 즉, 영적 세계지도를 그려 지역을 지배하는 귀신이 있다는 소위 ‘지역 귀신론’을 주장한다. 또한 지역을 지배하는 귀신을 물리치는 과정을 영적 전쟁이라 부른다.
6. 각종 신비주의 현상들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는 직통 계시, 입신, 치유, 집단 방언 등의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신사도운동가들이 이런 현상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동시에 교회성장에 필수적인 요건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피터 와그너는 사도들은 직통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7. 종교의 영
피터 와그너는 교회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9장 14~17절을 들어 새 가죽부대가 시대마다 있었으며 신사도운동이 오늘날 교회성장의 새 가죽부대라고 주장한다.
와그너는 종교의 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그의 책『종교의 영으로부터의 자유』에 따르면 종교의 영은 네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집단적인 종교의 영은 높은 계급의 마귀이다. 둘째, 집단적인 종교의 영은 개인이 아닌 사람들의 무리에 침입한다. 셋째, 종교의 영은 극도로 교묘하다. 넷째, 집단적인 종교의 영은 지도자들을 교묘하게 속여 새로운 시기와 계절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대적하게 한다.
와그너의 설명을 종합하면 신사도운동은 오늘날 교회 성장의 새 가죽부대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신사도운동은 피터 와그너가 어느 날 갑자기 주창한 운동이 아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발흥과 쇠퇴를 겪어온 많은 운동과 사상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와그너가 체계화해 극대화한 하나의 무브먼트로 이해할 수 있다.
# 신사도운동은 건전한가?
신사도운동은 피터 와그너가 여러 가지 신학적 사상을 버무려 체계화한, 말 그대로 하나의 무브먼트다. 문제는 와그너가 영향을 받았다는 사상들이 하나같이 비판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신사도운동에 대해 한국교계에서는 예장합신과 고신 교단이 각각 2009년과 2011년, 참여금지로 결의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 산하 목회와신학연구소가 지난 2014년 교단 총회에서 불건전한 신학이라 보고한 바 있다.
신사도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현시대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사도운동가들과 일부 직통 계시파를 제외하곤 사도와 선지자의 현존성은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승구 교수는 자신의 저서『거짓과 분별』에서 “일반적인 직통 계시파는 1세기 사도들의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면서 예언 사역이 지속된다고 주장해 왔다”(p.205)고 지적했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단순한 뜻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나 바울 등 극히 일부에게만 사용된 특별한 직분이다. 사도시대 이후 자칭 사도 외에 그 누구도 사도라는 직분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도들의 제자는 속사도, 그 이후는 교부 등으로 지칭되었다. 사도들의 핵심사역은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 사역은 현시대에 반복적이지 않으며 되풀이될 필요가 없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이 열린 유신론자라고 밝힌다. 하나님은 미래에 대해 스스로 알지 않기로 작정하고 피조물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한다는 열린 유신론은 정통 개신교 신론을 무너트리는 주장이다.
열린유신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초월성을 제한하는 사상이다. 성경에는“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전1:25)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사55:9)고 말씀한다. 열린 유신론은“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말씀에 정면으로 대치되며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사회 변혁의 주체로‘부’즉, 돈을 꼽는다. 가난의 영을 파쇄하고 번영의 영을 초청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번영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신사도운동가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두가 부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왜 예수님은“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34)고 말씀하셨을까? 그 만큼 물질이 주는 유혹이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번영의 영 자체가 어페이며, 부로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에 없는 개념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영적도해 즉, 영적 세계지도를 그려 지역을 지배하는 귀신이 있다는 소위‘지역 귀신론’을 주장한다. 또한 지역을 지배하는 귀신을 물리치는 과정을 영적전쟁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많은 한국교회 교인들과 선교단체들이 하는 땅 밟기의 사상적 기원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의 지역귀신론과 영적전쟁 개념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지역 귀신론이나 영적도해는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조로 보는 즉, 이원론적 관점에서 발생한 오류다. 이원론은 성경적 개념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이방 종교에서 나타났던 사상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신사도운동이 오늘날 교회 성장의 새 가죽부대라고 주장하며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종교의 영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그저 신사도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사상에 반대하는 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영에 불과하다.
이같은 주장은 “신사도운동가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반대논리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영을 만들어 그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배타주의요 교조주의일 뿐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성경무오설을 지지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만이 유일한 구원자 임을 천명한다. 하지만 신사도운동은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불건전한 신학들의 종합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 외에도 안수를 통하여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소위 임파테이션을 주장하고 성경의 다윗의 장막, 요엘의 군대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등 성경해석에도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와 성도가 신사도운동 혹은 신사도운동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교회는 1990년대에 이미 빈야드운동으로 인해 홍역을 치렀다. 비슷한 뿌리를 가진 신사도운동에 대한 올바른 분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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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종교 9월호에 실린 '신사도운동은 건전한가?'의 한 부분. |
# 신사도운동 관련 논란 단체들
흔히 신사도운동을 하는 단체로 불리는 곳들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단체들은 자신이 신사도운동과 관계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단체들을 신사도운동을 하는 단체로 봐야 하는지, 신사도운동과 관계없는 단체로 생각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은 다음의 단체를 신사도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지적한다.
ICA(국제사도연맹, 피터 와그너), HIM(세계추수선교회, 체 안), IHOP(국제기도의집, 마이클 비클), CI(빌 해몬), MSM(릭 조이너), 올랜도 크리스쳔센터(베니 힌), 아이리스미니스트리(하이디 베이커), 밥 존스(큰믿음교회 원로목사), 신디 제이콥스(영적도해, 대적의 문을 취하라), 빌 존슨(래딩벧엘교회, 초자연적사역학교), WLI(와그너사역신학교, 홍정식), 큰믿음교회(변승우), 영동제일교회(김혜자), 레위지파(다윗의장막, 스캇 브레너), KHOP(박호종), 에스더기도운동(이용희), JMI선교회(김희준), 뉴와인/원띵하우스(손종태), 더데이미니스트리(Theday, 조지훈), 아가페신학연구원(김태진), 아이리스미니스트리(김승환), 한국기독교영성운동연합회(예영수), KIBI(한이성경연구소, 송만석), IMN(이스라엘사역네트워크), AMI(HIM Korea, 이성대), Awake Korea(서바울) 등이다.
신사도운동을‘한다’,‘ 안 한다’의 문제가 쟁점이 되어 갑론을박이 이어지지만, 사실상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신사도운동을 한다고 비판받는 단체들이 신사도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더라도 정통신학에서 벗어났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신사도운동을 한다고 비판받는 단체 중에 신사도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과연 문제가 없는 곳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단체들이 신사도운동이 지적받는 동일한 문제점을 갖고 활동한다면 ‘신사도운동을 한다’는 꼬리표가 붙는 여부는 중요치 않다. 정통교단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나타나는 단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KHOP은 신사도운동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했으나, 이들의 예언사역은 정통교단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IHOP 대표 마이클 비클은 예언 장로들의 사도 회의 THE APOSTOLIC COUNCIL OF PROPHETIC ELDERS, ACPE의 멤버로 피터 와그너의 사도적 역할이 어떠할지에 대해 직접 예언한 바 있다(피터 와그너의『사도와 선지자』, 198~200).
다윗의 장막, 영동제일교회, 아가페신학연구원 등에서 신사도운동과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더라도 빈야드운동, 예언, 직통 계시, 영적도해 등 극단적인 신비주의와 전혀 관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신사도운동을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신사도운동이나 WLI의 사상을 수용하고 관계있는 강사를 지속적으로 초청하며 집회를 연다면 동일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신사도운동을 하는 단체”이것은 어떤 단체를 의미하는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정의에 다소 차이가 있다. 신사도운동을 한다고 비판받는 단체가‘신사도운동을 하는 단체’,‘ 신사동운동 아류’,‘ 신사도운동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단체’등 어떤 별명이 붙느냐가 중요치 않다. 신사도운동을 하는 단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으면 경계 대상 단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단체를 비판할 때 용어 사용의 문제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신사도운동’하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르는 부분이 사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곳을 모두 신사도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성도들의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또 직통 계시, 예언, 쓰러짐 등 신비주의적인 모습만 나타나도 신사도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적절치 않다.
신비주의는 신사도운동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지“신비주의가 신사도운동이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사과가 빨갛다고 빨간 것이 모두 사과는 아닌 것이다. 신사도운동의 특징이 보이는 단체를 모두 ‘신사도운동을 하는 단체’라고 못 박기보다는 적절한 표현을 고민해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사도운동을 한다고 비판받는 단체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조목조목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도와 선지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적도해, 지역귀신론, 각종 신비주의 등 정통교단에서 인정하지 않고 문제시하는 주장을 한다면“신사도운동을 하는 단체”라고 불리지 않더라도 분별하고 주의해야 한다.
데오앤로고스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