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부르너와 칼 바르트(우편)
칼 바르트와 보편구원론
서론
전통적으로 교회는 인간의 최후 상태는 영원한 행복이나 영원한 형벌 중 하나이며, 인류 모두가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구원에 나머지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쳐 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반면, 그렇지 않은 자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된다.
이와는 달리, 영원한 형벌의 교리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보는 보편 구원론 또는 보편주의가 있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또한 아포카타스타시스로 알려져 왔다.
한편, 보편 구원론이 보편 속죄론과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양자는 전혀 다른 이론이며, 분명히 구별된다. 보편 구원론은 그리스도가 인류의 특정 부분, 즉 선택된 자나 예정된 자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전 인유를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 것이며, 보편 속죄론은 그리스도의 속죄는 전 인류를 위한 것이나, 그 효력은 단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미친다고 본다.
보편 구원론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리겐은 고대 교회 보편 구원론의 대표적 대변자였다. 그의 보편 구원론은 543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이단적인 것으로 규정되었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것은 현대에 들어 칼 바르트가 주도한 신정통주의 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바르트는 보편 구원론을 암시했으나 그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기를 거부했다.
1. 보편 구원론
보편 구원론은 모든 인류가 결국에는 구원에 이르게 되며, 악인의 영혼 역시 때가 되면 죄의 징벌에서 풀려나 하나님께로 회복되리라고 믿는 이론이다. 이것은 ‘아포카타스타시스’ 로 알려졌다. 헬라어 명사형인 아포카타스타시스는 ‘보편적 회복’을 의미하며 신약성서 사도행전 3:21에 나타난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아포카타스타시스는 구약 성서 예언자들이 선포한 모든 것, 즉 유대인의 회심, 선택된 자의 회집, 메시야의 지상통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등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이루어 질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 구원론의 출발점은 사랑의 하나님 개념이다. 둘째, 보편 구원론은 만유의 회복(행:3:21), 많은 사람의 구원(롬5:18-19),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의 생명 획득(고전 15:22), 만물의 통일(엡1:9-10) 등을 언급한 성경 본문들을 성서적 근거로 제시한다. 셋째, 보편 구원론은 사후 인간 영혼의 운명과 조건을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죽은 후에도 구원의 기회가 제공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음부에서의 복음전파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다. 보편 구원론은 그리스도가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구절(벧전3:19)을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음부에 간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고대 교회의 관행이었음을 지적하고 그것을 사후 영혼의 조건이 산 자의 기도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는 근거로 간주한다.
넷째, 보편 구원론은 영원한 형벌의 교리를 부정하고 한시적 형벌을 주장한다. 예수가 ‘저희는 영벌에 ,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하셨을 때(마25:46) 사용된 헬라어, ‘아이오니온’은 무한한 기간이 아닌 제한된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지옥 역시 영원한 고통의 장소가 아닌 한시적 정화의 장소로 이해한다.
보편 구원론을 최초로 언급한 문헌은 ‘시빌린 신탁’이다. 이것은 기원 5-6세기 이전부터 헬라와 로마 세계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유대교 편집본은 B.C. 2세기 경부터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대 기독교 변증가와 교부들은 이를 인용했으며 기독교 저술가들은 그것에 새로운 내용을 첨부하기도 했다. 많은 헬라 교부들, 특히 판테이누스, 클에멘트, 오리겐으로 이어지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보편 구원론적 경향이 강했다.
특히 오리겐은 ‘모든 영혼은 결국 구원받으며 영화롭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악인의 영혼은 죄의 정도에 따라 징벌을 받고 정화되어 본래적 완전상태로 회복된 후 영원한 축복과 안식의 세계로 들어간다. 악인에 대한 형벌은 단순한 외적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의식을 통해 일어나는 내적 고통이다.
오리겐은 악의 존재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리겐은 전 인류는 물론 사탄과 귀신들을 포함, 모든 타락한 존재들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오리겐의 보편 회복설, 즉 아포카타스타시스이다. 비그는 그것이 헬라 사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며, 그 주요한 근원이 플라톤의 ‘고기아스’ 라고 지적했다. 오리겐 이후 보편 구원을 공개적으로 변호한 대표적 교부는 닛사의 그레고리 였다.
반면, 터툴리안, 제롬, 어거스틴등 대부분의 라틴 교부들은 한시적 징벌론과 보편 구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 역시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보편 구원론을 부정했다. 그러나 일부 급진적 재세레주의자들과 17세기 경건주의 자와 합리주의자와 퓨리탄주의로부터 인류의 궁극적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대 신학자로는 슐라이에르마허, 모어리스, 바르트 등이 보편 구원론적 성향을 지녔다.
2. 칼 바르트와 보편 구원론
‘로마서 주석’은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믿었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바르트의 보편 화해론은 보편 구원론을 암시한다. 바르트는 개혁 교회 신학 전통에 서 있었지만 제한 속죄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룩한 하나님 과 인간의 화해는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이 보편성에 대한 성서적 증거로 베드로 전서 3:19, 즉 그리스도가 옥에 갇힌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둘째, 바르트는 신적 아니오(NO) 를 신적 예(YES)의 전주곡으로 생각한다. 거부는 선택의 그림자다. 바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누릴 사람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에는 한계가 없다고 믿었다.
한편 ‘교회 교의학’ 역시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믿은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는 여러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바르트는 하나님에 의해 유기되고 거부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외에 없다고 주장했다.
둘째, 바르트는 선택된 자와 선택되지 않은 자의 차이를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했으며, 디모데전서 2:4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은 의도적으로 모든 사람의 구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다고 주장했다.
셋째, 바르트는 선택된 자의 수를 한정하거나 하나님의 구원을 인류의 특정 부분에 제한하는 칼빈주의적 예정론을 비판하고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결정력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바르트는 영원한 은혜의 언약과 대비되는 영원한 진노의 언약을 부정했다. ‘영원한 진노의 언약은 영원한 은혜의 언약에 상응하지 않는다. 사탄의 왕국은 영역, 기간, 위엄 또는 권위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비교되지 않는다.
한편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선호한 것은 분명하나, 공개적으로 시인하지는 않았다. 그가 지옥과 영벌의 실재를 인정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는 지옥 심판을 하나님에 의해 거부되어 영원히 생명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시인하기를 주저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택하거나 부른 것이 필요하지 않는 것같이 전 인류를 택하거나 부르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3. 보편 구원론 논쟁
종교다원주의자 존 힉은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불경건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를 짊어지셨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거부될 수 없다’는 바르트의 진술을 들어 그가 보편 구원자라고 단정했다. 반면 바르트는 자신이 보편 구원론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구원할 가능성을 인정했으나 결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에밀 부르너는 ‘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선택자인 동시에 유일하게 유기된 자이다. 그가 나타나심으로 그리고 그를 통해 더 이상 거부된 자가 없다. 신앙을 통해 ‘그’ 안에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지옥은 제거되고 정죄와 심판은 삭제되었다’는 바르트의 진술은 그가 보편 구원론자임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바르트의 견해는 하나님의 선택을 강조하는 반면, 인간 구원을 위한 신앙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논리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보편 구원론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벌카우어는 바르트의 선택론의 문제점으로 선택의 작정이외 어떤 다른 작정 가능성을 부정함으로 인간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선택의 궁극적 승리를 주장하고 불신자에 대한 영원한 심판을 부정함으로 하나님의 성결을 왜곡하는 것, 선택 된 자와 거부된 자의 차이를 주관적 차이로 축소하고 객관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동일하다고 보는 것, 따라서 인간의 신앙적 결단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드는 한편, 불신앙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등을 지적했다.
블러쉬는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거부했으나 그의 신학은 보편 구원론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블러쉬는 바르트를 무언의 보편주의자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에 보편주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그가 보편주의자라는 것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보편주의는 추상적 원리인 반면, 그의 입장은 보다 동적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 했다.
베티스는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일관되게 거부했지만 하나님의 자유 안에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베티스는 그것이 바르트를 보편 구원론자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그 가능성만 언급했을 뿐이며, 그 현실성을 주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르트는 보편주의를 교리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거부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구원하기 때문에 선하다고 주장하며 부적절한 구원론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신앙에 의해 구원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대한 지식에 의해 구원받게 되는 것으로 본다.
결론
보편 구원론은 신자와 불신자, 의인과 악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종국에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은총과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반면, 영원한 형벌의 교리와 지옥의 존재, 인간의 자유와 신앙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자인가, 아닌가의 논쟁은 바르트 신학의 이중성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의 비판자와 지지자 모두 이를 인정하고 있다. 바르트를 보편 구원론자로 보는 해석은 그의 신학의 내면적 논리를 중시하는 반면, 그렇 않다고 보는 해석은 그의 외면적 주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르트는 보편 구원론을 암시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이지 그것을 시인하거나 찬성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바르트는 잠재적 보편 구원론자로 이해된다. 그는 보편 구원론자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잠재성을 현실화하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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