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신조 이야기
들어가기: 네덜란드교회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로마가톨릭교회과 정교회에서 다시 개신교, 개혁교회로 분리됩니다.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중심으로 루터교회가 있었다면, 스위스,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종교개혁가 존 칼빈(Jean Calvin, 1509-1564) 중심으로 개혁교회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에 있어서 성경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성경 외의 가르침을 배제하고, 하나님 말씀 중심의 신앙과 신학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점점 개혁교회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중 제가 오늘 소개할 교회는 네덜란드교회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어로 ‘낮은 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는 홀란드(Holland)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자로 음역을 하여 화란(和蘭)이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덜란드 하면, 풍차와 튤립을 떠올립니다. 특별히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에 의해서 생겨난 나라였습니다. 1515년부터 무적함대를 가진 스페인으로부터 지배를 받게 되었고, 당시 황제인 카를 5세(Charles V, 1500-1558)와 다음 황제인 펠리페 2세(Felipe II de Habsburgo, 1527-1598)는 종교개혁의 개혁교회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카롤릭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혁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30년 전쟁(The Thirty Years' War, 1618-1648)을 거쳐 빌럼 3세 반 오란여(Willem III van Oranje, 1650-1702)을 중심으로 하여 158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으로 인해 개혁교회의 독립국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네덜란드는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핍박으로부터 독립되었기 때문에 자유와 관용(Freedom and Tolerance)의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Age of Discovery, Age of Exploration)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7세기에는 연합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를 설립하여 세계 무역의 주역이 됩니다. 이 때 함께 발달한 것이 미술입니다. 우리에게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와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가 가장 유명할 것 같습니다. 원래는 벨기에와 같은 나라였지만, 1810년의 프랑스혁명 이후 벨기에는 가톨릭국가로, 네덜란드는 개혁교회국가로 나눠지게 됩니다. 벨기에를 기준으로 남부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카톨릭교회를, 북부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개혁교회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이런 배경으로 인해 대부분 개혁교회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네덜란드교회는 성경뿐만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의 개혁된 교회는 무엇보다 성경을 어떻게 믿고, 고백하는지 신앙고백서가 필요했습니다. 보통은 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등 각 나라마다의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네덜란드교회는 세 가지 신앙고백서, 벨직신앙고백서 또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 1559),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Heidelberg Catechism, 1563), 도르트신조(The Canons of Dort, 1619)를 고백합니다. 도르트신조가 채택되었던 총회에서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 1560-1609)
네덜란드교회는 개혁교회로서 신앙과 신학을 견고히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네덜란드를 독립했던 빌럼 오란여가 세웠던 첫 번 째 대학인, 레이던 대학교(University of Leiden) 에서 제임스 알미니우스가 신학부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존 칼빈(John Calvin)의 제자인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로부터 신학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의심하고,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기 시작하였고, 네덜란드교회가 개혁교회로서 고수했던 벨직신앙고백서의 수정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교회는 예정론을 믿었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6).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를 창조 전부터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선택과 유기(Election, Reprobation)가 하나님에 의해 미리 정해졌다는 교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늘 전도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예정론은 철저히 하나님 주권 사상에 기초합니다. 우리는 누가 예정되었는지 모르지만, 동시에 땅 끝까지 증인이 되어야 하는 예수님의 선교 명령을 따라 최선을 다해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정론을 통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주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알미니우스는 타락후선택설(Infralapsarian)을 주장하며 당시 고마루스(Francis Gomarus, 1563-1641)를 중심으로 개혁교회가 따르던 타락전선택설(Supralapsarian)을 거부했습니다. 타락전선택설과 타락후선택설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전 혹은 이후 선택과 유기를 작정(Decree)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 창세 전 하나님의 작정의 순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창세 전 선택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 타락의 계획 이전 또는 이후에 따라 의견이 나눠집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 인간의 타락 이전 또는 이후에 선택 또는 유기를 할 것인지 미리 작정하셨는지의 문제입니다.
알미니우스는 타락후선택설을 주장함으로 기존 개혁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반대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가장 큰 문제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알미니우스가 죽고 나서 그의 제자들은 예정론을 반대하여 다섯 가지 항의서(Remonstrance)를 주장했습니다.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누가 복음을 믿을지 미리 아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것을 의미한다는 조건 예정(Conditional Election),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는 보편 속죄(Unlimited Atonement),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만큼 타락한 것은 아니며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는 부분 타락(Deprivation),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시는 은혜를 사람은 거부할 수 있다는 저항가능한 은혜 곧 가항적 은혜(Resistible Grace), 한 번 구원을 받은 사람도 훗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인내의 불확실(Assurance and Security)입니다.
도르트총회(The Synod of Dort, 1618-1619)
알미니우스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교회회의를 소집해야했습니다. 네덜란드 도르트레흐트(Dordrecht)라는 도시에서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9일까지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주변 개혁교회의 다른 국가들에서 84명의 교회 대표와 18명의 의회 대표가 참석하는 154회의 국제 교회회의, 총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주장했던 이들을 가리켜 항론파(Remonstrants)라고 하는데, 이에 변론하는 반항론파(Counter-Remonstrants) 또는 고마루스파는 개혁교회의 벨직신앙고백서를 보수하고, 항론파에 반대하는 다섯 가지 교리를 체택하게 된 것이 도르트회의입니다.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9일까지 154회에 걸쳐 도르드레흐트에서 84명의 네덜란드인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여러 국가의 교회 대표들이 모인 회의로 국제적인 총회였습니다. 이 총회를 끝으로 알미니우스와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배척되었고, 벨직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서는 성경적인 가르침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항의서에 대한 반대의 변론으로 된 5개의 조항이 도르트신조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르트신조를 “반대자들에 대항하는 다섯 조항”(The Decision of the Synod of Dort on the Five Main Points of Doctrine in Dispute in the Netherlands)이라는 다소 긴 명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도르트신조
또한 도르트신조는 칼빈의 5대 강요(The Five Points of Calvinism)라고도 부릅니다. 육체적인 생명만 갖고 있는 모든 자연인은 그 본성이 타락하여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롬 5:12; 엡 2:1-3; 골 2:13; 시 51:5; 렘 17:9; 13:23), 누구에게 참된 믿음을 줄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신 10:14, 15; 마 22:14; 엡 1:4; 딛 1:1; 계 13:8),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실효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마 1:21; 요 10:11, 14-18; 엡 5:25-26),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안 믿을 수 없다는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롬 8:14; 고전 6:11; 벧전 1:2),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리로 결코 떨어지지 않고 구원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요 3:36; 6:35-40; 빌 1:6)입니다. 후대에 이것을 기억하기 쉽게 순서를 바꿔 영어 앞 철자를 따서 튤립(TULIP)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혁교회답게 각각 주장의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들을 첨가했습니다.
나가기: 신앙고백
도르트총회는 모든 개혁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과 함께 신앙고백서를 통해 교리를 배우길 원했습니다. 교회나 학교에서 신앙고백서를 경건하게 대하고, 말하거나 저술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고, 생활에는 거룩을 이루고, 고통당하는 영혼들에게는 위로가 되도록 했습니다. 문장과 용어를 성경에 따르고, 성경의 의미를 설명할 때에는 궤변으로 개혁교회의 교리를 격력하게 공격하거나 욕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도르트신조는 지금도 여전히 네덜란드의 개혁교회에서 중요한 신앙고백이 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같은 경우는 52주의 1년 교육과정을 따라 매주 오후예배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다음세대 청소년과 청년들은 성경과 더불어 이 세 개의 신앙고백서들을 열심히 배웁니다. 네덜란드교회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대부분의 개혁교회들이 인정하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서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그에 선교적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8)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개혁교회, 장로교의 역사적 전통에는 초대교회의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을 시작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고, 성경중심의 신앙을 지키려 했던 신앙고백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개혁된 교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이 결코 가볍지 않고, 책임감 있는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석민 목사(캐나다 써리장로교회)
‘가나다공원’(2020)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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