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16.11.19 12:43

광장과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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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1.jpg

 

광화문 광장 (서울)

 

광장과 마녀사냥

 

1. 광장

 

광장(廣場, Street, Square)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넓은 장소이다. 도시(都市) 안의 공공(公共) 목적의 공지 곧 빈 터이다. 유럽 사회에서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광장이 도시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의 대중 광장은 인터넷, 스마트폰, 페이스북이다. 신문과 텔레비전도 광장에 속한다. 광장은 어떤 형태로든,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사소통 마당인 동시에 마녀사냥 터이다.

 

구약성경 시대의 이스라엘 광장은 성벽 밖에 있었다. 사람들을 기다리는 곳이었다(7:12). 장로들이 회의를 하는 마당이었다. 수문 광장에는 사람들이 초막을 지어 머물기도 했다(8:16). 광장(거리)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19:2). 광장을 성 중앙에 두기도 했다(4:6).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레오바고(Areopagys)는 광장 재판소였다. 종종 아레오바고 광장이라고 불렸다. 높은 지역에 공설 운동장과 같이 계단으로 좌석이 있고, 원고와 피고를 중앙에 세우고 재판관이 심문하고 판결하는 장소였다. 건물이 없었다. 재판이 없는 날에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토론과 대화를 한 것 같다. 바울이 붙잡혀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론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여러분을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습니다”(17:19)는 말로 복음전도를 시작했다.

 

장터도 광장이었다. 바울은 아테네 장터에서 날마다 사람들과 예수 복음을 증거, 변론했다. 어떤 에피쿠르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을 했다. 바울이 전한 것은 저주스럽게 나무 위에 달려 죽은 예수와 그 분의 부활이 가져온 희망, 구원의 복음이었다. 그는 장터에서 말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복음전도를 하다가 아레오바고 법정 광장으로 끌려갔다.

 

대화와 토론 광장의 기원은 그리스의 아고라나 로마의 포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의사를 교환 또는 수렴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광장은 모여 대화를 주고받는 직접민주주의의 장소이다. 유럽 사회는 자신들의 도시에 광장을 필수 구성요소로 조성해왔다. 아고라와 포룸의 대화와 논의 형식을 지금까지도 불문율처럼 유지하고 있다.

 

2. 광화문 광장

 

서울에는 서울 광장, 청계천 광장, 광화문 광장이 있다. 민주국가라고 하는 대한민국에는 변변한 광장이 없었다. 고작 서울역 광장뿐이었다. ‘역전마당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광장 없이 살아왔다. 광장이 필요한 사회구조에 살지 않은 탓으로 광장이라는 실체를 본 적이 없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에 나오는 광장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곳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 앞에 여의도 광장을 조성하면서 우리는 광장이 만남과 정치와 대중 행사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빌리 그래함 대회(1973)엑스폴로 74”(1974) 행사가 그곳에서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광장이 점차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움직임의 장소로 사용되자, 권력자는 여의도 광장을 폐쇄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전임 서울 시장은 서울 광장(시청 앞 광장)을 탄생시켰다. 정치와 축제의 경험이 공간적으로 현실화된 희귀하고도 소중한 대한민국의 아고라, 포룸이 등장했다. 광장은 인파로 가득 메였고, 광장의 정치 공간경험과 축제 공간경험을 했다. 이 경험들은 광장의 직접민주정치와 축제 기능에 대한 새삼스러운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상징이나 추상이 아닌, 현실의 광장이 생겼다. 직접민주주의와 축제가 이루어지는 광장 공간은 잔디가 심기고, 보호되고, 관리되었다. 도심 녹지 공간이며 휴식과 여가의 공간이기도 하다.

 

광화문 광장은 수도 서울의 가장 중심 거리인 세종로에 있다. 식민지시대와 권위주의 정권시대에 형성된 직선적 위계 공간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시민 중심의 수평적인 이미지가 부여된 공간이다.


광장 2.jpg

 

광화문 광장 (서울)


광화문 광장, 광화문대로(Street)는 권위주의의 성소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넓은 마당이다. 권력과 시민 사이에서 눈높이의 수평화라는 상징성의 한 표현이다.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 문화 광장이다. 정부와 시민들의 친화감과 공동체적 교감이 기대되는 장소이다.

 

광장은 광장 공포증을 가진 정치 지도자에게 반갑지 않은 곳이다. 최고 권좌에서 물러나라고 외치는, 무서운 함성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광장이라는 기념비적 장소에 대한 광장 공포증이라는 기형성은 직접민주주의의 발현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기도 한다.

 

광장의 목소리는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파괴적일 수 있다.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은 이 광장에서 자유와 책임의 성숙한 균형과 조화를 배우고 기억하고 전승한다.

 

3. 촛불시위

 

광장은 축복의 공간일 수도 있고 저주의 공간일 수도 있다. 대통령 하야를 외친 광화문 광장 촛불시위(2016.11.12; 19)는 특별하다. 시위를 긍정적으로 보면 광장은 복스런 장소이다. 광장은 엄청난 규모의 인구 밀집도가 뿜어내는 가공할 힘을 보여주는 곳이다. 시민이 오만한 권력을 응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광화문 광장은 알려진 바 100만 명을 수용하는 시위마당 역할을 감당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시위들은 지방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러나 그 시위의 힘을 최종적으로 드러낸 곳은 항상 서울이었고, 광화문이었다. 광화문 광장은 집에서 뛰쳐나가 수십 분 안에 시위대에 가담할 수 있는 곳이다. 높은 밀집도와 가공할 인구 파워 그리고 현대 미디어 구조뿐만 아니라, 촛불집회를 24시간 온라인 생중계하는 기술 발전 덕분에 광장은 의사소통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다. 시위의 동기를 시민들에게 일시에 알릴 수 있고, 순식간에 시위대를 조직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다.

 

민주화 성취 면에서, 광장이 이바지하는 면은 탁월하지만 동시에 저주스런 장소일 수도 있다. 광장의 논리와 목소리가 사실과 불일치한 경우이다. 이단자 화형과 마녀사냥은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광장은 성난 민중의 불길한 목소리가 결집되는 곳, 마치 초침 소리를 알려주는 테러리스트의 시한폭탄과 같은 곳이다. 사회적 문제, 위기, , 지도자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재구성한다. 권력자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시위 장소이다. 별 것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여 시민의 감정과 증오심을 극대화하고 원성을 불태우는 곳이기도 하다.

 

촛불시위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은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질리게 만든다. 국민의 권리를 짓밟고 명예를 더럽힌다. 광장에 서면 처음 얼굴을 마주친 사람과도 깊은 동지애를 느낀다. 목이 터져라 같은 구호를 외친다. 정신을 확장시키고 양심을 약동시킨다. 광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행진을 하면 벅차오르는 우정과 시민의식을 공유한다. 시민이 지배자가 되었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새 세상을 만들어가는 역사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현장감으로 몸을 떨게 된다. 광장에서 최고 지도자의 비행을 규탄하며 도덕적 타락을 공격할 때는 더욱 신난다. 광장은 누구의 제지도 없이 으스대던 지도자를 멸시할 수 있는 자유의 마당으로 바뀐다. 근거 없는 우월감의 표출 장소로 변한 것이다. 정규재 선생이 한 말이다.

 

최순실시대의 유린된 상식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친구 아줌마에게 국사의 조언을 구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한 셈이다. 사퇴를 거부하는 대통령이 광화문 광장의 외침을 듣지 못할 리 없다. 광우병 시위 때인가, 어느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말했다. “도도한 촛불의 물결이 모든 걸 삼키고, 인왕산 그늘에 잠긴 청와대는 촛불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위태롭다. ... 지금 대한민국은 촛불이 강을 이루어 출렁이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을 넘어 바다 저편 낯선 대륙에까지 번지고 있다. 도대체 이 거대한 출렁거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출렁이며 흘러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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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시위 (2016. 11. 12.)

      

4. 카타르시스

 

촛불시위는 동어반복(同語反覆, tautology) 현상이다. 참가자들이 서로를 보고 감동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 나간도 사람이 감동한다. 구경꾼이 서로 마주 보고 감동한다. 이 즈음에서 촛불시위는 본래의 숭고한 의도를 넘어선다. 시너지효과가 무한 팽창하면서 '공포'에서 출발하여 '일상의 억눌림'이라는 코드로 전환한다. 광장은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카타르시스 해소 마당으로 바뀐다.

 

촛불시위는 억눌린 감정 해소의 마당이다. 광장에 이르면 거침없이 내달리는 역사의 바람을 실감하게 된다. 분수가 터지고 꽃이 피고 영웅들의 동상으로 치장된 곳인 그곳에는 폭동과 반지성적인 피가 흐른다. 숭고한 감정과 무자비한 폭력은 광장에서 뒤엉킨다. 저주와 모욕, 비아냥거림과 깔봄, 폄하와 욕설, 난폭한 언어들이 난무하다.

 

광장은 역동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인 동시에 심성 깊이 내재한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는 곳이다. 죄성을 둔갑시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국가의 법치 질서를 무너뜨리며, 사실(fact)에 눈멀게 한다. 작은 것을 침소봉대하고 거짓 감정을 불붙게 한다. 하나의 입증된 유죄를 가지고 모든 나머지 작은 행동들까지 유죄의 증거로 제시하고 나열한다. 집단 신념은 때로 무고를 정당화한다. 합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려운 빈약한 증거가 사실처럼 각인시키고, 진짜 같은 가짜를 진짜라고 믿게 한다.2008년 광화문 광장에서 모인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는 광장의 광기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쇠고기 먹고 한 명도 광우병이 걸리지 않았는데, 미국 쇠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는 거짓선동으로 서울 한복판을 수개월 간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5. 마녀사냥

 

광장은 집단의 열정을 종종 핏빛 충돌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마녀사냥터, 이단자 화형장으로 바뀐다. 위대한 이단자 존 위클리프, 얀 후스, 지롤라모 사보나롤나는 광장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광장에서 처형, 화형 당했다. 성경을 번역한 틴데일과 그에게 후원금을 준 런던의 상인들이 광장에서 희생을 당했다. 중국, 북한,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설치된 인민 재판대에 올랐다. 억울하게 죽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토마스 크랜머 대감독은 1556321일 토요일 영국 옥스퍼드의 세인트메리교회당 광장에서 화형 당했다. 그날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빼꼭히 들어차 있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한 크랜머가 끌려 내려와 기둥에 섰다. 그가 쇠사슬로 기둥에 묶이자 곧이어 주위에 쌓아올린 나무에 불길이 타올랐다. 이단자 크랜머는 오른손을 뻗어 불길에 집어넣으며 울부짖었다. “이 손이 죄를 지었소!” 크랜머는 몸이 불붙어 타버릴 때까지도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매체와 사회통신망(SNS)은 새로운 형태의 광장, 마녀사냥 터이다. 예수는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했다. 광장의 광기에 도취된 한국 언론은 무엇이라고 보도할까? “예수, 매춘부 옹호 발언 파장,”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하다라고 보도하지 않을까? 예수가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에게 분개하여 독사의 자식들아하고 꾸짖을 것을 예수, 국민들에게 X새끼 발언 파문이라는 제목을 붙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대한민국 언론은 무엇이라고 보도할까? “이순신, 부하에게 거짓말 하도록 지시, 도덕성 논란 일파만파라고 할 것 같다. 석가가 구도의 길을 떠나자, “국민의 고통 외면, 제 혼자만 살 길 찾아나서라고 하고, 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을 오만과 독선의 극치, 국민들이 끝장내야라고 보도하지 않을까? 소크라데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면 한국 언론은 소크라테스, 악법 옹호 파장이라는 기사 제목을 뽑고, 시저가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하면 시저, 평소 주사위 도박광으로 밝혀져라고 보도할  것이 분명하다.

 

윌리엄 클라크는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했다. 광장의 마녀사냥꾼들은 클라크, 소년들에게만 야망 가지라고, 심각한 성차별 발언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데 대하여, 스피노자, 지구멸망 악담, 전 세계가 경악 분노할 발언이라고 호도할 것이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이라고 말한 데 대하여 국민을 볼모로 하는 국가 정책에 국민은 피곤하다고 보도할 것으로 보인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현 정권, 신이 죽도록 뭐 했나?”라고 하고, 최영 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하자 최영, 돌을 황금으로 속여 팔아 거액 챙긴 의혹이라고 보도할 것 같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이다고 했다. 광장의 언론은 김구, 통일에 눈이 멀어 민생과 경제 내팽개쳐라고 보도하지 않을까?

 

광장은 모순을 연출하기도 한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율사 출신의 어느 정치가는 현직 대통령에게 석고대죄를 하라고 했다. 언론은 당장 권좌에서 하야’를 하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통령의 석고대죄를 명시하거나 암시한 조문이 없다. 이 정치인은 과거에 대한민국이 유엔의 북한인권법을 결정에 찬성 반대 여부를 평양의 결재를 받아 결정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6. 기회

 

광화문 광장의 시위를 보면서, 동학란을 생각해 본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동학농민, 민중은 부패한 나라에 저항한 용감한 인물들이었지만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자기 나라를 끝장나게 한 주역이었다. 동학란 참여자들은 10년이 채 넘기도 전에 나라를 없애자고 하는 이른바 '한일합방' 청원을 했다. 친일파 집단 일질회를 구성했다. 이 정치 권력의 등에 업힌 조선 왕 고종은 나라의 유익이 아니라 자기 유익, 왕실을 유익을 위해 투쟁했다.


민주주의는 광장이 아니라 투표장에 있다. 민주주의는 법치질서에 있지 광장의 열기 속에 있지 않다. 광장은 독재자에 대한 칭송으로 열광하는 곳이기도 했다. 스탈린 광장과 평양 광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광장의 목소리가 커지면, 이상으로 커지면 민주주의나 헌정질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와 검찰이 광장의 사냥개 역할을 한다.


광장이 진리를 토론하고 합리적 결과를 도출하는 곳이 아니라 자유민주의주의와 헌법질서를 무시하고 폄하하는 곳이면 저주 마당으로 바뀐다. 광화문 광장의 목소리가 헌법질서를 따라 질서 있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인민군 탱크가 가득하고,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결재를 받아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시대를 여는 장소로, 마녀사냥의 광장으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장이 저주의 진앙지 기능을 발하는 셈이다.

      

사도 바울이 만난 아테네 장터 사람들과 거기서 나그네로 머무는 외국인들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의 외침에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주장의 근거는 확실한가? 천박한 상대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진실담론은 가치가 있는가? 인간에게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는가? 광장, 포럼에서 나눌 중요한 주제들이다.

 

광화문 광장이 덧없는 세상 복판에서 생명을 살리는 마당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대화와 토론을 거쳐 도출하는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를 맞닥뜨리고 겸허히 수용하는 곳, 주장과 팩트(fact)가 일치하는 곳, 마녀사냥터가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존중하고 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시민정신의 요람이기를 희망한다. 언론 광장, 사회통신망, 법정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지식의 제한성을 자각하고, 국가의 대소사를 합리적으로, 헌정질서를 유지하며, 국법을 존중하는 태도로 해결해 나가면 진정 영예로운 광장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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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6.11.24 14:29


    김철홍 교수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견해"

    나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 공산주의자였다.

    2015.11.20.

    학자로, 시민으로 역사책 국정화에 내가 찬성하는 이유

    “요즘의 검인정 국사책은 1980년대 운동권 시절 내가 탐독했던 의식화 교재의 수준을 뺨친다. 유관순 열사가 빠지고, 6.25를 잘못 기술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틀 자체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며, 공산사회 건설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왜곡된 역사교과서의 핵심을 찌르는 장신대 김철홍(54) 교수의 글이 요즘 화제입니다. 본래 그가 학내 토론을 위해 그 대학교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인데, 이 글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명문 중의 명문” 삭제), “진솔하며 설득력이 큰 글”이란 입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김 교수 자신이 서울대 사회학과 81학번이고, 운동권 출신입니다. 책임있는 지식인으로 변신한 지 오래인 그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지식인들은 멸종했으며, 이미 이념가로 전락했다. 국사학의 자율성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당당히 지적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나는 국정화를 지지한다. 우리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이런‘긴급한 조치’는 불가피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비겁한 내가 이런 글을 쓸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현행 자습서 등을 구입한 뒤 정밀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그의 호소는 “현행 교과서에 문제가 있지만, 정부에 의한 국정화만은 안 된다”는 일부의 섣부른 고정관념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좋은 교과서’, ‘정직한 교과서’, ‘올바른 교과서’제작을 목표로 발족한 ‘좋은교과서만들기시민연대’는 김 교수의 허락을 구한 뒤 글을 싣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더 많은 학부모와 당국자들이 함께 읽어 교과서 문제에 대한 진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합니다. 지면 관계상 분량은 조금 줄였으며, 일부는 대중적 표현으로 바꿨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10월 23일 장로회신학대학교 홈페이지(www.puts.ac.kr) 일반게시판에 ?역사신학교수 공동의 이름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이 성명서에서 자신들을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는” 역사신학교수라고 소개하면서 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거나 미화하거나 왜곡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성명서를 읽은 후 국정화에 찬성하고 있던 나는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이 성명서에 의하면 나는 “역사를 독점하고,” “미화하고,” “왜곡하는” 시도에 동조하는 공범(共犯)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는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 나는 신앙도 없고 양심의 자유도 없는 교수에 불과한 셈이다. 저들은 국정화 찬성론자들의 일방적인 진리주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감히 지적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그 위험한 일방적인 진리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국사학계 자율에 기대하는 건 완전 불가능

    특이한 점은 역사신학교수답지 않게 저들의 성명서에는 역사교과서 문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진행되었고 현재 무엇이 문제인가에 관한 분석과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교 역사신학교수들의 언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현재 사용 중인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부분이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가진 저자들의 견해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고, 전체주의적 사고의 획일화를 초래할 전근대적인 내용이란 판단 때문이다.


    또 지금 교과서는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깨어져 있고, 어린 학생들의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국민통합과 창조성을 실현하는 일에 역행하는 시민들을 이미 양산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양산할 것이다. 그보다 더 절실한 이유는 나는 한국 학계의 문제해결 능력 및 자정능력을 불신하는 입장이기 때문이고, 역사가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임을 이미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들을 통해 똑똑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사용 중인 검인정 교과서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을 최근에 보고 사실 교과서 내용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었다.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누락되고 없다든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든지, 이런 지적들이었다. 나는 정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전 중고등학교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구입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아쉽게도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출판사에서 다 회수해 가고 없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엔 출판사에서 간행한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대표저자 한철호)와 비상 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사: 완벽한 자율학습을 위한 완벽한 자율학습서』(저자: 이건홍 외 4인 공저)였다(물론 다른 것들도 있었지만 비싸서 모두 다 구입할 수 없었다). 이 책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의 내용을 잘 요약, 분석하고 있고,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추가되어 있어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보다 저자의 의도를 더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중 책이 많이 사용된다는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을 그 밤 새벽까지 직접 읽었다. 다 읽고 난 뒤의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 ‘놀라움’이었다.

    “나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의 공산주의자였다”

    나는 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하였다. 3학년 때인 83년 8월에 일종의 강제징집제도인 지도휴학을 받고 군대에 갔고, 85년 제대하고 다시 복학하여 88년에 졸업했다. 사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학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읽던 각종 이념서적들을 읽었다.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의 저작들은 물론 러시아, 중국, 베트남, 쿠바혁명사, 마르크스-레닌주의 유물론 철학, 경제사(經濟史), 경제이론인 정치경제학, 종속이론, 사회주의 사상사, 사회주의 예술론, 한국근현대사,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 사회구성체론 논쟁 등 오늘날(오늘 날 x, 오늘날 o)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무식한(?) 좌파들이 읽지 않는 다양한 좌파 이론들을 공부한 적이 있다.

    제대한 뒤에 나는 더욱 더 이념서적에 심취했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나에게 성경보다 더 중요한 책이었다. 수 백 페이지에 걸쳐 작은 글씨로 프린트 된 영어로 번역된 자본론을 두 번 통독하면서 나는 영어를 깨우쳤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나는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내가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다시 돌아왔고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신학교 시절에도 나는 이념의 문제와 신앙의 문제를 안고 많은 고민을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좌파 이념을 버리게 된 것은 미국에 유학 가서 바울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다. 바울의 복음은 나를 완전히 사상적으로 전향하게 했고, 복음의 세계관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한국사 자습서에는 놀랍게도 내가 대학교 때 의식화학습에서 공부했던 내용 중 한국근현대사와 조선공산주의 운동사에서 학습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요약되어 있었다. 81-83년도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좌파서적에서 읽고 학습했던 내용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잘 정리되어 있는 내용들이 그 동안 일반 고등학교 한국사 시간에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가르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끔찍하고 참담했다. 운동권이 젊은 학생들을 의식화된(학생들을 띄고 의식화된) (좌파) 지성인으로 만들던 과정이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에 의해 전면 실시되어왔던 것이다.

    의식화 교재 뺨치는 맑시즘 시각의 요즘 국사책들

    내가, 그리고 지금 중년의 학부모 세대들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통해 12년 동안 교육받으면서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개념과 용어들이 현행 검정교과서에는 수두룩하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자본가, 지주, 대지주, 독점자본, 도시빈민, 노동력 수탈, 수탈에 의한 계층분해, 민족운동의 주체로서 학생, 농민, 노동자, 사회주의, 노동쟁의, 농민조합, 혁명적 농민 등이 무시로 등장한다. 뿐인가. 계급해방을 내세우는 혁명운동, 토지혁명, 봉건잔재의 파괴, 부르주아 민족주의 혁명, 반제항일투쟁, 신간회의 해소(解消), 사회주의 진영의 합법적 공간 상실, 기회주의, 중세봉건사회 부재론, 사회경제사학(史學)도 마구 튀어나온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주의 이론 학습에서 사용되던 용어들이 186-273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유물사관,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정체성론, 유심론, 유물론, 계급갈등, 반제국주의 투쟁, 소작투쟁, 쟁의, 계급적 교육, 지주에 대한 투쟁, 계급투쟁, 토지집중, 예속 자본가, 프로 문학, 보천보 전투, 반혁명 세력, 토지국유화, 주요산업의 국유화, 사회주의적 개혁, 통일전선, 노농 대중의 해방, 무장봉기, 무상 의무 교육, 무상몰수 무상분배 등도 그 일부다.

    내가 이런 개념들을 대학시절 의식화 교육에서 사용되는 책들을 통해 배웠다면, 오늘날(오늘 날 x, 오늘날 o)에는 모든 학생들이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이것들을 배우고 있다. 현행 검정 교과서가 갖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어떤 특정 부분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 부분의 정보가 누락된 것도 아니다. 그 책들이 문제가 되는 진정한 이유는 그 책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이기 때문이다.

    내가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단어들, 즉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중립적인 용어들이 아니다. 그 단어들은 이념적 내용으로 가득 찬 용어(ideologically loaded terms)다. 그 단어들은 유물사관의 용어들이고,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을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는 자료다.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은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하고, 궁극적으로 공산사회에 도달할 것이며,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과정은 사회의 토대(basis)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사회변화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이것을 막을 수도 없으면서, 동시에 공산사회 건설을 이상으로 갖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투쟁에 의해 완성된다. 이론 뒤에는 반드시 행동가들(activists)이 있으며 이들 중에는 이미 남조선 인민해방혁명을 위해 오래 전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고스란히 폐기처분돼야?

    현재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바로 이런 공산주의 역사이론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므로 유관순 열사가 그 책에서 빠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교과서 전체의 틀, 구조(structure)가 문제다. 그 구조가 전달하고 있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 바로 공산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 사상이다. 이 교과서는 사회주의 사상 그 자체를 민중사학(民衆史學)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그 책에 추가할 것을 요구하여, 비록 그것이 포함된다 해도 여전히 현행 검정교과서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폐기되어야 할 책이지 수정 혹은 개정되어야 할 책이 아니다. 개정은 해결책이 아니고, 폐기하고 새로 쓰는 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국정화에 찬성한다. 현재의 검인정 체제를 일단 그대로 유지하고 검인정 체제 안에서 이 교과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매우 낙관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 본교 역사신학교수들이 국정화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짧은 성명서에서 모두 다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현재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중 어떤 사람은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 정도라면 현재의 검인정 제도 안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왜냐하면 지금 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역사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이 교과서를 만들고 앞으로 계속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지(高地)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전쟁을 하지 않고도 현재의 검인정 제도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들은 애써 점령한 고지를 쉽게 내어주는 바보들이 아니며, 그들은 노련한 싸움꾼들이기 때문이다. 본교 역사신학교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고쳐달라고 호소하는 것 정도다. 그러나 역사신학교수들이 아무리 눈물로 개정을 호소하고, 그래서 그들이 관용을 베풀어 이곳, 저곳을 부분적으로 고쳐준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개정을 거친 그 책은 여전히 유물론적 역사관, 계급투쟁론, 제국주의와의 투쟁과 해방을 강력하게 가르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근현대사 역사해석의 문제는 전쟁이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정치제도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였고, 경제제도로 자유 시장경제를 선택하였다. 북한은 정치제도로 인민민주주의, 즉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경제제도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책임지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제도를 선택했다. 사실 조선왕조가 망한 뒤 우리의 선조들은 미래에 세워질 독립국가에서 어떤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를 놓고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부터 논쟁하였다.

    이 두 상반된 입장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를 놓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기 오래전부터, 좌-우 양편, 즉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으로 나누어져 싸워왔다. 그 논쟁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양쪽이 서로 죽이고 죽는 무력충돌로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21년 6월에 중국에서 일어난 자유시 참변이다. 무장 투쟁을 하던 독립군들이 함께 모여 통합하려던 와중에 좌-우파 독립군들끼리 서로 총을 들고 싸운 사건이다.

    국사학계 점령한 좌파 이념세력의 실체

    그 이념적 전쟁이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어 터진 것이 바로 6.25 전쟁이다. 이 전쟁은 단순히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을 대신해서 우리민족이 싸운 것이 아니다. 6.25는 우리 민족 안에서 벌어진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 간의 전쟁이다. 그리고 지금 그 전쟁은 대한민국 안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지만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지금 좌우 이념 대립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중 상당수가 관련된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단체에서 만들어 유포한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는 물론 그 내용이 상당히 문제가 많지만, 그 제목은 매우 정직하고 정확하다.

    그렇다. 이것은 전쟁이다! 백년간에 걸친,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未完)의 전쟁이다. 그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전쟁터로 인식하고, 지금까지 충실하게 전쟁을 수행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본교 역사신학교수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이것을 전쟁으로 인식하기는커녕, “한국 학계의 문제해결 능력 및 자정능력을 불신”하지 말고 학자들에게 맡겨놓자는 속 편한 소리다. 그러나 그 “한국 학계”가 이미 이런 민중사학을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다수가 되어 이미 역사학계는 이들에게 평정되었다.

    왜냐하면 한국 근현대사 해석의 문제를 놓고 지금 일개 신학교 바울 신학 전공교수인 내가 이 문제를 지적해야 할 정도로 현 역사학계에서 아무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민중사학에 반대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역사학자로서 책임을 방기(放棄)한 것이고, 그것은 비겁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침묵을 민중사학에 대한 동의(同意)로 간주한다.

    다양한 교과서가 있어서 서로 견제하고 균형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나도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검인정 교과서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보다 더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하기 위해 지난해에 교학사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어 출판했을 때 전국의 초중고 학교 중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일부 학교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전교조와 언론 각종 시민단체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나는 똑똑히 보았다. 전교조에서는 심지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을 위험 학교로 분류하여 홍보하겠다고 위협했다.

    나는 당시 좌파 지식인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나서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면 안 된다. 건전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를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단 한명의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들은 멸종했기 때문이다. 좌파 지식인들은 이념에 다 함몰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라, 이념가다.

    ‘다양성 타령’하는 지식인을 경계하라

    나는 지금도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를 통한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본교 역사신학교수들이 왜 그 때에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제야 소리를 높여 ‘국정화반대’를 외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들은 좌파지식인이기 때문에 그 때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것인가? 그 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이 공격을 당할 때에는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뒷북을 치는가?

    결국 전국 2318개 학교 중 단 한 곳의 학교도 교학사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게 되는 비정상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에 나는 좌파 역사학도들의 폐쇄적이고 교조적인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것은 1986년에 내가 본 얼굴, 주체사상을 주장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장악해 나가던 주사파의 얼굴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부끄럽지 않다. 자랑스럽다. 나는 북조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시민이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고, 자유 시장경제 제도가 완벽한 경제 제도도 아니지만 북한의 전체주의보다 훨씬 낫고, 사회주의 경제제도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제도에 만족한다. 나도 현재의 제도에 약간의 문제가 있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이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다른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현재의 체제를 부정하고 다른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시도를 한다면 나는 그들과 싸워 막을 것이다. 6.25 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친 나의 선배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듯이 나도 지킬 것이다.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현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인민민주주의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 책들을 읽고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회주의 이론을 잘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나는 그런 책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의 주역들이 한국사를 배우는 것에 반대한다.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반대한다. 건전한 자유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 자녀들이 자라기 위해 지금은 ‘긴급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긴급한 제안이 없었더라면 나같이 비겁한 사람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교과서 문제는 긴급한 문제다. 이 문제 많은 검인정 교과서를 폐기하고 새로 만들어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장신대 신약학과 부교수 김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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