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앎이다
“가장 낭만적인 사랑은 도덕적 품성이 아니라 헤어스타일, 얼굴, 옷맵시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 톨스토이
로마신화의 비너스(Venus,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Aphrodite)는 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이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사랑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또한 풍요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대인이 생각한 아름다움은 어떤 것이었을까? 명백하게 외모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미의 기준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비너스 여신의 그림을 보면 현재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이란 한낱 가죽 한 꺼풀에 불과하다 말하지만, 여성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이 외모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아는가? 영국의 기혼 남성들을 상대로 시행한 어느 조사에 의하면 아내의 저녁 외출 준비를 기다리느라 그들이 소비한 시간을 평생 모으면 평균 20주나 된다고 한다. 시간뿐만 아니다. 외모를 가꾸는 데 사용하는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외모 가꾸기에 투자하는 돈은 해마다 약 240조 원을 쓴다.*1
그것뿐만이 아니다. 외모를 가꾸기 위하여 때로 생명까지 내놓는 위험을 감수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형 열풍이 불고 있다. 쌍꺼풀 수술, 앞트임, 뒤트임, 이마 지방 이식, 코 수술, 지방 흡입, 유방확대, 양악수술까지 그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다. 문제는 성형에 따른 부작용과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TV에 나오는 20대처럼 보이는 40~50대 여배우들의 모습 때문에 여성들은 성형외과로 달려간다. 이창동 감독이 영화 ‘시’를 촬영할 때 프랑스에 은거하고 지내는 윤정희 씨를 특별히 캐스팅하였다. 이유는 한국의 60대 여배우들 중에 60대 다운 원숙미가 없고 모두 한결같이 이리저리 뜯어고쳐 나이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형뿐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키가 커 보이려고 여성들은 하이힐에 집착한다. 그러나 하이힐은 발가락 관절이 심하게 변형되는 무지외반증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척추 손상까지 가져온다. 남자들은 신발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섹시할 수 있는데 왜 여자는 그럴 수 없을까? 도대체 이런 고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조금이라도 더 예뻐지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가장 쉬운 대답은 자존감을 높이고,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며 고용과 소득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영향의 크기는 또렷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외모가 취직에 큰 도움이 될까? 짧게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샤흐터(Stanley Schachter, 1922~1997)는 외모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는 남녀배우 각각 두 명씩 총 네 명을 섭외하였다. 둘은 평범한 외모고 다른 두 명은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외모였다. 샤흐터는 네 사람의 학력, 성장 배경, 경력 등을 완전히 같은 수준이 되도록 서류를 만들고, 면접 대응 훈련까지 시켜서 모든 것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런 후 취업 면접을 보았다. 결과는 당연히 출중한 외모를 갖춘 두 명의 배우가 합격하였다.
그러나 환경을 좀 달리하여 조사해 보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씨는 무기수로 20년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감옥 안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중에는 잘난 척하는 사람이 꼭 한둘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때는 얼마든지 속이고 위장할 수 있지만, 좁은 감방 안에서 살과 살을 맞대고 수년 동안 같이 지내면 그의 진짜 모습이 다 보인다. 감옥 안 죄수들은 오래참으며 다른 사람의 껍데기 모습을 보아줄 인내심이 없다. 너도 나도 다 죄인이니 솔직해지자는 의미로 그의 거짓된 자랑을 까발린다. 그걸 소위 멕기 벗긴다고 한다. 멕기가 벗겨지면 인간 그 자체가 보인다. 살과 살이 부딪히면 겉모습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신영복 씨는 아름다움이란 글자 그대로 앎으로 이해한다. 그 사람의 본 모습을 알면 아름다움과 추함이 그대로 다 보인다. 텔레비전에서 예쁘게 보였던 연예인들이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는 것을 심심찮게 본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첫눈에 반하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소위 금멕기가 벗겨지면 그의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 모든 허상이 깨어진다.
오늘날 만남은 너무 깊이가 없고 얕다. 형식적으로 만나고 스치듯 만난다. 그러다 보니 겉껍데기 미모에만 신경을 쓰고 진실한 속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외모가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함께 직장생활 하면서 결국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의 능력과 인품과 인간관계 등을 보게 된다.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는 결코 외모가 아니다.
그러므로 외모에만 투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실지로 외모에 투자하고 만족하는 여성은 별반 없다. 얼굴에 한 번 칼을 대기 시작하면, 거울을 볼 때마다 또 칼을 대야 할 곳이 자꾸 보인다고 한다. 육체를 고치느라 시간과 비용을 엄청 들이는데 불평과 아쉬움은 계속 쌓여 만 간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자기 외모에 대해 만족하는 편이지만 여성은 자기 외모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 아무리 성형하고 화장해도 여성은 남이 알지 못하는 자기만의 약점을 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알렉스 쿠친스키(Alex Kuczynski)는 ‘아름다운 중독자’에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쳐들여 봤자 아무 소용없다. 날개를 단 시간의 전차는 결국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 얼굴을 짓눌러 묵사발을 만들 테니까.”
알렉스 쿠친스키(Alex Kuczynski)는 ‘아름다운 중독자’에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쳐들여 봤자 아무 소용없다. 날개를 단 시간의 전차는 결국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 얼굴을 짓눌러 묵사발을 만들 테니까.”
그렇다. 가는 세월을 잡으려고 기를 써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 그대의 육체를 사랑하라.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 그걸 뜯어고치는 짓은 그만두기를. 사실 남자들은 여자의 변함에 매우 둔감하다. 화장을 고치고 헤어 스타일을 바꾸어도 알아차리는 남자는 별로 없다. 외모를 가꾸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외모를 가꾸는 정성만큼 내면의 모습을 가꾸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녀의 아름다움은 평생 갈 것이다.
사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단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딸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캐나다 대학에 다닐 때는 운동복만 입고 살았다. 캐나다를 방문하여 딸을 보는 순간 나는 딸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아빠! 이곳에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외모에 신경을 안 써요. 모두 이렇게 입고 다니는걸요." 나는 그때 깨달았다. 외모만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모 가꾸기 경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공동체가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 운동을 일으키면 사회는 변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여권 신장을 위하여 애쓰는 여성가족부라는 게 있다. 때로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주장을 하면서 여권 신장을 위하여 별별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이상하게도 여성 외모 가꾸기와 관련된 그 어떤 캠페인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외모 가꾸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 자신이 외모에 대하여 더는 가십거리 삼아 떠벌리지 않았으면 한다. 여자들은 흔히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데 어울리느냐부터 시작해서 화장, 헤어스타일, 몸무게, 맵시 등 온갖 것을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이제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그런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더욱 가치 있는 내면의 모습(책, 문화, 취미, 삶의 목적과 방향 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가꾸어 간다면 우리나라도 변화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리스도인 여성부터 건전한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
주(註)
*1.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데버러 L 로우드 저, 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2011년, 20쪽
글: 배경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