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성전에 대한 복음주의자의 이해
한글 유트브와 영어 유트브와 구글에는 제3성전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복음주의 관점에서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스라엘의 제3성전 건립운동 단체는 건축에 팰요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전을 현재 모스크가 서 있는 곳에 건립하는 것은 아랍에 대한 선전포고이다. 제3차 대전을 유발할 수 있는 핵폭탄이다.
유대인들에게 제3성전은 신학적으로 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업이다. 이것은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기독교 세대주의자들은 제3성전 건립운동에 동참한다. 이를 홍보하고 있다. 최근 정통 유대교는 예루살렘에서 헨델의 메시야 찬양집회를 폭력으로 저지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스라엘을 선민의 나라로 생각한다.
유대교에는 제3성전이 필수품이다. 정통파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성경은 이사야 53장 곧 고난의 메시야 장이다. 개혁파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좀 유연한 입장이다. 참고로 유대교는 정통파, 보수파, 개혁파로 나뉜다. 기독교 관점에서 보면 유대교는 이방종교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구약해석의 출발점이 다르다. 결국 아브라함에게서 유대교와 기독교 두 종교가 탄생되었다.
이방종교는 웅장한 성전과 많은 의식이 필수적이다. 성전은 한 국가와 민족을 통합시키는 영적 구심점이다. 유대인들에게 회당은 그들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제3성전은 필수품이다. 구약의 성전 제사를 그대로 고수하고 제사장과 의식은 그대로 존속시킬 수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신학생에게 병역을 면제시켜 준다. 현 정부가 이 제도를 폐지하려고 하자 유대교 집단이 종교적 특권을 주장하면서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유대인에게 안식일 준수는 필수적이다. 유대 정통구역에서 금요일 오후 6시 이후 상점 문을 닫지 않으면 랍비들이 회초리로 위협한다.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트도 층수 스윗치를 누르지 않고 자동으로 운행하도록 한다. 전화기도 손을 대지 않고 통화를 한다.
기독교가 제3성전 건립을 반대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 기독교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접근하는 이슬람과 유대교의 증오와 복수의 종교 이야기가 초래할 국제적 분쟁을 우려할 뿐이다.
한국교회에는 제3성전 건립에 동조하는 신학과 신앙을 가진 친 이스라엘 단체들고 동조자들이 상당수 있다. 일부 신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유대인들이 여비가 없어서 이스라엘로 귀환이민을 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경비를 후원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을 종말의 시작이라며 환영한다.
유대인의 귀환을 돕는 단체들은 다음의 성경을 근거로 제3성전 건립에 적극적이다.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이르리니”(렘 30:3. 참고, 렘 29:10, 14 등). 그 밖의 많은 성경을 인용하지만, 종말에 사탄이 “대적하는 자”, 신으로 자처하면서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 세운다”(살후 2:4)는 본문을 중시한다.
세대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예루살렘 성전에 재림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 성경 주석도 이 본문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바울은 신자의 몸이 하나님의 전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탄이 성전에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종말에 사탄적 세력이 하나님의 교회에 더 서식할 것으로 해석한다. 교회 안의 영적 배교를 예언한 것으로 본다(마 24: 15,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 주제에 대한 신학적 문제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는다. 낙관적 해석은 종말 직전에 다 믿을 것으로 해석한다.
둘째, 모든 유대인들이 현재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올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미국에 사는 600-700만 명의 유대인들이 다 돌아올 경우 팔레스타인과의 땅 분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왜 유럽에서 900여 년 동안 박해와 서러움을 받았는가? 왜 이 주제를 성경적 관점에서 다루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한 목적은 이방을 위한 봉사와 선교에 있다(창 12:1-3; 출 19:5-6; 사 49:6 등).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을 민족주의 종교로 변질시켰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넷째, 아랍국가의 많은 이슬람 신자들은 유럽교회나 한국교회 일부가 이스라엘만을 중시하는데 대하여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냐”고 하는 심각하게 질문한다. 우리를 이들을 도외시할 것인가?
다섯째,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과거 피해자에서 가해자 노릇을 한다는 국제적 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수 없는 유대인들이 아직도 신앙적으로 원가지라면, 왜 기독교를 박해하는가?
위 질문들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1) 히브리서 7:27은 예수님이 단번에 제사를 드림으로 날마다 제사드릴 필요가 사라졌다고 한다.
(2) 히브리서 10:1-4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다”라고 한다. 4절은 황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3) 히브리서 8:13은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고 한다.
(4)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히 10:11, 11:18, 20; 마27:51).
(5)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리라”(요 4:21, 24)고 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눅 21: 19)고 했다.
전호진 박사(전호진 박사의 페이스북에서 옮겨 다듬은 글.,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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