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22.02.15 07:38

황산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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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기행기

 

 

나는 중국에 머무는 16년 동안 나름대로 유명한 중국의 명소들을 방문해봤다. 때로는 재중 한인교회 연합회의 공적인 행사로, 때로는 아예 마음먹고 중국의 명소를 섭렵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봤다. 그 목록을 열거하자면 장가계 2, 서안의 화산 3, 계림 3, 그리고 황산을 5회쯤 가본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사천성의 구채구를 못 가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구채구는 코로나 시절 지나고 나서 다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지면 다리 힘이 약해지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 외에도 청도와 홍콩, 서안을 세 번쯤 간 것 같고 연태와 충칭을 각각 한 번씩 다녀왔다. 그 중에서 내가 살던 곳에서 가장 가깝기도 하거니와(650km) 소위 중국의 오대산악(三山五岳) 중에서 첫째가는 황산을 가장 많이 왕래를 했는데 갈 때마다 새로움으로 가슴 설레게 하던 황산 얘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황산을 갈 때마다 무엇이 황산을 유명하게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 한 봉우리의 바위라도 그 자태와 존재의 미학을 찾으려고 애썼다. 백아령을 지나 광명정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몇 번을 중얼 거렸다. “아니 이건 여느 밋밋한 야산에나 있음직한 나무며 풀이잖아! 그런데 뭐가 황산을 유명하게 만들었지?”

 

황산의 모든 봉우리의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봉우리가 결코 바위로만 이루어져 있는 삭막한 산은 아니다. 황산 제 일봉인 연화봉이나 천도봉 혹은 다른 제 3, 4의 봉우리들도 하나같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다.

 

 

봉우리들이 그 아득한 정상에도, 깎아지른 절벽에도 살아 숨 쉬는 푸른 나무들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바위가 푸르른 생명을 아우르고 있다. 올려다보기 아찔한 산정에도, 내려다보기 어지러운 단애에도 조금의 벌어진 틈만 있으면 여지없이 그곳에 녹색의 풀과 나무, 생명체가 매달려있다. 바위는 스스로 몸을 가르고 살을 쪼개어 그 생명체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같이 메마르고 삭막한 바위가 푸근한 어머니 같이 넉넉한 봉우리가 되었다. 보기에는 뾰쪽해 보여도 바위로 이루어진 그 봉우리들이 살아있는 나무와 더불어 존재하므로 후덕한 느낌을 준다. 황산이 황산인 이유가 그것이라 여긴다.

 

 

그것뿐이 아니다. 나무는 어느 산새가 먹다가, 놀다가 흘린 홀씨였든지 어떤 바람이 전해준 부러진 가지였든지 그 어지러운 낭떠러지에 몸을 맡기기 시작한 이래 질긴 생명을 가꾸어 왔다. 폭풍우 불고 천둥과 번갯불 휘몰아치는 여름밤에도, 칼바람이 눈보라 몰아 귀신 울음으로 달려오는 겨울밤에도 나무는 생명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때로는 바위를 붙잡고 몸으로 부대끼며, 때로는 바람의 울음에 함께 통곡하며 살려 달라부르짖으며 틈을 달라애원했을 것이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외로운 산정에서, 어지러운 단애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이어졌는지 모른다.

 

 

오늘 내가 올려다 본 산정의 나무들은 다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허위허위 산을 오른 나에게 빛나는 생명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몸이 쪼개지고 갈라지는 아픔을 경험한 바위는 생명을 가꾸는 어머니의 후덕함으로 우뚝 서있다.

 

 

사람들은 돌 같이 강퍅한 마음을 얘기 하지만 그것은 바위를 욕되게 하는 것임을 산에서 배운다. 서로를 비난하고, 불신하고 서로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돌 같은 뭐~” 라거나 바위 같은 그 무엇을 논한 자격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생명을 이어가기에 그 어느 곳 보다 척박한 곳에서 한번 살아 보겠다고 틈새를 파고들어 몸을 쪼개고 살을 찢는 나무나 풀은 바위에게 있어 무례한 침입자에 불과하다. 온 힘으로 밀어 내야만 자신의 생명을 보존 할 수 있는 적이요 원수다. 그 여린 생명이 어쨌든 한번 살아 보겠다고 애원하는데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바위는 나무에게 있어 정말 인색하고 고집불통인 벽창호다. 서로가 도무지 어울릴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상극의 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서로를 인정하고 상생을 도모했을 때 하늘이 비를 내려 습도를 맞추고 햇볕이 따스함을 더해 생장에 필요한 온기를 주었다. 때로 불어오는 바람은 나무가 더욱 견고하고 깊이 있게 뿌리박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날기에 피곤한 새들이 그 넉넉한 가지와 그늘에 집을 짓고 또 다른 생명의 사슬을 이어간다. 그것이 오늘의 황산이다. 그것이 황산으로 하여금 그 이름이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이유다. 못 가본 사람이 호기심을 가지고 가 보게 될 그 언젠가를 기약하게 하는 힘이며 한 번 가본 사람이 다시 한 번 황산 다녀오기를 소망하는 이유다.

 

 

지혜로운 사람이 산을 찾는다고 했던가? 그게 아니지! 산이 지혜를 주는 것이다. 겸손한 눈으로 봉우리를 바라보면 그곳에서 지혜를 얻게 되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라!

 

 

김희택 목사, 선교사

 

편집자 주: 중국 황산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현종이  붙인 것이다. 황산은 중국의 수  많은 시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황산의 가장 높은 곳은 연화봉이다. 해발 1,864미터이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좋은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산'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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