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19.12.03 01:42

생산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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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왼편)와 엥겔스 동상        

 

생산의 영웅

벽초 홍명희 원작 <임꺽정>과 소설 <장길산>이 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남한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져 안방에까지 전달되었다. 우리의 문학계는 오랫동안 장길산, 임꺽정 류의 영웅이 독자들의 마음을 지배해 왔다. 이러한 현상은 대도 조세형을 동정하는 것과 일치한다. 사람들은 분배의 영웅을 선호한다.

임꺽정이나 장길산이 열풍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극대화된 현상이다. 분배의 불균형과 맞서 싸워 정의 사회를 이루겠다는 눈물 나는 투쟁이 영웅 대접을 받는다. 이러한 영화는 모순된 사회에 정의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배의 영웅이 아무리 많이 나온다고 해도 국가나 사회의 발전이나 부(富)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부패를 다소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고, 방부제 역할을 할 뿐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분배의 영웅이 가지는 한계가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근년의 한국교회의 뚜렷한 움직임은 제자훈련과 사회참여운동과 윤리실천운동이다. 이곳저곳에서 세미나가 열리고, 성경공부를 한다.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고, 많은 성명서가 발표되고 있다. 지역마다 윤리실천단체가 결성되고 있다. 제자훈련은 신앙지식의 폭을 넓힌다. 신앙패턴을 구축하고 교회중심의 신앙생활과 질서의 중요성을 인식시킨다. 사회참여운동이나 윤리실천운동도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을 다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는 제자는 많은데 그리스도의 군사가 적다. 윤리를 외치는 사람은 많은 데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성경책을 들고 ‘제자반’에 참석하며, 성경과 신학 지식을 배운 덕분에 자기 견해를 가진 사람(man of opinion)은 많은데 정작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우리 주변에는 윤리적 책임을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책임을 지고 희생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꼬집을 줄은 아는데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비판할 줄은 아는데 변화시킬 능력은 없다. 음식물이 부패한 것을 비꼴 줄은 아는데 자신이 그 음식물 속에서 희생하는 소금이 되려고 하지는 않는다. 밀가루가 부풀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도 자신이 그 가루를 부풀게 하지는 못한다. 비아냥거리는 데는 선수인데 겸손히 자기를 희생하지는 않는다.

성경이 제시하는 참 제자는 새 생명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복음으로 영혼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천국시민을 많이 생산하는 일꾼이다. 오늘날의 제자 개념은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모습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바울은 제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꾼”, “그리스도의 군사”로 표현하고 있다.

사회참여와 윤리실천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분배의 영웅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무리 분배의 영웅이 많아도 생산의 영웅이 많아지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암담하다. 교회의 성장이 멈춘 현실을 감안하면, 한국교회는 성경지식을 높이고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빈정거리는 태도로 교회 안팎의 문제점이나 비꼬는 제자훈련이나 사회참여운동이나 윤리실천운동보다 ‘생산의 영웅’ 만들기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희망은 궁극적으로 구령사업에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신앙지식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과 윤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사회참여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생산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영혼을 낚아올리는 생산의 영웅이다. 아울러 윤리실천운동을 펼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를 겸손히 낮추며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작은 윤리에서부터 제자도를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최덕성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주간기독교>(2010) 기고의 글

 

리포르만다에 실려 있다가 사이트개편 때 사라진 것을 복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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