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곳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증거 없이도 형사 처벌하도록 법으로 보장한다. 법관이 자기 마음 대로 판단, 판결, 처벌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 형사소송법 제308조가 명시하는 '법관의 자유심증주의 원칙'이 그것이다.
자유심증주의는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법관이 심증, 간접증거, 정황증거 등을 신뢰하여 범죄사실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판단하게 하는 제도이다. 법관은 경험법칙 · 논리법칙에 합치되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에도 불구하고 자유심증주의는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판단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보장한다. 아무리 법리에 밝고 원칙에 충실한 강직한 성품을 가진 판사라도 오판할 수 있다.
미국은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심증이나 정황 증거가 있어도 증거가 없으면 범죄로 인정하지 않다. 증거법정주의(證據法定主義) 원칙에 따른다. 반면, 증거가 있으면 반드시 어떤 사실을 범죄로 인정하는 원칙이다. 이 제도는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보호할 목적으로 여러 명의 범죄자를 놓아주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의 대한민국의 굵직한 정치 사안들을 보면 자유심증주의가 남용되고 있으며, 법조계가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증거가 없는 데도 '묵시적 청탁' 등 새 개념의 신조어를 동원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중형 처벌을 한다. 시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하는 따위의 애매한 판단을 한다.
<삼국지연의>는 정의와 진실이 아니라 계략과 모함과 처세술을 가르친다. 절묘한 책략과 치밀한 사기로 상대방을 함정에 끌어들이는 모략과 술수로 도배질 되어 있다. 선의를 짓밟고 악의를 정당화하는 것을 가르친다.우리나라의 정치계와 법조계는 <삼국지연의>의 세상과 같다. 권력이 다른 정당으로 넘어가면 전임 대통령이 자살할까 걱정되는 세상이다.
어느 지역 고등법원 부장 판사로 재직하다가 은퇴한 모 변호사(예장 통합 교회의 장로)는 나에게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법정은 진실을 가리어 판단하는 곳이지만, 무조건 법정이 진실을 가리는 곳이라고 함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말이다.
법정은 모든 것에 열려 있다. 여론, 압력, 출세, 인맥, 광장의 소리, 돈, 정치세력, 권력구도가 작용한다. 힘과 돈을 가진 자와 그것들이 없는 자가 붙으면 전자가 이기고, 기관과 개인이 법정 다툼을 하면 대부분 기관이 이긴다. 증거력을 가진 증인과 문서 확보가 전자가 용이하고 후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힘을 가진 자에게는 자진하여 거짓증언도 해 줄 사람이 있지만, 힘이 없는 자에게는 진실이라도 이를 구태어 증언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완용을 포함한 을사오적은 모두 법조인이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이를 악용하여 자기의 판단을 합리화한다. 법정은 인간의 전적부패, 전적 타락을 확인시켜 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검사의 기획 기소, 판사의 기획 판결이 존재하는 곳이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판사는 인간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오랜 옥살이를 하고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 종종 재심청구 소송에서 승소한다. 과거에 어느 법관은 죄수 한 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그가 처형된 뒤에 진범이 붙잡히자, 법복을 벗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법정이 진실을 가리는 곳이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알려진 오판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단다. 기획 판결과 오판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잘못된 추리나 심증판단과 권력형 기회판결은 억울한 자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거짓증언, 목격자의 범인 식별 지목 오류, 과학적 증거의 남용, 변호사의 부실 변론, 의도적인 판결,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등은 억울한 자를 양산한다.
2017년 한 해, 대한민국 국가가 구속 수감자에게 물어주게 된 형사보상금이 8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3만5126건이고, 이 중 80%인 2만8400건이 발부됐다. 지역 읍 단위 규모의 인구가 철창신세를 진 셈이다. 그러나 이 중 무혐의 처분이나 무죄 판결로 인해 국가가 형사보상을 해 준 사건도 20%인 5810건에 달했다. 형사보상금은 80억1500여만 원이 쓰였고, 억울하게 구금된 날짜를 합하면 2만29일이었다.
법관 자유심증주의 원칙에 관련된 법과 제도의 정비가 당장 필요하다.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대법관과 검찰 총장을 임명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법관 자유심증주의 원칙이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고, 대통령이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심증주의와 증거법정주의를 절충 보완하는 향상된 법을 고안할 수 없는가?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단을 하려고 애쓰는 대한민국 법관들에게 치하를 보낸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려고 애쓰는 여러분 덕분에 대한민국은 이 정도라도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하고 있다.
나는 법의 독성에 오염되지 않은 법관을 만나고 싶다. 해독제를 찾으려고 발버둥치며, 양심의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며,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관을 찾고 있다. 기독교인 법조인 장로 가운데는 권력자에게 전화질을 하여 억울한 재판을 하게 하는 자가 없지 않다. 권력을 가진 법조인에게 불의한 청탁을 하는 신학자도 없지 않다. '죄성'이나 '법의 독성'이라는 단어가 생경하거나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법조인이나 신학자는 없으리라.
하나님은 법관에게 엄명한다. “재판관은 부정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자라고 해서 두둔하지 말라. 세력 있는 자라고 해서 유리한 판결을 내리지 말라. 재판은 어디까지나 공정하게 해야 한다”(레 19:15).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전 고신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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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 다스 실질적 소유자 맞는가?
<조선일보> 사설 (2018.10..6.)
서울중앙지법은 5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질적 소유자로서 85억 원의 뇌물을 받았으며 246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삿돈을 횡령한 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올해 77세인 이 전 대통령은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92세까지 복역해야 한다.
이번 재판 핵심은 이 전 대통령을 다스의 실소유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다스 소송 비용 뇌물'이나 '비자금 조성' 등 검찰이 적용한 주요 혐의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점이 입증돼야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혹은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나왔던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그때부터 줄곧 "다스는 형님(이상은 씨) 회사"라고 했고, 당시 검찰과 특검은 이 전 대통령 말이 맞는다고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어 다스의 경영진 등이 과거 진술을 번복하자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결국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판결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기업 소유권은 주식 보유 여부가 핵심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스 주식은 이 전 대통령의 형 등 친척들이 대부분 갖고 있고 이 전 대통령은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 전 대통령이 회사 창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만약 이 판결대로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면 민사소송을 통해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나. 그럴 수도 없다고 한다.
형사적으로 실소유주이니 처벌받고, 민사적으로 실소유주가 아니니 되찾을 수 없다면 법리를 떠나 일반의 상식에 어긋난다. 이 문제는 앞으로 재판에서도 계속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5/20181005041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