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의 쓸모
1.
오늘날 신학교 교육은 무용한 것인가? 사울의 타락 이후 사무엘은 자신의 고향 ‘라마’로 돌아가 그곳에 ‘나욧’을 세운다.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선지자들을 가르치고 길러내려 했던 것 같다. 지금으로치면 신학교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라마 나욧에서 사무엘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만큼은 못되더라도 나름 걸출한 선지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선지자 교육에 실패한 것일까?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멋지게 쓰임받는 특출난 목회자들을 보면, 신학교의 교육과 시스템을 통해 길러진 사람이 아님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학교 교육은 무용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에게는 사무엘과 같이 비범한 인물도 필요하지만, 특출남 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보통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보통의’ 사람들도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아무리 특출나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은 있기 마련이며, 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역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오랫동안 교회와 신학교, 기독교 출판사 진영에 있어보니 한 가지 요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소위 명문대를 나온 이들, 혹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전문직 직업을 가진 엘리트 평신도들이 홀로 신학책을 읽으며 신학을 “독학”하면 아주 높은 확률로 산으로 간다는 것이다. 아니, 산 정도도 아니고 안드로메다로 간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그럴까 의아해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려려니 할 정도다.
신학의 독학이 위험한 이유는, 아주 높은 확률로 ‘교만’이 깃들기 때문이다. 신학책 몇 권을 읽고나면 이후부터는 ‘나는 아는데 너희는 모른다’는 자가당착에 빠져 거의 천하무적이 된다. 목사도 신학교수도 다 바보로 보이고, 다 나보다 한수 아래로 보이기 시작한다. “목사 주제에, 신학교수 주제에 감히 나에게 복음을 가르치려 하느냐?” 얼마전 페북에서 본 한 전문직 평신도의 댓글이었다. 그 역시 고작 몇 권의 신학책을 읽고 감동하여 안드로메다로 간 사람이었다.
이후 과정은 뻔하다. 다닐 만한 교회가 없게 된다. 어느 교회에 나간들, 어떤 목사의 설교를 듣든, (어떤 신학교수의 강의를 듣든) 다 하찮게 들리기 때문이다. 독학+교만의 조합 속에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평생 엉터리 신학 속에 ‘내가 최고다’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게 된다. 심지어 목사들, 교수들도 모르는 것을 내가 책으로 쓰고 강의도 해야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3
사실 신학교에 처음 입학한 신학생들 상당수가 저런 상태에 빠진다. 그러고보면 ‘신학’이라는 학문이 참 묘하다.
나만 다 아는 것 같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나만 깨달은 것 같고. 또 신학자들 이야기는 다 별거 아닌 것 같고, 다 그게 그거인 것 같고, 이미 내가 다 아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이게 바로 소위 신2병이다.
사실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만큼 깊이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거니까. 왜 ‘학부생들은 ‘안다’를 입에 달고 살고, 박사과정생들은 ‘모른다’를 입에 달고 살겠나? 원래 아무것도 모르면 다 아는 것 같은 법이다.
다행히 신학교에서 한 해 두 해 시간을 보내다보면, 신2병이 조금씩 치료된다. 신학이 얼마나 방대하며 또 얼마나 많은 공부를 요구하는지 깨닫게 되고, 자연히 그 앞에서 작아지고 겸손하게 된다. 또 자신이 배운 것이 목회 현장, 교회 사역에서 잘 통하지 않음을 경험하다보면, 과잉된 자의식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그러나 신학교 밖에서는 이러한 치료과정을 겪기 힘들다. 페이스북에서 유튜브에서, 신학책 몇 (십)권 읽은 평신도들이 평생을 신학공부하고 고민하고 인생을 바친 목회자들의 전문성을 비하하고 신학교 교육을 비웃는 모습을 볼 때,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본다.
4.
신학교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그 정도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물론 의사들 중에도 돌팔이가 있을 수 있듯이, 목사, 교수들 중에도 일부 엉터리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그정도는 하겠다”며 독학으로 공부한 의학으로 병을 진단하고 사람을 치료하겠다고 너나 할것없이 나서면 어떻게 되겠는가?
적어도 신학교는 신학을 접하고 혼자만의 엉뚱한 상상을 펼치며 안드로메다로 가지 않게 막아주고 신2병을 치료해준다. 이단에 빠지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아준다. 특출난 인물을 길러내진 못하더라도 보통의 자리에서 1인분은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물론 완벽하진 않다)
내가 생각하는 신학교의 쓸모다. 그 이상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정한 목회자는 신학교 시스템으로 길러낼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목회자들 중 신학교 교육으로 길러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신학교가 없다면 더 산으로 간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여전히 신학교(교육)가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이유다.
페이스북 글(2024 09 09)
이학명, 도서출판 학명 대표, 고든콘웰신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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