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수줍음
오늘날 한국교회 안팎에 확산되어 있는 성령에 대한 이해는 은사주의적이며 실용주의적이다. 성령 하나님을 은사, 예언, 환상, 방언, 신유 등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지닌다. 최덕성 교수님의 <성령론>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깨닫고 확인한 것은 은사주의적, 실용주의적 성령 이해가 정작 성경이 말하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성령론> 강의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나의 커다란 오해를 교정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에 대한 전체적이고 폭넓은 지평을 열어 주었다. 은사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된 나의 성령 이해를 바로 잡아 주었다. 무지, 편협, 오용, 남용 등을 일깨워 주었다.
성령에 대한 나의 학문적 지평을 넓혀주고 오해를 교정해 준 학습은 성령론 강의 첫 시간부터 곧장 시작되었다. 첫 강의의 제목은 ‘성령의 수줍음’이었다. 성령을 수줍음과 결합하여 설명한 이 제목은 난생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성령론 공부에 대한 기대를 잔뜩 부풀게 했다.
‘성령의 수줍음’은 얼핏 성령 하나님이 ‘수줍음의 신’이라는 말로 들린다. 성령은 열 일곱 살 소녀 같이 수줍음이 많은 분인가? 성령은 수줍음을 타는 분인가? 수줍어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지닌 신이라는 뜻인가? 성령을 받은 우리가 수줍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나는 상당 기간 교회 생활을 하면서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하고 교리반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성령의 수줍음’이라는 표현이나 용어를 들어보지 못했다.
최덕성 교수님은 ‘성령의 수줍음’이 존재론적 표현이 아니라고 말씀했다. 성령이 수줍음의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성령의 역할을 설명하는 수사적인 표현(rethoric expression)이라고 했다. 나무를 보면서도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최덕성 교수님은 숲도 보고 나무도 보는 종합적이고 통시적인 성령론을 소개했다.
<성령론>은 첫 시간 수업부터 나의 큰 호기심을 자아냈다. ‘수줍음’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첫 강의의 요점은 성령 하나님이 자기를 들어내기를 즐겨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자면 성령은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수행하고, 무엇을 이루는 분인가?
성령 하나님은 은사 부여에 주력하는 분이 아니다. 성령한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이시다. 성령의 주 사역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역사를 수행하는 일이다. 성령은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것들을 운행한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하신 구원 사역을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있는 자들에게 접목시킨다. 우리에게 생명 얻는 믿음을 부여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한다. 나아가 윤리적인 실천 곧 성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은사를 부여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도록 한다.
최덕성 교수님은 ‘수줍음’이라는 용어로 성령의 사역과 활동을 설명하면서, 성령은 자기를 앞세우는 분이 아님을 강조했다.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앞세운다. 성령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게 하는 일을 주도한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시켜 구원받게 한다.
‘성령의 수줍음’은 성령의 사역과 역할의 특성을 통틀어 제시하는 수사적인 표현이다. 성령의 존재와 사역과 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지평(horizon)을 열어주는 명칭이다.
<성령론>은 평소에 내가 교회에서 듣고 접하고 배운 성령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이 편협함을 자각하게 했다. 그동안 배우고 생각해 온 성령 이해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중심 초점이 과녁에서 빗나가 있음을 알게 했다. 나는 화살이 과녁의 중앙에 있지 않고 살짝 비껴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급우 수강생들의 생각도 동일했을 것 같다.
오늘날의 한국교회 주변의 성령론의 초점은 주로 은사 곧 방언, 신유, 예언, 환상, 입신, 직통 계시, 꿈, 쓰러짐, 웃음 등 은사주의, 체험주의, 실용주의에 몰려 있다. 나 자신도 성령을 주로 은사와 관련시켜 이해해 왔다.
최덕성 교수님의 강의에 따르면 성령은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다. 자연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했다. 구속사를 주도해 온 분이다.
둘째, 성령은 예수님의 잉태, 출생, 고난, 대속의 죽음, 부활 등을 가능케 하고 주도해 오셨다.
셋째, 성령은 우리와 그리스도를 연합(union)시킨다.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젖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한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b). 성령은 죄인이 의롭다고 칭함을 받도록 믿음을 부여한다.
넷째, 성령은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고, 기독인을 윤리적 실천으로 이끌며, 성화를 가능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거룩하게 살도록 도우신다.
성령 하나님의 활동 가운데 하나는 교회 사역에 필요한 은사들을 신자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일이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고린도전서 12장은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 사랑, 자선, 선지자, 복음 전도자, 목사, 교사, 능력 행함, 병 고침, 서로 도움, 각종 방언 말하기 등을 은사로 제시한다.
최덕성 교수님은 현대 방언 또는 방언기도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도행전 2장, 10장, 19장에 기록된 방언과 오늘날의 방언은 전혀 다르다. 오늘날의 방언은 대부분 방언 곧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방언기도이다.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자도 그것을 듣는 자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최덕성 교수님은 고린도전서 14장이 고린도 신전에서 유행하는 고린도 풍 방언이 교회 안에 들어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바 이를 경계하고 교정하도록 함을 강조했다. 고린도전서는 교정서신이다. 오늘날의 교회가 배우고 수용할 것이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계하고 거부하고 교정할 것을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라고 한다. 최덕성 교수님은 이것이 현대 방언을 지지하는 성경구절이 아니라고 한다.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이교 풍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므로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한다. 바울은 신비해 보이지만 이교적인 풍속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오늘의 교회 안에서는 성령을 방언을 포함한 직통계시, 신유능력, 예언, 환상, 기적 등과 동일시하는 풍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성령에 대한 오늘날의 은사주의 또는 실용주의 이해는 자칫 성령을 이런 것들과 동일시하게 한다.
주로 은사와 관련시키는 오늘날의 성령이해는 정작 성령에 대한 총체적이고 심도 있는 이해를 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종류의 성령 이해는 편협하고 지엽적이다. 성령에 대해 우리의 이해와 관심의 폭을 축소시키고 온전하고 완전하고 총제적인 이해의 지평을 가지는 것을 방해한다. 성령의 은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오늘날의 성령 이해는 과녁에서 벗어난 화살 같다. 성경의 가르침에서 크게 빗나간다.
성령론 첫 강의 곧 ‘성령의 수줍음’은 성령론 전체를 정확하고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지표였다. 최덕성 교수님의 성령론 강의는 시종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의 편협한 성령론 이해를 교정할 수 있었다. 궤도에서 이탈한 시선을 정상궤도에 진입하게 했다. 성령 이해의 지평을 지엽적인 것에서 총체적인 것으로 넒히게 했다.
하복연,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2학년
[편집자 주] 이 글은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이 2023년 봄학기애 개설한 <성령론>(최덕성 교수 담당)의 글쓰기 과제로 제출한 학술 에세이이다. 논지는 "오늘날의 은사주의적, 실용주의적 성령 이해는 성경이 말하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이다. 시작부분에서 진술한 이 논지는 마지막 부분에서 "성령의 은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오늘날의 성령 이해는 과녁에서 벗어난 화살 같다”로 마감한다. 주장(논지)과 논거(주장의 근거)가 일치한다. 성령론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 핵심들을 소개하면 ‘성령의 수줍음’이라는 제목의 첫 강의가 성령론 전체를 정확하고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지표였다고 한다. 학술 에세이 쓰기의 모범적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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