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과 현대 뇌 과학
현대 교회 안팎에 성행하는 ‘방언’은 과연 신의 언어인가?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특별한 영적 언어인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고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할 바를 하나님께 상달하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언어인가?
‘방언’은 상호간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을 말한다고 함은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엇을 고하는 ‘방언기도’를 의미한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는 방언 또는 방언 기도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이를 생경스럽게 여기는 신자들도 있다. 방언을 영적인 선물로 여기고 즐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경계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오늘날의 방언, 방언기도는 190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아주사 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순절주의 교회와 은사주의를 추구하는 그룹이 이것에 열광한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방언, 방언기도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듯하지만, 일부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최덕성 교수는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과정에 개설한 <성령론>(2023 봄) 강의에서 방언을 4주 간에 걸쳐 강의했다. 학교의 학생들 상당수는 방언, 방언기도를 한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평소보다 주의 깊게 강의를 청취했다.
최 교수의 강의는 성경적, 논리적, 신학적으로 충실한 바탕에서 이루어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연구의 결과로 보인다. 최 교수는 개혁주의 신학 전통의 방언 이해를 간명하게 소개하고 나서 성경이 말하는 ‘방언’을 지적으로 풀이했다.
최 교수의 강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방언은 언어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방언’는 각 민족, 부족, 국가의 언어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람 방언,’ ‘히브리 방언,’ ‘헬라방언’처럼 각 나라의 언어를 말한다.
둘째,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방언도 의사소통의 수단이었다.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임한 방언은 오늘날의 ‘방언 기도’가 아니었다. 자신도 타인도 알아듣지 못하는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니었다.
사도행전 2장, 10장, 19장에 나타나는 방언은 기독교의 출발을 알리는 신비한 기적 사건이었다. 사도적 권위를 보여준 말하기였다. 그것은 방언기도가 아니었다. 방언으로 신에게 무슨 비밀을 말하는 활동도 아니었다.
베드로를 포함한 예수의 사도들은 ‘하나님의 비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했다. 듣는 자들은 각기 자기들이 자란 곳의 언어로 이해했다. 이 현상을 ‘방언’(glossolalia)이라고 한다. 오순절 날의 방언은 오늘날 오순절파나 은사주의파가 강조하는 방언과 같지 않다.
셋째,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방언을 수용하라고 가르치지 않다. 고린도전서는 ‘교정서신’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물밀 듯이 밀려온 일련의 신비스런 소리현상, 고린도 신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을 보고 그것을 경계하라고 정중히 꾸짖는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릇 행하는 여러 가지들을 언급하면서 이를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넷째, 현대 방언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없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은 방언을 반어법적인 예증으로 제시한다. 방언이라는 것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지적한다. 바울은 이 말을 방언이라는 알 수 없는 소리 현상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으로 서술한다.
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식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은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하는 자들의 중얼거림 곧 자기도 알지 못하고 타인도 알아듣지 못하는 고린도 풍 방언을 금하라고 지도하면서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도입한 가르침이다.
고린도전서 14장의 핵심 가르침은 만사를 질서 있게 하라는 것이다. 무질서한 방언,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말하기를 금한다. 바울은 여러 가지 방언들을 구사했다. 아람어, 헬라어, 히브리어, 길리기아어를 말했을 뿐만이 아니라 라틴어도 이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자신도 “방언을 많이 말 한다”고 한 것은 여러 개의 언어를 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까지의 최 교수의 강의는 현대 방언에 대하여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강의는 실제적이다. 오늘날의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이는 방언은 수용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등지에서 일어나는 방언들은 환영할 만 한가 하는 실제적인 질문으로 연결된다.
다섯째, 현대 방언은 성령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인지 성령의 열매로 주어진 것인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방해할 목적으로 악령이 주는 것인지, 순전히 심리적인 현상인지 판단할 기준이 없다.
여섯째, 현대 방언을 사탄 역사의 결과로 판단할 권위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방언을 정당화 할 성경적 이론적 합리적 근거가 없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이 없다.
그러면서도 최 교수는 방언, 방언기도를 악령의 역사나 사탄 활동으로 단정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로하고 맺힌 카타르시스를 해소하게 할 목적으로 즉 영적인 답답함을 해소하게 할 목적으로 주는 것일 수 있다고 한다. 동시에 방언기도가 악령이 우리의 정상적인 기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여 하나님께 정상적인 기도를 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역사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영적인 현상과는 전혀 무관한 무의미하고 단순한 심리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요컨대, 최 교수는 현대 방언을 정당화 할 만 한 성경적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하며,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방언, 방언기도를 경계하고 조심하라고 거듭 말했다. 교회에서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방언을 하는 것을 삼가라고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 골방에서나 기도원이나 산속에서 기도할 때도 하는 방언기도까지 금할 까닭은 없다고 한다.
최 교수의 성령론, 방언 강의에 대해 몇 명의 수강생들은 격하게 반응했다.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학우들이 불만스런 반응을 보였다. 최 교수는 학문의 장에서 학문적, 이론적, 논리적 근거를 가진 논박을 기대한다고 했다. “나는 체험을 했다. 따라서 나의 주장이 옳다”는 논법은 호소력을 지닐 수 없다고 했다. 자기의 체험을 절대시하고 그것을 잣대로 성경을 해석함은 어리석다고 했다. 자기 체험을 신학적 판단의 기준을 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방언, 방언기도는 영적 성숙의 표지가 아다. 방언하는 자가 방언을 하지 않는 자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단도 아니다. 방언, 방언기도는 오히려 영적인 것을 돈을 주고 매립하는 타락한 시몬주의(Simonism)의 수단으로 오용된 소지가 크다고 한다.
방언, 방언기도에 관한 찬반 논쟁과 긴장이 팽배한 가운데, 뇌영상 과학자 팀이 의미심장한 연구를 내어놓았다. 미국의 펜실베니아대학교 의학부 영상의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2006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글의 제목은 “방언을 하는 동안의 뇌혈류 측정: 예비 SPECT 연구”이다.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동안 언어를 통제하는 뇌의 전두엽의 기능을 관찰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방언, 방언기도는 특정 종교 전통과 관련된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일컫는다.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자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현상을 경험하는 개인 곧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자는 그것에 큰 의미를 둔다.
과학자들은 방언, 방언기도를 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생리학적, 기능적 변화 여부를 연구했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자의 뇌 특히 전두엽의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활동이 크게 저하되었다. 작동하지 않았다고 함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피실험자들은 자신들이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통해 뇌를 움직이고 하늘의 언어를 말하도록 뇌를 통제하고 있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피실험자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증명한다. 방언, 방언기도 활동을 하는 동안 언어 센터를 제어하는 뇌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언어를 컨트롤 하는 기능 곧 의도적인 언어 제어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 때는 뇌전증(Epilepsy, 간질)이 발동하는 상태와 동일하다(The Measurement of Regional Cerebral Blood Flow during Glossolalia: A Preliminary SPECT Study," Science Direct, Psychiatry Research: Neuroimaging 148, 2006, 67-71).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뇌로 하여금 언어기능을 통제하도록 창조했다. 정상적인 사람은 뇌의 정상적인 작동 아래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뇌는 언어 채널로 의사, 감정, 지식, 의지 등을 표현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정상적인 뇌 기능이 활동한다.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하나님은 창조 시 우리의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통해 인격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설계하고 만들었다.
현대 방언 주창자들은 자신도 모르고, 타인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방언’ 또는 ‘방언기도’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조차 알 수 없을 것으로 들리는 소리를 방언, 방언기도로 여기고 그것에 집착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타인도 알 수 없는 말로 말하거나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언어를 통제하는 뇌의 기능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실까? 연구 결과를 빌려 말하자면, 뇌전증 즉 간질 환자의 발작상태와 동일한 뇌 활동으로 인간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정상적인 뇌의 기능을 통한 온전한 언어로 소통하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하나님의 영이 자신들의 뇌를 움직이고 모종의 말, 신의 언어, 천사의 언어를 말하도록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뇌 과학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동안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뇌가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뇌 과학의 연구 결과는 성령론과 더불어 방언, 방언기도가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신학도. 신학자, 영적 지도자들에게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한다.
정현진.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2학년
[편집자 주] 이 글은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이 2023년 붐학기애 개설한 <성령론>(최덕성 교수 담당)의 글쓰기 과제로 제출한 학술 에세이이다. 논지는 "하나님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정상적인 뇌의 기능을 통한 온전한 언어로 소통하기를 원하시지 않을까?"이다. 주장(논지)과 논거(주장의 근거)가 일치한다. 성령론 과목에서 배운 여러 가지 요점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도입하여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학술 에세이 쓰기의 모범적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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