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구조의 결과인 꽃 한송이
구조주의
사람들은 흔히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사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문제들을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이런 문제들은 문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중 어떤 한두 가지 요소를 수정하거나 제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논의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차원의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구조적인’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이 말은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으며, 또 현대의 인문사회과학 논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우리는 이 글에서 이러한 몇 가지 문제들을 중심으로 20세기 사상사에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구조’와 관련된 논의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인간이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보며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구체적인 현상을 지배하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구조’를 중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양한 양상으로 수많은 논쟁의 불씨를 지펴왔다. ‘이상계’와 ‘현상계’를 대립시킨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사유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본질로서의 구조’와 ‘현실[실재]로서의 현상’ 사이의 대립은 오래 전부터 인간현상을 인식하는 데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플라톤은 인간의 인식세계를 ‘현상계’와 ‘이상계’로 나누고 현상계를 이상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플라톤의 이원론은 구체적인 현상이 추상적인 구조에 종속된다고 본 현대 구조주의의 출발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굳이 플라톤의 이원론을 거론할 것도 없이, 고대 이후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눈 종교적 사유에서 신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보편화되어 있었다.
20세기 서구 사상사에서 ‘구조’ 개념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20세기 초 ‘구조주의’가 등장한 이후 거의 모든 사유체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구조주의와 관련되어 그 속에서 형성, 전개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조언어학, 구조인류학, 후기구조주의 등이 구조주의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었다면,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은 그 반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구조’ 개념의 정의를 위한 시도와 ‘구조’를 둘러싼 논란은 20세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렇게 해서 구조 개념은 실제로 여러 수준에서 사상 논쟁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구조 개념과 구조주의는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논쟁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조란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태적인 뼈대를 의미하는 것이며, 구조주의는 그러한 뼈대를 탐구하고자 했던 학문의 한 방법론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개념이나 태도에서 정태적일 수밖에 없었던 구조 개념과 구조주의가 과연 어떻게 해서 20세기 다양한 사상 논쟁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갈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개념과 구조주의가 촉발시킨 논쟁이 필연적으로 인류사상사에서 ‘인간 주체’가 차지하고 있던 절대권을 뒤흔들어버렸다는 데에 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러한 변화는 20세기 벽두에 언어학 분야에서 먼저 이루어진다. 즉 20세기 초 언어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체계’ 개념이 도입된 뒤 인간현상에 대한 인식방식은 아주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언어현상에 대한 실증적, 역사적 연구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구조언어학’은 개별적인 언어현상들을 지배하고 있는 체계를 파악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했다. 사실 대상에 대한 실증적, 역사적 연구는 비단 언어학 분야에만 한정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19세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받아들여졌던 인식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체계’ 개념은 이러한 실증적이고 역사적인 지적 풍토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언어학 분야에만 한정된 ‘체계’에 대한 관심은 곧 인류학 분야를 거쳐 인문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체계’ 개념에 대한 논의는 ‘구조’ 개념에 대한 논의로 변모했으며, 그 적용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 문제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보다는 그것을 지배하는 추상적인 법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구조주의의 기본 입장에서 생겨난다.
현대 언어학에 ‘체계’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학 연구에서 개별적인 언어현상이 아니라 언어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소쉬르 언어 연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발화(發話)인 ‘파롤(parole)’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는 것이다. 파롤이란 체계 기능을 하는 ‘랑그(langue)’와는 무관하게 저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실현되는 구체적인 것이다. 소쉬르는 이처럼 파롤에 대한 관심을 배제함으로써 언어활동의 핵심적인 요소, 다시 말해 인간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것에 대해 구체적인 것을 말한다는 사실에 대한 관심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려버리게 된다.
구조언어학에 대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인간 언어에 대한 논의를 추상적인 체계의 랑그에서 시작함으로써 발화 행위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배제해 버렸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 이후 구조주의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지배하는 선험적인 구조를 가정하고 여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간현상의 구체적인 양상을 중시하는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해 왔다.
구조주의가 배제한 구체적인 인간현상에 대한 관심은 ‘현상학’이라는 이름 아래 모을 수 있는 다양한 사유방식들에 의해 복원된다. 1950년대 이후 프랑스 문단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한 신비평 논쟁은 대부분 구조주의와 관련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구비평과 신비평 사이의 논쟁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실증적 합리주의와 텍스트 자체의 구조를 찾아내려는 구조주의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감추어진 논쟁과, 주체와 의미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폴 리쾨르(Paul Ricoeur)와 레비스트로스의 논쟁은 구조주의와 직접적인 관련 속에서 벌어졌다. 나아가서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난 구조주의 진영 내부에서 일어난 논란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의 중심에는 항상 ‘구조’와 ‘현상’의 대립이라는 인간사유의 중요한 관심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듯 구조를 중시하려는 입장과 현상을 중시하려는 입장은 서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20세기 사상사를 다채롭게 수놓았다. 리쾨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조’와 ‘현상’ 사이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 논쟁은 인간의 삶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들이 긴장 상태에서 갈등하고 있는데, 이들은 각기 나름대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분석과 현상이해는 갈등관계에 있는 다양한 해석들 중에서 각기 다른 하나의 진영을 이루고 있다.
사상의 역사는 한마디로 논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시대에는 몇 가지 주도적인 사상체계들이 긴장상태로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주도적인 사상체계가 바뀌어왔으며, 그 과정에는 항상 치열한 논쟁들이 있었다. 새로운 사유는 기성 사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스스로 기성 사유로 성장했으며, 그 사유는 또 다른 새로운 사유의 지양과 극복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구조주의는 구체적인 현상을 중시하려는 실증주의를 지양,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확립된 사유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주의 역시 새로운 모습을 띠며 나타나는 다양한 사상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쉬르는 언어 ‘체계’로서의 ‘랑그’와 언어 ‘사용’으로서의 ‘파롤’, 그리고 주어진 시점의 언어 ‘상태’를 말하는 ‘공시태(共時態, synchronie)’와 상태의 ‘변화’를 말하는 ‘통시태(通時態, diachronie)’를 구분하고, ‘랑그’와 ‘공시태’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쉬르는 언어학을 통해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전개에 새로운 면모를 부여한 것이다. 소쉬르는 랑그 개념을 통해 인간의 언어활동을 구체적인 현실과 유리된 추상적인 언어 상태로 가정했다. 그는 또한 공시태를 강조함으로써 인간 언어를 역사적인 맥락과도 분리했다.
언어에 대한 소쉬르의 주장에 기초한 ‘랑그언어학’은 개인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인 맥락의 차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언어현상을 중요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랑그언어학은 우발적이고, 가변적인 사건인 발화를 언어연구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구조를 중시하는 사람들과 현상을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기도 하다. 사실 구조론자들과 현상론자들 사이의 차이는 말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과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수용 여부에서 생겨난다.
현대 언어학 논의에서 구조 개념이 등장한 이래 언어 인식에 관한 문제는 현대의 인문사회과학 논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것은 리쾨르의 말대로 언어가 “이해가 이루어지는 장(場)”(『해석들의 갈등』 p.14)으로 “온갖 이해가 나타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고 항상 언어 속에서”(『해석들의 갈등』 p.15)이기 때문이다. [『해석들의 갈등』(P. Ricoeur, Le conflit des interprétations, Seuil, 1969.)]
구조언어학 이후 언어를 ‘기호(記號, signe)’의 차원에서 다룰 것인가(기호학적 관점), ‘의미(意味, sens)’의 차원에서 다룰 것인가(의미론적 관점) 하는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거리를 제공해왔다. 게다가 이 문제는 다양한 분야의 이해양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내적인 차이에 의해서만 구분되는 ‘기호’와,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되는 ‘의미’의 문제는 삶에 대한 인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계 안에서 닫혀 있는 기호는 외부세계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기호는 외부세계의 어떠한 변화와도 단절된 순수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기호론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비판은 체계 속에 갇힌 기호 차원의 논의가 인간 언어와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없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기호와 그 기호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영역인 ‘담론(談論, discours)’의 영역이 문제시된다. ‘기호’와 ‘담론’의 구분은 언어체계가 외부세계와 맺은 관계를 고려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생겨난다. 하나의 기호는 외부세계와 무관하게 다른 기호들과 맺은 관계에 따라 가치를 지니지만, 담론은 항상 외부세계의 지시대상을 갖는다.
언어 연구에서 시작한 대상에 대한 구조적 접근은 그 효율성으로 인해 재빨리 인문사회과학 전반으로 확대 적용되었다. 트루베츠코이는 구조적 접근의 확산에 대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원자론을 구조주의로, 개체주의를 보편주의로 대체하려는 모든 학문 분야의 경향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말로 20세기 전반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N. Trubetzkoy, La phonologie actuelle, Psychologie du langage, 1933, pp.245-246; 에밀 벤베니스트, 황경자 옮김, 『일반언어학의 제문제1』, 민음사, 1992, 139쪽에서 재인용.]
리쾨르 또한 “1960~1970년대에 걸쳐 프랑스에서는 레비스트로스 저술의 영향으로 신화 전체와 언어, 그리고 사회 구조의 체계적인 조직화라는 생각이 광범위한 신용을 얻었다”라는 말로 20세기 후반의 지적 분위기를 요약하고 있다. [P. Ricoeur, Réflexion faite, coll. 〈Philosophie〉, Esprit, 1995, p.32.] 이러한 언급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현대 언어학에 새로운 방향을 도입한 ‘구조적’ 접근이 인문사회과학의 사유 전반을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구조적 접근의 이러한 확산은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그것은 또한 여러 차원에서 비판적 접근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구조주의와 그 확산에 대한 비판이 구조 개념과 그에 기초한 구조분석 자체의 유효성을 전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구조 개념의 확대 적용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쪽에서도 여전히 구조 개념의 유효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을 따라가다 보면, 구조 개념 자체에 어떤 변화를 주고자 하는 태도를 만나게 된다. [출처 구조주의와 그 이후, 김종우, 2007.6.5, ㈜살림출판사 - 살림지식총서 289.]
구조 인류학은 무엇인가?
랑그에 대한 소쉬르의 논의에서 시작해 음운론 연구를 통해 진전된 체계와 구조에 대한 논의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의 등장과 더불어 그 적용 영역이 현저히 확장된다. 그에게 오면 ‘언어현상’에 한정해 적용되던 체계와 구조 개념이 인간의 ‘정신세계 전체’로 확대 적용되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에게 구조란 “모든 정신에 공통되는 근본적이고 구속적인 속성”을 의미한다. [Cl. Lévi-Strauss, "Réponses à quelques questions", Esprit, 1963, p.631.] 그에게 구조분석은 “정신생활의 기본현상, 즉 정신생활을 조건짓고 일반적인 형태들을 규정하는, 무의식적 사고의 층위에 놓이는 기본현상”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J. Parain-Vial, Analyses structurales et Idéologies structuralistes, Edouard Privat, 1969, p.106.]
그만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은 특정 사회집단을 구성하는 ‘인간정신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러 구조분석이 더는 언어현상에 대한 연구에만 한정된 개념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이제 인간의 문화현상 전체에 대한 연구로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 된다. 레비스트로스 또한 처음에는 관계의 체계를 사용해 원시사회의 친족관계를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곧 신화체계 전반으로, 나중에는 인간의 정신생활 전반으로 구조 개념을 확대 적용해나가기에 이른다. 즉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확립한 자신의 구조주의적 방법을 『야생의 사고』에 이르러 현저하게 확대시킨다. 여기서 그는 ‘의미의 대수학’을 정립하고자 한다. 즉 그의 생각은 “문화적 행동이 정보를 전달해주는 능력이 있다면 그런 문화적 코드가 출현하는 코드는 대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드먼드 리치, 이종인 옮김, 『레비스트로스』, 시공사, 1998, 62쪽.]
이를 보여주기 위해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 야콥슨 등이 제시한 언어학의 모델에서 출발하고 있다. 리쾨르의 지적대로 레비스트로스에 와서 확립된 “구조주의의 방법은 언어학적 모델을 인류학과 인문과학에 적용한 것에서 유발되었다.”(『해석들의 갈등』 p.35.) 리쾨르는 구조인류학의 기원에 대해서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구조주의의 기원에서 우리는 소쉬르와 그의 『일반언어학 강의』와 무엇보다도 트루베츠코이, 야콥슨, 마르티네 등과 더불어 언어학에서 엄밀한 의미의 음운론적 방향설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과 함께 체계와 역사 사이의 관계 전복을 목격하게 된다.(『해석들의 갈등』 p.35.) 앞서 지적한 랑그와 파롤에 대한 소쉬르의 구분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분석에서도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한 언어의 화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단어, 문법, 억양 규칙들을 사용해서 자신만의 발화를 재구성한다. 레비스트로스는 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적 규약, 다시 말해 음식, 행동, 의복 등에 관한 규약을 일종의 랑그로 본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한 사회, 한 문명이 지닌 이러한 문화적 규약을 탐구하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음운론적 혁신이 현대 인문사회과학에 가져다 준 성과에 대해 “음운론의 탄생은 언어학의 관점만을 혁신한 것이 아니다. …… 음운론은 핵물리학이 자연과학 전반에 대해 행한 것과 같은 혁신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구조인류학』 p.39)고 평가하고 있다. 『구조인류학』(Cl. Lévi-Strauss, Anthropologie structurale, Plon, 1985.) 레비스트로스 역시 처음에는 단지 “친족 용어가 음소처럼 의미작용의 요소들”(『구조인류학』 p.40)이라는 입장을 전제로 음소체계와 친족명칭이 유사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데에 만족했다.
음소와 친족 명칭, 나아가 신화소들이 자신이 속한 체계 속의 상호관련에 따라서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생각은 신화의 구조분석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와서 체계적으로 정립된 구조주의는 확산을 거듭함으로써 소통, 의미작용, 코드, 메시지, 담론 등의 많은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들의 의미 확장과 더불어 구조주의는 실존주의 진영과 해석학 진영을 비롯한 현대의 다양한 사상들과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기상 교수 글
최충산 페이스북 글 옮김(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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