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형 칼빈주의를 극복하라/ 아브라함 카이퍼
주: 아래의 글은 한국복음연합(TGC, 2020.05.4.)에 게재된 것이다. 글쓴이는 김은득 목사이다.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글에 나오는 아브라함 카이퍼는 192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레이스앰 메이첸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한 것은 1929년이다. 글쓴이는 자신의 글을 일인칭으로 표현하여, 카이퍼의 역사적인 메시지들을 가지런히 담고 있다. 미국형 칼빈주의 문제점을 잘 지적한다. 참고로 이 글을 읽으면 네덜란드형 칼빈주의가 정답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칼빈주의를 문화에 제한하여 이해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복음을 주변으로 내몬다. 카이퍼의 네덜란드개혁교회는 2020년 현재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다. -<리포르만다> 편집자 주-
한국 교회 성도 여러분, 제가 1898년 가을 뉴저지의 아름다운 한 신학교(Princeton Seminary)에서 세계관으로서의 칼빈주의를 주창할 때, 나름 예상할 만한 칼빈주의의 장밋빛 미래로 인해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큰 신학교로서 훌륭한 교수진과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유했고, 특히 수많은 장서와 새로운 신간들이 가득찬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제가 설립한 자유대학교보다도 더 많은 (외국) 학생들을 유입하고, 미국 내 정통 칼빈주의의 최후 보루의 역할을 넉넉히 해내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프린스턴에서 칼빈주의를 강연할 때, 저는 그저 미국의 한 신학교가 아니라, 미국 전체를 대상으로 강연한다고 느꼈습니다. 아니, 저는 비저너리(Visionary)답게, 유럽에서 시작한 칼빈주의가 미국 전체를 너머 아시아로, 궁극적으로 전세계로 확장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미국 칼빈주의에 장밋빛 미래는 없다(There is clearly no rosy future awaiting Calvinism in America)”고 단언한 제 후배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예상이 더 맞아 떨어졌습니다.
저와 달리, 왜 바빙크는 미국 칼빈주의에 대해 비관적이었을까요? 더욱이 미국의 경우는 청교도로 상징되는 칼빈주의가 자체 건국에 이념적 영향을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우선 제가 간과한 것은 1890년대 프린스턴신학교의 상황이었습니다. 1893년에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가 그랜드래피즈의 작은 신학교(Theological School in Grand Rapids,현재의 Calvin Theological Seminary)를 떠나 프린스턴의 새로운 성경신학 분과의 학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인간적으로 보스가 그 조그만 시골 신학교에서 온갖 격무에 시달리며,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더 좋은 환경의 신학교로 옮기는 것을 매우 격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프린스턴신학교 입장에서 보스의 임명은 찰스 브릭스(Charles A Briggs) 박사가 뉴욕의 유니온신학교(Union Seminary)에서 성경 신학을 조직 신학과 완전히 분리하면서 정통주의(특히, 프린스턴을 향해)를 공격하고 자유주의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대한 방어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반세기의 장로교 역사, 아니 더 나아가 미국 기독교 역사는 유니온의 공적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공론장에서 유니온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장로교단 내에서조차 프린스턴보다 더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냅니다. 20세기 초반 유니온의 공공성에 대해 물으신다면, 저는 폴 틸리히(Paul Tillich),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디트리히트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이런 프린스턴에서 유니온으로의 공적 권위의 이동은 이미 바빙크에게 보낸 보스의 개인적 서신에도 잘 드러납니다: “프린스턴에서 우린 투쟁 중이야. 그런데 어떤 승리를 이뤄낼지 확실치 않아. 가장 최악은 독일 신학과 역사비평주의가 미국의 모든 교단, 모든 신학 분과에서 강력하게 나타난다는 점이야. 심지어 브릭스의 극단적 경우에서조차 우리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고 있으니 말이야.”
이런 면에서, 프린스턴에서 저를 스톤 강연(Stone Lectures)의 스피커로 초대한 것은 미국에서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는 프린스턴식 정통주의에 대한 변호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신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자유주의의 도전 앞에서 프린스턴을 변호하러 미국에 갔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 칼빈주의자들에게 자유주의자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공공성을 회복하라고 도전하러 갔던 것입니다. 바로 세계관으로서의 칼빈주의를 통해 종교, 정치, 학문, 예술 등의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라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프린스턴과 웨스트민스터로 대표되는 미국 개혁주의 신학교는 교리적 색채를 매우 강하게 띄는 소위 신앙고백적(confessional) 신학교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신앙고백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신학과 교단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 이후 현대신학에서 신앙고백적이라는 의미가 신학이나 교단 자체의 헌법조항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축소되었지만, 사실 종교개혁가들, 특히 칼빈(Calvin)이 염두하고 17세기의 개혁신학자들이 생각한 신앙고백적(confessionalization)이라는 의미는 종교의 영역을 너머 개혁파 대학교(제네바대학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레이든대학교 등)를 세우고, 개혁파 (도시) 국가(제네바, 취리히, 네덜란드 등)를 설립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정교가 분리된 사회고, 더이상 크리스텐덤은 불가능한데, 어떻게 그런 앙시앵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관으로서 칼빈주의를 강연할 때, 바로 포스트크리스텐덤(post-Christendom) 사회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트뢸취(Ernst Troeltsch)를 인용하자면, 국가의 종교가 된 교회 모델(the church type)과 그 국가 종교에 속하지 못한 섹트 모델(the sect type)로 기독교 교회의 사회적 모델을 구분합니다. 교회 모델은 국가 내 공공성을 획득하는 강점과 달리, 교리적 순수함이 훼손될 수 있다면, 섹트 모델은 정반대로 교리적 순수함을 지키는 강점에 비해 공공성을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칼빈주의는 역사적으로 교회 모델을 취하였지만, 개혁파 국가에서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면서도 공적인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통주의 교리 훼손을 근거로 국가 교회(Nederlandse Hervormde Kerk, NHK)와 분리하여 새로운 개혁파 교단을 세웠을 때, 대두된 비판이 섹터리안(Sectarian)으로서 공공성을 어떻게 획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계관으로서의 칼빈주의를 주창한 이유인데, 충분히 교리적 순수함을 지키면서도 공공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미국에서는 용어나 개념, 혹은 현상들을 한 측면으로 축소 혹은 환원하여 강조하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Evangelicals이라는 용어는 유럽에서 기독교인으로 통용되지만, 미국에서는 복음주의자로 축소 혹은 환원되어 사용됩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아브라함 카이퍼(American Abraham Kuyper)로 불리는 메이첸(J. Gresham Machen)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설립식에서 제가 네덜란드에서 이룩한 성취를 웨스트민스터의 이상적 모델로 제시하면서 제 강연(Lectures on Calvinism)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메이첸이 인용하면서 강조한 것은 모든 삶의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관이 아니라 교리적 순수함을 위한 것입니다. 저와 바빙크의 뒤를 이어 교의학 교수가 된 헤프(V. Hepp)는 메이첸을 가리켜 “칼빈주의 세계관을 위한 전사(Warrior for the Calvinist Worldview)”로 지칭했는데, 실상은 세계관을 정통 교리로 축소 혹은 환원시켰던 셈입니다.
물론 메이첸과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그 비전에 걸맞게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워치독(watchdog)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특히 한국 정통 칼빈주의자들에게 거의 독보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설립한 자유대학교의 명칭이 교단과 정부와 관련해 자유롭다는 것을 강조했듯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역시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교권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신학교를 지향했습니다. 특히 설립 당시의 교수진들, 대표적으로 반틸(Van Til), 카이퍼(R. B. Kuiper), 스톤하우스(N. B. Stonehouse)에서 보여지듯이, 웨스트민스터의 화란 커넥션과 지향성은 엄청났습니다. 무엇보다 메이첸과 저는 교회와 사회 전반에 만연한 현대주의(modernism)에 대항하여 새로운 교단과 학교를 세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다르게, 메이첸과 미국식 칼빈주의는 전형적인 섹터리안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공공성 획득은 고사하고, 교리적인 순수함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계속된 분열과 갈등에 처하게 됐습니다. 메이첸은 먼저 개신교 세계에서 자유주의에 대항했고, 이후 미국장로교단(PCUSA)과 프린스턴신학교가 자유주의에 대해 충분히 전투적이지 않은 것에 실망하여 새로운 교단(Presbyterain Church in America, PCA)과 신학교를 설립합니다. 이런 분열적 사고방식은 메이첸의 후예들에게도 이어져, 이후 PCA교단은 메이첸과 궤를 같이 하는 5,549명의 멤버들로 이뤄진 OPC(Orthodox Presbyterian Church)교단과 분열됩니다.
제가 메이첸에게 인간적으로 아쉬운 면은 그가 너무나 전형적인 미국 남부 명문가(Southern aristocracy)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당시 남부 귀족층에서 보여지는 “공격 아니면 죽음(attack and die)”의 철학을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약간이라도 자신의 비전과 일치하지 않는 대상들과는 연대하지 않는 경향성을 보여줍니다. 반틸 이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이런 순혈주의 경향성은 더욱 강화됩니다. 바르트가 개혁주의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 즉 바르트가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주된 신학적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반틸은 가장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인 바빙크조차 개혁교의학에 중세철학(대표적으로 로고스 이론)을 활용하기 때문에 충분히 성경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합니다.
더 나아가 OPC교단은 자체의 모든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타교단과 신학교와는 어떤 공식적인 왕래, 심지어 서신 교환까지 거부합니다. 이것이 가져다 준 중요한 결과 중 하나가 OPC 50주년에 그 교단의 멤버가 겨우 19,422명이었다는 점입니다. 놀랍게도 메이첸이 웨스트민스터 설립식에서 인용한 제 칼빈주의 강연이 일종의 예언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개혁교회가 큰지 작은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건강한지 그리고 생명으로 빛나는지가 문제입니다."
교리적 순수함만을 내세우며 신앙의 공공성을 멀리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교회의 모습일까요? 한국 교회 여러분, 제가 천국에서 메이첸과 반틸을 만나면 반드시 바빙크가 쓴 아티클인 <교회의 분열에 앞서: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하여>를 선물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메이첸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설립식에서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에 대한 바빙크의 주장을 인용했다면, 미국 개혁주의의 역사는 확실히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부디 한국 교회가 미국 칼빈주의의 과오를 그대로 밟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의 순결과 공공성이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면, 오해하지 마십시오. 바빙크가 위의 책에서 잘 제시해주었듯이,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 즉 공공성은 성경이 주장하고 기독교의 역사가 지지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동일하게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게서 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롬 11:36).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의 거룩한 공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와 성도의 교제(the communion of saints)가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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