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을 옹호하는 자들은 고전14:2("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을 제시하면서 방언이야말로 오랜 시간동안 기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마귀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만 이해하실 수 있는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우선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방언은 단수로서 바울이 금지한 이교도적 방언입니다. 이창모 목사님은 성경신학적으로 인간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둠으로 방언이 기도의 언어라고 주장하는 신오순절주의자들의 신학적 헛점을 잘 드러내셨습니다.
이글에서는 14:2을 문법적으로 분석함으로서 방언이 결코 기도의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봤을 때 만일 신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방언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하나님 앞에 반드시 여격관사(tw)가 와야 합니다. 헬라어 문법상 주격보어 앞에는 관사가 오지 ...않아도 됩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는 하나님이다”는 문장의 하나님 앞에 관사O’(호)가 빠져 있는 것을 근거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거부하지만 이는 그들이 주격보어 앞에는 관사가 오지 않아도 된다는 문법을 알지 못하기때문에 이런 주장을 한 것입니다.
영어에서도 주격보어의 경우 관사가 오지 않습니다. He is king. Jesus is Lord. 라고 주격보어 앞에 관사가 오지 않아도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격일 경우에는 다릅니다. 호격일 경우에는 관사를 붙이기도 하고 안 붙이기도 하지만 여격일 경우 즉, 간접목적어가 “하나님”일 경우 반드시 그 앞에 관사가 와야 합니다. 관사가 오지 않으면 God이 아닌 god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격관사가 붙지 않으면 이는 그냥 일반적인 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여격 관사가 오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아닌 일반적인 신에게 기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17:23에도 본문과 같은 구문이 나오는 데요. “Agnwstw Theo”, 여기도 일반적인 신에게 드리는 제단이기에 관사가 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관사가 붙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헬라어문법을 무시하고 백보양보해서 하나님이라고 가정해보십시오. 실지로 어떤 학자들 중에는 사본상의 실수로 관사가 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아듣는 자가 없는 말을 하는 기도, 그 기도가 하나님과 소통이 될까요? 그리고 그 기도가 응답이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14절에서 이런 기도가 무익함을 교훈합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여기서 언급된 방언은 “알 수 없는 말”로 단수로 표시된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아무리 많이해도 마음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즉 이런 기도는 경건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지껄이는 말을 많이 한다고 더 경건해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만일 이런 기도로 경건해졌다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이런 은사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마땅히 버려야했지만 버리지 못함으로 바울의 책망과 함께 신앙교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금지하신 중언부언하는 기도로 이방인의 기도에 불과합니다. 또한 이런 기도가 경건의 수단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바울은 이 말씀을 가정법으로 썼습니다. 가정법이란 현재의 사실의 반대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표현할 때 쓰는 것입니다. 만일 이해할 수 없는 말, 이방종교에서 행하던 방언이 경건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면 바울은 이것을 가정법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인들이 이런 방언을 지속하자 15-17절에서 이런 방언으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함으로 교회에 전혀 덕이 되지 않음을 교훈한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단지 자신만 드러내고 높이는 이기심의 도구 밖에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