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기독교 인사
[CBS TV보도부 나이영 기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개신교계 인사 51명이 포함됐다. 신사참배를 주도했던 장로교 홍택기 목사, 감리교 앙주삼 목사, 성결교 이명직 목사 등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장로교회는 1938년 27회 총회 때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내용의 신사참배 결의문을 채택하고 곧바로 평양 신사를 찾아 참배한다. 당시 총회장으로 신사참배를 주도했던 홍택기 목사와 부총회장 김길창 목사, 그리고 당시 서기로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이듬해 일제의 지원 아래 44살의 나이로 총회장에 오른 곽진근 목사 등이 모두 친일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역시 이름을 올린 감리교 초대 총리사 양주삼 목사는 "기독교인은 종교인이기에 앞서 국민"이라며 신사참배를 주도했고, 광복후에는 "출옥 성도나 나머지 성도나 고생하기는 매한가지였다"는 논리로 교권을 유지한 인물이다.
갈홍기, 이동욱, 심명섭 등과 함께 감리교단의 대표적인 친일 목회자로 꼽히는 정춘수 목사도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됐다. 정춘수 목사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하나였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을 계기로 변절해 일제 말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신사참배를 독려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감리교의 대표적 신학자였던 변홍규 목사는 처음에 정춘수를 중심한 혁신교단에 반감을 표시했으나, 결국 회유 당해 1942년 혁신교단 통리로 취임했고 일본기독교조선교단 통합에도 참여했다.
성결교 초대 총회장으로 성결교단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한 이명직 목사도 조선합병을 정당화하고 신사참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평양신학교가 폐교당한 뒤 조선신학교 설립에 앞장섰던 송창근 목사와 초대 교장으로 임명돼 친일행각에 나섰던 채필근 목사도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됐다.
친일교단인 일본기독교조선교단 통리를 맡았고 해방 후에는 현 NCCK 전신인 한국기독교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던 김관식 목사도 일제말 친일행각 때문에 친일인사로 분류됐다.
오문환, 장운경 등과 함께 '성지순례'란 이름으로 일본 신사를 순례한 김응순 목사는 1942년 장로교 총회장에 당선된 뒤 전국교회의 종을 모아 전쟁물자로 헌납하는 등 친일행각에 앞장서 명단에 올랐다.
이밖에 장로교 부일협력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던 정인과 목사, 어린이 전도에 힘썼으나 일제말 친일행각에 나섰던 장홍범 목사, 충북지역 대표 목회자였던 구연직 목사, 기독교청년운동가로 광복후 YMCA 총무를 역임했던 구자옥, 조선혁신교단 통리를 역임했던 전필순 등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의 종교 통제방침에 협력해 교회 변질을 주도하고 교리를 왜곡시킨 자, △변질된 혁신교단, 통폐합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 교파 단위의 정동연맹과 총독연맹, 비행기헌납기성회 등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한 자, △기독교신문 등 친일 성향의 기독교 신문 잡지 발행인과 주필, 주간을 역임한 자, △기고와 광고, 강연 등으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반복적으로 미화 선동한 자를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종교계 인사는 모두 182명으로 개신교 51명, 천도교 29명, 불교 54명, 천주교 7명, 유림 41명이다.
다음은 개신교계 친일인사 51명의 명단이다.(가나다순)
갈홍기, 강도원, 곽진근, 구연직, 구자옥, 김관식, 김길창, 김수철, 김영섭, 김우현, 김응순, 김응태, 김인영, 김종대, 김진수, 김형숙, 남천우, 박연서, 변홍규, 송창근, 신후식, 신흥우, 심명섭, 양주삼, 오문환, 유각경, 유일선, 유재기, 윤치영, 윤하영, 이동욱, 이명직, 이문주, 이용설, 임학수, 장기형, 장운경, 장홍범, 전필순, 정상인, 정순모, 정인과, 정춘수, 조승제, 채필근, 최지화, 최활란, 한석원, 홍병선, 홍택기, 황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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