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권위
송인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는 일반적으로 ꡒ권위ꡓ와 관련해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 가운데 어느 한 쪽으로 치닫는다. 우선, 권위를 권위주의와 그릇되게 동일시함으로써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압제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폐습에 넌더리를 내면서 아예 권위 자체의 포기를 부르짖는 이도 있다. 그러나 권위를 ꡒ방해받지 않고 무엇인가를 수행할 수 있는 자유ꡓ로 정의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권위는 지도자가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기 때문에 권위주의든 반(反) 권위든 그 어느 한 쪽과도 동맹을 맺을 수가 없다.
권위를 이상과 같이 정의할 때, 두 가지 종류로의 대별이 가능하다. 하나는 ꡒ실질적 권위ꡓ(epistemic authority)로서 개인이 획득한 바 지식, 경험, 기술을 말한다. 실질적 권위에 연관된 항목들은 일단 개인이 획득하면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보유자 자신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ꡒ직분적 권위ꡓ(deontic authority)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는 당사자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것으로서, 주로 직책, 역할, 호칭과 연관이 된다.
목회자의 경우에도 공동체에서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두 종류의 권위가 모두 필요하다. 우선, 그에게는 실질적 권위 - 지식, 경험, 기술 - 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목회자는 다른 그리스도인과 달리 ꡒ말씀과 가르침ꡓ, ꡒ목양ꡓ, ꡒ리더십과 다스림ꡓ 등 최소 세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항목과 관련하여 지식, 경험, 기술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 말하자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해서도 지식, 경험, 기술 - 신학 지식,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 각양 메시지 전달 방식(회중 전체를 대상으로 설교나 강의, 소그룹 교육, 1:1 양육) 섭렵, 성경에의 각종 접근 방식(QT와 묵상, 암송, 귀납적 성경 공부, 주해 작업) 숙달 등 - 이 있어야 한다.
또 목회자는 양떼를 돌보는 목양의 분야에 있어서도 실질적 권위, 곧 지식, 경험, 기술 - 목양의 근본 파악, 목회자와 다른 교우들 사이의 관계 정립, 목회 현장에서 겪는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력, 자기 나름대로의 ꡒ목양ꡓ 철학 수립, 양떼를 돌봄과 연관된 자질 (인내, 관용, 긍휼, 위로, 용납)의 계발 등 - 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목회자는 리더십의 분야와 관련해서도 지식, 경험, 기술 - 성경적 리더십에 대한 이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부터 말미암는 영적 능력과 신선함, 공동체를 능히 이끌어 갈 수 있는 추진력과 비전, 일관성 있는 삶의 자세와 신앙 목표의 확립, 종으로서 지도력 계발, 위기 상황에 개입 및 대처하는 지혜와 용기 등 - 이 있어야 한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목회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말씀, 목양, 리더십과 관련한 실질적 권위가 요구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공동체에서의 책임 수행과 관련해 직분적 권위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장로교단 같으면 노회에서의 인준, 어떤 교회로부터의 청빙, 공동의회를 통한 위임 결정 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후자가 결여되면 비록 그에게 완전히 갖추어진 실질적 권위가 있다 할지라도 목회자로서 어떤 특정한 공동체 내에서 사역을 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 경우도 사실이다. 목회자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가지 행정 절차를 거쳐 어떤 공동체에 부임했다고 하자. 이것은 그에게 직분적 권위가 부여되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반드시 목회자로서의 실질적 권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 그는 성경, 목양, 리더십과 관련하여 지식, 경험, 기술 획득의 면에서 갈 길이 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목회자에게 이 두 가지 종류의 권위가 함께 갖추어지지 않는 일은 일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실질적 권위는 마련되어 있지만 직분적 권위가 주어지지 않아, 목회 사역을 수행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직분적 권위는 부여되어 있지만, 실질적 권위는 그에 걸맞지 않은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 한국교회의 현장을 보면 어쩌면 후자의 예가 더 많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이 경우 교우들이 겪는 어려움과 피해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목회자로부터 말씀이 제공하는 유익을 얻지 못하고, 양떼로서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하며, 지도자가 발휘해 마땅한 리더십이나 공동체적 인도 등을 구체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회자에게 직분적 권위는 부여되어 있으나 실질적 권위가 결여되는 일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몸담은 한국의 목회 현장이 동양적 풍토나 세계관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과 긴밀히 연관된다.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 사람들(특히 유교적 생활 방식에 익숙해진 이들)은 내용보다는 외형에 치중하고 인간 관계에 있어서 위신, 체면을 중시하는 형식주의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직분적 권위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자신이 현재 목회자로서 갈고 닦아야 할 내면의 기량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공적 이미지를 번듯하게 윤색시킨다고 믿는 외적 사항들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우들이 바라는 목회자상, 또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실질적 권위와 연관된 사항에서의 발전과 성숙 모습이다. 목회자는 우선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깨닫는 경험이 지속되어야 한다. 자신의 깨달음과 실존적 앎의 경험을, 어떻게 설교, 제자 훈련, 소그룹 모임, 상담과 일대일 양육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며, 어떤 면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대가(大家)가 되어야 한다. 목양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모습을 닮고, 복잡하고 힘든 목양 현장에서 그 모습이 반영되도록 힘써야 한다. 목양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선한 목자처럼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희생하려는 각오 가운데 연마 및 활용되어야 한다.
모든 공동체는 지도자와 그의 지도자적 자질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목회자는 특히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량, 장단점, 경향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이를 개선 혹은 극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일반적 지도력의 지혜들을 무시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주님을 닮아 ꡒ종으로서의 지도력ꡓ 발휘임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목회자로서 실질적 권위를 갖춰 나가는 것만이 자신과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다. 공동체가 피폐해지고 힘을 잃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목회자의 책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서 실질적 권위의 함양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영광과 하나님의 통치는 그 참된 면모를 드러낼 수가 없다.
물론 직분적 권위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항시 실질적 권위에 수반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일차적으로 직분적 권위에 몰두하지 말고, 실질적 권위의 계발과 발전에 혼신을 쏟아야 할 것이다. 직분적 권위는 그에 따라(아니면 그것을 근거하여) 적절한 때에 부여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