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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제대로 인식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문화전쟁/ 신원하

기독교보 2014.06.18 10:32 입력   


성애 인권 운동과 심층적 성격

 


20세기 후반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이제 동성애는 법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또 다른 성적 표현으로 인정받고 있다. 동성애 성향은 타고난 것이라는 이론, 동성애자들 개인의 사적 삶의 자유와 권리 주장, 성적 소수자 인권 보호에 대한 사회의 인식 확산,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 받은 관용적 문화 조류 등이 이런 변화를 낳는데 영향을 미쳤다.

 

서구교회도 지난 20여 년 동안 이 문제로 끊임없이 논쟁에 휩싸였으나 마침내 대부분의 주류 교단 교회들이 동성애를 죄악시 했던 입장을 바꾸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동성애자에게도 성직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에 500만 명이 넘는 미국 루터교회(ELCA)에 이어 2011년에 250만의 신자를 지닌 미국장로교회(PCUSA)까지도 동성애자들에게 교회직분과 성직을 허용하는 문을 열었다. 일부 교회들은 이 결정이 교회가 더 이상 전통적으로 성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성경의 가르침을 규범적으로 받아들이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여 교단을 탈퇴하기도 했다.

 

이제 이 동성애 문제는 단순히 도덕적 문제나,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 간의 대리전쟁이요, 세속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전쟁이다. 한국사회도 지난 90년대 이후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 사건과 지난 10여 년간 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송을 꾸준히 타면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특히 최근 20대 젊은이들의 45.8% 정도는 동성애가 정상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는데, 한국교회도 현 사회의 문화와 압력에 점점 거세게 도전을 받을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인식과 이 문화적 흐름에 대한 분석과 대처방안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돔성 사건: 창세기 19장 1-13절

 

동성애는 흔히 ‘소도미’라 불리는데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성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소돔 사람들이 그 성을 방문한 천사에게 동성애를 행하려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했다고 교회는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서구의 주류 교회에 속한 다수의 구약 신학자들은 이 본문에 기록된 소돔 사람이 범한 죄의 핵심은 동성애가 아니고 근동 사회에서 지켜져 왔던 ‘손 대접’의 관습 내지 규칙을 무시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흐름에 동조해 왔다. 소돔의 무리가 롯에게 롯의 집에 들어간 사람을 내어달라고 요구하면서 말한 “우리가 그와 상관하리라”는 것을 성적으로 관계하리라는 뜻으로 교회가 해석해 온 것은 유대인의 유력한 위경 해석을 따른 결과였다는 것이다. ‘상관하리라’는 히브리어 ‘야다’는 성경에 943번 나오지만 오직 10번만 성적 의미로 쓰였고 그 외에는 단지 ‘알다’, ‘친숙하게 되다’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강조하면서, 소돔인들은 낯선 이방인들이 롯의 집에 들어오자 수상히 여겨 그 사람의 정체를 알려는 의도로 롯에게 그 손님들을 내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소돔인의 죄는 롯의 집에 들어온 손님에 대한 무례를 범한 죄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소돔인의 죄악이 동성애라고 주장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소돔의 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성경 본문(겔 16:49; 사 1:10; 렘 23:14)의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와 남색을 소돔의 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과 주장은 상당한 호응을 얻어 왔지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있다. ‘야다’라는 단어가 비록 10회만 성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그 중 6번이 창세기에서 쓰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하고, 또 그 중에서도 창 19장에 2차례 쓰이고 있다. 소돔 사람들이 두 손님들을 알고자 그들을 내어 달라고 롯에게 요구하자 롯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두 딸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제안하는데 이 때 쓰인 ‘가까이 하다’라는 말은 ‘야다’를 의역한 것이다. 롯의 딸이 남자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히 남자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갖은 적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여기에서 쓰인 ‘야다’는 분명히 성관계를 시사하는 단어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소돔인들의 주장은 결코 성관계의 의미를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동성애는 분명히 이 소돔인들의 가증한 악들 가운데 일부였던 것이다.

 

모세율법과 동성애: 레위기 18장 22절; 20장 13절

 

구약에서 동성애를 직접 언급한 본문은 레 18:22과 20:13이다: “누구든지 여자와 동침함 같이(눕둣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기독교회는 이 명령을 동성애를 정죄하는 대표적인 구약의 명령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존 보스웰과 같은 학자들은 이 구절이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은 단지 동성애가 이방인들의 종교 의식에 수반되던 행위 혹은 신전매춘(신 23:17)과 관계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본문은 사랑하는 두 동성의 성적 행동과 관련된 오늘날의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이 율법은 당시에 한정된 의식법에 속한 것으로 이 명령은 제의적 성결 규정의 하나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야 할 성결한 삶을 가르치는 율법의 맥락에서 나온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삶을 살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레 11-17장)과 나아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도덕적으로 성결을 유지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18-22장). 그 가운데 18장과 20장은 성적인 면에서의 순결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18장에서는 간음(20절), 강간, 근친상간(21절), 동성애(22절), 수간(23절)과 같은 이방인의 부도덕한 성적 관행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따르지 말고 언약 백성다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강간, 근친상간, 수간과 같은 것들이 단순히 종교적 혹은 제의적 성결에 속한 것이 아니고 순결한 삶의 방식에 관한 도덕법의 내용이라고 하면, 동성애도 그 도덕법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신약에는 폐기된 것이라는 주장은 신약의 교회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보면 판단할 수 있다.

 

동성애와 신약교회: 고린도전서 6장 9-10절, 디모데전서 1장 10절

 

바울을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 6:9-10)고 말했다. 여기서 ‘남색하는 자’로 번역된 단어 ‘알세노코이타이’라는 단어는 당시 헬라어 문서에 나오지 않던 단어였다. 존 보스웰은 이 단어는 남창을 가리키고 동성애자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크록스 교수는 유대 랍비문헌을 자세히 살피는 가운데, 이 단어는 동성애자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였음을 밝혔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당시 칠십인 번역본이 레 20:13의 ‘남자와 동침하면’을 번역할 때 사용했던 두 단어인 알센(남자)과 코이테(침대)를 합성해서 ‘남색하는 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을 가르치면서, 레위기 성결법전에 동성애를 금지하는 구절에서 쓰였던 두 단어를 합성하여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은 바울이 레위기 율법의 동성애 금지 내용을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동성애를 금하는 모세의 율법을 신약의 신자공동체에게도 유효한 도덕적 명령으로 제시했다는 것과, 그에 따라 동성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그리스도인들은 행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바울이 말하는 동성애: 로마서 1장 26-27절

 

로마서 1장은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하는 중요한 본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 24-27).

 

바울은 여기서 동성애 행위를 가리켜 ‘역리’라고 했는데, 존 보스웰은 순리를 인간 본성으로 이해하되 ‘추상적인 의미의 본성’이 아니라, ‘개인의 독특한 특성’을 가리키는 의미로서의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존 맥닐에 따르면 순리를 가리키는 헬라어 ‘푸신’이란 ‘풍습’, ‘관습’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했으며, 롬 1:26에서는 그런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역리는 이성애자이면서 동성애 행위를 하는 당시 특정 이방인의 풍습이나 습관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바울은 동성애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이성애자들이 동성애를 하는 그런 풍습과 행동을 비판한 것이라고 맥닐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동의하기에 무리가 많다. 첫째로 본문의 구조상 이러한 해석은 무리이다. 바울은 1장 전반부에서 긴 서론적 감사를 하고 난 뒤 16-17절에서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이 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16절),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는데 그것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17절)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난 뒤 하나님의 의와 대조되는 인간의 사악함과 불의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언급하고 있다(18절). 인간의 불의와 사악함은 피조물인 인간이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과 그의 능력이 만물을 통해 자신에게 알려졌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거절한 것으로 대표된다. 그래서 생각이 헛되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고 자아 숭배로 돌아섰다는 것이다(23절). 이 본문에 따르면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에 대한 진리를 가로막은 결과 생각이 헛되고 마음이 미련해졌다고 말한다(18, 21절).

 

바울은 바로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고 말하면서, 그 진노의 핵심은 그들을 그냥 악에 유기(遺棄)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정욕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24절). 그 결과 사람들은 자기 정욕을 따라 행하며, 순리대로 여인을 취하기를 거부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이 본문에서 바울은 이 순서를 분명하게 한다. 사람들이 비도덕적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진노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러움과 어두움에 내버려졌고 그 결과 이와 같은 역리와 같은 부패한 행위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체 구조와 전후 맥락을 이해한다면 역리라는 것은 어떤 한 민족, 한 집단의 부패한 풍습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전체의 보편적인 부패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바울은 첫 인간이 반역한 결과로 동성애와 같은 역리의 행동과 문화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이 구절처럼 분명한 것은 없다. 이 구절들을 읽고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면 동성애 행위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반하는 것으로 보려하지 않고, 동성 결합을 결혼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려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고 신학자 판넨베르크 교수가 단호히 말하는 것도 그만큼 바울의 가르침이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화전쟁으로서의 동성애 권리운동

 

동성애자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다른 성적 지향성 때문에 사회에서 차별을 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스스로 한 개인으로서 선택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기본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들이 단시 성적 지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제한받고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선진사회일수록 소수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다른 생각과 견해, 생활방식에 관용하고 경청하는데, 단지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보고 범죄시 하는 것은 그 사회의 불관용성과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은 마땅히 바뀌어야 할 비문명적 태도요 문화라고 주장한다.

 

현재 지구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동성애 문제를 차별금지라든지 소수자 인권 옹호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동성애자와 그 옹호론자들은 치밀한 어젠더(agenda)를 마련하여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은 크게 세 가지를 목표로 해서 진행된다.

 

첫째, 동성애자들은 사회적으로 평등한 처우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 때문에 직장, 학교에서 불이익과 차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문화적 법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둘째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비판의 행위와 종교적 정죄까지도 불법화하고 법적으로 처벌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을 제안하여 입법 권고하면서 차별 금지 대상에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그 안에 첨가시켰는데, 만약 이 권고안이 법제화된다고 하면 교육기관의 입학과 편입과정에서 동성애자들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서 안 되고, 전학, 자퇴를 강요하거나, 퇴학을 시킬 수도 없게 된다. 교육내용에서 동성애가 비정상이라는 내용으로 가르칠 수 없게 되고, 이를 어기게 되면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사나 상담가가 동성애자를 치료하거나 성 정체성을 교정하는 치유행위는 이성애적 편견에 사로잡힌 비인권적 행위로 또는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성애라는 인상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사나 상담 치유자들은 심각한 내적 압박을 받게 되고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기독교인들 역시도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얼핏 성 소수자의 인권과 평등권과 선택의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운동인 듯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운동은 보편적 도덕 가치 및 기독교적 도덕에 대한 반기독교적 문화의 충돌이며 전쟁이다. 이런 성격을 지닌 동성애 관련 사회적 현상을 안이하게 대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결국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회는 헌신된 관련된 전문인들과 함께 좀 더 조직적으로 이 현상을 분석하고 치밀하게 대응 전략을 세워가야만 한다.

 

 

교회와 신자의 태도

 

교회는 무엇보다 동성애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결과로 말미암은 역리적 삶의 모습과 현상임을 타협하지 말고 가르치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동성애로 고통 받는 자들을 외면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의 대상이다. 이들도 다른 면에서는 이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이들에게 다가가고 또 따뜻하게 맞이하고 환대해서 이들이 교회로 나오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들이 신자들과 교제를 통해 자신의 욕구와 성향이 비정상적인 것을 알고 그것을 교정하고 치유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도록, 교회는 필요한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만약 치료가 불가능하고 교정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성향을 실행에 옮기지 않도록 권고하고 이들의 성적 욕망과 에너지를 다른 생산적인 일들에 돌리며 살아가도록 돌봐주어야 한다.

 

글·신원하 /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사역하는 필자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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