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백석대 최갑종 교수(백석대, 신약신학)가 한국교회 안에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김세윤 박사(풀러신학교, 신약신학)의 '유보적 칭의론'을 동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최갑종의 아래의 글은  <아이굿뉴스> (3014.4.30 게재)에서 옮긴 것이다. 조만간 이 주제에 대하여 본격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

 

<리포르만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칭의가 이루어지고, 그 때 구원이 확정된다고 믿는다. 믿는 자는, 마지막 날의 심판대와 상벌 때문이 아니라, 기독인의 행복헌장으로 주신 율법과 계명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신자로 불려지고 알려지고 행세 하더라도 최종적인 심판대에서 구원과 무관하다고 판단받을 자들이 있다. 열매 없는 기독교 신자, 겉으로 보기에는 신자같고 구원을 받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다. 

최갑종은 구원파의 구원론을 화두로 삼는다. 우리는 과연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구원파가 "한 번 구원을 받은 자는 죄 용서와 회개도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지, 진정으로 '신자의 윤리적 책임을 도외시'하는지 구원파 관계자가 말해 주기 바란다. 구원파는 이 기회에 자신의 구원 교리를 확실하게 밝혀 주기 바란다.


 

한국교회의 '구원룐'에 문제없나?/ 최갑종


수백 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온 국민이 슬픔과 함께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제일 먼저 승객을 구조하여야 하는 선장과 선원들이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망각하고 자신들만이 탈출한 것도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세월호의 실 소유자가 한국의 주류 기독교 교회들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세칭 구원파의 교주 유병언 일가라는 사실과, 이들이 평소에 온갖 불법을 자행하여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정작 배와 승객들의 안전관리에는 무관심하였다는 사실에 더 크게 분노하고 있다.


한 번 구원을 받은 자는 죄 용서와 회개도 필요 없다고 함으로써 신자의 윤리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구원파의 잘못된 구원 교리가 세월호 참사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별도의 조사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한국 교회가 다시 한 번 자기 성찰의 기회로, 특별히 우리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선행(삶)은 구원과는 무관한 상급의 대상”이란 이름 아래, 신자와 교회의 윤리성을 외면하는 가르침이 구원파의 구원론과 무관하며,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총신대와 미국의 풀러신학대학원의 신약교수를 역임한 김세윤 박사는 작년에 출판한 『칭의와 성화』란 책을 통해,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여 전자를 구원과 연결시키고, 후자를 구원과 무관한 상급과 연결시키는 구원관이 한국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으며, 이것은 성경적 구원관이 아니고, 오히려 한국교회가 비판하고 있는 구원파의 구원론과 유사하다고 경고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한국교회 안에 신자의 거룩한 삶(선행)은 구원의 요소가 아닌 상급의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며, 신자의 선한 행위는 최종적인 구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구원에 덧붙여 주는 상급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른 구원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들의 생각이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고 구원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중세의 캐톨릭 교회의 공로주의적 구원관에 대항하여 마틴 루터와 요한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발전시킨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교리를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부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전체의 포괄적인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믿음으로, 은혜에 의한 칭의와 구원을 말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신자의 거룩한 삶이 없이는 종국적인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모든 신자는 자신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로 불러졌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심판에 따라 구원을 받지 못하고 탈락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면 로마서 14:10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고린도후서 5:10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19-21에서 비윤리적인 육(肉)의 행위를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빌립보서 2:12에서는 우리의 거룩한 순종적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바울의 가르침은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지 않다고 한다면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였고(마 7:21),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등을 통해 믿음의 열매인 참된 선행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외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사실 성경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함께 할례와 율법의 행위 등을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내세우는 거짓된 구원교리와 싸울 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라는 ‘이신칭의 구원관’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교회에 속한 신자들에 대한 목회적인 권면을 할 경우는 참된 신자의 삶이 반드시 구원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을 외면하고, 거짓된 구원교리를 전파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항하는 말씀만을 바른 구원관 내지 안식처로 삼을 경우, 기독교의 윤리가 설 수 있는 땅은 없어진다. 그리고 기독교의 구원관은 제자도와 십자가 없는 값싼 은혜론에 빠지게 되고, 한국교회는 일반 사회로부터 윤리성이 없는 집단이라는 오해를 받게 됨은 물론,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소금과 빛의 사명은 잃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믿음에 의한 구원’, ‘행위에 따른 상급’이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어떻게 개선하여 교회의 윤리성을 외면하지 않는 바른 구원교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가? 전통적인 믿음에 의한 칭의/구원 교리를 포기하고, 행위에 의한 칭의나 구원교리를 내세워야 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신약의 저자들이 의, 구원, 영생, 천국(하나님의 나라)을 설명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 등 다양한 동사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의/영생/하나님의 나라를 받았지만(과거), 계속 구원받고 있으며(현재), 장차 종국적으로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미래)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구원은 과거만의 사실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속한다는 사실, 즉 구원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직설법만이 아닌 우리의 전인적(全人的)인 삶이 동반되는 현재와 미래의 명령법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성경은 신자의 현재와 미래의 삶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구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혹자는 의/구원/영생/천국이 신자의 삶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면, 즉 신자의 거룩한 삶이 동반되지 않는 한 우리의 현재와 미래적 구원이 보장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경우, 이것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만이”라는 전통적인 구원교리를 거부하고, 그 대신 행위와 공로에 의한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빌립보서 2:13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빌립보서 2:12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것을 명령한 다음, 바로 이어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즉 우리의 거룩한 삶이 우리 자신의 행위에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결국 우리의 삶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자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는 말씀처럼, 구원 받을 수 있는 참된 신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다고 한다면, 한편으로 아무리 신자의 거룩한 삶이 우리의 구원에 필수적인 요인임을 강조하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행위구원이나 공로주의구원에 빠지지는 않는다.


구원은 신자의 거룩한 삶을 반드시 요구한다. 동시에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기억하자.





?

  1. No Image

    주를 보지 못할 교인들/ 박영돈

    칭의와 성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이를 의로 여기시고 구원하신다. 변질된 구원론이 한국교회 안에 확산되고 있음은 안타깝다. 아래의 글은 페이스북에 올려진 박영돈 교수의 글이다. 주를 보지 못할 교인들 이번 세월호 사태로 인해 ...
    Date2014.05.30 Bydschoiword Reply0 Views5684
    Read More
  2. No Image

    구원파 신도와 프로테스탄트 신도/ 이장식

    아래의 글은 한신대에서 교회사를 가르친 이장식 교수의 글이다. 옮긴이는 이장식이 구원을 받은 기독인지 의심스러워진다. 구원의 확신이 개인에 달려 있다는 말은 절반만 정답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교회 안에 자리 잡은 구원론의 심각한 상태를 반영한다. ...
    Date2014.05.28 Bydschoiword Reply0 Views4918
    Read More
  3. No Image

    구원파에 대하여/ 한국교회연합신문

    구원파에 대하여 한국교회연합신문 (2014. 5. 22.) 세월호 사건 이후 독자들로부터 구원파 교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는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지금 여기 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는 구원파에 대한 일방적 비판만 가지고는 구원파를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
    Date2014.05.24 Bydschoiword Reply0 Views5718
    Read More
  4. No Image

    신사도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심창섭

    뉴스앤조이 기사 (2014.5.14.) 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심창섭 교수가 '신사도운동'의 위험을 지적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안명환 총회장) 전국 목사 장로 기도회(목장기도회) 둘째 날인 5월 13일 트랙별 강의에서, 심 교수는 최근 주요 이...
    Date2014.05.14 Bydschoiword Reply0 Views5397
    Read More
  5. 신사도운동의 문제점: 새로운 계시 운동의 위험성 / 김영한

    신사도운동의 문제점: 새로운 계시 운동의 위험성 / 김영한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2014.05.12.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시는 서신에서 예수께서 에베소교회에게...
    Date2014.05.12 Bydschoiword Reply0 Views5377
    Read More
  6. No Image

    중생 후의 일상의 죄/ 강종수 목사

    강종수 목사 2014. 5. 11 주일 오전 예배설교 전문(http://cafe.daum.net/st888) 성경 : 요13:8-11 제목 : 중생 후 일상의 죄 요13:8-11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
    Date2014.05.11 Bydschoiword Reply0 Views5430
    Read More
  7. No Image

    왜 구원파는 이단인가?/ 정동섭

    왜 구원파는 이단인가?/ 정동섭 구원파는 1960년대 초에 시작된 사이비기독교운동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이단집단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단운동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구원파는 미국과 네델란드 등지에서 파송...
    Date2014.05.11 Bydschoiword Reply0 Views4862
    Read More
  8. No Image

    한국교회의 '구원룐'에 문제없나?/ 최갑종

    백석대 최갑종 교수(백석대, 신약신학)가 한국교회 안에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김세윤 박사(풀러신학교, 신약신학)의 '유보적 칭의론'을 동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최갑종의 아래의 글은 <아이굿뉴스> (3014.4.30 게재)에서 옮긴 것이다. 조만간 이 주제에 ...
    Date2014.05.06 Bydschoiword Reply0 Views6244
    Read More
  9. No Image

    안식일과 주일/ 이승구

    안식일과 주일 이승구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말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전혀 변화가 없으므로 우리는 매주의...
    Date2014.04.27 Bydschoiword Reply0 Views6090
    Read More
  10. No Image

    여성 안수는 창조질서 위배/ 변종길

    여성 안수는 창조질서 위배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여성 안수 문제를 다룰 때에는 매우 조심스럽다. 자칫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대결이나 한 편의 폄하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안수 문제는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성질의 것이 ...
    Date2014.04.25 Bydschoiword Reply0 Views5584
    Read More
  11. No Image

    한비자의 교훈: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

    한비자의 교훈: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 1. 법(法)을 소홀이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나라 밖 외세(外勢)만을 의지하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2. 선비들이 논쟁만 즐기며 상인들은 나라 밖에 재물을 쌓아두고 대신들...
    Date2014.04.25 Bydschoiword Reply0 Views6176
    Read More
  12. No Image

    성경과 여성안수/ 이광호 (반대)

    이광호 목사의 여성안수에 대한 글 PDF FILE 여자목사제도 비판 이광호.pdf
    Date2014.04.23 Bydschoiword Reply0 Views8820 file
    Read More
  13. No Image

    A Cause for Division (CRC, 여성안수 찬성)

    여성 안수에 대한 미국 CRC(Christian Reformed Church,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운영)의 견해 PDF File A Cause for Division.pdf
    Date2014.04.23 Bydschoiword Reply0 Views7970 file
    Read More
  14. No Image

    Is it Biblical to Ordain Women? (PCA homepage)(반대)

    Is it Biblical to Ordain Women? (PCA homepage) Dr. Paul M. Elliott May the church ordain a woman to the office of pastor, elder or deacon? In this age of rampant and un-Biblical feminism, many in the church try to deny or obfuscate what Scr...
    Date2014.04.23 Bydschoiword Reply0 Views20187
    Read More
  15. No Image

    Hermeneutics of Women in Ordained Office, OPC (반대)

    Hermeneutics of Women in Ordained Office (OPC) Presented to the Fifty-fourth General Assembly (1987) [Note: General Assembly reports (whether from a committee or its minority) are thoughtful treatises but they do not have the force of const...
    Date2014.04.23 Bydschoiword Reply0 Views569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