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안수는 창조질서 위배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여성 안수 문제를 다룰 때에는 매우 조심스럽다. 자칫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대결이나 한 편의 폄하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안수 문제는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여기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연약한 여성을 더욱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필자는 기독교가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복음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차별이 없다. 나아가서 필자는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봉사와 활동을 귀하게 여기며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많은 여성들이 기여했으며 초대교회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봉사한 것처럼, 한국교회에서도 여성들이 많은 봉사와 기여를 했다. 여성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없었더라면 한국교회는 오늘날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은 없지만, 성경은 또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을 가르치고 있다. 중요한 두 곳은 고린도전서 14장 34-36절과 디모데전서 2장 11-15절이다. 고린도전서의 본문에서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가르친다(34절). 디모데전서에서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한다”고 말한다(12절).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옛날의 시대 상황에 주어진 시대제약적인 말씀으로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러한 금지의 이유로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13,14절). 곧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주후 1세기의 ‘문화적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가 그러하기 때문이다(창 3:16 참조).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할 이유로서 ‘율법’의 가르침을 들고 있다(34절).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의 이유를 고린도 교회의 특수 사정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이러한 바울의 교훈은 여성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가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음을 이미 분명히 밝혔다(갈 3:28; 고전 12:13, 11:11, 롬 3:22).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정하신 남성과 여성의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에 평화를 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여성에게 금지되는 것은 남성(성인 남자를 의미함)을 ‘주관’하는 의미에서의 ‘가르침’이나 ‘말함’에 한정된다. 어린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며, 기도회를 인도하거나 여전도회에서 가르치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나아가서 말씀의 은사를 가진 여성이 여전도회의 초청으로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해방 후에 더러 있었던 것처럼, 특별한 은사를 지닌 여성의 경우에 특별 집회를 개최하는 것도 특별한 경우로 허용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선교지의 경우에서는 선교지의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여성 선교사에게 많은 것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금하는 것은 가정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남자를 주관하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성에게 목사나 장로 안수를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과 구원은 오직 성경 말씀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성경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진리이며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됨을 믿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서 과도하게 나아갈 때에는 가정과 교회에 불행이 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시대조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