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생계형 이중직/ 조성돈
조성돈 교수 페이스북에서
목회자의 이중직, 특히 생계형 이중직에 대한 조사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전체 904명의 목회자들이 유효한 대답을 해 주셔서 설문조사는 아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 조사가 목회와신학이라는 월간지에서 진행한 것이라 제가 그 동안 공개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조사에 함께 해 주신 분들에게는 좀 죄송했습니다.
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보건복지부가 정한 4인가족 최저생계비인 163만원에 이르지 못하는 목회자가 66.7%에 이르고요, 법원이 정한 최저생계비인 244만원이 안 되는 이들까지 합치면 85.6%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80%의 교회가 미자립이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 이중직에 대해서는 73.9%가 찬성한다고 대답했고, 26.1%가 반대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생계를 위한 이중직은 결국 현실이고, 이를 막고 있는 교단헌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제 주장을 요약한다면,
1. 교단이 가로막고 있다보니 목회자들이 대리운전, 택시운전, 택배하차 등과 같은 밤을 세워서 하는 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터뷰에 임해 주신 목사님들은 이러한 상황을 지적하며 목회자들이 위험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습니다.
2. 이런 상황에서 이중직을 막을 생각만 하지 말고 오히려 목회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하고, 직업훈련도 시켜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에 임해 준 목회 한 명은 NGO에서 일한 일을 모범적인 사례로 꼽았는데 아주 그럼직 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회운동을 하며 바른 세계관을 얻고,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훈련이나 교육이 필요합니다.
3. 목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먼저 장소를 먼저 구하고 교회 간판을 거는 일을 앞서 합니다. 즉 공동체가 모여서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건물 먼저 구하고, 인테리어 마치고 교회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안 모이니 월세를 못 내고, 보증금에서 야금야금 까먹다가, 다 까먹으면 목회를 접는 것입니다. 즉 소명이 다하여 목회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보증금이 다하여 목회를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공동체가 먼저입니다. 미션얼 처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4. 이제 교단들이 실직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생계를 고민해야 합니다. 안수 많이 주어서 몸집 불릴 생각만 하지 말고, 안수 주어서 노회로 받아들인 그들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래는 같은 주제에 대한 이승구 교수의 글 (페이스북에서)
물론 최선의 목회 형태는 모든 시간을 목회를 위해 바치는 형태의 목회이다. 목회는 기본적으로 전 시간을 다 바치는 헌신적 사역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을 잘 실현해 나 갈 수 있도록 노력하며, 그 일을 위해서 지금으로서는 아직 그런 헌신을 못하는 사람들 주변에 헌신적인 목회자가 있어서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허비하는 좋은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모든 성도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다 하는 경우에는 목회자가 모든 시간을 다 내어 그들에게 매여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상황을 찾기는 늘 어려운 법이다. 대개는 그렇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혹은 외롭거나 병들거나 갑자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거나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상(喪)을 당하거나 하여 같이 있어 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할 때에 목회자가 같이 있어 준 것이 좋은 기회가 되어 말씀을 배우기로 하고, 기독교적 헌신에로 자신을 드리게 되는 일도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항상 성도들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상적 상태의 목회는 항상 모든 시간을 다 들여 하는 목회(full-time ministry)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목회의 본질을 생각하거나 현실적인 인간의 변화되는 과정을 볼 때 그것은 매우 당연한 요청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교회 공동체가 목회자의 삶을 전적으로 지지(支持)해 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목회자가 자신과 가족들의 삶의 지지(支持)에 대한 염려 없이 전적으로 성도들을 위해 시간을 다 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매우 연약해서 목회자의 삶을 충분히 지지(支持)하지 못할 때는 목회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지지(支持) 방도를 일부 마련하고, 따라서 시간을 쪼개서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또 성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하고 해야 한다. 여러 여건 때문에 한동안 이런 식으로 하는 목회가 이루어 질 수도 있다. 일종의 부분적 목회(part-time ministry)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의 한계와 시간의 부족 등을 생각하면 이런 목회는 성도들을 충분히 돌보는 일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이나 과거의 사역자들도 비상한 경우에는 그렇게 한 예가 있고 하니, 이런 경우들을 율법적으로 정죄하면 안 될 것이다. 이럴 때는 목회자 자신의 보다 많은 헌신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목회자 자신과 공동체가 스스로 자신들의 미약함으로 인해 주님의 교회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더 노력하여서 이런 결핍의 상황을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분적 사역의 또 한 가지 예는 전 시간을 다해 목회하는 목회자를 도와서 목회의 여러 부분 중 일부를 다른 시간제(part-time) 사역자가 돕는 경우이다. 이때에도 반드시 교회 공동체에는 전 시간을 다 해서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역자를 도와서 다른 사역자가 부분적 시간을 내어서 교회를 도와 설교를 도와준다든지, 교육의 일부를 담당해 준다든지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대개 외국의 신학교 교수들이 이런 역할을 하곤 한다. 모든 시간을 다해서 성도들을 훈련시키며 그들과 함께 하는 사역자가 있는 상황에서 이런 파트 타임 사역자들이 그런 전담 사역자를 도와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에는 반드시 전 시간을 다해 성도들과 함께 하는 사역자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사역자는 기본적으로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대로 성경적 가르침을 충분히 베풀어 모든 성도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다 가르쳐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하게 사는 일을 서로 돕도록 하는 일에 힘쓰도록 훈련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