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을 걱정함에 대하여
주님: 나의 아들딸아, 나는 “환난 날에 … [나]에게 피하는 자들을”(나 1:7) 아는 하나님이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를 찾으라. 기도에 게으르지 말고, 세상에서 위로를 구하지 말라. 그리고 나는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 외에 다른 어디에서도 지속적인 도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어려움이 지나갔으니 이제는 숨을 돌리고 나의 자비에 의지하여 힘을 되찾으라. 나는 네가 온갖 충격을 벗어나서 이전보다 더 좋아질 수 있도록 함께하고 있다. 내가 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내가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때가 있느냐? 네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내 안에 강하게 서라. 인내하고 용기를 가지라.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내가 찾아갈 것이다. 그렇다. 기다리라. 너를 치료하려고 찾아갈 것이다.
미래가 두려운가? 그와 같은 생각은 슬픔만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4). 일어나지도 않은 앞날의 일 때문에 걱정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은 얼마나 큰 낭비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걱정에 넘어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원수의 유혹에 쉽게 이끌리는 것은 마음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원수는 유혹하고 속일 수 있다면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현재에 대한 사랑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이용하여 넘어뜨린다. 그런즉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나를 믿고 나의 자비를 믿으라.
네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될 때도 나는 항상 매우 가까이 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더할 수 없는 보상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지금 이 순간의 느낌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라. 내게서 잠시 위로를 느끼지 못할지라도 내가 너를 모른 체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너를 이미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만족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내가 준 것을 빼앗을 수도 있고, 또 원하면 다시 돌려줄 수도 있다. 내가 무언가 주는 것은 빌려주는 것이니 내가 다시 가져온다고 하여 네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낸 것은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욕을 당하고, 휴식하도록 함이 아니다. 게으름을 피우기 위함이 아니라 인내하며 추수하도록 함이다. 나의 아들딸아, 이 말을 명심하라.
Thomas a Kempis, De Imitatione Christi, Part 4.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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