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기억함에 대하여
주여, 주님의 율법에 따라 나의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의 지시를 따라 걸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 주님의 생각을 일러주시고, 모두에게 허락하신 은총과 특별히 나에게 허락하신 은총을 기억하게 하시어 주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하소서.
아직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지 못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주님이 허락하시는 어떤 은총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지닌 모든 것, 그리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자연적으로나 초자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이 주님의 너그러움과 자비와 선하심 때문입니다. 더 받거나 덜 받거나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없이는 어떤 축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
많이 받았다고 자신이 그럴 만하다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국 누구보다 위대하고 뛰어난 사람은 자신을 가장 낮게 여기고 겸손하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적게 받은 사람도 그 때문에 낙심하고 슬퍼하거나 많이 받아 풍요로운 사람을 질투하지 않음이 마땅합니다. 그 대신 주님께로 돌아서서 주님의 선하심과 은혜의 선물을 찬양함이 옳습니다. 주님은 각자에게 어울리는 것을 아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주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까닭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 나의 겉모습이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고, 칭찬을 듣거나 명예를 얻지 못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가난하고 비천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낙심하거나 실망하거나 절망하기보다 주님이 가난한 자를 선택하심을 믿고 더 큰 기쁨과 위안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주님의 사도들이 이 사실의 증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살면서 불평하지 않았고, 악한 행동을 하거나 남을 속이지 않았고, 겸손하고 소박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비난 듣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세상이 비웃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주신 은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즐거움보다 더 크고 기쁘게 여기는 일이 없습니다. 누구보다 위대해지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과 달리 가장 미약하게 되는 것에 만족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마지막 자리에 앉을지라도 맨 앞자리에 앉은 것처럼 만족스러워하고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주신 은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는 자리에 있을 때나 경멸받는 자리에 있을 때나 동일하게 기쁨을 느낍니다. 주님의 뜻과 주님의 영광에 관한 사랑이 모든 것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았거나 앞으로 받게 될 어떤 은총보다 더 큰 위로와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Thomas a Kempis, De Imitatione Christi, Part 3.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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