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에 감사함에 대하여
사람은 일하도록 태어났다. 사람이 어찌하여 일하지 않기를 구한단 말인가?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욥 5:7). 정상적인 사람은 위로을 받기보다는 인내를, 즐거움보다는 십자가를 지는 일에 자신을 맞춘다.
영적인 즐거움과 위로를 누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영적인 위로는 이 세상의 모든 기쁨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능가한다. 이 세상의 즐거움은 가치 없고 추하다. 그러나 영적인 즐거움은 기쁘고 소중하다. 영혼의 즐거움은 덕행에서 비롯되고, 순결한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위로를 항상 누릴 수는 없다. 시험의 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거짓 자유와 지나친 자신감은 하늘나라에 들어감을 방해한다. 사랑으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보답하지 않을 때 악을 저지르고 만다. 고마움을 잊는 탓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흘러넘치지 못한다.
나는 회개를 가로막는 그 어떤 위로도 거절하고, 또 교만을 부추기는 그 어떤 것도 가까이하지 않으련다. 고상한 것이 한결같이 거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즐겁다고 하여 예외 없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바라는 것이라고 하여 언제나 순수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은총의 선물에 대한 교훈을 받으면 자신이 가진 어떤 장점도 감히 내세우지 않게 된다. 자신이 보잘것없고 초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그분께 드려라.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하라. 자신의 죄와 그것 때문에 초래될 심판을 탓하라.
항상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라. 그리하면 가장 높은 자리가 주어질 것이다. 높은 위치는 견고한 토대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큰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가장 낮추는 사람이다. 고귀한 사람일수록 그에게서 더 큰 겸손을 확인할 수 있다.
정직과 하늘의 영광으로 가득한 사람은 공허한 칭찬을 구하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쉽게 교만해질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이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상대의 칭찬에 갈급하지 않는다. 자신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그 이상을 희망한다.
가장 작은 선물에도 감사하라. 그리하면 더욱 큰 것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더할 수 없이 보잘것없는 선물일지라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받아들이라. 주시는 분의 가치를 생각하면 하찮은 선물이란 것은 없다. 능력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어느 것도 볼품없는 게 없다.
그렇다. 그분이 고통과 슬픔을 주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좋은 것을 영원히 누리길 염두에 두고 계시기 때문이다.
Thomas a Kempis, De Imitatione Christi, Part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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