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길지 않다. 다음 세상에서 어떻게 지내게 될지를 생각하라. 오늘은 이곳에 있지만 내일은 그곳으로 가게 된다. 시야에서 사라지면 누구나 곧장 잊혀 진다. 우리의 마음은 우둔하고 완고하다. 우리는 다만 현재만을 생각하고 닥칠 일에는 제대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의 계획을 세우라.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을 피할 자는 없다. 죽음에서 도망치기 보다는 죄에서 도망치는 편이 훨씬 더 쉽다.
내일은 불확실하다. 우리가 내일까지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오래 산다고 저절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은 간혹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죄의 부담만을 키우기도 한다. 세상 사람에게는 하루를 잘 사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매일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다면 우리도 동일한 길을 가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것이다.
아침에는 해질녘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라. 밤에는 새로운 아침을 기약하지 말라.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라. 부주의하고 태만한 생활을 했다면 마지막 순간에 무척 괴로울 것이다.
슬기롭고 행복한 사람은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평소처럼 변함없는 삶을 산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은 자이다. 덕을 쌓는 일을 열망하고, 규율을 잘 지키고, 고통을 감내하는 자이다. 회개하고, 기꺼이 복종하며,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위해 어떤 고난이든 끈기 있게 인내다는 자이다.
건강할 때는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지만 병에 걸리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몸이 아프다고 사람이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순례 여행을 자주한다고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다.
친구와 친척을 의지하지 말라. 사람들은 당신이 예상하는 바 이상으로 당신을 빨리 잊는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죽음을 대비하고 미리 선을 행하는 것이 낫다.
시간은 아주 소중하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어느 시점에는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하루 또는 한 시간의 생명 연장을 구할 때가 닥칠 것이다.
그렇지만 생명 연장을 구함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런즉 죽음의 순간이 닥칠 때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오늘을 올바로 살기에 힘쓰라.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세상에서 잘 죽는 법을 익히라.
오래도록 살기를 꿈꾸는 자는 어리석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잘 지낼지 그렇지 않을지 조차 확신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다. 누군가가 물에 빠져 죽었거나, 숨 막혀 죽었거나, 또는 운동을 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불, 흉기, 질병, 흉악범처럼 예상할 수 없는 위협이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한다”(욥 14:2).
우리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기회가 죽음 때문에 막을 내리게 될 순간을 알지 못한다. 아직 시간이 있다면 하늘의 보화를 모으기 시작하라. 영적인 건강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의 일 이외에는 달리 관심을 보이지 말라. 이 세상에서 나그네나 피난민처럼 지내라. 이 땅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처럼 살라. 마음을 자유롭게 유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 13:14).
이 땅은 기도와 한숨과 눈물을 바치는 곳이다. 그리하면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즐겁고 영원한 집에 머물게 될 것이다.
Thomas a Kempis , De Imitatione Christi (1418–1427), Part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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