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생각해 보는 십자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준비하는 사순절(Lent) 기간이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서 시작하여 부활주일(Easter Sunday)까지 주일을 뺀 40일간이다. 주후 325년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가 제정된 이래 오늘날까지 세계 많은 신자들이 지켜오고 있는 절기다. 이 기간 동안 신자들은 특별히 자신을 돌아보며 참회와 경건의 시간을 통해 신앙을 새롭게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사역의 중심이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고난의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못과 창에 찔리시는 죽음을 당하셨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통해 인류 구원역사를 이루셨다.
파렴치범의 형벌 도구였던 수치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기독교의 영광스런 상징이 되었고, 그 십자가의 주인공은 인류 역사를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는 역사의 분기점이 되셨다. 박애와 봉사의 정신을 가진 적십자, 청십자 깃발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국기 속에 십자가가 아로 새겨져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세상 불신자들이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고 구원을 거부하는 것을 몹시 개탄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십자가를 조롱하고 배척하는 사람이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외친 허무주의 철학자이다. 기독교 십자가를 극렬히 반대하고 비방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기독 신자들을 향해 “너희들은 십자가에 달린 연약한 하나님을 믿느냐?”고 조롱했다.
니체의 철학은 그 후에 철저한 무신론적 이념인 사회주의,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 사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삐뚤어진 사상으로 인해 20세기 인류사회는 1억8천만 명이 죽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20세기는 인류역사의 “가장 야만적인 세기”(The Most Barbaric Century)라고 불리기도 한다.
니체의 무신론적 철학에 영향을 받았던 히틀러 나치정권의 상징은 “스와스티카(卍)”, 즉 꾸불어진 십자가였다. 그 꾸불어진 십자가 깃발을 휘날리며 나치 정권은 폭력과 살육을 일삼으며 영토 확장의 야욕으로 이웃국가들을 무자비하게 침략하였다.
이 깃발은 심지어 당시 친 나치 독일 기독교회 예배당 안에까지 걸려 있었다. 그 결과 세계 역사는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 했는가? 십자가의 사랑과 진리를 꾸부려 왜곡하고 조롱하는 곳에 항상 인생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위에 세워진 미국에도 최근에 십자가를 배척하는 압력단체들이 소송들을 하였다. 무신론주의자, 이교도 단체들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데이빗슨 산 언덕에 세워진 미국 최고의 십자가(103피트), 샌디애고의 제일 높은 지대인 솔댓 산에 세워져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십자가(43피트), 그리고 수도 워싱톤 알링톤 국립묘지의 각 무덤들 앞에 세워진 하얀 십자가들을 모두 제거하라고 소송을 하였다. 그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온 미국에 이런 일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한심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생에게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십자가는 인간 교만의 덧없음을 깨닫게 하고 권력, 명예, 물질에 대한 이기적 욕심이 얼마나 헛되고 악한 것인가를 인간에게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설 때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죄인 됨을 겸손히 인정하고 조용히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십자가는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 희망을 준다. 십자가는 허무주의 사상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자들에게 분명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십자가는 죄악 세상에서 공포, 분노, 불안, 염려, 실망, 허무감 속에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치료약이다. 그것은 곧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선언한 복음의 메시지였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헨리 나우웬의 표현대로 “상처받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이셨다. 십자가상에서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인류에게 구원과 치유의 은총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영원한 구원의 길을 단적으로 보여 줄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된 우리에게 쏟아진 가장 생생한 증거인 것이다(요 3:16).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십자가의 사랑을 자기 삶 속에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십자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진실로 행복하고 존귀한 자다.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면 비로소 자신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온 인류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십자가의 사랑이라 할 것이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찬송 135장).
황현조, 코네티커트한인교회 목사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