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읽고
Han Yi(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페이스북 글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읽을 젊은이들에게 주는 독서 조언
1. 이영훈 교수님과 그의 지인들이 최근 펴낸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는 예감처럼 적대적인 한일관계라는 최근의 시공간적 배경을 뒤로 단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합리적인 양국 시민들의 소리는 묻히고, 이런 책들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victimhood nationalism)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두개의 극단적 관점의 충돌을 견인하며 커다란 소음을 유도합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경험한 어르신들,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한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 누군가도 이 책을 읽을 것입니다. 토마 피케티는 대학교수들을 ‘다른 사회구성원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할 수 있(고 심지어는 공부하면서 돈을버)는 행운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하지요. 그래서 일요일 오후 잠깐 시간을 내어 오지랍을 발휘해 이 책을 읽을 젊은이들을 위해 독서지도(?) 차원에서 한 꼭지 올려보겠습니다.
2. (1)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제국으로 발돋움 했는데 조선은 왜 일본에 합병되어 망했으며, 일본의 합방이 아니었다면 과연 조선은 스스로 근대국가로 변모할 수 있었을까? (2) 해방 후 조선반도의 승전국 분할통치 앞에서 스스로 통일민족 국가를 수립하고 한국전쟁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 했을까? (3)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 중 가장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함에 있어 대기업군 중심의 경제를 만들어 낸 군부독재의 권위주의적 자원배분과 그것이 만들어 낸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는가? 독서토론의 단골 주제였던 이 세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대학시절 읽었던 송건호-박현채-최장집-박명림 등이 기획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느꼈던 감흥만큼 이영훈 교수님과 낙성대 연구소의 저작들에서도 많은 지식을 흡수했습니다. 이영훈 교수님이 기획한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한국형 시장경제체제>, <한국경제사 1, 2>는 한국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 보아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학자로 남았으면 자초하지 않았을 최근의 곤욕들은 운동가의 삶을 선택했으니 이 교수님이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셔야 하겠지만, 최근의 MBC기자폭행논란, 조국 교수님과의 설전, 외조부 논란, 서울대 명예교수 여부 논란, 토요타연구재단 후원 논란들을 보고 있으면 본질에 대한 논쟁에 취약한 한국적 모습에 답답합니다.
3. 우선 <반일 종족주의> 전체를 거칠게 개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책을 읽은 분이나,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분은 건너뛰시면 됩니다. 책을 읽지 않고 다음을 읽으시는 많은 사람들은 ‘구역질이 난다’ 아니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네’ 둘 중 하나의 감정을 경험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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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양의 민족주의와 달리 종족주의, 특히 반일 종족주의라는 문화 권력이다.
제1부 종족주의 기원
1-1.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 그려진 일본의 한국 학살, 겁탈과 야만과 광기는 한국의 종족주의,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형상화한 황당무계의 극치다.
1-2. 국사교과서의 40% 수탈설은 한손에는 총을 들고 다른 손에는 측량기를 들고 조선땅을 수탈했다는 신용하 교수가 만든 엉터리 학설에 기반하는 데, 일본의 조선 병합은 개별 토지를 수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영구히 지배할 목적의 거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들의 법과 제도를 이식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1-3. 일제시기의 농민궁핍은 농업생산성 문제에 불과하며, 일제가 쌀을 수탈해서가 아니다. 일본으로 간 쌀은 수탈이 아니라 엄연히 수출이었고, 이를 통해 쌀가격 상승과 소득의 증가가 있었다.
1-4. 주권 강탈은 분명 일제의 잘못이지만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일제가 개인의 재산을 강탈하고 수탈했다고 하는건 사실이 아니다. 일제가 조선에 자유시장경제, 민법과 재산권의 보호 등의 근대적 제도를 도입했다.
1-5. 강제징용은 허구며, 일본에 돈 벌러 간 노동자들이 있었을 뿐이다. 문서와 사진기록은 이들은 차별을 받지 않았고 노예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2019년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 54쪽의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진은 홋카이도 개척시 일본인 노동자 사진일 뿐이다.
1-6.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한국인들이 숭배할 또 하나의 토템에 불과하다. 작업배치에 있어 조선인과 일본인은 차별이 없었다. 산업재해율은 조선인이 높았지만 그건 위험한 작업에서 수당을 더 많이 받으려 했던 조선인들이 더 많이 죽은 것으로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이 맞아 떨어진 결과일 뿐이다.
1-7. 전쟁 중 일본탄광에서 일한 조선인으로 인해 일본노동자들은 더 적게 조선노동자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되었다.
1-8. 육군특별지원병은 출세하려고 자발적으로 지원한 조선의 상민 출신이고, 이들은 식민지시기에는 제국의 첨병이었지만 1945년 이후에는 조국의 간성이 되었다.
1-9. 학도지원병은 바보천치, 강제동원 피해자, 민족의 투사도 아니며 입신출세의 명예욕, 평안한 군대생활, 목숨부지의 욕망을 원했던 복잡한 존재지만 한국사는 이들을 반일지사로 묘사해 엘리트들의 흑역사를 은폐하고 있다.
1-10. 1965년 청구권 협정과 관련해서는 애초에 청구할 것이 별로 없는 상호 재산, 채권 채무의 조정과정이었으며, 대법원이 문제 삼은 노무자의 손해와 고통까지 포함한 개인청구권까지 다 정리한 것이다.
1-11. 한국과 일본은 국교정상화로 큰이익을 봤고, 국교정상화로 한국은 일본식민지가 된다며 반대하던 반대론자들의 예언은 어리석은 소견이며 이들은 어리석고 후안무치하다.
제2부 종족주의의 상징과 환상.
2-12. 백두산을 소중화의 상징으로 여기는 신화, 최남선의 맹호기상도, 고은의 백두산, 그리고 백두산 천지에 선 문재인 김정은 부부의 사진을 보면 백두혈통을 칭송하고 백두산 밀영의 통나무집으로 강제동원 될 남한 사람의 운명이 예감된다.
2-13. 독도는 세계사적으로 존재가 모호한 분쟁지역이다. 한국 시인들이 독도에 가 시낭송을 하며 독도를 조상의 담낭이라고 하는 것은 독도를 반일종족주의의 신성한 토템으로 만드는 시도다.
2-14. 일제가 조선 땅에서 인물이 나는 걸 막기 전국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 풍수침략을 했다는데, 이는 측량기준점(대삼각점)에 불과하며 역술인 지관의 말을 듣고 이를 쇠말뚝 신화로 만드는 한국인들은 닫힌 세계관, 비과학성, 미신성을 반일과 결합하여 저열한 정신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2-15. 구 총독부 청사를 해체한 것은 반달리즘식 문화테러이며 부끄럽고 청산해야 할 역사 지우기라는 선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를 낳은 공간을 파괴한 것이다.
2-16. 고종은 망국의 암주인데 일부 학자들은 개명군주로 미화하고 있다. 반일이면 뭐든지 존중되는 어이없는 세태입니다.
2-17. 황제는 조약체결을 끝까지 반대 했으나 을사오적들이 일본에 굴복하여 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고종이 조약체결 어명을 내렸고, 병합과 조선왕조의 멸망은 국가체제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할 뿐이다. 망국의 책임을 을사오적에게 묻는 것은 정신적 지체다.
2-18. 친일청산은 사기극이다. 제헌국회가 추진한 것은 악질적 반민족행위자 처벌인데, 노무현 정부의 친일파 청산 운동에서는 그 범위가 일정 직급 이상으로서... 탄압에 앞장선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하수인으로 점차 그 대상이 넓혀져 왔다. 반민특위에서도 문제 삼지 않은 자들을, 실제로 피해를 입은 당대 사람들도 문제 삼지 않는 이들을 단죄하는 ‘늦게 태어난 행운을 누리는 자의 폭거’를 자행하는 게 현재의 친일인사 소탕전이다. 왜 친일청산의 열의만큼이나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인 친북, 종북파 청산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가?
2-19. 일본은 죄악을 저질렀으니 무엇이든 요구해도 된다는 식이면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보상요구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해선 끝까지 배상을 요구하면서 훨씬 큰 피해를 준 북조선에는 1원이라도 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는 게 정상인가?
2-20. 토지기맥론, 유교적 생사관, 족보를 통해 아마득한 조상을 공유하는 친족문화의 바탕아래 우리의 민족주의는 일제의 탄압을 받으며 형성되어 신분적 종족주의적 신학이 되었다.
제3부 종족주의의 아성, 위안부
3-21. 나는 일본군 위안부라고 고백한 여인은 170이지만 나는 미군 위안부라고 고백한 이는 불과 두세 명이다. 이는 반일 종족주의가 일본인 위안부만 보호하고 지원하는 집단정서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3-22. 기생제가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것이었다면 일본의 호주제 도입은 딸을 팔 권리를 아버지에게 주어 조선의 공창제와 대중 매춘사회를 촉진시켰다. 색시 장사가 돈벌이가 최고인 시대, 조선인 매춘업은 전시에 각국으로 활발하게 진출하였다. 여인의 역외 송출은 일본군 위안부 송출이었다.
3-23. 위안부들은 대부분 강제 연행되지 않았다. 여자정신근로대와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그리고 위안부의 수는 터무니없이 과장되었다. 조선군사령부는 조선의 주선업자에게 하청을 준 것이고, 미국기록에 따르면 위안소는 군에 의해 편성된 공창으로 고노동, 고수익, 고위엄의 시장이었을 뿐이다. 위안부들의 실상은 송연옥 교수의 성노예설과는 거리가 멀고 일본의 위안부제는 해방 후에도 우리나라에 버젓이 살아 한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 미군 위안부의 형태로 존재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라면 해방후 민간과 기지촌 위안부는 그것보다 훨씬 가혹한 성노예였다. 실제 한 위안부는 죽어가며 일본을 저주하지 않았는데, 양반 나부랭이 직업적 운동가들이 품은 반일 종족주의의 적대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3-24. 해방 40년 동안 누구도 문제제기 하지 않다가, 1983년 요시다 세이지라는 한 일본인의 위안부 사냥이라는 거짓 증언 때문에 생긴 것이 위안부 문제다. 시간이 지나 실상을 아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기억이 희미해지자 우리 누이를 사냥하듯 끌어가 위안부를 만들었다는 가공의 새기억이 만든 것이 19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다.
3-25. 정대협은 원리주의적 활동으로 일본 정부의 사죄와 위로금 지급시도를 거부했으며, 위안부를 ‘국가 공권력이 폭력으로 강제한 성노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강제연행은 없었다. 오히려 조선의 여성 인신매매가 문제였다. 빈곤하고 인권이 박약한 곳에서 언제든 일어나는 일을 한국군 위안부, 미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 문제는 빼고 일본군 위안부만 뽑아 성노예라 비판할 근거가 없다. 이들의 목적은 한일관계의 파탄이다. 진정 원 위안부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이들을 위로하려면 해방 70년까지 반성해야 한다. 딸을 팔아먹은 것도, 가난한 집 딸을 꾀어 위안부로 넘긴 것도, 그들이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한 것도, 돌아와도 사회적 천시 속에서 숨죽여 살도록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인들이다. 위안부 문제는 가장 극단적인 반일 종족주의의 경우다.
에필로그: 반일종족주의의 업보
한국사회는 큰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큰 문제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부재다. 이런 면에서 이승만은 이 나라가 지난 70년간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토대를 제공하였다. 오늘 한국의 정치가 역사가들은 이승만을 권력에 충실한 시에에 밝은 친미주의자로 규정할 뿐이지만, 다들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기 바란다. 역사학계는 나라가 망한지 114년이 지나도 대한제국이 이완용 등 5명의 매국노 때문에 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이 비겁하고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알지 못하여 망한 것이다. 나라는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나 역사를 제대로 모르니 동원의 시대가 지나고 80년대 자율의 시대가 오자 샤머니즘, 물질주의, 종족주의가 발흥하였다. 반일 종족주의는 60년대부터 서서히 성숙하다가 80년대 폭발하였고 지난 30년간 한국의 정신문화는 점점 낮은 수준으로 추락하였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 수 있는데 이를 그치기에 이나라의 정치와 지성은 너무 무기력하다. 망국의 예언은 망국의 현실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들리고 그래서 이 책은 석양에 우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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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자들은 이 책의 광고처럼 한국인들이 일본에 품는 적개감은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에 기반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들은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이 학교 교과과정이나 여러 영화, 각종 역사서적에서 접한 대로 ‘일본이 식민 지배 35년간 한국인을 억압, 착취, 수탈, 학대했으며, 그럼에도 그 후 일본은 그를 반성, 사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통념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뉴욕대학교의 도덕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그의 명저 <바른마음>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과 똑같은 도덕적 서사를 가진 사람들과 뭉쳐 정치적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며 어느 한 가지 서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뒤로는 다른 대안적인 도덕 세계는 더 이상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자들과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서사는 “조선은 못나서 망해도 싼 나라였고, 일제는 조선반도에 근대적 제도를 도입하고 기초자산을 설치했으며, 스스로 독립도 찾아 먹지 못한 이 나라는 일제의 제도적 기반과 자산 하에 자유주의자 이승만이 공산주의자들과 피 흘려 싸워 세운 것이고, 이승만의 건국과 미국의 협력과 지원,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후 박정희의 산업화 및 이에 따른 경제적 성과가 이 나라의 뼈대다”일 것입니다. 데칼코마니인 희생자 민족주의자들의 서사는 아마도 “무르익어 가는 자생적 근대화를 앞두고 조선을 일제가 강제 병합해 민족의 자원과 정신을 철저히 수탈 유린했고, 해방 후 미제국주의가 한반도를 냉전의 전초기지 삼기 위해 통일 국가를 방해하고 친미주의자 이승만을 내세워 반쪽 국가를 만들었으며, 친일, 친미 세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에 부역했고, 지금은 이나라의 자칭 보수로 군림하며 재벌들과 함께 민중을 수탈하고 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글쎄요, 저는 이 두 서사 다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극단적 거대서사는 지난 백년을 치열하게 이 땅과 전지구에서 투쟁해 온 구체적인 한국인들의 삶을 무시한다고 봅니다.
5. 다시 이영훈 교수님의 책으로 돌아가보죠. 이 책의 1부는 이영훈 선생과 낙성대연구소가 전가의 보도로 삼는 많은 문헌자료(archival data)가 근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일제가 우리를 수탈한 게 아니라, 근대적 제도가 이식되었고 정상적이고 자발적인 경제활동이 식민지 공간에서 발생했다 정도로 요약되겠습니다. 제3부의 위안부 관련 주장도 조선시대부터 일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불행한 성매매는 수익이 높은 비지니스라는 만연한 현상이며 일본군이 집에서 소녀를 끌어가 위안소에 보냈다는 통념은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각종 통계와 일화적 증거(anecdotal evidence)를 들이대면서 말이죠. 제2부는 이영훈 교수의 정치적 주장과 개인적 소견이 뒤죽박죽된 이상한 부분이니 논할 바가 없습니다. 자 그럼 이러한 자료와 통계들이 이영훈 교수의 거대서사를 뒷받침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한 얘기지만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6. 저도 사회과학자이고, 특히 숫자로 표현되는 회계 재무분야의 자료를 자본시장 데이터와 연관시켜 실증 논문을 쓰는 입장에서 자료의 맥락과 진실성, 분석방법의 엄밀함, 통계적 결과의 바른 해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정부관료들에게 증거 기반의 정책을 세우라고 노래를 부르는 실증 만능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이나 문과대학의 교수님들과 한잔 하면서 ‘맨날 자료도 없이 구라나 친다’고 교수님들 놀리기 바쁘고요. 그런데 실증주의자로서 항상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는 실증분석의 한계, 특히 자료의 맥락과 편향성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증연구의 설계와 통계해석에 있어 인과관계와 관련한 발언은 극도로 조심스럽고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영훈 교수의 이번 책을 읽고 불편함을 넘어 느끼는 이 짜증스러운 기분은 이영훈 교수의 실증만능주의적 태도에 비추어 그가 제시하는 이러 저러한 통계자료의 선택적 편의(selection bias)가 너무 크고 그의 (정치적) 주장과 (역사적) 서사를 뒷받침하기에는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는 장치가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료를 특정결론을 위해 해석하는 것이야 본인 마음이지만,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대체가설(alternative hypothesis)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게 학술 논문이었다면 리뷰어에 보낼 필요도 없는 데스크 리젝션 감이라고 생각합니다.
7. 여기쯤에서 올해 서강대 임지현 교수님이 출간하신 <기억전쟁>이라는 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울 힐베르크는 8킬로미터 분량의 독일 및 점령지역 문헌을 읽고 종합연구서를 펴낸 유대인 홀로코스트 실증 연구의 압도적 대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나는 거기 없었다 I was not there>이라는 에세이를 썼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대가라고 칭송하지만 자신은 문헌으로만 아우슈비츠를 이해했을 뿐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니 자신의 연구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거장다운 자성이지요. “특정한 역사 사건에 관한 공식 문서 기록과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한 증인들의 목소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역사적 진정성을 갖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임지현 교수님은 실증주의도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하십니다. 몇 문단을 옮겨 적어 봅니다.
특히 기억 전쟁에서 실증주의는 ‘아래로부터의 기억이란 과장되고 부정확하며, 정치적으로 왜곡되었거나 심지어는 조작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힘있는 가해자가 관련 문서와 역사적 서사를 독점한 상황에서 힘 없는 희생자들이 가진 것은 대개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뿐이다. 그런데 증언은 불완적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부정확하다. 그러므로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자들의 풀뿌리 기억은 실증주의라는 전선에서는 문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다. 실증주의로 무장한 부정론자들이 증인을 취조하듯이 압박하고 증언과 증언 사이의 모순을 끄집어 내 증언의 역사적 가치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거짓말’, ‘혐오스러운 조작’, ‘진실의 왜곡’, ‘사실의 날조’, ‘전적으로 날조에 의한 싸구려 픽션’, ‘각주가 있는 소설’, ‘수백가지 거짓말’등과 같은 언어폭력이 역사적 비극의 생존자-증인들에게 가해지고, 이는 ‘실증’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된다 (임지현, 기억전쟁, 35쪽).
부정론에 실증주의를 가장 먼저 활용한 것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었다.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실행했다면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이 담긴 문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문서는 한 통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식이다. 명령서가 하늘에서 툭 떨어지지 않는 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에게는 모든 생존자의 증언이 꾸며낸 이야기가 된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유사하다. 국가나 군이 ‘위안부’ 제도에 관여했다고 증명할 문서 기록이 없으므로 일본군 ‘위안부’는 사실이 아니라며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두 위증으로 몰고 간다. 특히 ‘위안부’ 부정론자 중 한 사람인 후지오카 노부카쓰는 “일본군이 강제로 조선 여성을 연행했다면, 명령서가 반드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서는 한 통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논의를 느닷없이 강제 연행으로 제한해 버리고는, 강제 연행을 지시한 군의 공식 문서가 없으니 피해자들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몰아 붙인다.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성폭력’이라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전략으로 실증주의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임지현, 기억전쟁, 36쪽).
이영훈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5.18의 군부책임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비슷하죠, 발포 명령서 찾아내라는 겁니다. 이영훈 교수님의 책에 제시된 각종 통계와 자료 그리고 반증에 동원된 사실이라는 것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연장선상에서 반일 종족주의 망국론을 주장하기에는 인과관계의 메커니즘상 매우 부실합니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사실과 증거라는 것이 기존 한국 역사교과서가 주장하는 일제수탈설을 포함한 일본의 강점의 부정적 효과를 부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난징대학살의 숫자가 과장되었다거나 일제의 베트남 점령시 대기근으로 인한 아사자 숫자도 과장되었다는 식으로 기억에 대해 ‘사실’의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지요.
8.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록 중 날조된 것들은 수미일관한 반면, 진짜 피해자들의 기록은 과장되거나 사실과 모순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으면 그걸 과장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이영훈 교수는 조정래의 아리랑에 묘사된 일제의 만행이 엉터리 소설 수준이라고 비판하지만, 피해자들의 기억이 과장되어 소설에 담겼더라도 그것이 당대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총생산 수치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조선의 패망과 해방 대한민국의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경제사만큼이나 최정운 교수님의 <한국인의 탄생, 2013>과 <한국인의 발견, 2016>을 읽으며 배웠습니다. 이 두권은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과 사상의 흐름을 허균의 <홍길동전>부터 공지영의 <고등어>까지 소설속의 인물들을 분석하며 읽어내고 있습니다. 방법론적으로 매우 큰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최정운 교수님은 “방법론의 아름다움으로 학문 연구의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실증주의 사회과학, 특히 현재 미국 학계의 지배적인 흐름이 낳은 심각한 병폐다. …. 인간의 앎, 지식에 대한 판단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정당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 주장의 내용(과정이 지식의 정당성을 결정한다)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궤변이라 할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하셨고,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영훈 교수님께서 실증 또 실증을 주장하시지만 책에 제시된 1부와 3부의 실증이라는 것도 이를 바탕으로 결론으로 주장하시는 ‘반일 종족주의가 지난 30년간 강화되어 왔고 이 때문에 망국을 예감한다’로 어떻게 이어지는 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9. 이영훈 교수님 결론처럼 우리가 종족 특성인 샤머니즘에 기반한 반일종족주의에 빠져 있고, 소녀상은 하나의 토템이라고 주장한다면, 일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조슈번 무사 무리의 후예가 도련님 정치로 일본 정치권의 중심이 되어 핵폭탄 맞고 패망후 평화국가가 되기로 맹세한 것을 무시하고, 아직도 정한론 원조 요시다 쇼인과 군국주의자들을 모셔 놓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아직도 국가에 떠다니는 공기의 중요성이나 떠들고 있는데 저쪽이 더 종교적이고 일본종족주의적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진짜 문제는 ‘반지성주의’입니다. 아베 정권을 전후 일본의 역대 정부 중 가장 무능하고 윤리적으로 지성적으로 타락한 정부로 평가하는 우치다 다쓰루(内田樹) 교수님은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우리는 왜 퇴행하고 있는가, 2016>에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 현상을 반지성주의로 설명합니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일본 지식인들이 일본을 책임 부인(否認) 선진국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통렬합니다. 히라카와 가쓰미는 제5장에서 독일과 일본이 다른 방식으로 전후 국민의 죄를 면해 준 것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독일은 국민 전체가 전쟁의 책임을 나치에 돌리고 면죄부를 받는다는 허구를 지어내 과거를 극복한 반면, 일본은 전사한 모든 자는 영웅이며 피해자라는 신앙을 만들고 야스쿠니 신사에서 영령을 참배하며 피해자로 둔갑했다는 것이지요. 이런 결과 일본인은 전쟁 전의 상황을 잘 모르는 데다가, 태평양 전쟁이 어리석은 전쟁이라는 학교 교육은 열심히 받지만 책임지고 무한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는 희박하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나름 열심히 사죄를 해 왔지만 인정받지도 못하고 국제적으로도 비난을 받게 된 일본이 짜증을 폭발시킨 것이 이번 사태라고 하던데, 만약 그런거라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교육과 지성 수준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 6대 대통령이었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는 “문제는 과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습니다. 과거를 바꾸거나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눈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도 깜깜해집니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고 하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런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메르켈 총리가 네탄야후 총리에게 우리가 지금까지 70년 이상 어마무시한 반성과 사과를 했으니 이제 홀로코스트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더 이상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논의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 따위는 농담으로도 상상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없어질 때까지 처절한 반성은 계속될 것인데, 일본인들은 속으로 독일 사람들은 바보 아냐,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10. 우리나라의 반지성주의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이영훈 교수님의 저작이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가 일본이 우리를 철저히 수탈했으니 우리는 피해자라는 답정너 스타일의 동어반복 논문만 양산하고 시대로부터 배워야 할 성찰을 교과서에 담아 놓지 못한것의 특이한 반작용이라고 이해한다면 우리도 피해자의식 민족주의와 결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최정운 교수님은 2016년 저작의 서문에서 우리나라의 지성계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지성계는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학문은 이 ‘투쟁의 시대’에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새로운 흐름의 반지성주의가 휩쓸고 있다. 좌우 이념 대결이 냉전이 지난 후 너무 늦게 다시 벌어졌고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투쟁에 말려들어 왔다. 이들이 싸워온 모습은 학문적 수준의 논쟁이 결코 아니었으며 정치적인 적과의 투쟁도 아닌 흡사 악귀들과의 원한 맺힌 멸절의 싸움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온갖 중상과 인격 훼손을 서슴지 않았으며 결국은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파괴하고,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싸움거리가 되는 역사의 대목들은 학생들의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삭제를 면한들 우리의 이념 투쟁의 장인 근현대사는 두 나라 이야기가 되어 갔고, 그렇게 양 진영의 싸움과 협상에 따라 우리의 역사책은 ‘별떡 달떡’으로 뜯어 먹혀 얄팍해지고 결국에는 사료도 없고 밑도 끝도 없는 고대사만 덜렁 남아 우리의 신화마저 모진 학대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마치 멀쩡한 어른이 주민등록증에 돌사진, ‘인증샷’을 붙이고 다니며 자신이 ‘수컷’임을 자랑하는 웃지 못할 지경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를 스스로 파괴하는 ‘북조선’ 꼴이 되어가고 있다. 자기 역사를 파괴하는 민족의 앞날은 너무나 확연하다 (한국인의 발견, 12쪽).
11. 이영훈 교수님은 우리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걱정을 하시지만, 저는 그것이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20대는 식민지, 해방, 한국전쟁을 경험한 태극기 세대도 아니고 산업화 시대의 권위주의에 반발해 마르크스와 민족주의로 무장하고 투쟁을 외치던 기성세대도 아닙니다. 세계화 시대에 선진국 국민으로 태어나 글로벌 스탠다드를 익히며 자란 세대입니다. 이들을 자신들 서사의 볼모로 잡기 위해 문화전쟁을 벌이며 한국 역사를 편향적으로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세대 만큼은 한국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선은 왜 망했느냐? 왜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했느냐? 왜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할 수 있었느냐?를 사실 그대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승만도 김구도 이해하고, 박정희도 김대중도 이해하고 배울점을 찾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감추고 피하고 싶었던 크고 작은 역사적 실수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반성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더 크고 진지한 문제인 ‘이제 우리는 어떻게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 것인가?’ 하는 더 큰 물음에 대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 지금 전세계는 이념의 양극화와 극한 대립으로 인기영합주의적 지도자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커다란 질서가 쇠퇴하는 징후까지 보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해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작년 <정체성 Identity>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이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과거의 좌우정치는 좌파는 분배와 복지, 노동권을 중시하고 우파는 작은 정부, 행정의 효율성, 민간경제 우선이라는 경제적 이슈를 중심으로 대립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좌파가 경제적 평등보다는 소수집단, 여성, 인종, 종교와 관련된 소수자 보호문제에 집중하는 사이에 우파도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무시되었다고 생각하는 주류 중산층의 표심을 자극해 파퓰리즘이 심화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한국의 좌파도 땀 흘려 일하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수준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서구의 유행을 따라 소수자 보호등의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 정치에 최근 너무 맛들인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또한 정치세력들이 극단적인 상징전쟁에 너무 깊숙히 개입해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도 됩니다. 후쿠야마가 제시하는 해결책처럼 새로운 정치세력은 과거의 혈통, 이력같은 작은 범위의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나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를 통합시키는 큰 정체성 프로그램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제와 해방,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와 세계화를 온 몸으로 열심히 살아 세계적인 수준의 경제와 사회를 일구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이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온 것 같습니다. 아니 그전에 우리는 스스로 실패한 근대화라는 과제를 지금은 성취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혹 이영훈 교수님의 책을 읽게될 젊은이들은 제가 소개해 드린 책들도 같이 독서목록에 넣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읽는 젊은이들은 동시에 다음의 책들도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1) 임지현. 2019. 기억전쟁. Humanist. (2) 최정운. 2013. 한국인의 탄생. 미지북스. (3) 최정운. ...2016. 한국인의 발견. 미지북스. (4) 조나단 하이트. 2014. 바른마음. 웅진지식하우스 (원저 The righteous mind, 2012, Pantheon). (5) 우치다 다쓰루 외. 2016.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이마 (원저 日本の反知性主義, 2015, 晶文社). (6) Francis Fukuyama. 2018. Identity: The Demand for Dignity and the Politics of Resentment. Farrar, Straus and Giro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