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과 십자군
중세 십자군 전쟁의 발발 원인 가운데 결정적 이유 하나는 재산(주로 영토)을 물려 받지 못한 차자들의 관심을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돌린다는 명목이었다. 당시 교황의 령을 받든 복음 전도사들은 형님들의 재산권에서 소외되어 술병이나 불고 살던 이 2등의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포섭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비록 전쟁에는 실패했지만 '자유상인'이라는 신흥 계급을 낳았고, 그러한 개인화는 종교개혁의 자양분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성공했다. 결국 세습의 후유증이 중세교회에 종교개혁으로 돌아온 셈이다.
현대 우리 사회의 기독교를 향한 대대적인 침공은 상기 흐름의 유사라고 보면 별 무리가 없다. 역사는 반복이니까. 가령 한 대형교회의 기관지로 시작한 국X일보는 초기 목회자 아들이 운영하는 대형 주보 제작소 수준을 면치 못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저돌적인 너절리즘이 되는 전거가 되어 주었다. 그런가 하면 실향민들이 세운 1세대 대형교회의 부제들 가운데 자기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미리 깨달은 영악한 부제들은 일찌감치 자기 지분들을 끌고나와 신도시의 길목들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아 지금 이 사회에 성행하는 차자들이(사회학적 차자들 포함) 주도하는 십자군 전쟁에 편입하여 차자로서의 보복을 누리는 동시에 자기 영광까지 독식하고 있다. 그나마 일찍 간신히 세습을 완료했던 2세 목회자들은 이 전쟁의 물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침묵함으로써 이 공세의 모면을 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크게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자기들이 종교개혁을 수행하고 있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은 개혁의 질료가 되고 있을 뿐인 것을.
루터의 종교개혁이 거대한 마귀 즉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찢는데 매진하는 개혁이었다면, 한국교회 차자들은 세습이라는 리바이어던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보다 사악한 리바이어던인 사회주의 악귀에 영혼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 다르다. 이로써 이들은 이제 조각이나서 해체당하게 될 운명의 리워야단이지 결코 참된 개혁의 주체가 아니다. 그 자신들도 이미 날 때부터 악성 자본이요, 처음부터 맘몬인 까닭이다.
중세의 십자군 모병을 맡은 복음 전도사들은 차자들을 향해 이렇게 현혹했다. "여러분이여, 예루살렘을 탈환하러 가자. 그리고 이교도들의 불룩한 배를 가르자. 그러면 거기서 황금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주의 차자들 처럼 실제로 배를 가르고 그랬다.
이영진 교수 (호서대학교)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