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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와 선교신학

 

김철홍 교수(장신대)

 

A. 들어가는 말

 

칼빈주의(Calvinism)를 통한 선교신학(Missiology)은 가능한가?1)

 

이 질문은 이때까지 조직신학의 전유물(專有物)처럼 여겨져 온 칼빈주의를 선교신학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재분석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질문이다. 바로 “칼빈주의 선교신학 (Missiology on Calvinism) 또는 “튤립 선교학 (TULIP Missiology)”의 가능성을 모색(摸索)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빈 (John Calvin)에서 출발하여 그의 후예들에 의해 정립된 칼빈주의는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신학사조(神學思潮)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과정에서 칼빈주의와 관련된 모든 논쟁은 일반적으로 조직신학의 측면에서 다루어졌으며, 특별히 구원론의 입장에 그 논쟁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때까지 칼빈주의는 구원론의 입장에서는 많이 연구되어 왔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그 연구가 희박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칼빈주의를 선교신학의 측면에서 분석한 학문적 사례(事例)는 극히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광신대학교 최정만 교수는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쓰여진 연구문서가 거의 전무(全無)하다고 푸념했을 정도이다.2) 그렇다면 왜 그런가? 왜 칼빈주의는 선교신학적 측면에서 연구되지 않았는가? 정말 칼빈주의는 선교신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교리인가?

 

필자(筆者)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해답을 주고자 본 논서(論書)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본 논서를 통하여 칼빈주의는 선교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고 있는 선교신학의 교리임을 입증하려 한다. 결국 본 논서의 목적은 칼빈주의가 선교신학에 해로운 교리라는 종전의 왜곡된 고정관념을 깨고, 더 나아가 칼빈주의가 가지고 있는 선교신학적 의미와 그 가치를 밝히는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필자는 이 논서를 통하여 칼빈주의가 선교신학에 불이익을 끼치는 교리라는 기존의 잘못된 오해를 잠재우고 오히려 칼빈주의가 선교신학의 중심을 잡아주는 유용(有用)한 교리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없어야 하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때까지 진행되어 온 칼빈주의의 구원론적 해석에 기초하여 그것을 선교신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보겠다는 것이지, 이때까지의 진행되어 온 칼빈주의의 연구결과나 그 방향을 완전히 뒤엎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이 과정에서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을 하나로 묶어주는 신학적 접촉점(a theological point of contact)을 제시함으로써, 지금까지 주장된 칼빈주의에 대한 변호에 더욱더 큰 힘을 실어주고, 더 나아가 칼빈주의는 선교신학에 해로운 신학이라는 이때까지의 잘못된 고정관념(固定觀念)을 깨뜨리려 한다. 아무쪼록 본 논서를 통하여 “칼빈주의 선교신학 (Calvinistic Missiology)”의 새로운 장(場)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3)

 

 

B. 칼빈주의는 선교신학을 죽이는 신학이다?

 

칼빈주의를 선교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선교신학의 관점에서 칼빈주의를 바라본 연구사례가 이처럼 희박하게 된 이유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칼빈주의 연구는 우선 조직신학 분야에 속한 것이라는 고정관념때문이고, 둘째, 칼빈주의는 예정론 때문에 선교신학에 아무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무의미한 교리라는 종전의 오해이다. 따라서 “칼빈주의도 선교신학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거의 부정적이다.

 

특별히 두 번째 이유는 매우 심각하다. 왜냐하면, 선교와 관련하여 칼빈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가장 심각한 주제가 바로 예정론이기 때문이다.4) 이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모든 인간이 영원한 선택 (election)과 영원한 버림 (abandonment)으로 나누어졌다는 이중예정론 (double predestination)은 칼빈주의를 선교신학적으로 해석하는데 결정적인 약점으로 인정되어 왔다. 심지어 어떤 이는 칼빈주의를 강하게 비판하여 그것을 심지어 이단(異端)교리로 오도(誤導)하기도 했다. 따라서 자고이래(自古以來)로 많은 사람들이 칼빈주의는 선교에 아무런 공헌을 남기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5)

 

특별히 웨스턴 신학교 (Western Evangelical Seminary)의 윈코프(M. B. Wynkoop) 교수는 “구원의 결과가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복음전파의 긴급성을 약화시킨다.”6)고 말하면서 칼빈주의를 선교의 필요성과 전도의 동기부여를 추락(墜落)시키는 해로운 교리라고 설명했으며, 계명대학교의 황재범 교수도 1907년 9월 17일에 채택된 한국 장로교단의 최초교리인 “12신조”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장로교 선교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칼빈주의 신조를 작성치 못한 이유가 바로 칼빈주의가 가지고 있는 선교학적 약점에 있었다고 주장했다.7) 물론 이러한 해석은 칼빈주의가 적극적인 선교사업의 열망을 약화시키고 동시에 우리의 선교사역에 대한 관심을 축소시키는 해로운 교리라는 선입관과 오해에서 나오는 편협(偏狹)된 해석이다.

 

그렇다면 정말 칼빈주의는 조직신학의 분야에서만 다루어져야 하는 고립된 신학사조인가? 정말 칼빈주의는 선교신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 무용(無用)한 교리일까? 정말 칼빈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선교의 진정한 동기부여를 막는 무의미한 교리일까? 그렇다면 정말 칼빈주의 교리는 선교에 불이익을 끼치는 교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선교와 전도의 열정을 방해하는 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선교와 전도를 강화시키는 교리이다.8)

 

실제로 성경 속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던 사도 바울은 칼빈주의를 형성함에 있어 결정적인 성서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확실한 선택론과 예정론에 입각한 사람이었다. 사실상 선택과 예정이라고 하는 신학이론이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통하여 파생된 것도 바울의 신학에 빚진 바 크다. 그런데 그의 선교적 결과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할 정도이다.9) 그리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선교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이 거의 칼빈주의자들이었다.10) 이러한 상황적 근거만 보더라도 칼빈주의는 절대로 선교와 어긋난 교리가 아니다.

 

그래서 데이빗 보쉬(David Bosch) 교수는 “예정론에 대한 강조는 선교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촉발시켰다”11)고 평했고, 광신대학교 최정만 교수도 그의 책『칼빈의 선교사상』머리말을 통하여 “칼빈주의야말로 오히려 선교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고 주장했다며 칼빈주의가 절대로 선교의 저해요소가 아님을 여러 방면으로 증거 해 보였다.12) 칼빈주의에 입각한 선교활동을 주장해온 제임스 패커(James Packer) 교수 또한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나타난 주권적 예정이 절대로 전도와 선교를 향한 우리 인간의 열망과 책임을 희석(稀釋)시키기 위한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13)

 

그러나 이러한 적극적 변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칼빈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때문에 칼빈주의는 여전히 선교학의 입장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모든 변호들이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을 제대로 연결시켜 주는 “신학적 접촉점(a theological point of contact)”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시된 변호들이기 때문이다. 둘 사이를 연결시키는 신학적 접촉점이 없는 변호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때까지 제시된 많은 신학자들의 변증과 변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칼빈주의는 선교학 분야에 있어서 그 신학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논서를 통하여 이때까지의 칼빈주의 변호를 더욱더 강화시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신학적 접촉점을 제시하려 한다.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의 신학적 접촉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이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교리임을 입증하려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칼빈주의는 선교신학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은 서로 어떤 신학적 접촉점을 가지고 있을까?

 

C.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의 접촉점

 

칼빈주의가 선교를 방해하는 신학사조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칼빈주의와 선교신학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학적 접촉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이라는 분야의 신학적 접촉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강조함으로써 칼빈주의는 선교신학의 중심교리임을 확인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신교신학을 하나의 맥(脈)으로 이어주는 신학적 접촉점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 신학적 접촉점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 (神之主權: Sovereignty of God)”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신학개념이 칼빈주의와 신교신학을 잊는 신학적 접촉점이 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선교신학 둘 다 공통적으로 그 신학의 근본 출발점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신학개념에서 두고 있다는 데서 발견된다. 그럼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하나씩 고찰해 보기로 하자.

 

 D. 칼빈주의의 중심개념

 

 

 

일반적으로 칼빈주의의 중심개념을 이중예정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칼빈주의의 핵심을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이중예정론은 칼빈주의의 중심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중심개념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핵심주제는 이중예정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神之主權: Sovereignty of God)”이다. 여기에 칼빈주의의 중심개념을 이해함에 있어 나타나는 반전(反轉)이 있다.

 

우리가 이때까지 알고 있는 이중예정론은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중심주제가 아니다. 이중예정론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신학적 산물(a theological outcome)이며, 논리적 귀결점(a logical terminal)이고, 동시에 최종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a process for the destination)이지, 결코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근본주제는 아니다. 따라서 이중예정론은 그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핵심을 잘 드러내도록 인도하는 촉매제(觸媒劑)이다.14)

 

이러한 사실은 칼빈주의의 출발점인 존 칼빈 (John Calvin)이 그의 『기독교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초판(初版)에서 이중예정론 자체를 아예 다루지 않은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15) 그래서 엠마누엘 스티켈베르거 (Emanuel Stickelberger) 교수는 “이중예정론이 『기독교강요』의 중심적 교리라면, 이 교리가 제 3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16)고 했으며, 프란코이스 웬델 (Francois Wende)은 “이중예정론은 칼빈주의 신학의 중심개념이 아니라 칼빈 자신의 모든 신학이 정리된 후에야 뒤늦게 독립적으로 나온 교리 17) 라고 했고, 광신대학교 최정만 박사도 역시 선택과 예정이라는 항목은 칼빈이 후대에 발전시켜 첨가한 교리임을 밝히면서 이중예정론은 칼빈주의의 출발점이 아니고 칼빈주의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을 말할 때에 논리적으로 도달한 귀결점임을 강조했다.18)

 

이러한 주장에 힘입어 폴 틸리히 (Paul Tillich)는 “이중예정론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논리적 연상(a logical implication)일 뿐 그 이상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19)고 했으며, 로레인 붸트너(Loraine Boettner) 교수도 “이중예정론이 지극히 위대하고 복된 성경의 진리이지만 결코 칼빈주의의 모두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라고 했고, 헨리 반 틸(Henry R. Van. Til) 교수도 예정론은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핵심이 아니며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만이 칼빈주의 신학의 출발점임을 강조했고,21) 헨리 미터(H. Henry Meeter) 교수도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실수 중의 하나는 이중예정론에 의한 선택교리를 칼빈주의의 근본원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중예정론은 어디까지나 칼빈주의의 논리적 결론일 뿐이지 근본주제가 아니다”.22)라고 설명했다. 김남식 박사 또한 “칼빈주의의 중심사상은 하나님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용어가 따르게 마련이다. 23)고 했고, 김성환 목사도 예정론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교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중심 사상은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 중심사상이다. 예정 교리도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24)고 했다. 이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주장을 통하여 볼 때,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핵심주제는 이중예정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E. 선교신학의 중심개념

 

 

이제 칼빈주의의 중심개념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선교신학의 중심개념은 무엇인가? 역사를 통하여 선교신학의 중심개념은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선교신학의 중심점은 한 가지 개념으로 정리 되었다. 바로 ‘미시오 데이 (Missio Dei: The Mission of God: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교학자들은 선교신학의 신학의 중심점을 이 “Missio Dei”에서 찾고 있다. 글자 그대로 “Missio Dei”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교로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사역을 강조한 신학개념이다.25)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 그 중심개념이다.

 

“Missio Dei”라는 단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칼 하르텐슈타인(Karl Hartenstein)이다. 그는 1933년도에 『신학적 문제로서의 선교 (Die Mission theologisches Problem)』라는 글을 통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26)그 뒤 케오로크 보채돔(Georg F. Vicedom)이라는 교수가 『하나님의 선교 (The Mission of God)』라는 책을 통하여 “Missio Dei”는 성삼위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를 뜻한다고 주장하여 칼 하르텐슈타인이 남겨 놓은 “Missio Dei” 개념을 확고히 발전시켰다.27) 영국 버밍햄(Birmingham) 대학의 데이비스(J. G. Davies) 교수도 “선교란 선교대상(교회, 사람)의 의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의하여 정의되어야 한다”28)고 주장했다. 이들 모두 선교에 있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직접 움직이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를 주장하였다. 이후부터 “Missio Dei”라는 말은 선교신학의 중심개념이 되었다.29)

 

이와 같이 “Missio Dei”라는 말은 현재 대부분의 선교신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선교신학의 중심신학개념이다. 그런데 이 “Missiol Dei”라는 말이 내포(內包)하고 있는 실제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교이다. “Missio Dei”의 중심의미가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라는 주장은 구원이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임을 주장하는 칼빈주의 교리와 완전히 동일한 선상에 서있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은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이 모두 같은 출발점을 가지며 동일한 신학적 기초와 뿌리를 속에서 자라난 신학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바로 그 중심에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개념이 서 있다.

 

F. 똑같은 토양: 하나님의 주권 그러나 두 가지 나무: 구원과 선교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칼빈주의의 중심개념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이다. 동시에 선교신학의 근본주제가 되는 “Missio Dei”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를 말하고 있다. 다만 칼빈주의는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있고, “Missio Dei”는 “선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구원의 주권”이며 “Missio Dei”는 “선교의 주권”이다. “구원”과 “선교”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결국 칼빈주의와 선교신학 둘 다 모두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신학개념은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을 하나로 이어주는 가장 확실한 신학적 접촉점이 된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은 똑같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토양(土壤)에서 자라난 나무들이다. 그런데 칼빈주의 교리라는 나무는 자라는 과정에서 “TULIP”라는 다섯 가지를 뻗게 되었고, 선교신학이라고 하는 나무는 “Missio Dei”라는 줄기를 타고 자라난 것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두 나무가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아래로 내려가 그 뿌리를 찾아가면 두 나무가 동일하게 같은 토양 즉,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토양 속에서 같이 자라난 나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개념 속에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둘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이해 속에서 상호보완하며 협력 할 수 있는 동역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결국 칼빈주의가 절대로 선교신학과 상충(相衝)되는 신학이 아님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중심핵심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이라면 선교신학의 중심핵심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이기 때문이다.30) 이러한 공통점은 선교학적 입장에서 본 칼빈주의에 대한 기존의 오해와 혹평(酷評)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것이며 더 나아가 칼빈주의를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G. 칼빈주의 선교신학: TULIP 선교학

 

 앞에서 고찰된 “하나님 주권속의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이라는 관계성은 우리로 하여금 이른바 “칼빈주의 선교신학 (Calvinistic Missiology)” 또는 “튤립 선교학 (TULIP Missiology)”이라는 새로운 신학용어를 창출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때문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용어가 이제는 선교신학분야에서도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되어지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주의와 선교신학은 같은 뿌리 속에서 자라난 형제 신학이기 때문이다.

 

만약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정말로 선교에 방해가 되는 교리라면 선교의 신학적 기초가 되는 선교신학에도 방해가 되어야 하고 선교신학의 중심개념인 “Missio Dei”와도 불일치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개념 속에서 둘은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러므로 이제 칼빈주의가 우리의 선교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교리라는 종전의 잘못된 해석과 인식은 배격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신학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바로 “칼빈주의 선교학” 즉, “튤립 선교신학”이다.31)

 

 

 

H. 나가는 말

 

 

이제 정리해 보자. 결국 칼빈주의는 절대로 선교신학에 방해가 되는 교리가 아님이 증명되었다. 오히려 칼빈주의는 선교신학에 새로운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는 교리이다. 그러므로 만약 칼빈주의가 선교신학에 해악(害惡)을 끼치는 교리라면, 이때까지 선교신학의 중심개념이 되어온 “Missio Dei”도 선교에 불이익을 끼치는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칼빈주의의 주제교리와 선교신학의 핵심개념이 모두 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선교는 모름지기 구원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칼빈주의는 지극히 구원론적 교리이다. 그리고 선교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칼빈주의도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에 중심을 두고 있다. 따라서 칼빈주와 선교는 불가분의 관계성 속에 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더 이상 절대로 우리의 선교에 발목을 잡는 이상한 교리가 아니다. 이와 같은 이해 속에서 우리는 칼빈주의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칼빈주의 속에서의 새로운 선교신학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속에서의 구원 전파하는 선교신학이다. 즉, “칼빈주의 선교신학” 또는 “튤립 선교신학”이다.32)

 

 

 

영문초록

 

Toward a TULIP Missiology (Calvinistic Missiology)

Chulwoong Kim

 

Can we shape a Calvinistic Missiology?

 

What would a TULIP Missiology look like?

 

TULIP has been five pillars to sustain a house of Calvinism. However, most people who are interested in Missiology have spoken ill of TULIP. Because one of the derivative applications of TULIP is predestination (which means that salvation was predestined by God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creation) may assume that a Calvinistic Missiology well lack urgency.  It sounds to us that we do not have to evangelize and carry out any mission work.

 

However, this kind of understanding results from misunderstanding the basic theological core of TULIP. The basic core of TULIP is not predestination but sovereignty of God.  Predestination is a theological byproduct which emphasizes the sovereignty of God, and is not meant to give license to laziness to the Christian.

 

 There is a theological point of contact between TULIP and Missiology. The point of contact between TULIP and Missiology is the sovereignty of God which implies the lordship of God.

 

 Is the sovereignty of God really at the core of Missiology as well? The answer is an absolute Yes! The reason is that Missio-Dei is the main theological core of modern Missiology. The concept of Missio-Dei is mission of God, mission by God, and mission in God. In short, Missio-Dei is a Triune-God centered theological concept. It also means that mission assumes the sovereignty of God.        At glance, TULIP and Missiology seem to be different. However, both were raised in the same internal root (the sovereignty of God).

 

Therefore, any aggressive question toward TULIP in the light of mission must be carefully re-examined in the light of the concept, Missio-Dei, which is deeply related to the sovereignty of God.

 

The following is a frame to highlight TULIP Missiology.

 

T: Total depravity and inability 

 

This presents us with an urgent impetus to Mission What it means is 1) that since the fall humans are under the curse of sin, and 2) that humans are controlled by a wrong principle and 3) that humans are unable to seek God or salvation. The whole of a humans being has been affected by sin. Humans are estranged from God. Humans can do nothing seeking to their salvation. It is the spiritual deadness. Humanity is blind to all pious things.(Ezekiel 37). A bird with a broken wing is free to fly. However, it cannot because of its broken wing.  Humanity is free to see God. However, humanity cannot because of its depravity and inability.

 

U: Unconditional election 

 

Election is the work of the Father God. No aspect of this unconditional election is more emphasized than that of Gods absolute sovereignty. God could have chosen to save all. God could have chosen to save none. However, God did neither. Instead, God has chosen some to save. God has simply left non-elect in the sinful situation as they were. We never know why. We also do not have to know it. It is up to God (Romans 9:20). It is solely for Gods own good pleasure and sovereign will. God has no obligation to save all. The doctrine of the predestination came from this theological system. The non-elect are simply left in their previous state. Election is not determined by humans will but Gods will. Election itself is not salvation, but it is for salvation. Those chosen (Unconditional election) are not saved until they are affected by Jesus Christ (Limited atonement) and regenerated by Holy Spirit (Irresistible grace).

 

L: Limited and particular atonement 

 

Atonement is the work of Jesus Christ. Jesus Christ only died for some chosen people who were elected by God. Those chosen by God cannot be saved until they are affected by Jesus Christ. Salvation depends on Gods election. For this reason, Christs saving work is limited by Gods limited unconditional election. Since not all men will be saved by Christs saving work, a limitation must be admitted. If Christs work was intended to save all, God would be loser who did not complete his plan. The value of the saving work of Jesus Christ is universal. However, the effect of the saving work of Jesus Christ is limited.  1 Timothy 2:4-6 does not means that Christ died for all men without distinction (He died for Jews, Gentiles, Korean..). It never means that Christ died for all men without exception (He died for all humans)

 

I: Irresistible and efficacious grace  the work by Holy Spirit

 

 It is the work of Holy Spirit. Two great acts (election and atonement) cannot complete the work of salvation until those chosen people are regenerated by the irresistible grace of Holy Spirit. Holy Spirit never fails to bring the chosen people to salvation. Although humanity is sinful enough to reject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otal depravity and inability), the chosen are drawn by an irresistible calling.  Of course, those who are not chosen experience a general calling, which is resistable.

 

 P: Perseverance of Christians 

 

It is the result of the mission being carried out by God.  Those who are elected by God, atoned for by Jesus, and regenerated by the Holy Spirit keep staying in faith by the protection of Triune God. True believers can commit sin again. However, the sin does not cause them to lose their salvation. Nothing can separate the saint from Gods love. (Luke 15.) Those who were once chosen by God cannot fall away and be lost by God. C. H. Spurgeon: The believer, like a man on shipboard, may fall again and again on the deck. However, he will never fall overboard.

 

In sum, T and P show not only urgent need and reason for mission but also undisputed result of mission. Both (T, P) identify the starting point and the final destination of mission. U, L, and I show Triune-Gods saving work and how the Father, Son, and Holy Sprit share the work.

 

In conclusion, it is inaccurate to say the doctrine of TULIP absolute prevents us from devoting our effort into mission. Rather, TULIP, seen from a different angle, compels us into mission. The best example is the life of St. Paul. He was a person who gave many doctrinal resources for the doctrine, TULIP. He was also sure that he was predestinated by God for salvation and called by God to be a missionary for Gentiles. 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 never bothered him. Rather, his sense of Gods sovereignty spurred his missionary endeavor.

 

We need to reconsider the real meaning of TULIP in the light of the sovereignty of God for salvation before saying that TULIP contradicts mission.

 

 [1]. This is an essay for supporting Dr. K. D. Schulzs class in Ph. D program at Concordia Theological Seminary (Fort Wayne, IN, U.S.A/ Spring, 2007). The content of this essay came from the writers work for the comprehensive examination, Calvin on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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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 2023.09.12 19:58
    이 글은 장신대 김철홍 교수의 글이 아니라 김철웅 박사의 글입니다. 저자 수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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