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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목사와 예장 고신파

(백영희의 이야기, 참고자료), 개혁사 제공

 

 

1.고신과 분리되는 주요 사안들

 

(송상석 정치학 강의)
1953년 봄학기 정치학 강의는 송상석목사님이 맡고 있었습니다. 세상 정치나 법을 잘 안다고 성경법을 가르치는 교회 정치를 맡긴 것은 잘못이라고 박윤선목사님을 찾아가서 반대를 했습니다. 2시간이나 논쟁이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전투를 원만하게 하는 분이라 백조사님의 뜻을 알아 차렸으나 조용히 해결하기를 원했고 백조사님은 끓는 불덩어리였습니다. 고신 최고의 교권 실력자를 교체한다는 것은 어려웠지만 박윤선목사님이 용단을 내어 말을 하고 송목사님이 그만 두고 다음 학기부터는 한상동목사님이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ICCC세계 총회와 고신)
-일시
54.8.3.-8.18
-시점
박윤선의 1954년 화란 유학 6개월에서 돌아온 후 4개월쯤 지난 7월 29일
-참가
한상동과 박윤선을 포함한 고려파 4명 목사님들이
-초청
국제기독교연합회 ICCC 제2차 세계대회 초청을 받아
-장소
미국의 필라델피아로 갔습니다.
-성향
한국교회는 ICCC와 그 지도자인 칼 매킨타이어가 극단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을 사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이 기구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매우 우호적으로 인식되었는데, 이유는 크게 2가지로서, 첫째는 그들의 신학이 타협을 모르는 보수적이었고 둘째는 그들의 정치적 자세가 반공이어서 6.25전쟁 직후 남한교회의 상황과 잘 들어맞았습니다.
-지원
매킨타이어 그룹이 보낸 선교사들이 고려파의 창립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고신을 도왔습니다. 1960년에는 매킨타이어 그룹 승동측에 신학교 건축비 크리스마스 헌금 10만불이 지원되었습니다.
-소개
이 ICCC를 1950년 한국교회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박윤선이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적극적으로 중심이 되어 있던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항할 수 있는 기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신 대표단은 일본 군국주의를 이기고 6.25전쟁을 겪은 한국의 개혁보수정통 세력이라는 소개와 함께 넘치는 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통적 복음신학 진리 깃발 드높이기 위해 창설되었다는 이 회는 세계 26개국 61개 교단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일정
총회를 마친 고려파 대표들은 매킨타이어가 이끄는 2개 교단을 방문하여 연설을 했다고 당시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성경장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이고 또 하나는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이었습니다. 박윤선은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에서도 연설을 하였습니다.
-염려
그러나 당시 정통장로교회(OPC) 선교위원회 총무로 있던 갈브레이드는 고려파 대표들이 ‘성경장로교회에서 많은 근본주의자들에게 삼키울까’ 두렵다고 걱정하였습니다.
-학위
고려파 목사들의 여정에서 최고 절정은 9월 성경장로교회의 인신학교인 ‘훼이스(Faith)신학교’가 박윤선 목사와 한상동 목사에게 명예신학박사를 수여한 것이었습니다.
-반응
한상동목사님에게 이 학위가 주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이런 영예를 받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내가 이 학위를 받아 한국에 돌아가면 교회가 비웃을 것이다.’ 이렇게 거부하는 한목사님에게 매킨타이어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후일
후일 ICCC와 매킨타이어가 한국에서 추진한 일을 볼 때 이 학위 수여는 한국교회에 대한 ICCC의 영향력 강화를 위한 정치적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1961년 고신이 총회와 합동하게 되고 그 합동 총회가 ICCC와 관계를 단절할 때 한상동목사님은 총회장이었습니다.
-귀국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님들은 1954년 10월 중순 귀국합니다. 미국교회에 대하여 한국교회를 위한 선교와 노고와 현재도 계속되는 노력에 대하여 깊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부선목사님은 이 여행이 고려파와 정통장로교회를 위해 이해를 증진하는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박윤선목사님은 이 학위를 받고나서 이후 자신의 이름 앞에 ‘신학박사’라는 직함을 붙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신학박사는 Doctor of Theology이지만, 이전에도 남궁혁 박사가 자신의 Doctor of Divinity 학위를 신학박사라고 번역한 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박형룡은 Ph. D. 학위를 받아서 자신을 철학박사라고 소개하였습니다. 1954년 박윤선이 미국에 가기 전에 펴낸 로마서 주석은 ‘신학사 박윤선’이라고 붙였고 영어로는 ‘Rev. Yune Sun Park. Th. M.’이라고 하였으나 귀국 후 첫 출간한 주석 요한계시록 재판에서는 ‘신학박사’ 고 적고 영어로 ‘Rev. Yune Sun Park. Th. M. ;D.D.’로 소개했습니다.

(백영희의 비판)
WCC라는 세계기독교단체는 자유주의 교회들이 중심입니다. 보수교회들은 이에 대항하여 ICCC를 만들었습니다. 아직 한국교회와 고신은 이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보수세력으로만 알고 있을 때였습니다. ICCC에서 고신의 한상동목사님과 박윤선목사님을 미국에서 개최되는 총회에 초청을 했습니다. 백조사님은 한부선목사님과 함께 이 대회 참가를 반대했고 한상동 박윤선목사님은 찬성했습니다. 두 분은 고신의 대표가 되어 그곳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왔습니다. ICCC는 실은 기독교 정치주의였습니다.
두 분이 다녀 온 후 한상동목사님을 초량교회 사택에서 단둘이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진리와 영감 외에는 아무 것도 가치가 없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 그런 학위를 받아오셨습니까? 그런 학위 가지고는 다른 진영을 아무리 따라갈라 해도 그 사람들 신 벗어 놓은 데도 못 따라갑니다. 우리가 가진 보화요 자랑거리요 힘은 진리와 영감이 아닙니까?‘ 한목사님은 겸손한 분입니다. 나이나 목회 경력이나 모든 면에서 백조사님이 손 아래였지만 공손히 그 말을 받고 있었습니다.
‘형님! 나도 그것을 받지 않으려고 거절했습니다. 애를 썼는데 그들이 강제로 끌어다가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만 받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내가 그 학위를 가지고 박사 행사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까?’ 백조사님이 말을 받았습니다. ‘받아 왔다고 하지만 그 학위로 학위 행사만 하지 않으면 외부에는 손해가 없게 되겠지만 하지 않기가 그렇게 쉽겠습니까? 아마 받고도 행사하지 않는 것은, 받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날은 좋게 대화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헤어진 다음에 한목사님을 지지하는 밑에 사람들이 이간을 하고 나섰습니다. ‘학위 받은 게 뭐가 나빠 그렇게 말하느냐! 젊은 것이 당돌하게... 감히!’ 자꾸 옆에서 충동을 주니까 한목사님도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목사님은 백조사님을 적극 지지하고 보호하고 나왔는데 이 한 번의 섭섭함 때문에 밀접한 사이가 그만 벌어졌습니다.

(고신의 월간지 파수군)
고신이 소수파이며 부산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역적 한계 때문에 한국교회 안에서 진리 운동을 하는 일에 불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책출간이 희귀하던 시기에 고신은 ‘파수군’이라는 월간지를 통해 한국교회를 향해 진리를 증거했고 소속이 다른 곳에서는 직접 고신의 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으므로 파수군을 통해 고신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큰 복음 운동 기관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담아 한국교회에 내보내고 있었으므로 다른 교파에서는 파수군을 아주 생명같이 대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이 주필이고 오종덕목사님이 약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신 지도부는 돈이 든다며 파수꾼을 폐간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신 지도부와 크게 갈등을 겪었으나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1956년에 이르러 지도부는 파수군을 폐간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백조사님은 서부교회 단독으로 출간을 계속하겠다며 파수군 출간 일체 실무와 경비 문제를 서부교회로 가져왔습니다. 그 책을 출간하기 위해 박윤선목사님 노고는 실로 컸습니다. 오종덕목사님이 약간 돕고 있었습니다. 가치 있는 글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수고가 인상 깊었고 서부교회는 모든 경비와 출간을 단독으로 맡아 1년을 계속했습니다. 1957년 강도사 시취 설교 때 이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설교하고 난 다음에 고신 지도부는 실수라고 생각이 되어 돌려 줄 수 있느냐며 제의를 했습니다. 그것도 무슨 주도권 장악에 도움이 되니까 욕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하겠다고 제의를 하기 때문에 미련없이 돌려 주고 양보했습니다.

(강도사 시취 1등)
1957년에 강도사 시취를 받고 1등을 했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 시취위원장인 한 대식목사님이 쫓아와서 반갑게 소리쳤습니다. ‘백조사! 1등이야 1등!’ 교회사와 교리사가 한 과목으로 같이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실패를 했으나 백조사님은 평소 교회사처럼 연대나 외우게 하는 시험은 일부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60점에 겨우 통과하는 경우가 있어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위태롭게 봤습니다. 고신 지도부에 밉보여서 시험이나 어느 절차에 문제가 생기면 낙제를 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도사 고시는 통과를 해야 할 필요가 있어 시험 준비를 했고 그 시험의 난이도가 높아서 모두 고생했으나 백조사님은 1등으로 통과를 했습니다. 안용준목사님도 당시 함께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서 때문에 자리를 배정하면서는 성적순으로 앉힌다면서 백조사님을 3등 자리에 앉히고 있었습니다. 고신 지도부가 백조사님이 목사가 될 때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며 안수 저지에 나섰습니다.
학과 시험 다음에는 총노회 앞에서 강도사 설교시취가 있었습니다. 설교 시취는 오전에 진행되고 오후에는 총평이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백조사님 순서는 마지막이었습니다. 오전 마지막 순서로 강단에 올라간 백조사님은 ‘우리 고려파는 가진 보화가 하나님과 진리뿐이니 학문도 재정도 인품도 다른 진영을 따라 갈 수 없고 찌꺼기들만 모인 것 같으니 하나님과 진리만 주력해야 하는데 지금 사업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변했다. 하나님과 진리를 증거 하는 것은 고려파에서 파수군 밖에 없는데 이것을 내놓은 것은 하나님과 진리를 뒤로 돌려버린 증거라’고 강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시취 순서상 백조사님은 오전의 마지막 시간에 시취설교를 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1천명 정도 될 정도였는데, 고신의 내부 문제를 외치자 푸른 채소에 뜨거운 물을 부은 듯 모두들 푹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한상동목사님이 총노회장으로 시취위원회를 대표하여 총평을 하러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앞에 나오자 첫 마디에 백조사님을 향해 호통을 칩니다. 제일 뒤에 앉아 있던 백조사님에게 '백조사! 무슨 이유로 그런 설교를 했오!’ 3번을 고함지르며 야단을 쳤습니다. 2번을 그렇게 하고 3번째 또 그렇게 할 때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발을 포개 올리며 그 호통치는 소리가 너무 마음에 안됐고 가증스러워 똑 바로 응시를 했습니다. 눈빛이 무서운 백조사님이 응시를 하게 되자 움찔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 넘어갔습니다. 모든 순서를 마친 뒤 시취 위원들 사이에 인허를 거부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학과 시험에서 1등을 했고 설교는 고신 제일의 부흥사인데 그런 백조사님을 설교 점수로 낙제를 시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낙제를 시키려고 해도 흠을 잡을 수 없게 되자 위원 전체의 투표로 결정을 하자고 합의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수해 본 결과 3분2가 찬성을 해서 인허가 결정되었습니다. 마지막 고신에서 제명될 때는 상회 불복종이었지만 제명의 원인은 1950년대 중반부터 누적된 이런 문제였습니다. 고신과는 신앙적 행정과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 도저히 화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나온 게 아니라 쫓겨 나왔습니다.

(교단의 진로와 사모들의 역할)
박윤선목사님은 이세벨을 목사사모라고 지탄하곤 했습니다. 1954년 6월 17일 졸업식을 할 때였습니다. 고신 전체의 잔치날입니다. 모두 졸업식에 참석하느라고 몰려오는데 저쪽에 고신 지도부 사모님 5명이 택시를 타고 오고 있었습니다. 차가 귀할 때였습니다.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여왕님들 오십니까!' '아니, 우리가 왜 여왕이에요?‘
고신의 사모님들이 자기 남편 목사 코를 꿰어 사모님들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유명한 목사님들이었으나 실은 사모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행동들이 미워 이름을 여왕이라 지어 불렀습니다. 그분들이 서로 남편들을 속삭거려서 함께 죽고 산다는 신앙동지들을 갈라 세웠고 나중에 박윤선목사님 이인재목사님이 고신에서 쫓겨 나온 원인도 이런 문제에 있었고 백조사님의 제명도 그 배후 원인이 그런 문제였습니다. 백조사님 사모님에게 그분들이 속삭거려 대적이 일어나는데 이는 싸워 이길 재간이 없었습니다.

(졸업식)
졸업식이 끝나고 들리는 말에 그 사모님들이 ‘산골 출신 그 조사 하나에게 온 기념품이 다른 학생 기념품 다 모은 것보다 많네!’ 달리 처리할 수 없어 다 팔아서 복음운동에 썼습니다.

(ICCC-메킨타이어)
ICCC 지도자 메킨타이어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이병규목사님이 백조사님에게 사람을 급히 보내어 그 운동에 참가를 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백조사님은 당시 서부교회 자체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당시 강원도 쪽만 메킨타이어씨의 ICCC에 가입을 했기 때문에 그의 강원도 방문을 두고 걱정이 되어 ICCC와 메킨타이어 운동에 대한 전말을 편지로 적어 사람 편에 보냈습니다. 기독교 정치운동이니 참가해서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메킨타이어씨는 부산에도 방문하여 남교회에서 진행되던 고려신학교에서 환영회를 했고 그때 경남도지사와 부산시장이 그이에게 꽃다발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그 운동의 내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고신의 세상학교화)
고려신학교가 신학교로만 있을 때는 아주 왕성했고 진리를 잘 가르쳐서 한국 신학교 중에 제일 으뜸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세상식으로 키우며 길러야 한다 해서 복음병원을 차렸고 그다음에는 대학을 만들고 나중에 종합대학을 만들었습니다. 또 의과대학을 만들었습니다. 한명동목사님이 주동이 되어 일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조사님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나중에 머리 좋은 학생들은 의과나 법과에 가고 신학과는 아주 찌끄러기 못쓸 것들만 오게 될 것이라고 반대를 했습니다.
복음병원은 한부선목사님이 시발을 시켰는데 이 문제 때문에 몇 년이 지난 다음 한번은 언쟁을 벌렸습니다. '한부선 목사님, 복음 병원을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시지' '목사님이 시작해 가지고 세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목사님이 그곳을 얼마나 주관하고 지도를 하고 있습니까? 목사님 뜻대로 되고 있습니까?' 자존심 때문에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중심의 한목사님이 좋은 뜻으로 시작을 시켰지만 결국 신앙으로 주관하지 못하고 그 병원은 돈벌이 중심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대학교로 만들어 나가려고 할 때도 시비가 많았습니다.

(예배당 소송)
신사참배 때문에 한국교회가 갈라졌고, 갈라진 교회들끼리 예배당 확보를 위해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예배당 때문에 안 믿는 판사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은 고전6장에 죄가 된다고 백조사님은 가장 먼저 고신 내에서 강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소송을 해야 된다고 제일 강하게 주장하는 송상석 황철도목사님과 대립이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상동, 오종덕, 이인재, 박윤선목사님은 백조사님과 의견이 같았습니다.

(유엔군 철수 반대)
- 56.1.6. 이인재목사님 큰 아들 이정빈 하정혜의 약혼식
- 6.25전쟁이 끝난 뒤 유엔군이 철수한다고 발표가 나니까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전쟁 전 미국이 에치슨라인을 발표하며 일본까지만 방어하겠다고 발표를 하자 바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전쟁은 끝이 났으나 유엔군 철수는 또 다시 북한의 침략을 불러 올 것이라는 위기감이 심각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유엔군 철수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고 일반 사회 단체처럼 궐기대회를 하였으며 메세지를 인쇄해서 교회마다 나누었으며 심지어 혈서까지 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고신도 이 문제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유엔군 철수하는 것을 반대하고 기도하며 온 교인들에게 반대 운동을 했습니다. 백조사님은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세상은 유엔군 철퇴를 반대해야겠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데 그런 운동을 할 수 있는가! 총노회장 이약신목사님이 유일하게 그 공문을 돌리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교단의 직책을 갖지 않았던 백조사님은 따로 반대 활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이인재목사님 큰아들 약혼식이 있었습니다. 고신 출발의 초기니까 고신 지도부 모두 모여서 축하도 하고 단결도 할 때였습니다. 이미 고신 안에서 외톨이가 되었을 때였기 때문에 가지 않으려 했으나 이인재목사님이 고신 지도부로서 어려운 중에도 늘 백조사님을 지지하여 왔고 그 초청이 간곡하여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상동, 한명동, 오종덕, 송상석, 박윤선, 또 박손혁, 이인재 등 8명 목사님들이 모였습니다.
약혼식 초청에 가는 문제를 두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가게 되면 또 하나님께서 설교를 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도록 할 것이니 그렇게 하고나면 또 얼마나 파장이 많아질 것인가! 인간적으로는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므로 순종했습니다.

모임이 끝난 뒤에 백조사님은 별일 없이 넘어간다 싶어 얼른 나오려고 가방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상동목사님이 갑자기 한 마디 합니다. ‘오종덕목사님 내일 새벽 예배 인도하십시오’ 오종덕목사님이 불쑥 말을 받아 넘겼습니다. ‘백조사가 내일 아침에 하십시오. 백 조사한테 맡깁시다.’ ‘저는 지금 ... ’ 물리치고 일어나려는데 어른들이 호통을 칩니다. ‘아니, 백조사. 어른들이 시키면 순종을 해야지! 뭐든지 그렇게 빡빡 우겨 되겠소!’ 이상하게 이날 따라 별일이 아닌데도 화를 내고 밀어붙입니다. 지금 설교를 맡으면 고신이 하나님 앞에 진노를 쌓고 있는 이 문제를 또 외치게 되는데...
설교를 맡게 되었으나 다른 말씀을 전해보려고 찾았습니다.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을 겪었으나 하나님은 이 말씀만 원하고 계셨습니다. 또 이 말씀을 증거하면 그분들과 정반대가 되어 당장 목이 날아가고 야단이 날 터인데, 그래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인재목사님이 사회를 봤습니다. ‘자, 백 조사님 나와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5분을 지체하며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설교자가 말씀 준비를 위해 기도하는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분위기가 이상하자 옆에서 채근을 합니다. 10분을 지체하고야 할 수 없이 강단에 섰습니다. 이 정도라면 하나님께서 꼭 원하시는 길이니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강하게 몰아붙이니까 내가 죽어도 해야 되겠다’

‘신사참배는 강제로 당했으니 강간이고 억간이라면, 유엔군 철수를 반대하는 것은 교회가 좋아서 찾아가는 화간입니다. 어느 죄가 큰가! 남한을 지킨 것이 유엔군인가 하나님인가? 한국교회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바라보고 있는가!’
강하게 외쳤습니다. 듣고 있던 모든 분들이 채소에 뜨거운 물을 쏟아 부은 것처럼 풀이 죽었습니다. 예배를 마쳤으니 이제 모두 내려올 것인데 사무실로 가니까 한상동목사님이 화가 많이 나서 입을 닫고 있었고 이인재목사님은 ‘아무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노를 풀어야 돼’ 벌벌벌 떨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노를 풀어야 되겠어. 이건 참으로 신사참배만 큰 걸로 여기지만 그것보다 이게 더 큰 죄라.’ 그래도 다른 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백조사님은 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걷게 되었고 고신 지도부는 백조사님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원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인재목사님이 그다음 총노회 때에 이 문제를 다시 제기했습니다. '회개해야 된다. 회개하고 노회 촬요에 기록을 해야 된다' '촬요에 기록할 것까지 뭐 있나? 우리가 그건 잘못된 줄 알면 되었지.' 노회 기록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2.고신과 결별

(박사학위의 권위)
청도의 신흥교회 이목사님이 목회를 크게 했는데 그 교회 설교시간에 칼빈 교리의 틀린 점을 말하면서 고쳐 믿어야 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고려신학교로 말이 들어가서 칼빈보다 자기가 낫다 하는 말로 옮겨졌습니다. 한참 비판이 고조되는 시기에 마침 홍반식목사님이 미국에서 건너와서 부산남교회 설교를 하면서 칼빈이 깨달은 것으로 전부가 아니며 이 시대는 이 시대를 감당할 깨달음에 나가야 한다고 설교를 하고 칼빈보다 나은 학자들이 나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학위를 가지고 있는 분이어서 모두들 긍정을 하고 시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사람 간판으로 평가하는 것이라 백조사님 마음속에 이런 교계 평가를 아주 비웃고 있었습니다.
집회-청도신흥교회
설명:집회 시 칼빈의 교리에 대한 설교를 사람의 간판으로 평가한 교인들
내용분류:H55 시기:서부 B:교계 공회 C:교회 집회 날짜:·57

(고신에서 제명)
59'09.
고신 안에서 그는 소수가 따르는 주장을 했고 그와 반대 주장을 하는 이들은 다수였기 때문에 다수결이라는 제도로 쫓아냈습니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는 두고 행정상 다수가 지도부를 형성하고 그 힘으로 명령하게 되니까 옳은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상회명령불복종 죄목에 정죄받아 제명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잘못된 행동이 있어서가 아니고 옳은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진주노회에서 전국 집회를 하며 ‘백영희를 강단에 세우면 치리 받는다’고 송상석목사님이 주도하여 결의를 해서 정죄 받았습니다.

(관련 문서 처리)
송상석목사님이 팜프렛을 통해 제명하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그 인쇄물을 보고 그 내용이 잘못됐다고 성경으로 틀린 이유를 조목조목 지적해 놓으니까 결국 치리하지 못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상회 불복종이라는 죄목으로 치리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통지서와 노회 촬요까지 없애지 않고 다 가지고 있습니다. 행정 기술로 제명한 사람들은 양심도 없이 뒤에 다른 말을 붙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회 교역자들에게 한 장씩 보관하도록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으나 모두 내 버리고 아무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가치를 모르면 천하게 여기고 그렇게 되면 옛날에 돈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의학서적을 문종이 벽지로 발라 놓는 것과 같습니다. 훗날 지나가는 사람이 그 가치를 알고 돈을 주고 사서 유력한 의사노릇을 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서부교회 연경)
59.10.신용인노트에 연경회 가입청원서와 생활일지
1년 반 정도 교회 내 청년들을 연경과로 공부시켰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를 하던 백태영 백영침 신용인 김응도 송용조 등 청년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읽고 각 장이 자기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무엇을 책망하며 또 그 말씀과 자기와 관계되는 면을 낱낱이 기록하는 공부를 시켰습니다. 깨달음은 신용인이 제일 나았습니다.
모두들 집중해서 그 공부에 매진하니까 1년 반이 지나면서 성경에 달통하니까 설교도 잘하게 되었는데 말은 앞서가고 사람은 뒤따라가지 않으니까 교만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중단시켰습니다. 백태영 백영익 백영침 송용조 신용인, 이런 분들이 공부했습니다.
딤후3:16에서 주님이 성경으로 교훈 책망하니까 그것을 낱낱이 찾아 기록하는 공부였습니다.

(고신인을 위한 평생기도)
고라는 자기 위에 모세를 하나님의 기관을 모시고 있으며 그 자신도 자기 밑에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족장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누구를 나에게 모세처럼 세워 복음 운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있으나 모를 수도 있습니다. 모르고 만일 그런 기관을 협조하지 않으면 불충이 될 것이고 만일 협조를 못한다면 자기 맡은 사명에라도 충실해야 할 것이나 오히려 그런 기관들을 시기해서 훼방하기 쉽습니다. 고려파에서 나온 후 그곳 목사님들을 위해 평생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매일 드렸습니다. 또 그분들 밑의 젊은 사람들도 백영희 자신을 대립하여 훼방하는 것이 혹시 하나님께 붙들려 붙들려서 옳은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신앙으로 대립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했습니다.

오히려 매일 기도할 때에 같이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개인 이름을 기억하며 기도할 시간이 없어 전체를 두고 간단히 기도합니다. 배신하고 떠난 송용조 송용석 김철수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함께 가는 사람은 그들과 자기가 좋고 나쁜 것이 하나이지만, 대립의 길을 가는 분들은 백영희가 좋으면 그들이 불쌍한 길이므로 위해 기도해야 하겠고 만일 백영희의 걸음이 잘못이라면 그들은 하나님 세우신 옳은 길을 가는 것이므로 쉽게 단정하지 않고 늘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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