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 목사는 이단인가?
예장합동 3차 총회실행위원회 회의에서 “총신비상사태와 관련한 정이철의 신학사상 문제점 분석과 평가”를 작성해서 발표했다(17-33쪽). 보고서 작성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주경신학, 선교신학, 실천신학 교수 7분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 글을 비평하려고 글을 보는 순간 패닉에 빠져 버렸다. 그것은 첫 어휘가 “총신대 김영우 총장은~”라는 문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첫째, “총신비상사태와 관련한 정이철의 신학사상 문제점 분석과 평가”에서 주된 표적은 ‘정이철’이다.
그런데 왜 총신비상사태에 정이철의 신학사상이 연결되는지 연관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주된 표적은 ‘김영우’와 ‘칼 매킨타이어’이고, 두 사람이 잘못되었으니 이 사람과 연관된 정이철의 사상이 문제가 있다는 프레임으로 보아야 한다.
칼 매킨타이어는 정이철과 전혀 관계없이 도출시킨 것이다. 그리고 ‘박영돈’이 표적으로 등장한다. 바른 개혁신학자 박영돈의 방언과 성령 이해를 비판했으니 정이철이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부정적인 표적과 긍정적인 표적을 세워 정이철의 사상을 규정하는 이상한 방식을 구성했다.
이러한 방식은 탐구 전에 이미 결론을 100% 확정하고 전개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문장 구성에서 감정까지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은 약 20여 쪽으로 풍성하지만 사상 비평에서 논리 연관성이 약하다.
둘째, 개혁신학은 한 신학 계통의 라인을 갖고 있지 않다. 정이철은 과도한 경향 때문에 비평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것은 신학 전문 교수들이 비평하지 않아도 이미 다수가 인지한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성이 있다는 신학 보고서는 오히려 비판자들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자기 해석과 다르기 때문에 정이철의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규정하는 것도 정이철과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는 수준이다.
개혁신학의 스펙트럼을 넓게 잡고 활동하는 사역자와 좁게 잡는 사역자가 있을 뿐이다. 정이철은 그 스펙트럼을 작의적이고 협소하게 규정하고, 자의적인 해석으로 오해될 여지가 많다. 그것은 신학 연구를 진행하는 골방 학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와 판단에서 협소한 태도가 용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학교 교수들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연구자로 광의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데, 한 해석을 취하지 않으니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거나 대상자와 동일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방언 이해는 해석에 대해서 다양성이 있다. 연구자가 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한 해석을 맹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정이철이 주장하는 방언은 “아주사 부흥 운동이 거짓이라는 것이고, 그 부흥운동의 표적인 방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그것에 대해서 제시하지 않았다.
정말 정이철의 신학 사상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아주사 부흥 운동이 바른 성령 운동이고, 방언도 진짜 였다”고 말한다면 정이철과 이해 대척점이 될 것이다. 아주사 부흥 운동에서 방언은 기도가 아니었고, 복음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방언으로 복음 전도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고, 신사도주의에서 방언으로 설교하는 경우도 있다. 은사중지에 대해서는 정이철과 박영돈의 큰 대척점은 벤자민 워필드, 리차드 개핀이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보고서 작성자는 벤자민 워필드와 리차드 개핀의 사상을 거부할 것인지 말한다면 정이철과 대척점이 될 것이다.
기적, 은사 중지론은 기적 중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적이 구원에 기여하는 것, 영적 유익을 주지 않은 것을 주장한 것이다. 생활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이 기적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 기적이 구원에 유익이 없는 사안이라고 자기부정 하는 훈련이다. 그런 분별이 없다면 기적, 은사 중지론에 대한 토론을 중지해야 한다.
보고서에서 스프라울이 방언으로 기도했다고 개혁신학의 전형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워필드, 프레임, 리차드 캐핀, 칼빈(제네바교회 교리문답 247문) 등이 방언을 금지하면 개혁신학에서 이단아가 되겠는가?
넷째, 자기 해석을 과도하게 주장한 것이 무례(無禮)를 말할 수 있다. ‘무례’와 ‘사상의 오류’를 구분해야 한다.
방언을 개혁신학자가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정이철의 주장이고, 또한 개혁신학 안에서 방언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방언이 개혁신학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에 신학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
좀 더 엄격한 신학 태도를 용인해야 하고, 더 개방적인 신학 태도에 경종을 주어야 신학을 보호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개방에 힘을 주면 개혁신학은 더 빠르게 해체될 것이다.
다섯째, 보고서에서는 상당히 독단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소결론에서 방언을 인정하면 풍성한 성령 이해이고, 방언을 부정하면 분리주의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정죄하면 이단”이라는 식으로 규정했다.
해석의 다양성이 확증되지 않을 때에는 피차에 주의가 필요하다. 정이철은 신학대학원 교수께 수학한 후진(後進)이다. 무례한 후진을 훈계하는 선진(先進)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까?
여섯째, 종합정리에서는 앞부분과 전혀 관계가 없이 총신 사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칼 매킨타이어의 신근본주의의 분리주의와 연결한다.
아쉬운 것은 매킨타이어의 분리주의로 한국 교회 분열 원인으로 제시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WCC 문제로 분열했고, WCC를 용공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합동 측을 도운 매킨타이어를 분리주의로 규정한 것은 교단 분열의 책임이 합동 교단에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근본주의라는 ICCC와 단절이어도 매킨타이어에게 받은 재정 지원까지 반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정이철이 분리를 주장한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류를 지적한 것이 분리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릇된 오류 인지로 과도한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분리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일곱째, 정이철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한다. 허위사실 유포는 사상 문제의 범주가 아니다.
그리고 허위사실 부분에서는 정이철의 문서 자료가 등장하는데, 정작 중요한 사상 문제에서는 정이철의 문장이 중요하게 제기되지 않는다. 허위사실 유포는 사상이 아닌 윤리 혹은 명예적인 분야에서 검증해야 할 분양이다.
이러한 문제는 총신 사태에 대한 보도 내용과도 동일한 기준이다. 정이철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는지 유무(有無)나 총신 사태에 대한 편향된 보도의 유무는 사상 검증과 전혀 관련 없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들이 제시한 정이철의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방언은 개혁신학 범주에 포함시키면 안 된다. 2) 사도행전의 방언과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동일하다. 3) 은사 중지론이 개혁신학의 바른 이해이다.
이 사상이 이단적 사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적으로 편협, 무례, 독단, 편향적 성향 때문에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이철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합동 교단의 목사이다. 어떤 때는 교단 목사이기 때문에 타 교단의 이단 비판에서 우호적으로 보호하고, 어떤 때는 외부의 고소도 없는데 스스로 교단 소속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패턴도 이해하기 어렵다.
고경태 목사/ 광주 주님의교회, 조직신학(Ph.D.)
<크리스천포커스> (2018.4.25.)